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86)화 (286/456)

286. I Don't Care(2)

타이틀 곡이 정해진 후, 우리는 각오했던 것보다 더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만큼 모두가 큰 기대를 품고 있다는 생각에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거기에 더해 프로젝트 Origin의 촬영도 있었고, 언래블 스토리 촬영도 꾸준히 이어졌다.

회사에서는 새 앨범의 떡밥을 조금씩 뿌릴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잠시 다른 스케줄이 없어서 불안해하던 멤버들도 마음을 놓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하지만, 다행은 다행인 거고 왜 이렇게 들러붙는지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좀 떨어져 주면 안 될까….”

“벌써 우리한테 질린 거야?”

“그런 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잖아.”

“너무해! 변했어!”

“화니 형, 변했어!”

짜기라도 한 건지 갑자기 작업실에 쳐들어와서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찬이와 세빈이.

도대체 작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연습에 치이다 겨우 짬을 내서 곡을 만들어볼 생각으로 온 건데, 나란히 내 옆에 앉아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꺄르르 웃으며 자기들끼리 뭐가 그리 신났는지 조잘거리는 둘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말해.”

“응?”

“이쯤 됐으면 그냥 말하라고.”

“헤헹….”

우리 애들이 이렇게 이유 없이 작업을 방해할 리가 없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데 말하기 힘드니 옆에서 뭉개고 있는 거겠지.

내가 너희 덕질하고 부대낀 시간이 얼만데 그것도 모를까.

가소롭다는 듯 웃어주고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빨리 말 안 하면 둘 다 내쫓는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내쫓는다는 말과 함께 차갑게 웃었더니 그제야 허둥지둥 입을 열었다.

세빈이는 정말 내쫓을까 봐 걱정됐는지 슬그머니 옆에 와서 옷을 쥐고 있었다.

이제 곧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우리 막내는 여전히 눈치를 많이 봤고, 애기 같았다.

그래도 이야기를 들어보면 밖에서는 또 나름대로 똑 부러진 것 같으니 다행이지만.

누가 이야기하기로 합의가 된 건지 찬이가 말을 꺼냈다.

“형들을 위해서 뭔가 해주고 싶은데 뭘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지?”

“응… 요새 우리 형들이 좀 얼굴이 안 좋잖아. 다들 퀭하고 막 며칠 굶은 사람들 같고.”

나에게 이 말을 꺼내기 전까지 자기들끼리 고민하고 걱정했을 모습이 그린 듯이 보였다.

앨범 준비한다고 바쁜데 그 와중에 맏형들과 경환 형은 더 바빴다.

새로 무언가 준비하는 것 같았고, 물어볼까 하다 부담을 주기 싫어 나도 묻지 않았고.

그 상황에서 나마저 바쁜 듯 보이니 둘이서 우리 넷의 주변을 맴돌며 눈치 봤을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요새 그렇게 둘이 자꾸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봤구나?”

“으응….”

“우리도 도와주고 싶어서요….”

손을 꼼지락거리던 세빈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직도 둘은 자신들이 팀에 도움 안 되는 상황을 무서워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내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힐끔거리며 눈치 보는 세빈이를 품에 끌어당겨 안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세빈이가 올려다보았다.

“너도 이리 와.”

“아, 뭐야. 징그럽게.”

입으로는 투덜거리던 찬이도 내가 눈을 치켜뜨자 못 이기는 척 품에 들어왔다.

기특하고 안쓰러운 둘을 꾸욱 껴안고 등을 다독이자 품 안에서 꿈지럭거리는 느낌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우리 막둥이들, 기특하네.”

“야, 너 자꾸 까먹는 거 같은데 우리 동갑이다?”

“난 막둥이 맞으니까 기특한 거 할래.”

툴툴대던 찬이와 세빈이를 놔줬더니 찬이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져 있었다.

애 취급한다고 질색하지만, 사실 멤버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쏟고 칭찬해주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걸 알고 있었다.

이러니 세빈이랑 묶어서 막내 취급이지.

반면 세빈이는 점점 예쁨받는 걸 즐기기 시작했다.

여전히 낯선 사람들에게는 먼저 다가가지 않았지만, 친분을 나눈 사람들에게는 달랐다.

나는 그게 기꺼웠고, 더 많이 예뻐해 주려 노력했다.

“나도 형들이 뭔가 준비하는 것 같아서 생각을 조금 해봤는데…. 일단 우리가 티 내면 걱정 끼친다고 형들이 되려 걱정할 것 같아.”

찬이 머리를 헝클어주고는 혼자 생각했던 내용을 둘에게 이야기했다.

아주 작은 것부터 우리가 해보자고.

소소하게는 피로회복제를 사다 주는 것부터 숙소 정리나 각자 연습을 챙기는 것까지.

평소에 형들이 신경 쓰던 것들을 우리가 해주면 형들의 부담이 줄어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거창한 건 형들도 부담스러워할 것 같다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둘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우리 막내들에게는 무언가 할 일을 부여해주는 게 필요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한 칭찬도.

서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다는 걸 알아 더 움츠러들었을 둘을 위해서, 세세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자, 그럼 일차적인 건 이걸로 됐지? 이후에 형들이 우리한테 도움을 요청하면 그때는 그걸 또 말하면 되니까.”

“응. 오늘부터 내가 하준 형 몫까지 방 정리해야겠다.”

“나도 영빈 형 대신에 방 정리할게요.”

우리 방은 이미 내가 주로 정리하고 있어서 그냥 웃었다.

사실 저 둘이 정리할 방이 아주 조금은 걱정됐지만, 그래도 뭐라도 할 일을 주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았다.

경환 형, 찬이, 세빈이 셋 다 잠이 많아서 늘 힘들어하는 걸 알기에 조금이라도 노력하려는 마음이 예뻤다.

“자, 그럼 오늘부터 노력해봅시다. 각자 연습하러 가.”

둘이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작업실을 나가는 걸 확인한 뒤, 준이 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형, 잠깐 얘기할 수 있어요?]

막내들은 해결했으니 이제는 형들과 이야기를 조금 나눠봐야 할 타이밍인 것 같았다.

얼마 후 준이 형이 지금 편의점에 가려고 나왔다고, 함께 나가자고 답장을 해왔다.

함께 나서는 길에 데미갓의 팬이 난리 피웠던 회사 입구를 한번 바라봤다.

“그 일, 얼마 안 됐는데 기분상으론 엄청 예전 일 같아요.”

“그러게. 그사이 일이 너무 많았어서 그런가?”

평소처럼 차분하게 웃는 준이 형 얼굴이 피곤해 보였다.

나란히 걷는 익숙한 길이 이상하게 간질거려서 부스스 웃어버렸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준이 형도 피식 웃으며 내 머리를 헝클었다.

“그래도 우리 고생이 헛된 게 아니었다는 걸 증명했잖아? 형은 너희가 정말 자랑스럽다.”

“에헤이, 또 부끄럽게 만든다.”

편의점으로 가는 길지 않은 길에서도 우리는 끊임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실 것과 피로회복제 등 이것저것 고른 형이 내 손에도 차가운 음료를 쥐여주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 환아?”

“음. 그냥 별 건 아닌데요.”

형에게 이야기하려던 것들은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꺼내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매일 이야기를 나누는데도 우리는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형이랑 빈이 형, 경환 형이 최근에 바쁘잖아요.”

“응. 할 게 좀 있어서.”

“그래서 우리 막둥이들이 걱정되나 봐요. 제 작업실로 쳐들어왔더라고요.”

“저런.”

해가 진지 오래라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이 익숙했고, 내쉬는 숨은 차가웠다.

사방에 켜진 불빛 때문에 하늘에 별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늘은 예뻤다.

그런 하늘을 잠시 바라보며 방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함께 하늘을 보던 형의 목소리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보지 않았지만, 어떤 상황이었는지 짐작 가능했던 모양이었다.

회사 로비를 지나 자연스럽게 형의 작업실로 같이 들어갔고, 형이 밀어준 의자에 앉았다.

“형들이 뭔가 같이 작업하는 것 같아서 묻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우리 막내들은 아직 관심이 고픈 나이잖아요?”

“환이 너는 아니고?”

“저는 됐어요.”

은근히 장난스럽게 물어보는 준이 형 말을 단호하게 거절하자 그게 뭐가 그렇게 재밌었는지 준이 형이 크게 웃었다.

“아, 진짜. 너는 여러모로 별종이라니까.”

“제가요? 저만큼 평범한 사람이 어딨어요.”

“그래, 그런 거로 할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내가 재밌다는 듯 바라보는 형의 시선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하길래 조금씩 옆에서 거들어주자고 했어요. 그러니까 형들 놀라지 말라고 미리 말하는 거예요.”

“그리고 가능하면 좀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고?”

“네.”

아까 일을 전부 꺼낸 건 아니었지만, 형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했다.

웃음이 어린 얼굴 그대로 무언가 생각하듯 책상을 만지작거리던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준비 단계라 너희한테는 말을 안 했던 건데, 이렇게 걱정할 줄은 몰랐어.”

“아무래도 저희가 좀 끈끈하잖아요?”

“그러네. 우리가 잘못했네.”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던 형이 몸을 돌려 컴퓨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알려주려는 건가 싶어 얌전히 기다렸더니 처음 듣는 곡이 흘러나왔다.

“경환이가 이번에 믹테 준비하는 거 알지?”

“어, 네.”

“경환이가 먼저 말을 하더라고. 같이 해보고 싶다고.”

“경환 형이요?”

경환 형은 곡을 만들 때 조언을 구하거나 가사를 부탁하긴 해도, 본격적으로 누군가와 함께 작업한 적이 없었다.

그런 형이 준이 형한테 먼저 작업을 물어봤다는 게 신기했다.

이어 준이 형은 둘이 어떤 프로젝트를 고민하고 있는지, 영빈 형은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 등 제법 상세한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새 앨범을 준비하는 중이니 미룰까 하는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밀어붙이기로 했다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셋이 의견을 조율할 일이 많아졌고, 우리에게 소홀했던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왠지 너희한테 말하기 어렵더라고. 서운해하면 어떡하나 싶기도 하고.”

준이 형은 피로회복제를 마시며 미안한 듯 웃었다.

형이 사 온 피로회복제는 7개였다.

멤버들과 우진 형의 것까지.

그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속에 꾹꾹 눌러놨던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있잖아요, 형.”

“응.”

“저도 그렇지만 찬이도 세빈이도 형들이 뭘 하든 절대 팀을 소홀히 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그 두세 배로 더 열심히 하면 했지.”

준이 형에게 무언가 말할 때는 언제나 조금 더 많이 고민하게 됐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 꼭 닮고 싶은 사람이라 더 조심스러웠다.

건방져 보일까 봐 걱정됐고, 그저 착하고 말 잘 듣는 동생이고 싶은 날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모두가 동반자이자 형제이고 싶었다.

그래서 가끔은 입에 발린 말 대신 솔직해져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도울 거고, 하다못해 응원이라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래. 형이 잘못했네.”

어렵게 꺼낸 말이지만, 준이 형의 반응은 생각보다 더 부드러웠다.

“환아, 앞으로도 꼭 이렇게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다.”

어깨를 두드려주는 형의 손에는 깊은 신뢰가 묻어나서 괜히 시선을 마주하기 어려웠다.

“자, 그럼 말 나온 김에 우리 모지리들한테 먹을 것 좀 가져다주고 이야기해 볼까.”

“형까지 모지리라고 하면 삐질걸요?”

“둘만의 비밀로 하자.”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아늑하고 부드럽게 대화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새벽까지 회사에서 연습해야 했지만, 평소보다 덜 힘들었던 날이었다.

* * *

“진짜 그대로 한다고요?”

“왜, 다들 좋다고 했는데.”

“아니, 어… 하아.”

소현 팀장님이 따로 부르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뮤직비디오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타이틀 곡 선정 당시 내가 설명했던 이미지 때문이었다.

그걸 정말 쓴다고?

“그냥 진짜 듣고 생각난 대로 막 말한 건데요….”

“감독님이랑 이야기해 봤는데 좋은 의견이라고 하시던데? 누가 이야기 꺼냈냐고 자기랑 연결해달라고 하셨어.”

싱글벙글한 팀장님의 얼굴은 또 왜 이리 무서운지.

갑자기 미친 듯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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