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01)화 (301/456)

301. 게릴라(2)

“너 뭐해?”

“아무것도 아냐.”

페리의 질문에 에드는 신경질적으로 답하고는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야, 래블이들 괜찮대?”

“연락했는데 답이 없어. 애들도 정신없겠지.”

“이거 계속 촬영해도 되는 거야?”

“PD님은 왜 그런 짓을 한 거래?”

“몰라. 애들 오늘 촬영이 막방이었는데… 어휴.”

멜트 멤버들은 매니저를 통해 전달받은 불미스러운 일로 수군거렸다.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후배 그룹, 게다가 멜트도 연관 있는 프로그램의 사고.

그 일은 소속사를 통해 바로 멜트 멤버들에게도 전달되었고, 다들 언래블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중 한 명, 에드만은 초조함을 감추기 위해 몇 번이나 입술을 짓이겼다.

“에드, 자꾸 입술 물지 말라니까. 다 지워지잖아.”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핀잔에도 정신을 놓고 있던 에드는 핸드폰만 꽉 쥐고 있었다.

멤버들은 그런 에드를 힐끔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간 함께 지내온 멤버인데도 최근 에드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애먼 후배 그룹에 날을 세우지 않나, 야밤에 갑자기 외출하질 않나.

그런 에드를 향해 멤버들은 열애설 터지면 난리 나니까 티 내지 말라고 핀잔을 주곤 했다.

에드는 그때마다 그런 게 아니라고 신경질을 냈지만, 멤버들은 거듭된 부정에도 찝찝함이 가시질 않았다.

평소 쉬는 날에는 골든아워 형들을 찾아가거나 숙소에 처박혀있던 애가 갑자기 밤 나들이를 하다니.

처음에는 멤버들 몰래 연애라도 하나 싶었다.

하지만 다녀온 에드의 옷에선 담배 냄새만 날 뿐, 술 냄새나 다른 향은 없었다.

그마저도 두세 번 나가더니 더는 나가지 않았다.

남은 멤버들은 이를 매니저에게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고민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누구랑 만나려다 잘 안됐나 하고 말았지만, 오늘따라 에드의 행동이 눈에 걸렸다.

이 바닥에서는 눈치가 없으려면 아예 없어야 하고, 있으려면 숨소리만 듣고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멜트의 리더는 어느 쪽인가 하면 후자였다.

골든아워의 하겸이 가장 자신을 많이 닮았다고 말할 만큼.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아 보이던 애가 지금은 불안한지 눈을 굴린다.

그리고 오늘, 언래블 관련 기사가 터졌고, 에드는 언래블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

직감적으로 에드가 이 일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걸 알아챈 디아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처음 시작부터 속을 썩이더니 지금도 마찬가지인 에드.

에드 성격상 디아가 추궁하면 더 삐딱선 타고 어디로 튀어 나갈지 알 수 없었다.

디아는 에드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에게 조용히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스케줄이 끝난 후 하겸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하며, 디아는 부디 조용히 이 일이 끝나길 빌었다.

* * *

“저는 괜찮다니까요. 네. 형 안 오셔도 돼요. 저희 숙소에 있어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하겸 형의 목소리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인하, 단우 형의 목소리.

어지간히 걱정됐는지 전화를 받자마자 ‘지환이냐?!’ 하는 외침이 먼저 터져 나왔다.

당장 숙소로 쳐들어오겠다는 형들을 간신히 달래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왜? 하겸이 온대?”

“아뇨. 오시지 말라고 잘 달랬어요.”

“걔는 그래서 안 돼. 뭘 물어. 그냥 오면 되지.”

거실에 제집처럼 다리를 쭉 뻗고 앉아있는 가영 형.

세비 형과 진우 형은 미안한 듯 웃었고, 키스 형은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전화는 내버려 두고 이제 죽 좀 먹어.”

“그래, 아플수록 잘 먹어야지.”

“저 몸이 아픈 게 아닌데요….”

키스 형에게 조그마한 항변을 해봤지만,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먹기 좋게 식은 죽을 내 앞으로 내민 형은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색하게 웃는 나와 이 대치가 재밌는지 지켜보는 멤버들.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시선에는 익숙해질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병원을 나와 숙소에 올 때까지만 해도 쥐면 부러질까, 불면 날아갈까 전전긍긍했던 멤버들이었다.

숙소에 와서도 한참을 주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는데, 무인도 패밀리가 오자마자 이렇게 변해버리다니.

“먹을 테니까, 쫌….”

“형들이 있으니까 화니가 말을 잘 들어!”

옆에서 알짱거리던 찬이가 기쁜 듯 중얼거리는 소리에 경환 형이 눈치 챙기라는 듯 옆구리를 찔렀다.

이미 다 들었다, 임마.

“환이 너는 형들이 잠깐 바빠서 못 챙기자마자 이렇게 쓰러지고 말이야.”

“아니, 형들의 챙김이랑 이건 상관이….”

“그동안 너희한테 형들이 신경을 못 써줘서 미안해. 더 자주 연락했어야 했는데.”

“이미 거의 매일 연락하고 있잖아요?”

“더 식으면 맛없다. 어서 먹어.”

이 형님들은 도무지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기분이 간질거려서 낯설었다.

멤버들은 매번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마치 새끼를 지키는 어미마냥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거기에 익숙해지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들까지 이러니.

핸드폰에도 그동안 연락을 하고 지내온 많은 사람들의 안부 메시지가 가득했다.

물론 이때다 싶어 찔러온, 아직 차단하지 못했던 기억도 안 나는 인간들의 연락도 있었지만.

고작 1년 사이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해서 가끔은 그 변화에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누군가 나를 걱정한다는 건 나쁘다기보다는 좋은 기분이지만, 이건 조금 과했다.

“하아….”

“그래도 형들 덕분에 환이가 죽을 먹긴 하네요.”

“죽은 별로 맛없다고 맨날 안 먹으려고 했는데.”

하준 형은 뭐가 그리 좋은지 방긋 웃으며 비어가는 죽그릇을 바라보았다.

옆에서 한마디 얹는 영빈 형.

두 맏형의 잔소리에 가영 형이 픽 웃었다.

“이것 봐, 우리 환이가 이렇게 손이 많이 간다니까?”

“애 체한다. 지방방송 꺼.”

이미 과도한 관심으로 죽이 코로 넘어가는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모를 상태였던 나는 한숨만 푹 내쉬었다.

역시 뭐든 적당해야 좋은 것.

이 시점에 포잉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없었다.

포잉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아까 잠깐 나타나 내 얼굴을 보더니, 혀를 차고는 한마디 하더니 또 사라졌다.

기다리라고.

다녀와서 이야기해 준다고.

죽을 다 먹자 이번에는 얼른 자라고 성화였다.

“먹고 바로 누우면 체해요.”

“체한다고? 얘는 위도 약하네. 도대체 안 약한 곳이 어디야? 환이 너 운동은 좀 하냐?”

“환이가 약한 게 아니라 한가영, 니가 쓸데없이 튼튼한 거겠지.”

“형이라고 좀 불러라, 어?”

어쩐지 조용하다 했던 가영 형과 키스 형이 또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가영 형은 여태까지 살면서 체한 적이 없다더라.”

“쟤는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편해.”

속닥거리며 가영 형에 관해 이야기해 주는 진우 형과 상냥하게 웃으며 가영 형을 디스하는 세비 형.

투닥거리는 형들을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 막내 라인.

속은 조금 요란했지만, 숙소 안이 시끌벅적한 탓에 차라리 머리는 비울 수 있었다.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게 날 위한 것들이라는 걸 알아서.

그래서 정말 고마워서.

민망하고 부끄러워진 나는 차라리 잠들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자기들끼리 투닥거리다가도 나를 힐끔거리며 바라보는 우리 막내 라인.

끊임없이 내게 필요한 건 없는지, 얼굴색은 괜찮은지 스캔하고 있는 맏형들.

세상 무너지기라도 한 듯 급히 달려와서는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형들.

모두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보호받는다는 느낌은 무척이나 따뜻하고 보드라운 성질의 것이어서 자꾸만 시선을 피하게 되었다.

무슨 일인지 묻고 싶은 게 많을 텐데 누구 하나 내게 묻지 않았다.

내가 먼저 말하기를 기다려주는 것.

다시 말하는 게 의미 없을 정도로 고맙고 좋은 내 사람들.

“진우 형은 요새 뭐해요? 새 작품 들어갔어요?”

평소처럼 웃으며 말을 걸자 모두의 얼굴에 다행이라는 글자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장난을 치자 급격히 졸음이 몰려왔다.

이제야 긴장이 풀린 것 같았다.

“저 조금만 잘게요….”

“그래, 들어가서 누워. 여기 좁잖아.”

“형이 재워줄까?”

“제발 헛소리는 혼자 있을 때 해.”

형들의 장난에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흔들어주고는 방으로 도망쳤다.

가뜩이나 좁은 거실에 한 덩치 하는 남자들만 가득 앉아있자니 더 좁아 보였다.

나라도 빠져줘야지.

침대에 눕자 절로 감기는 눈.

기절했었다고 하지만 그사이 어린 지환과 만나고 기억을 건네받았던 나는 평소보다 더 피곤했다.

누우면 당장 잠들 것 같았던 것과는 달리, 머릿속에는 아직 정리되지 못한 생각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한가지 신기한 것은, 마음속에 남아있던 죄책감이 흔적만 남은 것처럼 희미해졌다는 것.

늘 남의 자리를 뺏은 것 같아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봐도 불안했다.

평소에 잊고 살다가도 갑자기 불쑥 치밀어오르는 그 느낌은 몇 번이나 나를 흔들어댔고.

하지만 이제 더는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온전히 기억을 넘겨받은 탓일까.

여태까지 내가 지금의 삶에 적응한 것과는 별개로 발을 딛고 선 바닥이 단단해진 것 같은 안정감이 들었다.

그래서 더더욱 공정한을 용서할 수 없었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거지?

어떻게 감히 우리 앞에 다시 그 얼굴을 들이밀 생각을 했을까.

뻔뻔하고 물욕에 미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선을 넘었다.

[장례식장에서 큰아빠가 했던 이야기 기억나니?]

그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 그 사람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해주는 게 인지상정.

방송에 출연할 생각까지 한 것 보면 이미 누나에게도 접근을 여러 번 시도했을 것.

정신을 차리고 누나에게 연락했을 때 누나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넌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있어. 누나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너무 평소 같은 목소리여서 되려 누나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 것 같았다.

홀로 그 집에 있을 누나가 걱정되었지만, 회사 분들을 믿기로 했다.

우진 형은 회사에서 누나와 이야기를 할 거라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소현 팀장님은 오늘은 일단 쉬고 내일 회사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했고.

어느샌가 회사 사람들까지 선 안으로 넣은 것 같아 괜히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미 나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그러니 홀로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포잉은 언제 오는 거야….’

복잡한 생각이 한바탕 지나가자 돌아오지 않은 내 요정님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늘 냉정한 척, 무심한 척했지만 내 요정님은 꽤나 다혈질이라는 걸 알았다.

언제나 조금이라도 내게 위해를 가하려는 사람이 보이면 꼬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경계했으니까.

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온기를 나눠주는 포잉이 없으니 침대가 무척 휑했다.

사람은 포잉을 다치게 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늘 걱정스러웠다.

아무리 요정이라고 해도 내 눈에는 아직 아깽이였으니까.

혹시라도 사고를 치진 않을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잠들어 버린 나.

일찍 잠이 든 나는 포잉이 그렇게 거하게 일을 벌일 거라곤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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