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30)화 (230/456)

230. IDEA(6)

언래블 멤버들이 한 몸 불살라 예능을 찍고 있던 그 시간, 소현은 오늘도 퇴근하지 못했다.

부하직원들은 소현이 사무실 지박령이라며 수군거리기 일쑤였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지만 반박할 수도 없었다.

애들이 잘되는 만큼 일이 많아지고 회사가 바빠지는 건 좋은 일이니까, 라고 자신을 세뇌해봤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예약판매 추이도 너무 좋았고, 현재 판매량도 흡족한 수준이었다.

뮤비 대신으로 올렸던 영상은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고 처음 ‘Pluto’를 공개했던 영상은 이백만 뷰가 코앞이었다.

“안무 영상은 이 날짜에 공개하는 거로 하고….”

뮤직비디오가 백만 뷰를 찍을 때마다 새로운 영상을 하나씩 공개했고, 다행히 반응이 좋았다.

처음에는 연습실에서 안무 연습하는 영상을, 그다음엔 무대 비하인드를.

이런 식으로 평소 팬들이 보기 힘든 영상을 조금씩 풀어나가는 게 가장 정석이었고, 역시나 반응은 뜨거웠다.

덩달아 언래블 스토리 카테고리 안의 영상들도 뷰가 빠르게 늘고 있었다.

미니미 시리즈는 더 안 나오냐는 문의도 많다고 했다.

계속해서 할 일은 늘어났지만, 최종 보고 전에는 소현이 한 번씩 체크해야 했기에 쉴 틈이 없었다.

“석환이는 아예 다른 팀으로 돌리고 새로 하나 뽑을까….”

우진의 서포트를 위해 석환을 뽑아 로드 매니저로 붙여줬지만, 배우실의 인력도 모자라 그곳으로 지원 보내는 일이 많았다.

석환이 그쪽에 자주 얼굴을 비추다 보니 차라리 배우실에 고정으로 붙여주는 게 본인에게도 커리어 쌓기에 더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인 활동보다 단체 활동이 많은 데다 멤버들도 얌전한 편이라 우진 매니저 혼자서도 커버가 가능했다. 서포트 팀에 있는 다른 직원들도 돕고 있었고.

하지만 최근 개인 출연 요청들이 점차 늘어가는 게 눈에 보였다.

요리 프로에 나가 홀로 요리사 역할을 한 영빈이를 흥미롭게 본 건지, 그 관련으로 출연을 제의하는 곳이 있었다.

찬이와 세빈의 케미가 마음에 들었는지 둘을 함께 요청하는 곳도 있었고.

하지만 가장 출연 요청이 많은 건 하준과 지환이었다.

몇 달 동안 푸른 음악 노트에 고정 출연 중이어서일까, 다른 라디오에서도 하준의 게스트 요청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미 하준은 검증이 된 상태다 보니 사방에서 이리저리 찔러보는 중이랄까.

지환이에게는 의외로 예능보다 드라마 단역 제의가 더욱 많았다.

패션쇼 무대 때 임팩트가 꽤 컸는지 배역들이 하나같이 사연 있는 단역 악당이거나, 스쳐 지나가는 첫사랑 같은 역들이었다.

정작 지환은 연기에 의향이 없는 듯해서 아직 푸시를 못하고 있었지만, 소현은 꽤 아깝다고 생각했다.

잠시 손안에 펜을 굴리며 고민에 빠졌던 소현은 이내 경험 정도는 쌓게 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본격적으로 도전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쳐도, 연기에 관심을 가진다면 이런저런 작품에 넣어줄 자신이 있었다.

원래도 ON 엔터는 명망 있는 배우들이 기둥을 받치고 있는 회사인지라 소속 배우의 드라마에 카메오나 단역은 찔러 넣어줄 수 있었다.

조금 더 욕심을 내면 조연까지도.

다만, 당사자가 난색을 보이는 터라 적극적으로 권하지는 않고 있었을 뿐.

손안에 있는 종이 묶음을 팔랑거리던 소현은 입맛을 다시며 지환을 닦달해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경환의 출연을 요구하는 프로그램이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평소에도 곡 만드는 데 시간을 쏟고 싶어 하는 멤버다 보니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하….”

그 모든 출연을 최종적으로 체크해서 보고서로 올리는 게 소현의 일이었지만, 지환의 출연에 대해서는 늘 조금 더 조심스러웠다.

얼마 전 전해 들은 상담사의 이야기도 신경 쓰였다.

늘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던 상담사가 그날은 조금 진지한 얼굴로 덧붙인 이야기가 있었다.

지환이 무리를 하는 건 아닌지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간혹 저도 모르는 사이 한계 이상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다 번 아웃이 오는 케이스가 있으니 신경을 쓰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이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 누른 소현은 최근 전달받은 멤버들에 관한 보고서를 다시 꼼꼼히 확인했다.

파트별 트레이너의 소견, 매니저인 우진의 평가 등이 세세히 적힌 파일이었다.

악플러 고소는 점차 윤곽이 드러나고 있었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가해자들은 이제 와서 회사에 선처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렇게 선처는 없다고 말했는데 못 알아들은 걸까?

설마 진짜로 고소를 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온갖 사연을 구구절절 적어가며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고, 협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미성년자인 것을 들먹이며 합의를 종용하는 보호자도 있었고, 역으로 회사를 고소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악플러들의 반응은 한결같은지 가소로워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입에 담기 힘든 말을 써 내리고, 멤버들의 얼굴에 이상한 사진을 합성해서 뿌릴 때는 낄낄댔을 사람들이었다.

소현은 그들이 가당치도 않은 짓을 한다 싶어 무관용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이미 회사와 멤버들의 의지는 확고했다.

최근 멤버들이 제시한 아이디어도 추진하고 있었다.

인터넷 방송을 하는 스트리머들과의 합방.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건 좋지만, 일이 잘못될 경우 그들보다 언래블이 잃을 게 더 많기 때문에 여러모로 신경이 많이 쓰였다.

“아, 진짜!”

쌓인 일을 하나둘 처리해가던 소현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계속 사무실에 있다가는 내일 출근에 지장이 생길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짜증 나는 여러 일을 처리하다 보니 머리에 열이 가득 찬 것 같았다.

“더는 못하겠어! 집에 가서 맥주 한 캔 시원하게 마시고 자자.”

텅 빈 사무실에서 홀로 중얼거리던 소현은 겉옷을 집어 들고 가방을 옆구리에 꼈다.

멤버들이 아직 촬영 중인 점이 걸렸지만, 우진이 잘 대응해주리라 믿었다.

일단 소현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 * *

- 초록우산 서울쇼 빌런님 본진이 여기라는 소문에 찾아왔습니다.

입덕 부정긴 거 같은데 입덕시켜줘라, 뷰어들아!!

ㄴ (지환이 홍삼짤)

ㄴ얔ㅋㅋ이건 안됔ㅋㅋㅋㅋㅋㅋ

ㄴ 원글쓴이야 이거 봐 위에 사진 보지 말고 ㅋㅋㅋㅋ

(쪼그려 앉아서 핸드폰 위에 메시지 적는 지환이 사진)

(팬들 보면서 울고 있는 지환이 사진)

(1집 Question 컨셉 포토)

(2집 여로(旅路) 컨셉 포토)

(바다로 뛰어들어 힘찬에게 손을 뻗는 지환이 사진)

(세빈이 손에 핸드크림 짜주는 지환이 사진)

엄청 많은데 일단 내 최애 사진만 보여줄게!

ㄴ저기 핸드폰 들고 있는 사진 언제야??? 나 왜 저 사진 모르냐 ㅠㅠㅠㅠ

ㄴ이거 졸업식 특별무대야! ‘지금, 우리’ 출연진이랑 같이 무대한 거 ㅇㅇ

ㄴ 이날 DCL이랑 같이 유리 벽 너머로 우리랑 블리분들까지 다 모여서 막라랑 놀았어! 졸귀였다 진짜 ㅠ

언래블의 게시판이 있는 곳에 최근 입덕 부정기에 빠진 사람들의 방문이 늘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매체에서 언래블의 노래를 듣거나 사진, 움짤 등을 보고 홀린 듯이 커뮤니티를 찾은 이들은 각자가 접한 사진을 내밀며 정보를 물어왔다.

하얀 토끼 찹쌀떡 같은 멤버가 누구냐는 질문에 솜뭉치들은 세빈이 사진을 뿌려주었다.

초록우산 패션쇼 빌런 누구냐는 말에는 지환이 사진을 한 움큼 퍼다 날라주었다.

또한 소년만화의 주인공 친구같이 생긴 애라는 말에는 찰떡같이 찬이 사진을 올려주었다.

이미 옆집 대학생 선배 이미지의 하준 사진은 너무나 유명했다. 더불어 흑표범 같은 느낌이 난다는 영빈이에 대한 감상에는 안타깝지만 속은 거라며, 러시안 블랙 고양이 사진을 올려주기도 했다.

거기에 덧붙여 차갑게 생겼지만, 누구보다 여린 멤버라며 동생들에게 시달리는 움짤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또한, 경환을 찾는 글에는 한결같이 곰돌이 푸 사진을 올려놓는 일관성을 보이기도 했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어떤 금손 솜뭉치는 곰 모형 속에서 나오는 경환의 캐릭터를 그리기도 했고.

신규 솜뭉치들이 늘어나는 이 와중에 기존 솜뭉치들은 뿌듯함을 느끼며 최근 언래블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마냥 유리 인형 같았던, 그래서 안절부절못하면서 지켜봐야 했던 멤버들이었다.

그랬던 멤버들이 여러 사건을 겪으며 점차 단단해져 가는 걸 여러 영상을 통해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바로 내 새끼를 키우는 건가 하는 마음으로 맘카페에 빙의해 드립을 치기도 하고, 내 돈을 가져가라며 오열하기도 했다.

- 우리 애들 이제 쫌 큰 거 같지 않아? 나만 그렇게 느껴?

ㄴ 맞아! 나도 최근 앨범 보고 약간 그런 느낌 받음!

ㄴ 그 여로랑 여로 활동기에 약간 애매했는데 이번 앨범 보고 그 느낌이 빡 왔음! 애들이 잘 크고 있다는 게 너무 잘 보였다 ㅠㅠㅠ

ㄴ 첨엔 마냥 귀염뽀짝이들이었는뎈ㅋㅋㅋㅋㅋㅋ큐ㅠㅠ 행복하구나...ㅠㅠㅠ

ㄴ ㅇㅈ. 첨엔 좀 위태위태 한가 싶기도 했는데 확실히 이번에 음방 뛸대 무대 위에서 태가 나드라. 뭔지 알지? 그 마냥 무대 어려워하는 게 아닌 즐기는 느낌 ㅋㅋ 그게 쪼금씩 느껴져!

ㄴ 울 뽀짝이들 대견쓰ㅠㅠㅠㅠ... 힘들었을 텐데 어느새 이렇게 자랐어ㅠㅠㅠㅠ

ㄴ 난 늘 세빈이가 16살이라는 게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어린 나이에 별일을 다 겪고 있잖아.. 근데도 너무 예쁘고 착해ㅠㅠ

처음 언래블의 멤버들은 따끈따끈한 신인 그 자체였고, 그래서인지 내내 주변의 눈치를 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신인이니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 돌이 조금 더 당당했으면,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하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충분히 노력하고 잘하고 있는 아이들이지만 그걸 마음껏 발산하고 있지 못한 것 같아 속이 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악플러 고소를 진행하며 발매된 새 앨범부터는 멤버들의 태도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언제나 모든 컨셉 영상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줬지만, 실제 무대에서는 긴장한 빛이 역력한 눈을 했던 멤버들이었다.

그동안 공방 리허설 후기에도 멤버들이 너무 긴장한 것 같다는 우려가 가득했고, 팬들에게 말을 걸 때 지나치게 현장 스태프들의 눈치를 본다는 말도 있었다.

물론 본무대에서는 긴장한 티를 내지 않고 실수 없이 멋진 무대를 보여줬었지만….

이전 모습들이 기억에 남아있기에 이번 컴백 무대의 사녹에 당첨되었던 솜뭉치들은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을 안고 찾아갔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려와 달리 자신감 넘치는 무대를 선보여 정말로 멤버들이 무럭무럭 크고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게다가 언래블 스토리에 업로드된 컴백 당일의 에피소드를 본 후에는 그 마음이 끝도 없이 부풀어 올랐다.

무대에 무언가 문제가 있었는지 잠시 당황한 듯 보였던 멤버들은 금방 스태프들에게 적극적으로 상황을 묻고 빠르게 대형을 바꿨다.

그동안 얼마나 연습에 몰두한 건지, 순식간에 서로 대화 몇 마디로 안정적인 대형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현장 스태프들의 눈치를 한없이 보던 처음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눈치를 보며 머뭇대는 대신 자신들의 의견을 예의 바르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모습.

마냥 신인 같고 조심스러워 보였던 언래블 멤버들이 제법 프로다운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솜뭉치들은 높은 점수를 주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전해진 ‘이승 탈출’의 출연 소식에 솜뭉치들이 설렘 반 우려 반의 반응을 보였다.

워낙 유명한 프로그램이다 보니 혹시라도 그쪽 팬들이 덮어놓고 욕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

반면, DCL과 함께 출연한다는 소식에 그동안 두 그룹의 친근한 모습을 보아온 양측 팬들은 서로를 향해 근거 없는 친밀함을 느꼈다.

각 팀의 맏형들은 이미 서로 친한 친구 사이였고, 나이대도 비슷해서 잘 어울리는 모습이 마냥 보기 좋았달까.

다른 그룹의 형들에게 예쁨 받는 것도 좋았지만, 또래 친구가 생겼다는 점에서 솜뭉치들은 학부모가 된 것 같은 마음도 들었다.

마치 우리 애가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었다고 집에 데려온 것 같은 감동.

이것이 바로 마음으로 낳아서 지갑으로 키운 내 새끼라는 것인가.

솜뭉치들과 블리들은 비슷한 마음으로 방영 날짜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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