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66)화 (266/456)

266. 아름다운 밤(2)

시상식이 진행되는 내내 현장에서 함께하지 못한 팬들은 아쉬움을 달래며 생중계를 감상하고 있었다.

매년 시상식 때마다 불거지는 카메라 감독들의 이해할 수 없는 워킹과 출연자 홀대를 씹어가면서.

- 제발 객석 좀 작작 잡았으면 좋겠다.

자기네 무대 자랑하고 싶은 거 알겠는데 내가 방송에서까지 우리 애들 얼굴이 면봉만 하게 봐야 하냐고 진짜.

제발 올해는 인공위성 뷰하지 마라 제발 ㅠㅠㅠ 또 그렇게 찍으면 진짜 쫓아가서 카메라 다 부숴버릴 거야….

ㄴ 윗글 받고 제발 출연자들 처우 좀. 진짜 여돌 의상 뻔히 알면서 담요도 제대로 준비 안 하는 건 무슨 심보?? 애들 달달 안 떨게 하라고 ㅠㅠㅠㅠ

ㄴ 다 같이 즐기는 축제라던 KAA 시상식ㅋㅋㅋ진짜 올해 대환장이었다며? 내 지인은 시상식 보다가 무대 재미없고 배고파서 나가서 떡볶이 사 먹었대.

ㄴ 걔네는 진짜 미쳤어. AAA 건전지보다 못한 놈들임. 이 추운 날씨에 철제 의자 가져다 놨더라.

연말 연초에 시상식이 몰리다 보니 시상식의 규모나 무대에 대해서도 팬들은 할 말이 많았다.

그래도 오늘은 늘 평균 이상은 하던 HMA이기에 차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러 담았다.

시상식 무대는 팬들에게도 굉장히 중요했다.

내 새끼가 상을 받느냐 마느냐도 중요했고, 무대에서 몇 분이나 배정받느냐로 올해 활동 점수를 점쳐볼 수도 있었다.

이런 걸 모두 떠나서도 시상식 무대는 보통의 무대와 달리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았기에 새로운 유입을 기대해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언래블의 팬덤은 오늘도 열일하는 멤버들의 얼굴에 생중계를 보는 내내 오열하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순간, 자기들끼리 눈이 휘둥그레져서 둘러보는 것도 귀여웠지만, 의상도 이마를 ‘탁’칠만큼 멤버들과 찰떡이었다.

이후 레드카펫을 걷는 내내 멤버들이 평소보다 성숙함이 느껴지는 미소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팬들은 처음 방송국 출근 때, 기다리고 있던 팬들 모습에 놀라서 허둥지둥했던 언래블 모습이 함께 떠올랐다.

우리 애들이 이제 레드카펫에서도 쫄지 않고 잘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솜뭉치들의 얼굴엔 뿌듯한 엄마 미소가 그려졌다.

아직까지는 코디들이 실험적인 스타일을 멤버들에게 시도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 최힘찬 빨리 해명해

찐빵주제에 누가 글케 모자 삐딱하게 쓰고 막 멋있는척하래, 어? 내가 진짜, 하. 잘생긴 찐빵이면 다냐고ㅠㅠㅠ 저 나비넥타이 뭐야, 왜 나비넥타이 주제에 멋있고 귀여운데!!

ㄴ 야이앀ㅋㅋ분탕인줄 알고 급발진할 뻔. 우리 찐빵도 귀여운데 오늘 세빈이 무슨 일이야 진짜 …. 애기 한껏 신났어ㅋㅋㅋ하지만 안 신난 척하는 게 더 차밍 포인트…☆

ㄴ 대한민국 대표 유교걸인 나는 히스랑 작은환 복장 때문에 과다출혈로 먼저 간다…ㅠ 저렇게 속살을, 어? 막? 응? 엄마ㅠㅠㅠㅠ

다수의 커뮤니티에는 온갖 주접 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고, 다행히 복장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 대다수였다.

다만, 지환의 복장에는 반응이 조금 갈렸다.

워낙 선이 가는 멤버라 하늘하늘한 느낌이 잘 어울린다는 말도 있었지만, 아직 미성년자인 멤버의 복장이 앞이 다 파인 건 조금 과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 울애기들 신인사유ㅠㅠㅠㅠ

진짜 우리애들 아직 애긴데 너무 기특하다 ㅠㅠㅠ 그 난리 다 이기고 결국 신인상 받았어ㅜㅜ 아 진짴ㅋㅋㅋ 나 방송 보다 미친 사람처럼 방에서 발광했다가 엄마한테 등짝 후려 맞음ㅜㅜ그래도 내 기쁨을 막을 순 없드앜ㅋㅋㅋㅋ

ㄴ 너=나 나도 방금ㅋㅋㅋ아빠가 왜 소리 지르냐고 놀라서 들어옴. 뻘쭘쓰.

ㄴ 애들 자기 부르니까 벌떡 일어나놓고 상황 파악 안 돼서 어리둥절한 거 어떡하냐 진짜.ㅠ 애들 너무 놀랐나 봐 우리 찐빵이가 글케 울다니ㅠㅠㅠ

ㄴ 영빈이는 울 것 같았는데 작은환 휘청거리는 거 봤어?ㅠㅠ 우리 민리더 엄청 환하게 웃고 막.하 내 심장이 안남아난다.

ㄴ 그와중엨ㅋㅋㅋ또 병아리 어떡햌ㅋㅋ우리애들 이제 전 국민 병아리야 ㅠ

ㄴ 막 여기저기 다니면서 다 사랑받는 거 같아서 내가 다 뿌듯햌ㅋㅋ 내새끼들 사랑받고 있다구!

한쪽에서는 언래블과 DCL의 친분이 찐이라는 증언도 간증처럼 퍼져 나왔다.

- 울 애들 신인상에 같이 울어준 DCL 리우님.ㅠㅠ

블리분들 제보해준 건데 아래 링크 꼭 봐죠ㅠ 원래 우리 민리더랑 영빈이, DCL 리우님이랑 같이 연습생도 했고 서로 친한 건 알았는데 애들 신인상 받으니까 리우님 울더라ㅠㅠ

(신인상 수상 소감 말하는 하준 보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손뼉치는 리우 모습. 툭툭 떨어지는 눈물을 옆에서 휴이가 닦아주고 있었다.)

ㄴ 화면에도 잡혔어ㅠㅠ 애들 상 탈 때 진짜 눈물 꾹 참았는데 리우님 우는 거 보고 같이 터져버림.

ㄴ 솜뭉치 겸 블리인 나는 예전에 리우 인터뷰 생각나더라. 서로 너무 힘들 때 의지 됐던 친구들이라서 서로가 너무 잘됐으면 좋겠고 그만큼 자극받아서 자기도 더 열심히 한다고ㅠㅠㅠ 진짜 두 그룹 우정 응원한다!!!

신인상 수상을 누구보다 기뻐하며 지갑으로 키운 내 새끼들의 성장을 기뻐하던 솜뭉치들.

아직 신인다운 면모가 남아있는 모습에 귀엽다고 좋아했지만, 얼마 후 이어진 언래블의 무대에서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멤버들은 곡의 흐름에 따라 처연한 눈짓을 하기도 했고, 서늘한 얼굴로 누군가를 비웃기도 했다.

수많은 연습으로 만들어낸 단체 군무는 현대 무용 같다는 평도 여럿 있었다.

귀를 타고 심장까지 흘러가 온몸을 울리는 강렬한 드럼 소리와 구두 소리.

그 소리에 맞춰 순식간에 바뀌는 대형들.

거대한 어떤 흐름을 만들어내듯 6명의 위치는 끊임없이 바뀌었다.

절도 있는 몸짓과 달리 수면을 두드리는 손짓처럼 나풀거리던 손끝이 일제히 허공에 호선의 입술을 그릴 때는 괜히 오싹한 느낌도 들었다.

그 손짓을 보던 솜뭉치들 중 일부는 폭풍전야의 뮤직비디오에서 조종당하던 경환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정적인 느낌을 살리던 안무들은 댄서들의 난입 후 역동적으로 바뀌었고, 마지막은 평화로웠다.

이 모든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던 사람은 각자 익숙한 커뮤니티에 모였고, 게시판은 터져나갔다.

-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나 시상식 보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뮤지컬 한 편 보고 왔냐;; 누가 설명 좀;;

내가 천 들고 뛰었으면 봉산 탈춤이었을 텐데;; 아니 왜 우리 애들은 천사ㅠ?

ㄴ 봉산탈춤ㅋㅋㅋㅋ너 왜 이렇게 구체적이야, 탈춤 춰본 적 있니?ㅋㅋㅋㅋ

ㄴ 나도 설명 좀. 이게 뭐야, 갑자기 나 지금 되게 경건해졌어. 뭔가 가슴에 손을 얹어야 할 것 같아.

ㄴ 경건 뭐야ㅋㅋㅋ 근데 사실 나도 지금 쫌 그래….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ㅠ 나 정화된 것 같아

ㄴ 언데드 몹이야? 정화라니ㅋㅋㅋㅋ

ㄴ 언데드가 뭐야?

ㄴ 좀비나 해골 움직이고 그런 거 ㅋㅋㅋ 뭐야 너 왜 귀엽냐

- 우리 애들 맨날 병아리라고 놀렸더니 자기들 아이도루라고 무대 부숴버렸다;

애들 진짜 이 악물고 나온 거 너무 투명하고요; 이걸 표현할 방법이 미쳤다는 말밖에 없어서 대가리 깨는 중임;

ㄴ 22 내 대가리도 깨지는 중. 얘드라 미안해.ㅠ 그냥 병아리 아니고 대장 병아리였구나 ㅠㅠ

ㄴ ㅋㅋㅋㅋㅋㅋ 아니 이렇게 멋진 무대 해도 병아리냐곸ㅋㅋ

ㄴ 솜뭉치 : 어림도 없지!

언래블 : ??

ㄴ ㅋㅋㅋㅋㅋㅋ 근데 진짜 천이랑 조명을 저렇게 이용할 줄은 몰랐다. 가면 다시 보니 너무 반갑고 ㅠ 여러모로 레전드 아니냐 이 정도면?

화려한 색을 쓴 것도 아니고 무대장치를 많이 사용한 것도 아니었지만, 언래블의 무대는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팬들뿐만 아니라 일반인, 그리고 타 팬덤 사람들조차 순식간에 흘러간 시간에 깜짝 놀랐으니까.

처음에는 올해는 확 눈에 띄는 신인도 없는데 신인상 받은 그룹이니 인사치레라고 생각했다.

매년 신인 그룹 하나 정도는 메인 무대로 밀어주는 게 보통의 분위기였으니까.

언래블의 무대를 보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무대를 채워낸 언래블의 모습을 본 많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수긍해야 했다.

얘네, 잘하는구나, 하고.

그동안 말 많고 탈 많은 그룹이라 여겼던, 노이즈 마케팅으로 인지도를 확보했을 뿐이라고 무시당했던 언래블이 실력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대부분 커뮤니티에서 언래블에 대한 호감 발언이 이어졌고, 여러 움짤이 순식간에 퍼지기 시작했다.

멤버들이 하얀 천을 휘날리며 허공을 뛰어오르는 모습, 푸른빛으로 반짝이는 물결처럼 부드럽게 퍼지는 언래블의 대형.

그리고 바다와 우주 그 어느 중간에 서서 반짝거리던 언래블 등.

이때다 싶은 솜뭉치들의 발 빠른 대응도 있었지만, 순수하게 무대를 보고 감탄한 사람들이 만든 것도 많았다.

현장에서 함께하지 못했지만, 당직으로 회사에서 실시간으로 분위기를 파악하던 직원들은 뿌듯한 얼굴로 치킨을 뜯었다.

오늘 같은 날 야근하게 해서 미안하다며 정윤 실장이 쏜 것들이었다.

“확실히 올해 대표 신인 아이돌 타이틀은 우리 애들이 먹겠네요.”

“DCL이 좀 따라붙는 것 같았는데 그쪽은 회사가 푸시를 제대로 못 하는 것 같더라고.”

“어휴, 이제야 한고비 넘긴 기분이네요.”

“앞으로가 문제지. 이제 기존들이랑 비벼야 하니까.”

“우리 애들은 잘할 거에요.”

시상식 내내 일부 날카롭던 다른 팬덤의 반응도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고, 대부분 우호적인 반응으로 돌아섰다.

이제 한숨 놓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 * *

내 보물 [누나 뭐해?]

핸드폰이 부르르 울었다.

이제 막 씻고 나온 연희는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피식 웃었다.

[씻었어. 왜?]

내 보물 [아니, 그냥. 자나 했지]

연희는 평소에는 잘 연락하지도 않던 놈이 늦은 시간 연락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냥 대놓고 자랑해도 좋으련만 아직도 뭐가 그렇게 조심스러운지 늘 이렇게 눈치를 봤다.

“안 자. 왜? 넌 어딘데?”

- 늦었는데 왜 안 자. 나 이제 숙소야.

이대로 두면 계속 메시지로 깔짝거리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할 걸 알기에 연희는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우물쭈물하는 동생 목소리 너머로 언래블 멤버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늦었네. 저녁은?”

- 먹고 들어왔지. 누나 TV 안 봤어?

“TV? 잘 안 보잖아. 무슨 일 있어?”

지환이 왜 전화했는지 잘 알았지만, 연희는 시침 뚝 떼고 모른 척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면서도 동생은 여전히 낯을 가렸고 솔직하게 말하는 걸 어려워했다.

그런 면이 귀엽기도 했지만, 가끔은 동생이 조금 더 솔직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연희는 이번엔 기다리기로 했다.

- 음, 별건 아니고… 아 쫌, 저리 가봐!

옆에서 ‘누님, 안녕하세요!’ 하는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힘찬이가 동생 옆에 들러붙어 있는 모양이었다.

지환은 가끔 집에 올 때면, 멤버들이 평소 어떻게 자신을 대하는지 이야기했었다. 또 가끔은 사진도 찍어서 보내기도 했었고.

덕분에 연희는 숙소 상황이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물론 언래블 스토리로 본 것도 있었다.

- 어휴, 진짜. 언제 철들런지.

“까불긴. 할 말 있어서 전화한 거 아냐?”

입꼬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었지만 연희는 덤덤한 척 웃음을 감추었다.

- …우리 이번에 상 받았는데, 누나 못 봤어?

“봤어. 무대도 봤고. 멋있더라. 잘했어.”

- 아, 왜 못 본 척해!

“못 본 척한 적 없는데? 안 물어봤잖아.”

더듬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게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그만 놀리기로 했다.

순순히 대답해주고 칭찬해줬건만 시무룩했던 동생은 자신을 놀렸다며 전화 너머로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 누나 진짜 성격 나쁜 거 알지?

“진짜 나쁜 게 뭔지 알려줄까?

- 아냐, 내가 잘못했어…. 아무튼 조만간 대표님이 휴가 준댔어. 그때 집에 들를게.

“사고 치지 말고 회사 분들 말 잘 듣고.

- 내가 앤 줄 알아?

“그럼 네가 성인이냐? 까불지 말고.

울컥했는지 툴툴대던 동생은 연희의 말에 말문이 막힌 듯 한참을 궁시렁대다 일찍 자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 사이 멤버들이 옆에 붙어 있었는지 핸드폰을 뺏어서 인사하기도 하고 보고 싶다고 놀러 오라고 하기도 해서 그러마 하고 대답해주었다.

지난번 핸드크림을 전해주고 가끔 약이나 간식 등을 사다 보냈더니 멤버들도 곧잘 누나, 누나 하며 따랐다.

연희 입장에서는 자식 같은 동생을 잘 챙겨주는 멤버들이 마냥 고마웠지만, 자주 방문하기는 꺼려졌다.

괜히 동생이 구설에 휘말리는 게 싫었다.

말 안 듣는 똥강아지 같은 동생을 떠올리던 연희는 씻느라 풀어놓은 HMA의 기념품들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신인상도 축하 무대도 충분히 잘 봤다는 걸 지환은 아마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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