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02)화 (302/456)

302. 게릴라(3)

“어, 왔어? 갑자기 무슨 일이야?”

하겸은 갑자기 찾아온 디아를 웃는 낯으로 맞이했다.

동생 그룹으로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챙겨왔던 애들이라 멜트에는 나름대로 애정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디아는 자신을 많이 닮기도 했고 리더이기도 했기에 말이 꽤 잘 통했다.

“피곤하실 텐데 죄송해요.”

미안한 기색이 가득한 얼굴에 아직 어릴 때 얼굴이 남아있어 기분이 묘했다.

디아가 아직 어릴 때, 아이돌 안 한다고 그만둘 거라고 엉엉 울던 게 문득 떠올랐다.

그걸로 놀리면 늘 얼굴이 시뻘게지는 게 재밌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디아도 능구렁이가 다 돼서 재미없었다.

“아냐, 어차피 자려면 한참 남았어.”

평소의 쾌활한 목소리로 답한 하겸은 디아가 사 온 커피를 집어 들었다.

답지 않게 주저하기에 무언가 좋지 않은 이야기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다.

디아는 다른 리더들처럼 홀로 삭히는 일이 많았고, 되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고민을 공유하지 않았다.

“괜찮으니까 말해봐. 무슨 일 있지?”

사실 하겸의 기분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라디오를 준비하던 그때, 뜬금없이 언래블에 대한 기사가 떴다.

그와 동시에 매니저 형에게도 연락이 왔고.

‘Origin’ 촬영에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이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연락을 해봤지만, 따로 답이 없었다.

멤버들도 정신이 없겠거니 하고 우진 매니저에게도 연락을 남겨두었다.

지환이 촬영 중 쓰러졌다는 이야기.

PD가 사이가 좋지 못한 친척을 초대했다는 이야기.

두통이 생길 것 같은 이야기들이 매니저를 통해 흘러들어왔다.

곧 방송에 들어가야 하는 하겸은 더 알아보지 못하고 당장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연예인에게 스케줄이란 그런 것.

직장인들의 회사와 비슷하지 않을까?

거긴 연차라도 있지만, 여기는 연차는커녕 한번 삐끗하면 고정 자리도 뺏기는 판이니.

겨우 스케줄을 끝내고 언래블이 무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하겸이 안도할 때쯤 디아가 찾아온 것.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일과 무관하지 않을 듯했다.

하겸은 언래블에 대해 일반인들보다는 많은 내용을 알고 있었다.

떠도는 소문도 많았고, 언래블 멤버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한두 가지씩 더 이야기가 흘러들어 왔으니까.

가끔은 궁금하기도 했다.

도대체 이 녀석들은 어떤 삶을 살아온 건가 싶어서.

하지만 그걸 굳이 캐묻지 않았다.

누구나 숨기고 싶은 과거는 한두 가지쯤 가지고 살아간다고 믿었으니까.

그저 들려온 이야기만으로도 멤버들의 과거가 순탄치 않았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오죽하면 데뷔곡 뮤직비디오 내용에 멤버들의 과거 이야기가 들어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다.

물론 하준에게 은근슬쩍 물었을 때 반응으로 보건대 그건 그냥 루머였다.

사석에서의 멤버들 모습은 언제나 에너지 넘치고 밝았다.

그래서 하겸은 종종 데미갓 사건이나 악플러 사건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잊곤 했다.

그러다 가끔 보이는 불안 증세 때문에 다시 깨달을 뿐.

안쓰럽기도 했지만 기특했다.

자신과 골든아워 멤버들, 멜트뿐만 아니라 다른 연예인, 특히 아이돌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어딘가 조금 고장 나 있었다.

너무 어릴 때부터 이런 삶을 살아와서일까.

그리고 연예계에 몸담고 있다 보면 은연중에 그런 부분이 티가 나곤 했다.

현실 감각이 둔해진다든가, 무언가 소비하는 것으로 공허함을 채우려 한다든가.

다른 사람과의 대화 자체를 어려워하기도 했다.

일상적인 대화는 대본이 주어지는 게 아니니까.

생체 리듬은 고장이 나 있는 게 패시브였고, 마음의 병은 기초 스킬 같은 그런 삶.

사회화가 덜 되어 있는 영원히 자라지 못한 아이들 같았다.

방송에서는 모두 멀쩡한 척했지만, 사석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더 두드러졌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언래블 멤버들은 희귀한 케이스였다.

처음부터 이렇게 다사다난한 그룹도 많지 않지만, 그런데도 저렇게 곧은 애들은 거의 없었다.

그 흔한 비속어도 사용하지 않았고, 자기들끼리 끊임없이 무언가 속닥거리며 즐거워했다.

하준은 하겸에게 늘 자신이 너무 부족한 리더라 고민이라고 했지만, 하겸이 보기엔 하준만 한 리더도 없었다.

디아가 잠시 말을 고르며 고민하는 동안 하겸은 언래블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디아가 입을 열었을 때, 하겸은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에드가 의심스럽다?”

“네. 이런 생각하는 것 자체가 에드한테 미안하긴 한데….”

같은 팀 막내를 의심한다는 게 디아는 무척 괴로운 것 같았다.

하지만 디아는 팀의 막내보다 팀 자체를 더 중요하게 여겼기에 이 자리에 있는 것.

디아는 자기도 모르게 데미갓을 떠올렸던 것 같았다.

물론 그 정도 미친 짓을 하진 않았을 테지만 구설에 휘말리면 그룹에 타격이 올 수 있었으니까.

“그래. 일단 에드랑은 내가 이야기해 볼게. 너는 아무 내색 하지 마.”

“네, 형…. 하아, 걔가 욕심은 많아도 나쁜 애는 아닌데.”

같이 고생하며 지낸 세월이 있는 만큼 디아는 이번 일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최소한 여태까지 멜트 멤버들은 비겁한 수를 써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힌 적은 없었다.

디아의 수려한 얼굴에 근심 걱정이 내려앉아 엉망이 되었다.

“쯧, 얼굴 펴, 인마.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잖아.”

애써 웃는 얼굴이 더 못나졌다.

“야, 넌 봐줄 만한 게 얼굴뿐인데 지금 보니까 그것도 별로인 거 같다.”

“와, 형! 너무해! 우리 하티들은 내 얼굴이 국보랬거든요?”

“우리 타임들도 그 얘기 했다. 이 팔불출 새끼야.”

하겸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디아를 바라봤다.

이게 은근히 또 그런 게 있었다.

내 팬들은 맨날 내 가수 최고 잘생겼다, 멋지다 이러니 없던 자아도취도 생길 판.

내 팬이 있다는 것.

그건 절대적인 내 편이 있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니까.

디아의 죽어가던 얼굴이 겨우 사람 같아지자 하겸은 혀를 차며 한마디 했다.

“애들 앞에서 티 내지나 마.”

“에이, 그건 당연하죠. 그 정도도 못 하면 아이돌 때려치워야죠.”

뭐 마려운 강아지 같더니 이야기하고 나서는 좀 편해진 것 같았다.

“할 말 없으면 가라.”

“네? 나가라고요?”

“어. 할 말 없으면 가.”

“헐, 진짜 너무하네! 밥이라도 같이 먹어야죠!”

“내가? 너랑? 왜?”

세상 억울한 얼굴이 된 디아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욕을 눈빛으로 했다.

하겸이 시큰둥한 얼굴을 하고 있던 그때, 하겸의 작업실 문이 벌컥 열렸다.

“뭐하냐!”

“이 새끼야, 내가 작업실 벌컥벌컥 열지 말랬지?”

문을 열어 재낀 범인은 얀이었다.

그 뒤에 인하와 단우가 씩 웃고 있는 걸 보니 저 둘이 시킨 듯.

“어? 우리 고운이 웬일이야.”

“형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요.”

“같이 밥이나 먹자.”

“하겸 형이 저랑 밥 먹기 싫대요.”

얀은 살가운 얼굴로 디아의 어깨를 툭툭 쳤고, 인하는 픽 웃었다.

“됐어, 그럼 저 형 놔두고 우리끼리 먹으러 가자.”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흘러간 후에야 골든아워 멤버들은 하겸에게 본심을 드러냈다.

언래블 멤버들이 괜찮은지 궁금하다는 것.

직접 연락해보라고 했지만, 왠지 직접 하기 그래서 그나마 제일 친한 하겸을 찾아왔다고.

그 모습에 디아는 점점 더 쪼그라드는 것 같았지만, 하겸이 거기까지 신경 써줄 필요는 없었다.

때마침 지환에게 연락이 왔고, 바로 통화를 시도하니 힘이 쭉 빠진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괜찮으냐고 소리를 질러댔더니 휴대폰 너머로 작은 웃음소리와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보다 한 톤 낮고 기운이 쭉 빠진 목소리.

그럼에도 지환은 발음이 정확했고 여유를 잃지 않았다.

하겸은 이런 지환이 좋았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둘 중 하나였다.

호감을 사거나 미움을 사거나.

“형이 치킨 사 갈까? 아플 땐 고기 먹어야 하는데!”

“아, 형! 치킨이 뭐야. 한우 사 가야지.”

휴대폰을 들고 있는 건 하겸이었지만, 주변에서 떠들어대는 얀과 단의 목소리가 더 컸다.

그 모습을 한 걸음 떨어져서 지켜보는 디아의 표정이 씁쓸해졌다.

“야, 다 시끄러워. 니네 가봤자 애들 놀라기밖에 더 하냐. 지환아, 일단 쉬고 형이 따로 연락할게.”

- 인하 형, 고마워요. 얀 형이랑 단우 형도요. 그리고 저 진짜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지환아, 이 형은? 내가 전화했는데 왜 다른 애들만 챙기냐.”

하겸이 짐짓 서운하다는 듯이 툴툴대자 지환이 외에 다른 멤버들의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무언가 하고 있었는지 부산스러움이 휴대폰 너머로 울려왔기에 조금 안심했다.

언래블 멤버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상태인 듯했다.

“그래, 조만간 밥 먹자. 형이 소고기 사 갈게.”

“난 전복 사 갈게!”

요란했던 전화가 끊기자, 골든아워의 다른 멤버들은 디아에게 말을 걸었다.

“밥 뭐 먹을래?”

“전 밥 종류 먹고 싶어요. 면 말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화가 넘어갔고, 하겸은 홀로 고민에 빠졌다.

아무래도 에드 일을 제대로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이번 일은 그리 커지지 않고 마무리될 가능성이 컸다.

며칠 시끄럽겠지만, 곧 시들시들해질 것.

하지만 혹시라도 또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장담할 수 없었다.

[화봉아, 밥 먹었냐]

무성의한 손으로 툭툭 메시지를 보낸 하겸은 다른 멤버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다른 스케줄이 없을 텐데 바로 답이 오지 않는 걸 보니 아무래도 디아의 짐작이 맞는 듯해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멜트를 위해서도, 에드 당사자를 위해서도 정리하는 게 맞다.

하겸의 눈에는 오싹할 만큼 서늘하고 냉정한 빛이 스쳐 지나갔지만, 누구도 보지 못했다.

* * *

정한이 정신을 차린 건 다음 날 해가 높이 떠오른 시간.

시린 바닥에서 기절했던 탓에 정신을 차린 정한은 온몸이 욱신거렸다.

절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눈앞에, 그리고 집 안에서 다른 소리가 나지 않는 것에 안도했다.

아무래도 일이 틀어지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귀신같은 게 있을 리 없지, 암. 보약이라도 한 채 지어오라고 해야겠어.”

밤사이 온 연락 몇 개를 확인한 정한은 부러 소리 내 중얼거렸다.

해가 뜬 훤한 낮이기에 불안했던 마음을 밀어내기 충분했다.

일부러 채광이 좋은 집을 골랐던 그때의 선택을 다시 한번 칭찬하며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냈다.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던 정한은 평소에도 회사에 자주 나가지 않았다.

전문 경영인을 고용해두었기에 실질적으로 할 일은 별로 없었다.

쓰러지면서 허리라도 삐끗한 것인지 욱신거리고 아팠지만,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자 참을 만해졌다.

“이대로 흐지부지되면 앞으로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별거 없던 부모님의 유산으로 이만큼 회사를 불려놓았던 자신이었다.

그런 만큼 늘 자신의 선택이 가장 좋은 선택지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정한은 다음 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게 얼마짜린데!”

통증이 가라앉자 허기가 들었던 정한의 눈에 바닥에 널브러진 골프채가 들어왔다.

후다닥 주워들자 지난밤이 떠올라 괜히 오싹했다.

급히 주위를 둘러보고 다시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정한은 어기적거리며 골프채를 들고 서재에 들어섰다.

그렇게 골프채를 다시 원래 위치에 놓아두고 닦기 위해 천을 집어 들던 정한은 무심코 책상 위를 바라보았다.

“…으악!”

외마디 비명을 지른 정한은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서류가 온통 찢겨있었다.

흡사 동물의 발톱에 걸려 갈기갈기 찢긴 듯한 모습.

그리고 그때, 지난밤과 같은 고양이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아직 정한의 밤은 끝나지 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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