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32)화 (232/456)

232. IDEA(8)

뭐지?

정신을 차리니 시간이 또 흘러 있었다.

시간 흐름이 나를 두고 자기 혼자 흘러가는 것 같아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하며 대기실에서 달달 떨고 있는 멤버들을 바라보니 바로 이해가 됐다.

“어떡하지? 진짜 어떡해?”

“아, 진짜! 좀 가만있어 봐!”

“와씨, 진짜야? 이거 몰카 아니지?”

나도 멤버들도 죄다 하나같이 정신이 나간 이유는 언래블이 1위 후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스트리머와의 미팅은 성공적이었다. 그 후 대본을 짜며 최종 합방일을 정하고, 짧은 홍보 영상도 만들었다.

회사에서는 우리 스케줄을 늘 비교적 상세하게 일러주었고, 어떤 프로그램을 나가든 사전 정보를 꽤 자세히 교육해주는 편이다.

홍보 소식을 찔러주자마자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고, 정규 합방 전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연습하는 와중에 인터뷰도 진행했다.

그러다 일정대로 음악방송을 하러 왔는데, 들어오면서부터 열심히 인사를 하다 평소랑 다른 공기를 느꼈다.

힐끔힐끔 쳐다보고 지나가는 스태프들도 있었고,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다른 그룹의 시선도 느껴졌다.

그동안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여러 시선을 받아본 결과, 오늘의 시선이 평소랑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예전 데미갓이랑 부딪혔을 때는 ‘쟤네가 걔네야?’라는 호기심과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보는 듯한 시선.

악플러 사건이 터지면서 이리저리 불려 다닐 때는 동정 어린 시선과 불편함이 반반 섞인 시선이었다.

힐링캠프로 우리를 알게 된 사람들은 호감이 담긴 눈빛이었고.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느껴지는 시선은 묘한 열기를 담고 있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오늘 응원 나온 솜뭉치들도 평소보다 더 뜨거운 반응이었다.

저번 방송 때보다도 더 사람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하고.

잠이 덜 깬 우리는 솜뭉치들을 보고 마냥 좋아서 팔랑팔랑 뛰어다니다 들어왔지만, 확실히 평소랑 무언가 달랐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는지 얼떨떨한 눈으로 사방을 바라보던 찬이는 내 옆에 붙어 속닥거렸다.

“왜 저렇게 보는 거야? 우리 뭐 잘못한 거 있어?”

“모르겠는데.”

“뭐지? 나도 잘못한 거 없는데.”

근심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방송물 좀 먹었다고 표정으로 티 내지 않는 게 기특했다.

머리를 헝클어주자 금세 부루퉁한 얼굴이 됐지만 크게 틱틱거리지 않아서 세빈이랑 둘이 찬이 몰래 웃기도 했다.

그렇게 리허설을 기다리며 의상을 입고 대형을 맞춰보던 우리는 우진 형에게 우리 순서가 뒤쪽이라는 걸 듣고 다시 한번 어리둥절 해졌다.

아직 우리 짬에 이렇게까지 뒤쪽으로 순서가 갈 일은 없었으니까.

그때, 준이 형이 무언가 눈치챈 듯 우진 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형, 아니죠…?”

“뭐가?”

준이 형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우진 형의 목소리는 태연하다 못해 경쾌한 느낌이었다.

“저희 순서 이거….”

“우리 하준이가 이제 순서 보고도 대충 눈치를 채네. 많이 늘었다?”

“아….”

비틀거리다 자리에 주저앉는 준이 형 모습에 놀라서 달려가려던 우리는 이어진 우진 형의 말에 죄다 자리에 주저앉았다.

“너희 이번주 1위 후보야. 안될 수도 있는데 일단 알고는 있어.”

사람이 너무 놀라면 아무 말도 못 한다는 게 진짜였다.

당황한 우리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입만 뻐끔거리던 사이 폭탄을 던진 우진 형은 유유히 할 일이 있다며 사라졌다.

어쩐지 대기실을 주더라니.

그 많은 사람이 이상하게 보더라니.

특별 무대나 컴백 무대 때는 대기실을 따로 주는 방송국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간이 파티션으로 나눠진 공간에서 무대를 준비해야 했다.

이번엔 음반 활동 시기가 겹치지 않은 DCL만 봐도 우리처럼 모두와 같은 공간에서 준비했었으니까.

오늘 무대를 하러 온 이곳도, 바로 전 음방 출연 때는 파티션으로 나눠진 공간 한쪽에서 무대에 오를 준비를 했었다.

그러다 이번에 갑자기 대기실을 배정받기에 단순히 회사에서 이번 무대에 돈을 썼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때부터 멤버들은 사고회로가 고장 난 로봇처럼 혼이 빠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 방송국에 오자마자 인사부터 쭉 한 바퀴 돌고 준비하러 들어온 터라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됐지만, 이 꼴로 있는 건 위험했다.

‘정신 안 차림? 이러다 무대 때 실수하면 니네 진짜 망하는 거야.’

‘…맞아. 정신 차려야지.’

다행히 내 옆에는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요정님이 함께했고, 우리 포잉은 언제나 적절한 타이밍에 나에게 날카로운 일침을 던져줬다.

“우리 대형 다시 맞춰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맞아, 이럴 때가 아니지. 우리 연습하자. 연습.”

멤버들이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 연습하려던 그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찬이가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악!”

“왜? 뭐야!”

“야, 왜 그래? 아파?”

당황한 우리가 미쳤냐는 눈으로 찬이를 바라보며 한마디씩 내뱉었지만, 찬이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자리에서 버둥거릴 뿐이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준이 형이 다가가는 그 순간, 찬이가 와락 달려들어 준이 형을 껴안았고 무방비했던 형은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뭐야! 왜 그래!”

“미칠 것 같아서! 어떡하지? 나 지금 완전 미칠 것 같은데!”

“형! 찬이가 미쳤나 봐! 쟤 떼어내야 되는 거 아냐?”

“야! 정신 차려!”

당황한 우리가 준이 형에게 들러붙은 찬이를 떼어내려 하자, 찬이는 저돌적으로 우리에게까지 덤벼들었다.

다들 기겁하며 피했지만 가장 가까이 있던 경환 형이 붙잡히고 말았다. 찬이는 흥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형, 우리가 1위 후보래. 어떡하지? 진짜, 나 미친 것 같아.”

“어, 너 진짜 미친 거 같으니까 좀 떨어져!”

과도하게 흥분한 찬이는 그 뒤로도 한참 동안 멤버들을 껴안으려고 덤벼들었고, 그때마다 기겁한 우리는 사방으로 도망 다녔다.

그렇게 한바탕 난장판이 흐르고 나서야 우리는 기진맥진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을 수 있었다.

나중에 희주 누나와 가희 누나가 전하길 당시 찬이가 발작하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고.

흡사 아포칼립스 물에 나오는 좀비 같았다고 했다.

우리가 왜 기겁하고 도망갔는지 충분히 이해된다는 얼굴을 하면서.

그 뒤로는 다들 반쯤 넋을 빼놓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쓰고 다시 대형을 맞춰보고 연습을 하면서도 영혼이 머리 위에 반쯤 걸쳐져 있는 환영이 보이는 것 같았다.

다행히 돌아온 우진 형이 잔소리와 함께 엄한 얼굴로 멤버들을 다그쳤고, 그 뒤로는 어느 정도 수습할 수 있었다.

확정도 아니고 후보인 상태로 이렇게 넋 놓고 있으면 여러모로 안 좋게 보일 거라는 말에 다들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을 차린 것.

여러 사건이 있었고, 다행히 우리는 좋은 쪽으로 여론의 시선을 받았다.

덕분에 배 아파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언제나 모두에게 사랑받는 연예인은 꿈속에만 존재한다고 이제는 소설에도 그런 사람은 없다고 자신을 다잡아 왔었다.

실제로 음악방송 1위 한 번에 세상이 바뀌진 않지만, 모든 아이돌이 한 번이라도 발자국을 찍어보고 싶은 게 이 무대였다.

운 좋게 발자국을 한번 찍고 왔었으니 ‘언젠가는 우리도….’ 라고 막연하게 생각을 하고는 있었다.

이전과 달리 언래블을 생각한 게 아니라 나와 우리 멤버들을 생각했었고, 넌지시 팀장님이 말을 흘릴 때도 설레했던 건 사실이었다.

팀장님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우리도 곧 우리 팬들에게 1위 했다고 고맙다고 할 수 있을 거라고.

그저 막연하게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직접 듣는 건 또 다른 문제였던 것 같았다.

리허설 무대를 어떤 정신으로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날 지경이었다.

분명 솜뭉치들에게 신나게 손을 흔들고 다녔던 것 같은데, 밥 먹었냐고 물어봤던 것 같은데 정신을 차리니 다시 대기실이었다.

다행히 누구보다 재빨리 정신을 차린 준이 형이 우리를 붙들고 다녔고, 영빈 형도 비록 얼굴은 더 창백해진 것 같았지만 침착하게 우리에게 잔소리했다.

몇 번이나 맏형들에게 잔소리를 듣고 안절부절못했다가, 다시 안무 연습을 했다가.

각자 목을 푸는 데 집중하기도 하고 핸드폰을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는 행동을 반복하기도 했다.

나도 누나한테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아 그만두었다.

새벽 형들이나 진우 형에게도 마찬가지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메시지 창만 열면 손이 덜덜 떨려서.

“언래블, 대기해주세요.”

“네!”

“가겠습니다!”

평소보다 너무 긴장했던 탓일까?

찬이가 상기된 얼굴로 조금 엉뚱한 대답을 했고, 그 모습에 잠시 벙찐 얼굴을 했던 스태프가 픽 웃으며 힘내라며 응원을 해줬다.

“찬이 덕분에 긴장 좀 풀렸네. 역시 우리 최찐빵이 최고구나.”

“응? 나 왜요?”

“아냐, 네 덕분에 다들 웃는다.”

“아니, 왜요! 왜지?”

당사자는 되려 어리둥절해져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우리도 우진 형도 서포트 팀분들도 다들 웃기만 할 뿐 누구도 제대로 대답해주진 않았다.

‘…저 인간 정말 괜찮은 거 맞음?’

‘괜찮을 거야. 우리 찬이는 실전에 강하거든.’

‘쯧, 실전에 강한 인간이 거기서 떨어져서 그 난리를 만드냐.’

‘그건 사고잖아. 어쩔 수 없지, 뭐.’

그런 찬이가 걱정됐는지 아까부터 내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던 포잉이 삐딱하게 툴툴거렸다.

이제는 제법 멤버들에게 마음을 연 건지, 포잉은 나와 수시로 멤버들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승탈출’ 촬영 당시에도 걱정이 어찌나 태산 같던지.

물론 그걸 이야기하면 자기가 언제 그랬냐고 펄쩍 뛰겠지만.

‘포잉, 우리 꼭 1위 하라고 빌어줘.’

‘될 놈은 다 되게 되어 있음. 그러니 너희는 무대나 잘하셈.’

‘포잉도 투표할 거지?’

‘안 할 거다, 이 계약자 놈아.’

뚱한 목소리로 투덜거렸지만, 포잉의 꼬리가 아까부터 요동치고 있었다.

여전히 내 요정님은 솔직하지 못했고, 그래서 더 귀여웠다.

‘다녀와라, 계약자야.’

‘응. 꼭 구경하러 와야 해, 포잉.’

‘흥.’

찬이의 엉뚱한 모습과 포잉의 모습 덕에 한결 긴장을 가라앉힌 나는 독종 스킬을 다시 발동시켰다.

내려와서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오늘 무대는 무조건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야 했다.

겨우 마음의 준비가 끝났다.

* * *

“우리 애들 많이 놀랐겠죠?”

“아무래도. 걔네는 아직도 인터넷 안 쓰나?”

“네. 넌지시 물어보니까 전에 회사에서 고소 건 대충 정리될 때까지 쓰지 말라고 한 거 지키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애들이 참 착한데 나이에 안 맞게 고지식한 면도 있다니까.”

조금은 툴툴거리듯 그렇게 말하면서도, 박정균 대표는 입가의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회의실에 모인 박정균 대표와 정윤 실장. 그리고 김소현 팀장과 김건욱 실장, 김주영 팀장.

그 밖에도 몇 명의 사람들이 커다란 화면에 오늘 멤버들이 올라갈 음악방송을 켜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몇몇 방송국은 1위 후보를 실제 방송 전까지 비공개로 두지만, 어떤 방송국은 1위 후보인 3명을 방송 전에 공개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오늘 언래블이 참여한 음악방송은 후자.

그래서 만일 멤버들이 인터넷을 좀 했다면 자신들이 1위 후보라는 것을 미리 알았을 거였다.

하지만 우진 매니저에 의하면 멤버들 모두 놀라서 자리에 주저앉았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소현은 애들답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신기했다.

그 정도로 인터넷에 신경을 안 쓰기도 힘들 텐데.

간혹 물어보면 다들 위캠으로 영상을 보거나 몇몇 사이트에서 소설이나 웹툰을 보기도 한다고 했다.

힘찬이 같은 경우에는 게임을 주로 하는 것 같았고.

멤버들은 회사의 기대치보다 더 철저하게 자신들을 관리했고,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런 모습을 보았기에 회사에서도 최대한 멤버들에게 자유를 보장해준 것도 있었지만.

“곧 애들 나오겠네요.”

“오늘 실수하면 안 될 텐데. 많이 긴장했다고 했지?”

“괜찮을 거예요. 걔네는 자면서도 잠꼬대로 무대 하던 애들이니까.”

담담한 얼굴을 한 정윤 실장의 목소리도 평소보다 조금 떨리는 게 느껴질 만큼,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는 희미한 기대가 서려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화면에는 이번 주 1위 후보라는 요란한 문구와 함께 언래블의 이름이 자막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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