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68)화 (268/456)

268. 아름다운 밤(4)

한편 방에 들어온 하준은 베개에 얼굴을 묻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다른 멤버들이 혹시나 했던 몰래카메라였다.

처음부터 내키지 않았다.

누군가의 진심을 이런 조작된 상황을 통해 알고 싶지도 않았고.

아니, 애당초 멤버들의 진심은 하준이 리더이기에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준은 다른 건 몰라도 멤버 간의 우애는 절대 다른 그룹에 뒤지지 않는다고 믿었다.

게다가 본인의 생각에 한 점의 의문도 없었고.

하지만 촬영 직전 언래블 스토리 팀이 들고 온 미션을 하기 싫다고 거부하는 건 하준에게도 부담스러웠다.

솔직히 여태까지 예능 출연도 철저히 골랐던 회사에서 이런 내용을 허락한 의도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저 방송국에서 극악 난이도로 경험하기 전에 미리 경험하라는 뜻으로 생각했다.

답답한 마음에 베개에 머리를 묻고 있던 하준은 솔직히 동생들을 속일 자신이 없었다.

서로 거의 24시간을 붙어서 살고 있는데 어설픈 모습을 보였다가는 들킬 게 뻔하니까.

차라리 빨리 들켜서 끝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약간의 반항심도 들었다.

‘당사자가 돼도 그게 즐거울까?’

이유 모르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건 이미 제논 엔터에서 충분히 겪었다.

방송국 갑질도 안 겪어본 건 아니었다.

데뷔 직후, 출연시켜준다고 해서 갔다가 기약 없이 대기하며 다른 가수들 들러리만 하고 오기도 했다.

TV에 얼굴이라도 제대로 나왔으면 억울하지는 않았을 텐데, 스치듯 한 번 카메라에 잡혔던 게 전부였다.

한여름에 찍는 야외촬영인데 쉴 공간도 배정받지 못한 채 더위에 고생한 멤버들.

그 후로 회사에서는 언래블을 제대로 된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기 위해 더 이를 갈았다.

당장 리얼리티도 방송국이랑 함께 촬영하기로 했다가 그쪽에서 파토내지 않았던가.

지금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때 파토난 게 다행이지만, 성사시키기 위해 고생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걸 하준도 알았다.

머리를 싸매던 하준은 한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굳이 우리가 당사자가 아니어도 되잖아?’

사람은 경험해보지 못하면 모른다고 했던가.

몰래카메라가 그렇게 좋으면, 좋아하는 쪽이 직접 몰래카메라를 경험해보면 되지 않을까?

간혹 방송에서는 출연자와 제작진이 서로를 속고 속이는 내용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니 적당히 잘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준의 머리가 맹렬히 돌아가던 그 순간, 지환은 지환 나름대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지환에게는 만능 치트키 요정님이 계시니까.

* * *

‘포잉, 그러니까 이게 몰카라는 거지?’

‘응. 도대체 인간들은 왜 이런 걸 좋아함?’

‘글쎄….’

미간을 찌푸린 포잉의 말에 난 무어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나는 별로 안 좋아하니까.

다른 것보다 하준 형의 평소 성격을 생각해도 싫어할 게 분명했다.

다른 멤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는 서로 간에 말하지 않는 것은 있어도 속이는 건 없다고 생각했다.

가장 말하기 어려웠던 가정사에 대해서도 이미 서로 다 털어놓은 상태니까.

문득 여태까지 함께하던 감독님이 무척이나 보고 싶어졌다.

미션 진행할 때는 그렇게 얄미워 보일 수가 없었는데, 오늘따라 그 얄미운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적어도 윤 감독님은 사람의 마음을 속여야 하는 그런 류의 미션은 안 했으니까.

개인 사정 때문에 한 달 정도 자리를 비운다고 하셨을 때는 ‘그렇구나’ 했었다. 하지만 그게 이런 식으로 스노우 볼이 되어 굴러갈 줄은 몰랐다.

“환아, 무슨 생각 해?”

“응?”

“무슨 생각 하길래 그렇게 표정이 진지해.”

“아, 그냥요. 생각할 게 좀 있어서요.”

경환 형이 물었지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얼버무렸다.

준이 형이 방에 들어가고 난 후 우리는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다.

멤버들이 전부 밖에 나가서 각자 미션을 수행하고 온 상태라 어느 정도 휴식이 필요했으니까.

평소처럼 각자 편한 자세로 러그에 널브러지진 못했다.

휴식 시간이 생기면서 우진 형과 스태프들은 숙소를 나갔다.

거실과 주방에는 카메라도 꺼진 상태였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다만, 찬이는 영빈 형과 세빈이가 있는 방으로 따라갔다.

제작진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주어진 휴식 시간.

그때, 핸드폰이 한 통의 메시지가 왔다.

우리 준이형 [3]

멤버들이 있는 단체 채팅방이었다.

“응?”

“왜?”

갸우뚱하는 내 모습에 침대에 기대있던 경환 형이 몸을 일으켰다.

“준이 형이… 아.”

처음엔 잘못 누른 건가 했지만, 현재 상황과 연결하니 준이 형의 문자가 바로 이해됐다.

원래도 멤버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해 걱정하던 준이 형이 지금 상황을 기쁘게 받아들였을 리 없었다.

그래서 아까 내내 표정이 좋지 않았던 것.

본격적으로 방송 활동을 하게 되면서 우리는 우리 나름의 암호와 행동 지침을 정해두었다.

손가락으로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숫자로.

무대에서의 임기응변뿐만 아니라 주변 상황에 대한 반응까지.

‘1’은 평소처럼 행동해도 괜찮은 상황.

‘2’는 주의가 필요한 상황.

‘3’은 멤버들만 믿을 것.

‘1’일 때는 보통 GIVE 앱을 촬영하거나 일상 미션을 찍을 때의 상황이었다.

아주 날것은 아니지만 포장을 덜 해도 괜찮은 상황일 때였다.

그래서 사실상 쓸 일이 없는 신호였다.

‘2’는 세빈이나 찬이를 조금 더 챙겨야 했다.

대부분의 방송국에서의 촬영이 이 상태였다.

‘3’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지정해둔 신호였다.

정말 혹시라도 우리가 어떤 위급한 상황에 빠졌을 때를 대비해서 정한 것뿐이었다.

우리는 이미 평범하지 않은 상황을 한번 겪었으니까.

이런 방식으로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포잉, 혹시 방에 카메라 있어?’

‘없음. 그러니 맘 편히 이야기 하셈.’

‘고마워.’

준이 형은 혹시라도 우리 방에까지 카메라가 있을 경우를 대비해 메시지를 보낸 것 같았다.

하지만 포잉이 있는 이상 아무리 숨겨진 카메라도 내 앞에선 어림도 없었다.

포잉에게 확인까지 받은 나는 씩 웃었다.

“뭐지, 잘못 누른 건가?”

방금 전 나처럼 메시지를 확인한 경환 형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올라왔다.

빠르게 미확인 숫자가 줄어든 걸 확인한 나는 채팅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영빈 형, 제가 그쪽으로 갈 테니까 그냥 있어요.]

우리 빈이형 [응]

그때부터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경환 형과 영빈 형, 찬이와 세빈이에게 지금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더불어 준이 형과 어떻게 할지도 이야기해야 했고.

“형, 잠깐만요.”

아직 어리둥절해 하는 경환 형을 두고 나는 카메라를 찾는 척했다.

포잉을 통해 확인했지만, 다른 사람은 모르니까.

[방에 카메라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준이 형 방에 갈게요.]

경환 형을 붙잡고 간단하게, 지금 상황이 몰래카메라인 것 같다는 말과 그래서 하준 형이 암호로 보낸 것 같다는 걸 설명했다.

보다 자세한 건 준이 형과 이야기하고 말해주겠다고.

그렇게 준이 형 방에 아무렇지 않은 척 들어간 나는 내 생각이 맞다는 걸 확인했다.

그 후 준이 형이 제안한 건, 역으로 우리가 몰래카메라를 하자는 것.

생방송으로 내보내야 할 분량은 이제 파티만 남았다.

나머지 분량은 이후 언래블 스토리에 올리기 위해 함께 촬영하고 있는 것뿐.

그렇다면 그 전에 분위기를 몰아가고 막판에 우리가 몰래카메라였다고 외쳐도 문제가 될 건 없었다.

회사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적대적이진 않을 거라는 판단이 있었다.

준이 형은 이 몰래카메라가 혹시 회사에서도 허락받은 내용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으니까.

상담 선생님을 붙여주면서 우리를 케어하고 예능 출연도 주의 깊게 고르는 회사였다.

언래블 스토리 내용도 촬영 초반에는 회사에서 많은 부분 관여했었다.

그동안 감독님이 회사의 기대에 부응할 만큼 잘 해주셔서 지금은 많은 부분을 자율에 맡기지만.

상식적으로 비용이 발생하는데 그 비용을 지불하는 쪽에서 손 놓고 있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다만, 이번 경우는 임시 감독님이다 보니 회사에서 기획한 내용에 살짝 조미료를 친다고 가볍게 생각한 것 같았다.

준이 형과 최대한 빠르게 이야기와 방향을 정리한 나는 단체 채팅방에 상황을 공유했다.

그사이 아무래도 불안하다던 준이 형은 소현 팀장님에게 연락해 허락도 받았다.

그냥 상황을 엎어버리고 파티만 라이브로 해도 된다는 팀장님의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하기 싫다고 파토내면 좋지 않은 소문이 돌 수도 있으니 잘 해결해보겠다고 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아직 우리는 데뷔 1년도 안 됐으니까.

한숨을 내쉰 팀장님은 그러면 우진 형에게는 본인이 연락해둘 테니 아니다 싶으면 말하고 끊으라고 하셨다.

그렇게 명분과 허락을 다 얻은 준이 형과 내 얼굴에는 비슷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형 오늘 왜 이렇게 날카로워요?”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촬영이 재개되고 준이 형은 멤버들의 자잘한 실수에 평소보다 조금씩 과한 지적을 했다.

조금씩 지적하는 게 쌓일수록 멤버들의 표정은 시무룩해졌고, 내가 나섰다.

늘 부드럽게 휘었던 눈가가 찌푸린 모습을 보는 건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짜증 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연기로라도 멤버들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하는 게 싫어서라는 게 보였다.

“환아, 형한테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아니, 아까부터 준이 형이 평소보다 날카롭잖아요.”

영빈 형의 어색한 목소리에 찬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차마 두 눈 뜨고 영빈 형의 연기를 볼 수가 없었나 보다.

세빈이는 안절부절못하다 영빈 형 손을 잡았다.

경환 형이 쓱 몸을 움직여 찬이를 카메라에서 가렸고.

“너희가 진짜 유치원생도 아니고, 똑같은 얘기를 몇 번씩 하는데 사람이 안 지쳐?”

“지금 우리끼리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식으로 말할 필요는 없잖아요.”

작정하고 날카롭게 말을 하는 준이 형과 연기라는 걸 알면서도 상처받은 얼굴이 된 찬이.

“하…. 잠깐만 멈춰도 될까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준이 형의 말에 임시 감독님이 잔뜩 무게를 잡고 말했다.

“자자, 잠깐 숨 돌리고 다시 합시다. 하준 씨, 저랑 잠깐만 이야기 좀 할까요? 우진 씨는 멤버들 좀 챙겨주세요.”

“네. 얘들아 뭐 좀 마실래?”

그렇게 준이 형을 데리고 우진 형과 감독님은 숙소 밖으로 나갔다.

포잉에게 슬쩍 눈짓하니까 혀를 차던 포잉은 준이 형을 따라나섰다.

‘이런 어설픈 연기에 속는 게 더 이상한데?’

‘저쪽은 준이 형이 몰카 찍는 중이라고 생각하니까.’

정말 다행스럽게 멤버들은 시무룩한 얼굴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걱정했던 찬이와 세빈이는 아예 입을 꾹 다물고 어깨에 힘을 빼고 쪼그려 앉으니 불쌍함이 두 배로 상승했다.

영빈 형과 내가 멤버들을 다독였고, 연기에 자신 없다던 경환 형은 누구보다 몰입한 것 같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애꿎은 쿠션을 툭툭 치면서 불편한 심기를 잘 표현하는 걸 보니.

경환 형도 웃지 않으면 많이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이다.

그래서 형은 평소보다 행동을 줄이고 웃지 않는 것만 하기로 했다.

‘감독이 하준 달래고 있음. 좀 더 심각한 상황 한 번 만들었다가 터트리자고 꼬시는데?’

‘그럼 나도 격렬하게 받아줘야겠네.’

그때, 둘도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감독님은 카메라를 끌 테니 서로 앙금 없이 이야기를 조금 하고 상황을 정리하자고 했다.

“내가 너희한테 너무 큰 걸 바라는 게 아니잖아. 지난번 시상식 무대도 그렇고 가장 기본적인 데서 자꾸 문제가 생기면 어떡해.”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리고 평소에는 별말 안 하다가 오늘 갑자기 이러는 거 되게 이상한 거 알아요?”

그렇게 하준 형과 내가 본격적으로 연막을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 마음에 안 들면 마음에 드는 사람이랑 팀 하면 되겠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여태 우리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서 어떻게 참았어요? 쪽팔리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반 이상이 임기응변이지만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기로 미리 말을 맞춘 상태였다.

다른 멤버들에게 이 역할을 떠넘기기 싫어서 자처했고.

하지만 우리끼리 짠 상황인 걸 알면서도 내 입으로 말을 하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내가 숙소 문밖으로 나가려 하자, 세빈이가 쫓아왔다.

“환이 형!”

멤버들이 우르르 일어나 날 쫓아오고 영빈 형이 준이 형 손목을 잡자, 포잉이 속삭여왔다.

‘감독 표정 이상해졌음.’

등 뒤로 여러 감정이 뒤섞인 소리들이 들려왔다.

찬이, 세빈이는 날 따라 숙소 밖으로 나왔고, 우진 형이 쫓아 나왔다.

스태프가 쫓아 나오려는 걸 우진 형이 막았고, 우리는 사람들 눈을 피해 지하 주차장에 있는 회사 차에 올라탔다.

“어휴, 이런 건 두 번 다시 못하겠다. 그냥 듣기만 하는데도 심장이 덜컹덜컹해.”

“전에 우리가 형들이랑 싸운 날 생각나서 더 기분이 안 좋았어요.”

“우리 막둥이, 괜찮아. 곧 끝날 거야.”

찬이랑 세빈이를 토닥여 달래놓자 우진 형이 입을 열었다.

“굳이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어, 지환아? 그냥 안 찍어도 넘어갈 수 있잖아.”

우진 형이 조금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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