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26)화 (326/456)

326. Lonely(1)

“네, 형. 당연하죠, 하하. 우리 환이가 절 얼마나 따르는데요.”

진우는 진성과의 통화 내내 지환이 얼마나 자신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는지, 존경의 눈빛을 보냈는지 자랑해댔다.

진성은 긴 시간 알고 지냈던 여진우가 어디 가고 이상한 팔불출 새끼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긴 시간의 인연이 그에게 참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은근히 소심한 여진우는 진성이 무어라 탓하면 한참을 꽁할 테니 그게 더 귀찮은 일이었다.

- 어지간하다, 진짜. 너 주변에 너보다 어린애들 없지?

“아뇨? 후배 배우들 얼마나 많은데요.”

- 그래, 그냥 후배들. 어린 후배, 나이 든 후배 등등?

“아, 형!”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한 진우이기에 후배가 연장자인 경우도 많았다.

지금이야 아역 배우들도 모두 통틀어서 배우라는 풀에 넣어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진우가 처음 데뷔했을 때는 지금과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일찍 세상을 배워야 했던 진우는 그때의 경험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 덕분에 사람을 사귀는 것도 까다로운 편이었고.

그럼에도 진우가 크게 탈 나지 않고 잘 자랄 수 있었던 건, 다른 성인 배우들의 도움이 컸다.

동등한 배우라는 시선에서 연기에 대해 조언해주고, 삶에 대해 일러주었다.

지금 진우가 언래블 멤버들에게 다정하고 좋은 형으로 있을 수 있었던 건, 자신이 배워온 것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진우의 부모님이 해주지 못했던 일이었다.

게다가 진우의 부모님은 인생의 우선순위가 명확하신 분들이었다.

두 분 사이가 너무 좋아 진우에게 쏟는 애정이 조금 덜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 모습이 진우는 싫지 않았다.

부부가 그저 서로를 가장 사랑하는 것뿐이니까.

진우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늘 진우에게 버릇처럼 말했다.

나중에 세상이 아깝지 않은 사람을 만나거든 무슨 일이 있어도 잡으라고.

아버지에게는 늘 어머니가 첫 번째였고, 어머니는 자기 삶을 가장 사랑하는 분이셨다.

어릴 때는 서운하거나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었지만, 두 분이 부족한 부모님은 아니었다.

진우에게도 아낌없이 지원해주셨고, 연기가 하고 싶다는 말에 선뜻 그러라고 해주셨으니까.

하지만 여진우는 연기가 좋아서 시작했던 것과 달리 연기만 하기는 녹록지 않은 세상이었다.

그때 진우는 힘들면 언제든 그만둬도 좋다는 부모님의 말씀이 무서웠다.

그 탓에 부모님에게는 힘듦을 말하지 못했던 어린 진우에게 다른 성인 배우들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덕분에 진우는 그때의 선배님들과 지금도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사람 중에는 이진성도 있었다.

진우가 진성을 만난 건 10살, 두 번째 작품에서였다.

그때 지금의 진우 나이 때였던 진성은 특유의 무뚝뚝함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진우에게는 다정했다.

그 인연이 이렇게 긴 시간 유지될지는 진우도 진성도 몰랐지만.

그만큼 이진성은 여진우에게도 무척 고맙고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지환이 진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진우는 자꾸만, 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주변 사람 중 진우보다 어린 사람은 언래블이 유일했다.

대부분 지인이 나이 차가 나는 형님들이다 보니, 언래블에게 더 눈이 가고 기특해 보이는 건 본인도 알고 있었다.

“우리 환이가 진짜 눈 초롱초롱해가지고 저한테 ‘형, 진짜 멋있었어요!’ 하는데 얼마나 기특해요.”

- 여진우, 정신 좀 차려봐. 하, 넌 걔가 남자라 다행인 줄 알아라.

이진성은 진우가 지금 형 놀이에 흠뻑 빠져있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적당히 내버려 두기로 했다.

언래블의 다른 멤버들은 모르지만, 자신이 겪었던 지환은 꽤 괜찮은 배우였기도 하고.

“동생 삼는데 성별이 무슨 상관이랍니까. 형님은 이렇게 기특한 동생 없죠?”

- 그래, 형은 발랑 까져서 형한테 대들기나 하고 매번 투덜거리는 여진우라는 동생뿐이네.

“아, 왜 또 말을 그렇게 해요. 제가 언제 형한테 대들었어요.”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진성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진우는 후련한 얼굴로 통화를 끝냈다.

가끔 다른 형들이 하던 자랑을 부러워만 했는데, 직접 하고 나니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너희 집엔 이런 거 없지?’ 하던 동백꽃의 어떤 대사가 문득 떠올랐다.

“내가 진짜 살다 살다….”

다른 형들 앞이었으면 입 밖에 꺼낸 순간 쪼그만 게 별소릴 다 한다고 혼날 말이지만, 혼자 있으니 맘 편히 내뱉었다.

약간의 부끄러움이 뒤늦게 몰려왔지만, 진우는 후회하지 않았다.

‘언제 이런 걸 해보겠어?’

외동인 진우에게 새벽 형들은 친형 같았고, 언래블 멤버들은 친동생 같았다.

무수한 질투와 동경, 선망, 애정과 증오를 한 몸에 받고도 멀쩡하게 잘 자란 진우였다.

약간의 부끄러움 정도야 간의 기별도 안 갈 수준.

진우는 어서 내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일은 드디어 처음으로 지환과 함께 첫 만남을 찍는 날이었다.

* * *

경환은 오랜만에 틈이 생겨 예전 친구와 얼굴을 보기로 했다.

연습생 생활 때, 잠깐 얼굴을 보고 그 후로 보지 못했던 친구였다.

매니저인 우진 형에게 미리 이야기해 두고 추천받은 카페에서 드디어 마주했다.

“잘사냐.”

“그럭저럭?”

동글동글한 눈매가 무척 순해 보이는 친구는 마지막 모습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경환은 조금 설레기도 했다.

멤버들 외에 학창 시절 친구는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연락이 끊겼다.

연습생으로 몇 년 지내는 동안 이런저런 일들이 그와 친구들의 사이를 멀어지게 했다.

연습생 생활을 응원해주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으니까.

“멀쩡해 보이니 다행이네.”

안도하는 듯한 친구 얼굴에 경환은 입안이 조금 썼다.

좋은 기사만 있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기사들도 접했을 친구는 경환을 걱정한 듯했다.

“나야 늘 멀쩡하지.”

“그런 새끼가 맨날 연락도 안 하고? 영우가 너 만나면 묻어버릴 거라고 노래를 불렀다.”

“핸드폰 잘 못 본다니까.”

앉자마자 자주 연락하지 못하는 경환에게 아쉬움을 토로하는 친구의 모습이 되려 다행이다 싶었다.

적어도 아직은 경환을 친구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모처럼의 소중한 휴식 시간을 친구를 만나기 위해 쓴 경환은 만나자고 먼저 연락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이전과 다르지 않았고, 여전히 걱정도 많고 잔소리도 끊이질 않았다.

그 와중에 다른 친구들 소식을 경환에게 하나, 둘 늘어놓기도 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금 언래블 멤버들과 자신의 주변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생각이 미쳤다.

“진짜 새벽이랑 친해?”

“음, 형들이 잘해주는 편이지.”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연예인을 직접 만나는 사람이 된 경환을 부러워하고 신기해한다는 것.

친구를 만나기 전 팀장님에게 들었던 당부 몇 가지가 떠올랐다.

절대 타 그룹에 대해 언급하지 말 것.

특히나 여자 연예인에 관해서는 절대 말하지 말 것.

최근 촬영한 프로그램에 관한 질문도 절대 답하지 말 것.

등등 꽤 많은 주의사항.

하지만 하나같이 모두 중요한 내용이었기에 경환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나중에 나 사인 한 장만 받아다 주면 안 되냐? 진짜 새벽 팬인데.”

“형들한테 말해볼게.”

“크, 아이돌 친구 덕분에 내가 계를 타네.”

“그런 말도 알아?”

경환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팬들이 쓸법한 단어를 쓰는 친구가 신기해 보였던 것.

그러자 조금 쑥스러운 얼굴을 한 친구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야, 그래도 내가 좀 알아야 너희 앨범 홍보도 하고 하잖아. 그래서 공부 좀 했다.”

“어쭈.”

늘 사람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던 경환을 자기 친구들과 섞여들게 했던 것도 이 친구였다.

싸우기도 징그럽게 많이 싸웠지만.

근황을 주고받다 보니 점점 흘러나오는 건 지난날의 추억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날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하다 보니 엄청 과거의 이야기 같아져서 싱숭생숭한 기분이 되었다.

“그래도 다행이네. 워낙 흉흉한 얘기가 많아서 걱정했는데.”

“흉흉한 얘기?”

“어. 밖에서는 다 사이좋은 척해도 그룹 안에서 엄청 싸우는 사람들 많다고 들었거든. 은예 알지?”

“아, 어 최은예 맞지?”

가물가물했던 기억 위로 어떤 얼굴이 떠올랐다.

“호진이 너 걔 좋아했잖아.”

“아, 진짜! 좀 잊어라, 이 새끼야!”

어린 날의 풋풋한 첫사랑이라고 하기엔 좀 웃기지만 어쨌거나 친구가 무척 좋아하던 애였다.

“걔 아이돌 한다고 하더니 데뷔했다고 했었거든.”

“아, 진짜? 언제?”

어디선가 우연히 마주쳤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묻자, 친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데뷔하고 얼마 안 되어 그만뒀어. 나중에 들은 건데 멤버들한테 따돌림당했다더라. 대표가 자꾸 이상한 행사 내보내고….”

“아….”

경환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경환에게는 주변에서 흔히 들었던 이 바닥의 추잡한 모습 중 하나였다.

보통 아이돌 계약은 7년.

그 계약을 파기하는 건 여러모로 쉽지 않다.

그렇기에 경환은 ‘그만뒀다’라는 말 한마디로 많은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남녀를 떠나 그렇게 소모품처럼 취급되던 사람들이 바다의 모래알만큼 많은 게 그곳이었다.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 득실거리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그녀를 좋아했던 친구 앞에서는 말하기는 어려운 이야기였기에 입을 다무는 걸 선택했다.

다행히 친구는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는지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꺼내며 경환을 걱정했다고 했다.

“자세히는 얘기 안 하는데 아무튼 좀 힘들었나 봐. 그래서 가뜩이나 성격 드러운 넌 어떻게 지내나 걱정했지. 자꾸 이상한 기사도 뜨고 하니까.”

“난 괜찮아. 회사도 그렇고 멤버들도 그렇고 엄청 좋아.”

혹시라도 친구가 오해할까 봐 자신은 무척 좋은 상황이라는 걸 설명했지만, 친구는 피식 웃고 말았다.

“알아, 인마. 너 아까부터 너희 멤버들 얘기할 때는 얼굴이 활짝 폈더라. 새끼가 좋은 거 못 감추는 건 여전하네.”

“내가?”

“어. 너 좋아하면 되게 티나.”

경환은 자꾸만 기분이 이상해졌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런 자신이 싫지 않다는 것.

멤버들을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친한 친구에게 재확인받는 건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었다.

“아무튼 너 무사하면 됐다. 다음엔 다 같이 술이나 한잔하자.”

“그래. 너희랑은 마셔야지.”

그렇게 친구와 다음을 약속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경환은 새삼 형들과도 술을 마셔본 적 없다는 게 떠올랐다.

다른 건 몰라도 하준이나 영빈과는 꼭 술을 마셔보고 싶었다.

생각보다 영빈이 주량이 꽤 세다고 하던데 어떨지 궁금해졌다.

더불어 자신의 주량도.

모자를 눌러쓰고 택시를 잡아탄 경환은 근질거리는 손가락을 참지 못하고 결국 메시지를 보냈다.

[언제 우리 술 한잔합시다]

형2 [갑자기?]

형1 [친구는 잘 만났어?]

맏형들과 단체채팅방을 만든 경환은 자신이 둘을 저장했던 이름을 보고 실없이 웃었다.

크게 충격받은 듯했던 둘의 얼굴이 떠올랐던 것.

좀 바꾸는 게 어떠냐는 말을 몇 번 들었지만, 경환은 바꿀 생각이 없었다.

첫 번째 형, 두 번째 형.

이렇게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것을.

[회사 가는 길.]

[그냥 형들이랑 마셔보고 싶어서]

형1 [그래. 우리 경환이도 이제 술 마실 수 있는 나이네.]

형2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형2 [갑자기 왜 술타령이야]

형2 [친구가 뭐라고 해?]

[아니, 잘 만나고 잘 놀다 들어가]

보내는 메시지에서도 둘의 성격이 드러나서 자꾸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준은 별말 없이 납득하고 그러려니 했지만, 영빈은 혹시나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캐묻고 있었다.

[술 마실 거면 어른한테 배우라잖아]

이 한 문장을 몇 번이나 썼다가 지웠다.

경환에게 그들은 형이자 어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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