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29)화 (229/456)

229. IDEA(5)

우리가 찾아야 하는 미션지는 총 15개.

제작진은 각 팀당 15장의 미션지를 찾아야 메인 미션을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했다.

또 거기에 황금 카드가 숨어 있으니 찾으면 메인 미션에서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와, 지독하다. 이런 데다 숨겨놓냐….”

“그걸 찾아낸 우리는 더 지독한 건가?”

미션지를 찾아낸 휴이가 중얼거렸다.

회의실의 이름을 넣는 종이 안에 살짝 겹쳐 들어가 있던 미션지.

제작진이 숨겨둔 미션지는 유심히 살피지 않는다면 찾을 수 없을 만큼 교묘했다.

PD님들의 PC가 늘어선 사무실 뒤편 사물함에서 찾은 황금 카드는 포잉 아니었으면 엄두도 못 낼 뻔했다.

숨죽여 들어간 사무실에는 야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지만, 사전에 모두 협조 요청이 끝난 건지 우릴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송국 전체를 뒤지고 다니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기에 제작진은 미션지가 숨겨진 대략적인 구역을 정해주었다.

준이 형네 팀이 인원을 나눠 사방을 샅샅이 뒤지는 쪽을 택했다면, 우리는 두 팀으로 나눠 위아래서 좁혀가는 방식을 택했다.

단, 미션지를 찾는 여정을 시작하기 전, 고정 출연자인 두 선배님과 휴이에게 평소 미션 진행 방식을 물었다.

종이에 대략적인 루트를 그려가며 그간의 공부와 포잉이 찾아낸 미션지 위치를 적당히 버무려 팀원들에게 설명했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선배님들과 달리 경환 형, 찬이, 세빈이, 휴이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전폭적인 신뢰를 보였다.

포잉은 우리가 오프닝을 찍는 동안 내부를 돌아다니며 수상한 장소를 하나씩 찾아냈고, 그 덕분에 팀장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었다.

“저기! 저거 뺏어!”

“뺏는 게 어딨어!”

“여깄다!”

“악! 지환아! 살려줘!”

물론 미션지를 찾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찾는 것도 어려웠지만, 언제든 빼앗길 수 있어서 더욱더.

미션지를 찾고 기뻐하던 찬이가 레노와 자인이 눈을 부라리며 뛰어오자 비명을 지르며 도망 다녔다.

세빈이는 평소처럼 인자하게 웃으며 앞뒤를 포위한 맏형들을 바라보며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더니!”

“오늘만큼은 언래블 리더가 아니라 약탈자란다. 우리 막둥이, 순순히 내놓으면 슬픈 일은 발생하지 않을 거야.”

세빈이를 앞뒤에서 붙잡은 준이 형과 영빈 형이 세빈이를 간지럽히기 시작했고,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던 막내는 결국 항복을 외쳤다.

바닥을 구르면서 분량은 잘 챙겼으니 세빈이는 자기 역할을 다 한 셈이라고 위로해줬다.

아무래도 우리 형들은 평소의 모습을 벗어던지기로 한 것 같았다.

재미를 위해 한 몸 불사르기로 한 걸까, 그도 아니면 선배님들에게 물들어버린 걸까.

어느 쪽이든 나중에 모니터링할 때 표정들이 볼만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숨어다니며 미션지를 지켰다.

내 곁에는 포잉이 있어서 주변에 누가 다가오는지 알 수 있었기에 몸을 빼는 건 어렵지 않았다.

‘포잉, 정말 난 포잉이 있어서 너무 행복한 것 같아.’

‘알면 평소에도 잘 좀 하지 그러냐, 계약자 놈아.’

못마땅한 듯 툴툴거렸지만, 포잉은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슬금슬금 도망 다니는 나를 찍던 카메라가 덩달아 숨느라 바빠졌고.

어쩔 수 없었다.

사방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미션지 때문에 난장판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방금도 저쪽에서 리우 형이 오수 선배님에게 붙들려 짤짤 당하고 있는지 비명이 들렸다.

물론, 이런 사태를 예견했던 오수 선배의 조언 덕분에 우리는 미션지를 찾는 족족 주장인 나에게 건네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사람들 시야에서 멀어져 숨어다니고 있었고.

우리에게는 핸드폰이 팀별로 세 대씩 주어졌다. 고요한 방송국 안에서 무전기를 사용하는 것보단 이쪽이 낫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덕분에 핸드폰에 깔린 냥톡으로 팀원들과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공포 게임 아닌가요?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요….”

“그래도 좀비나 귀신은 안 튀어나오니까 다행이지. 저번에 공포 특집 때 나는 그길로 이승 떠나는 줄 알았다.”

나는 미션지를 찾아서 들고 온 서노 선배님 말에 몸서리쳤다.

“공포 특집…. 깜짝깜짝 놀래키는 거 너무 싫어요.”

“나도. 이 나이에 심장마비 오는 줄 알았다니까?”

주변에 다른 팀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우리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여태까지 모은 미션지를 세어보았다.

“다 모았다…!”

“좋아! 한우!”

“저는 PD님한테 갈 테니까 다른 사람들은 미션지 찾는 척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왜? 아, 부온 형님네가 방심하게?”

“네. 그리고 메인 미션지 받으면 바로 메시지 보낼 테니까 그때 움직이면 될 것 같아요.”

미션지와 황금 카드를 꼼꼼히 주머니에 넣고 셔츠를 빼서 주머니를 덮었다.

그런 내 모습에 감탄하던 서노 선배님은 이런 지능캐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며 한탄했다.

여태까지 제작진과의 수 싸움에서 많은 패배를 겪었던 설움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이 인간이 뭐라는 거임? 네놈이 지능캐라니. 다 내 덕인데!’

‘하하, 어쩔 수 없잖아. 나야 다 알지~! 이게 다 우리 포잉님 덕분일걸.’

포잉은 나를 칭찬하는 모습이 못마땅한 듯 애꿎은 바닥을 꼬리로 탁탁 두드렸다.

그 모습이 귀여워 당장 끌어안고 싶었지만, 남들 앞이라 그럴 수 없다는 게 마냥 아쉬웠다.

그렇게 몸을 잔뜩 사린 덕분에 제작진의 예상보다 빠르게 미션지를 모았는지, 도착한 나를 보고 PD님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야, 어떤 마법을 부렸길래 이렇게 빨리 찾았어요?”

“평소에 열심히 이승 탈출을 보고 공부하면 가능합니다!”

“오, 예를 들면?”

“영업 비밀이에요.”

윙크하며 너스레를 떠는 내 모습이 재밌었는지 메인 PD님도 다른 스태프분들도 웃었다.

“자, 그러면 먼저 미션지를 모아온 홍삼파워 팀이 먼저 이동할게요. 팀원들 불러주세요.”

“그, 팀명 바꾸는 건 안 되겠죠?”

“당연히 안되죠. 왜요? 지환 군이랑 잘 어울리는데요.”

싱글벙글 웃으며 홍삼파워라고 말하는 PD님 얼굴이 그렇게 얄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오수 선배한테 팀명 만드는 걸 맡기는 게 아니었는데!

* * *

다행히 연막작전이 잘 통했는지 상대 팀 방해 없이 우리 팀 사람들은 모두 모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우리 앞에는 차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예…?”

“목적지는 네비에 입력해놨습니다. 그 장소로 이동해서 도움받으시면 돼요.”

“아니, 이게 무슨…!”

“영호야, 이건 좀 아니지 않냐?”

“맞아요! 밤에 운전하면 위험한데!”

이 근처에서 메인 미션을 진행하는 게 아니라 다른 장소로 또 이동해야 한다는 말에 불안감이 엄습했는지, 팀원들이 격렬하게 반항했다.

“아, 참고로 먼저 도착하는 게 여러모로 유리할 겁니다.”

“이런 쌍쌍바 같은 놈아!”

결국 오수 선배님은 차키를 빼앗듯 낚아채서는 운전대로 달려갔고, 우리도 급히 차에 올라탔다.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드는 사람들 얼굴이 어찌나 얄미워 보이던지….

왜 선배님들이 제작진을 보며 학을 떼는지 알 것 같았다.

“찬아, 안전밸트 잘 매야지. 휴이 너는 왜 안 하고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어!”

세빈이가 안전 벨트를 잘 맸는지 확인한 나는 뒷자리의 경환 형에게 찬이를 챙겨달라고 말한 후, 휴이까지 확인을 마쳤다.

“왜 너희가 지환이를 잘 따르는지는 잘 알겠다.”

“그쵸? 환이가 하란 대로 하면 절반은 먹고 들어가요!”

“네가 너무 덜렁대니까 그렇잖아.”

“잔소리가 너무 심하긴 한데 환이 말 들어서 손해 본 적 없어요.”

보조석에 앉은 서노 선배님이 우리 모습에 웃으며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찬이나 휴이는 방송국에서 펼쳤던 활극을 열심히 이야기했고,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아마 한우 팀보다 우리가 먼저 출발해서 심적인 여유가 있는 것 같았다.

“야, 이거 어째 예감이 안 좋은데?”

“아, 형님 불길하게 왜 그래요!”

오수 선배님의 중얼거림에 서노 선배님이 질겁하자 세빈이가 불안한지 내 손을 꾹 쥐고 눈만 데구루루 굴리다 물었다.

“왜 예감이 안 좋으세요…?”

“아, 예전에 우리 그 뭐냐, 모래사장에서 추격전 했던 편, 그거 찍을 때 생각나서.”

“어! 그거 ‘보물을 찾아라’ 맞죠?”

“어어. 그때도 1차 미션 끝내고 어디 가라 그래서 갔더니 어디였더라? 여튼 거기 모래사장 안에 물건을 숨겨 놨더라고.”

“맞아. 그때도 깃발로 다 표시해놨으니까 쉬울 거라고 해놓고는, 가니까 깃발이 백 개 넘게 있었던 것 같아….”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둘은 푸념을 늘어놓았고, 꼭 그날처럼 불길하다는 말을 들은 나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아무리 포잉이라도 땅속을 파고 다니는 건 무리일 텐데….

그런 건 부탁할 수도 없었고.

불안감을 안고 달려 도착한 곳은, 다행히 바닷가는 아닌 것 같았다.

점점 인적이 드문 외진 길을 달렸고, 네비가 알려준 곳은 폐공장 같은 곳이었다.

“공포 특집 할 시기는 아닌데 장소 이거 뭐냐.”

“해도 다 져서 어두운데 설마 밖에서 돌아다니진 않겠죠?”

스태프들이 불을 밝혀둔 곳에 차를 세우고 두리번거리는 사이 굉장히 푸근해 보이는 사람이 다가왔다.

“오늘은 먼저 오셨네요?”

“형규야, 여기서 우리 뭐하면 되냐.”

“저기 안에 들어가서 미션 확인하시면 됩니다.”

“아이, 그러지 말고. 쪼금만 알려줘 봐. 애기들도 있는데 무서운 거면 애들 경기한다.”

이를테면 창과 방패.

선배님과 제작진은 티키타카 공수를 주고받았지만, 결국 승리는 제작진에게로 돌아갔다.

서글서글한 웃음을 머금은 얼굴이 칼같이 정보를 차단하며 커다란 건물을 가리켰다.

얼굴만 푸근했고, 마음은 푸근하지 않은 것 같았다.

쫄보 본능이 발동한 우리 애들은 또 내 뒤에 찰싹 달라붙었고, 내 옆에는 경환 형이 서 있었다.

찬이나 세빈이는 알겠는데 휴이 너는 왜….

“그래도 오늘은 형이 있어서 참 든든해요.”

“야, 나도 있잖아.”

“아, 어, 응.”

“영혼 좀 담아주지 않을래?”

주변에 조명이 여럿 켜있어서 환했지만, 그래도 오래되고 낡은 건물 특유의 을씨년스러움은 가려지지 않았다.

“씨아이가 용감하네. 자, 가서 문 열자.”

“선배님?”

“할 수 있다! 아자아자!”

“왜 다 제 뒤에 계세요….”

내 뒤에는 우리 애와 남의 애가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면, 생긴 것부터 듬직한 경환 형 뒤에는 두 선배님이 숨어 있었다.

이게 무슨 꼴이람….

우리를 바라보는 포잉의 얼굴에 익숙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가끔 나를 굉장히 하찮다는 듯 볼 때의 그 표정이었다.

‘모든 인간이 이런 건 아냐. 알지?’

‘앞이나 잘 보고 걸어라, 계약자야.’

왜인지 모르지만, 인류를 위해 포잉에게 변명해야 할 것 같아 중얼거렸다.

다만, 효과는 미미했다.

무심하게 닫혀있던 문을 열던 경환 형은 시무룩해진 내 표정을 바라보고는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살짝 흔들어준 나는 조심스럽게 형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이야, 이게 다 뭐냐.”

“여기 뭐라고 쓰여 있어요!”

우리가 들어서자 내부에 일제히 조명이 켜졌고, 눈앞에 거대한 세트가 드러났다.

예전에 봤던 주말 예능처럼, 온갖 구간을 넘어가 제일 끝에 있는 커다란 황금 티켓을 먼저 획득하는 팀이 이기는 것 같았다.

눈 앞에 펼쳐진 세트를 보느라 정신을 놓고 있었던 우리는 무언가 발견했다는 휴이의 외침에 그쪽으로 몰려갔다.

ⅰ. 이번 미션은 팀전입니다.

모든 팀원이 한 명도 빠짐없이 최종 지점에 도착해야 승리합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모든 팀원이 해당 구역을 통과해야 합니다.

ⅱ. 황금 카드를 소지한 경우, 카드 수만큼 구역 하나를 패스할 수 있습니다.

ⅲ. 시간제한은 없습니다.

한쪽 벽면에 커다랗게 걸린 안내문을 보고 우리는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다른 것보다 시간제한이 없다는 문구가 가장 불길했다.

“야, 이거 까딱 잘못했다간 밤새 여기 있게 생겼다….”

오수 선배님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대신하듯 중얼거렸고, 서노 선배님은 세트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클라이밍처럼 벽면을 타고 올라야 하는 코스, 높은 곳에 설치된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할 것 같은 코스, 오락실 농구 게임기 등 온갖 것들이 있었다.

“이, 뭣….”

두 선배님은 순식간에 퀭한 얼굴이 되었지만, 우리 얼굴엔 굳은 각오가 서렸다.

다행히 이미 언래블 스토리의 체육대회에서 이상한 미션에 단련된 우리는 나름대로 각오를 다질 수 있었다.

‘집에 가고 싶어, 포잉….’

‘한우 생각하면서 힘내라, 계약자야.’

하지만 왠지 그게 기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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