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64)화 (364/456)

364. 꿈꾸는 마음으로(3)

“진성이가 동생 칭찬을 엄청 하더라고. 밥도 잘하고 착하고 연기도 잘하고. 요새 보기 드문 성실한 배우라고.”

“칭찬 감사합니다…. 제가 형님을 엄청 귀찮게 해서 그런가 봐요, 궁금한 게 너무 많았거든요.”

낚싯대를 들고 등장한 이경우 선배님은 호탕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 반짝이는 눈동자 안에 ‘밥’이라고 적혀있는 걸 도저히 못 본 척할 수가 없었다.

‘배우’라고 지칭해 주신 게 마음에 걸렸지만, 좋게 봐주셨구나 하고 넘겼다.

아이돌이라고 무시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한 연기를 칭찬해주시는 거라고.

“일단, 점심때고 하니까 밥을 준비할까요?”

“그래, 뭐 먹을까?”

“우리 뭐 있지?”

열심히 장작을 정리하고 오수 형님과 함께 마당을 정리하던 경환 형의 귀가 쫑긋거렸다.

아침도 못 먹고 간단하게 컵라면 하나 급히 먹고 왔으니 배고플 때도 됐지.

“이거 손님 모셔놓고 우리가 참 그렇다. 안 되겠네, 지금쯤 물 빠졌지? 전복 캐러 가자!”

“형님, 그거 아직도 미련 못 버렸어요?”

이경우 선배님보다 오수 형님이 더 어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갭이 컸다.

역시 배우들은….

“진짜 전복이 있어요?”

“있다는데 아직 우린 못 봤어.”

“전설로만 내려오는 그런 종류였던 건가요…?”

경환 형의 시선이 PD님에게 향하자 PD님은 자신은 떳떳하다고 외쳤다.

바위 몇 개 뒤집으면 나오는 게 전복이랬는데 당신들이 꽝 손인 걸 어떡하냐고.

“전복 없어도 괜찮아요. 저희가 고기를 좀 사 왔으니까 이걸로 반찬을….”

“아냐, 여기는 한 끼만 생각하면 큰일 난다. 마침 시간도 맞으니까 가서 좀 보고 올게.”

“그럼 저도 같이 갈게요. 어차피 밥할 때 전 불필요해서.”

경환 형도 직접 가겠다고 나섰고, 순식간에 인원이 정해졌다.

진성 형님은 불 피우고 옆에서 도와준다고 남았고, 나머지는 모두 전복을 캐보겠다고 떠났다.

순식간에 시끌시끌했던 집안이 조용해졌다.

“하아…. 저 아직 멀미하나 봐요.”

거울을 보지 않아도 얼굴이 엉망일 게 뻔했다.

그런 모습에 진성 형님은 씩 웃더니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그래도 형이 밥은 잘해. 다행이지?”

“네, 정말 다행이네요.”

“그래, 뭐할 거야?”

숙련된 일꾼처럼 불을 피우기 위해 화구를 챙겨 솥을 거는 모습이 낯설다기보다 멋있어 보였다.

역시 잘생기고 볼 일이었다.

“음, 힘드니까 속이 따뜻해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소고기뭇국이랑 제육볶음 하려고 했는데. 무 있어요?”

“냉장고에 있어. 조미료는 저기 찬장에 있고.”

차근차근 집의 구조를 설명해주는 형님을 따라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좋아, 오늘 하루만 고생하면 내일은 여기를 벗어날 수 있으니까.

이왕 온 거 잘 해내자며 마음을 다잡았다.

경환 형은 안 다치고 잘하겠지…?

* * *

다른 형님들과 함께 갯바위가 드러난 곳으로 내려온 경환은 나름대로 결의를 다졌다.

지환이 자신의 분량을 걱정할 게 뻔하니 알아서 잘해내야 한다는 그런 다짐.

높이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장갑까지 야무지게 끼고 다른 형님들 뒤를 따랐다.

“이야, 역시 아이돌은 다르네. 이렇게 입었는데도 패션 같아.”

“선배님에 비하면 반딧불이죠.”

“말도 예쁘게 하고 말이야.”

“우리 경환이는 힘도 좋아요. 저번에 보니까 달리기도 빠르더라고요.”

오수는 경환의 칭찬을 잔뜩 늘어놓았고, 듣고 있던 경우의 눈은 점점 반짝거렸다.

“전 그냥 힘쓰는 것밖에 도와드릴 게 없어서…. 최대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말만 들어도 든든하네. 자, 우리도 전복 좀 따가자. 그래야 면이 살지.”

경환은 우진의 주입식 교육 탓에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다치지 말고 열심히’를 중얼거렸다.

우진이 늘 멤버들을 붙들고 주문처럼 들려주는 말이 저 말이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다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면서.

주먹을 불끈 쥔 경환은 오수를 따라다니며 보이면 챙겨야 할 것들을 배웠다.

“이건 톳이라는 건데, 무쳐놓으면 맛있어.”

“이제 톳은 그만 먹고 싶다….”

경환은 열심히 배말을 따고 바위를 뒤집으면서 전복을 찾았다.

그러면서 형님들 말을 들어보니, 그동안 낚시도 실패하고 통발에도 딱히 뭐가 없었다고.

낯선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가히 눈물겨울 정도였다.

거북손, 배말, 톳과 작은 텃밭에 있는 채소들이 주재료였다고 했다.

그래서 첫 게스트인 우리가 오길 학수고대했다고.

진성이 지환을 적극 추천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원래라면 게스트는 제작진이 알아서 선별해야 했지만, 진성이 처음부터 게스트로 지환을 불러 달라고 한 것.

힐링캠프에서 언래블의 활약을 익히 봤던 PD는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허락했다.

그동안 출연진들이 너무 고생하기만 해서 좀 풀어지는 휴식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생각보다 예능 재질이던 멤버들이 기억에 남기도 했고.

그렇게 다 같이 흩어져서 바위를 이리저리 굴린 지 얼마나 됐을까.

경환이 근처에 있던 오수를 부르며 무언가 높이 들었다.

“형님, 이거 맞아요?”

“헐! 야, 이거 어떻게 찾았냐!”

“대박!”

사방에서 출연진뿐만 아니라 스태프들까지 놀라서 경환을 쳐다봤다.

바위를 열심히 들어 엎던 경환이 자기 손바닥만 한 전복을 찾아낸 것.

“이야, 이거 경환이가 복덩어리였네!”

“이거 썰어가지고 먹으면 죽이겠네. 하하! 하 PD야, 봤냐! 이게 우리 경환이다!”

전복 하나에 신이 나서 들썩이는 출연진 모습이 어지간히 웃겼다.

“거봐요, 제가 전복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야이, 니가 와서 직접 뒤집어봐!”

“내가 이거 하다 허리 나갈뻔했다, 이놈들아!”

태연하게 대꾸하는 규원의 모습에 경우와 오수는 발끈해서 삿대질해댔다.

그동안의 고생이 떠올랐으니 오죽 얄미울까.

“경환아, 어떤 바위 뒤집어야 하냐? 이거? 저거?”

“어, 저도 그냥 막 뒤집다 얻어걸린 거라…. 그냥 찍을게요.”

경환은 멋쩍게 웃으며 경우가 가리킨 바위 중 하나를 뒤집었다.

“있다! 또 있어!”

“경환아, 너 가지 말고 여기서 우리랑 살자!”

또 주먹만 한 전복이 있었다.

축제 분위기가 된 갯바위에서 오수는 감격에 차 소리를 질렀고, 경우는 오늘 처음 본 후배를 와락 껴안았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던 건지, 전복 두 마리에 영웅이 된 경환.

경환은 그래도 일당만큼은 벌었다 싶어 양손에 전복을 들고 환하게 웃었다.

‘지환아, 형이 밥값 했다!’

그 후 신난 출연진들은 미친 듯이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바위를 뒤지고 다녔다.

한편, 집에서는 진성이 앉아 불을 피우고 있었고, 지환이 바쁘게 오갔다.

“쟤는 다람쥐 같아, 어떻게 저렇게 빠르지?”

진성은 진우에게 지환이 밥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숙소에서도 멤버들 밥을 해서 먹인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사실 밥해달라고 불렀다기보다는 고기와 언래블의 출연 기회를 위해 부른 거였는데.

진성은 재빠르게 오가며 재료를 다듬는 지환의 손을 보고 감탄했다.

“쟤가 진짜 19살 맞아?”

“알고 부르신 거 아니에요?”

스태프의 질문에 진성은 헛웃음을 흘렸다.

“진우한테 말만 들었지. 진짜 저렇게 잘할 줄은 몰랐어.”

소고기 뭇국을 한다고 소고기에 밑간하더니 어느새 무도 다 썰어놨다.

“형님, 불 다 됐어요?”

“어. 이제 된 거 같다.”

지환은 재를 뒤집어쓴 진성을 안쓰러운 눈으로 보더니 어디서 부채를 찾아와서는 재를 털어줬다.

“우리 잘생긴 형님이 눈사람 다 됐네요.”

“여기선 일상이라, 뭐.”

“금방 맛있는 밥 해드릴게요.”

자기보다 조그만 후배 놈이 자신을 안쓰럽게 보는 게 재밌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얘는 진짜 특이한 애라고 생각했다.

진우가 왜 그렇게 예뻐서 안달하는지 조금 알 것도 같다고.

진성이 한쪽 솥에서 밥을 하는 동안, 지환은 소고기와 무를 넣고 볶기 시작했다.

고기가 볶아지면서 퍼져나가는 고소한 냄새에 진성의 얼굴이 행복함으로 물들었다.

“이게 얼마 만에 맡아보는 고기 냄새냐.”

열심히 볶다가 물을 붓고 준비해둔 양념을 넣은 지환은 다시 부엌으로 달려갔다.

미리 양념해서 재워둔 제육볶음용 고기와 채소를 꺼내둔 것.

“밥이 이렇게 빨리 되는 거였어? 지환이 덕분에 살았네, 진짜.”

“형님이 도와주셔서 그렇죠. 재료 다듬고 뭐하고 하는 거 혼자 했으면 훨씬 오래 걸렸어요.”

방긋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손사래 치는 모습이 사회생활로 보이지 않았다.

이런 작은 칭찬에도 부끄러운지 뺨이 발그레해져서는 후다닥 부엌으로 도망간 탓이었다.

그렇게 하나둘 음식이 완성되어 가는 동안 전복 팀도 꽤 무거워진 통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우리가 왔다! 이거 봐라!”

“경환아! 보여줘!”

“네, 형님!”

어느새 물들어버린 건지, 경환은 근엄한 얼굴로 양손에 커다란 전복을 쥐고 개선장군처럼 들어왔다.

양쪽에서 어깨춤을 추는 두 사람은 사회적 체면도 모두 벗어던진 건지 방방 들떠있었다.

“이래서 사람이 잘 먹고 살아야 한다고….”

주방에서 뒷정리에 한창이던 지환은 자기보다 한참 윗줄의 선배들이 벌인 이 기묘한 행진을 보고 중얼거렸다.

부끄러움은 어째서인지 진성의 몫이었다.

전복에 신나서 들어왔던 세 사람은 음식 냄새에 다시 한번 행복한 얼굴이 되었다.

드디어 고기를 먹는다고, 물고기도 못 먹었는데 육고기가 있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쏟아지는 칭찬이 버거웠던 건지 지환은 얼굴 전체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후다닥 부엌으로 도망갔다.

신난 오수와 진성이 전복을 씻기 시작했고, 경우는 슬그머니 경환에게 다가갔다.

“경환아, 쟤가 몇 살이라고?”

“19이요. 저보다 한 살 어려요.”

“그런 애가 아주 살림꾼이네.”

“덕분에 저희가 먹고살아요.”

경우는 어딘지 모르게 먹잇감을 노리는 매의 눈으로 지환을 살피고 있었다.

경환이 마당을 정리하는 사이 지환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까는 제대로 말도 못 해 보고 가버렸네. 오느라 고생했지?”

“아니에요. 자면서 와서 괜찮아요.”

빨개진 얼굴로 도망갔던 건 어디 가고 금세 차분하게 웃으며 답하는 지환.

한편 지환은 경우가 다가와 자신을 뜯어보는 게 부담스러웠다.

“손이 아주 야무지네. 벌써 주방도 다 치워놨어? 밥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중간중간 조금씩 치우면서 해서 별로 할 거 없었어요.”

경우가 무언가 더 물어보려던 그때, 진성의 외침이 들렸다.

“밥 먹죠.”

* * *

늦은 점심은 호화로웠다.

전복회에 제육볶음, 소고기 뭇국에 부추겉절이까지.

상에 옹기종기 모인 다 큰 성인들이 푸짐하게 차려진 상을 바라보며 얼마나 행복해하던지.

부른 배를 두들기며 모처럼 한가로운 시간이었다.

“평소에는 셋 다 뭐 할 줄 모르니까 맨날 온종일 밥하다 끝났어. 이렇게 여유롭게 커피 마시는 게 얼마 만인지….”

식사가 끝나자마자 커피까지 타서 사람들에게 쭉 돌렸다.

출연진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스태프 것도.

“이거 어떻게 탄 거야? 달짝지근하고 쌉쌀한 게 맛있네.”

“커피 1 설탕 3으로 타면 이렇게 되더라고요.”

“얘는 진짜 못하는 게 뭐야?”

어째서인지 경환 형이 더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섬을 구경하고 와서는 그때부터 돌담에 앉아 우리를 구경하던 포잉도 평소보다 편안해 보였다.

외부와 단절된 만큼 다른 위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정감 때문일까.

나와 경환 형은 설거지를 해치우고 쉬려 했지만, 형님들에게 막혔다.

밥하는 사람은 그런 거 하는 거 아니라고.

경환 형이 자기는 밥 안 했다고 자기가 하겠다고 했지만, 전복 잡은 귀한 손이라며 한사코 앉혔다.

자연스럽게 설거짓거리 앞에 앉는 경우 선배님과 오수 형님.

“처음에는 마냥 힘들었는데, 그러다가도 이렇게 바다 한번 보면 마음이 풀어지더라.”

“진짜 되게 예뻐요.”

낮게 쌓인 돌담과 나무 몇 그루, 그리고 그사이에 펼쳐진 드넓은 바다와 작은 섬들.

낮게 날고 있는 새와 부드럽게 밀려오는 바람, 그 안에 느껴지는 짠 내음.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우리도 그렇지만 너도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잖아. 얼마 전에 콘서트도 했고.”

“네. 최대한 열심히 살려고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조바심도 나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져. 그런 거 생각하니까 하루라도 이런 풍경을 같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감사합니다, 형님.”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이것도 진성 형님의 진심이고 배려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온기 가득한 말에 훈훈하던 그때, 오수 형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저녁은 뭐 먹어?”

“벌써요?”

아무래도 쉬는 건 글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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