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164)화 (164/456)

164.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1)

연희는 동생이 사고 이후 여러모로 이전과 달라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집을 나가기 직전 지환이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걸 어려워하던 아이였다.

하지만 더 어릴 때, 그러니까 어머니,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만 해도 웃음이 왜 이렇게 헤프냐고 놀림당할 만큼 잘 웃는 아이였다.

아주 어릴 적 지환이의 모습을 담은 앨범은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만큼 활짝 웃는 사진들로 가득했다.

아기일 때도 잘 울지도 보채지도 않는 순하디순한 아이였다.

어머니가 종종 연희 어릴 때와 비교해 놀리곤 했던 일상들이 지금도 선명했다.

어머니의 흥얼거림에 자신의 손을 꼭 쥐고 같이 흔들며 옹알이를 하던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띠동갑의 동생은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후, 아동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상담사를 찾아가야 할 만큼 현실을 부정하며 힘들어했었다.

그때를 기점으로 지환이의 성격은 급속도로 변하기 시작했고, 스스로의 감정을 추스르기도 힘들었던 연희는 동생이 어딘가 틀어져 버렸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동생을 남부럽지 않게 키워내야 한다는 압박감.

너무 어린 나이에 보호자를 잃은 동생에 대한 안쓰러움과, 승냥이 떼와 다르지 않은 혈육들.

심장의 반쪽을 잃은 것 같은 공허함에 연희 자신도 몸부림을 치며 간신히 버티느라 제대로 지환이를 품어주지 못했다.

사춘기겠거니 했던 찰나에 집을 뛰쳐나갔을 때 연희는 하늘이 다시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자신의 연락은 받지 않아 외삼촌을 통해 전달받던 지환이의 연습생 생활은 위태로워 보였다.

그런 동생이 교통사고로 입원했다는 소식에 연희는 그만 정신을 잃었었다.

그 후 겨우 정신을 차린 동생과 어렵사리 연락을 하게 되고, 이제는 간간이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러다 지환이가 어딘가 많이 변했다는 걸 깨달았다.

집에 왔을 때의 자신을 바라보던 표정, 두런두런 나누던 이야기들의 내용, 미묘한 표현들.

하지만 연희는 그 모든 것들을 그저 마음 깊이 묻기로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어 얼마나 행복한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동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내 보물 [그럼 누나한테 연락할 거 아냐]

[난 이미 차단했지.]

차단하지는 않았지만 알림은 꺼두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정황 증거에라도 사용하려고 모두 확인했다.

수신받은 메시지를 일정 기간 읽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게 되는 터라, 누르고 싶지 않았지만 꼬박꼬박 체크해두었다.

소위 말하는 ‘읽씹’이 지속되자 짜증이 났을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지환이를 TV에서 보고 옳거니 하고 연락을 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연습생을 하겠다고 뛰쳐나갔을 무렵처럼 연희와 지환의 관계가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지환이에게 연락을 했을 수도 있었다.

그때는 지환에게 한 톨 관심도 주지 않고 냉정히 쳐낸 주제에 혹시나 돈을 뜯을 궁리를 한 것이라면 절대로 가만있지 않을 생각이었다.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다시 덤비는 거야.”

연희는 그들에게 에너지를 쏟을 바에는 덕질이나 하는 게 이롭다는 생각을 하며 유료 구매해두었던 미궁 탈출을 재생했다.

“쯧…. 옛날이나 지금이나 둔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연희는 동생인 지환이 몸을 쓰는데 그다지 재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몸으로 무대를 소화해내는 것만 봐도 얼마나 연습에 매달리고 있는지 훤할 정도였으니까.

특히나 이번 더블 타이틀 때의 안무들이 생각보다 훨씬 역동적이어서 부상이 생기진 않을까 보약이라도 지어서 보내야 하나 고민했었다.

미궁 탈출을 이미 몇 번이나 돌려본 탓에 내용은 다 알고 있었지만, 동생과 동생의 동료가 활약하는 모습은 몇 번을 보아도 흡족했다.

오늘은 공식 채널에 업로드된 영상을 재탕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장시간 작업하느라 굳어버린 허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풀었다.

다음번 지환이가 오기 전에 굿즈들을 숨겨둘 생각을 하니 조금 귀찮아졌지만, 말 안 듣는 동생이 유독 보고 싶어진 날이었다.

연희는 조만간 약을 지어서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 * *

“워킹 연습이 춤추는 것보다 힘든 것 같아….”

“평소에 그만큼 자세가 안 좋았다는 거 아니냐.”

“진짜 모델분들 존경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우아하게 걷지.”

퀭한 얼굴이 돼서 연습실에 주저앉은 우리는 방금 전 화연대 모델학 전공 교수님이 보여준 우아한 걸음걸이를 떠올렸다.

오늘까지 회사에 직접 방문해서 총 3번의 가르침을 주셨다.

그 사이 우리끼리 틈틈이 연습도 하고 있었지만, 오셔서 알려주실 때마다 자세를 다시금 교정받아야만 했다. 역시 쉬운 일은 하나도 없구나 싶었다.

평소 틈날 때마다 널브러져서 팔다리를 자유분방하게 굴리던 게 문제였을까.

처음에는 곧은 자세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었다.

자세 교정용 밴드 같은 걸 사는 게 어떻겠냐는 준이 형의 의견에 우리 모두가 쑥덕거리며 진지하게 고민할 만큼.

하준 형과 나는 그나마 자세가 곧은 편이었지만 움직임이 모조리 다 어설펐고, 영빈 형은 기본자세가 구부정했다.

그나마 운동을 즐겨 하는 경환 형, 힘찬이, 평소에도 유연한 몸놀림을 자랑하는 세빈이가 워킹 연습 동안 가장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어깨는 흔들림이 없어야 하고 보폭과 팔의 흔들림이 비슷해야 한다는 첫 가르침에 준이 형과 나는 로봇 같은 걸음으로 걸었다.

오른쪽 팔과 오른쪽 다리가 동시에 움직인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내 마음과 달리 한없이 뻣뻣한 사지를 원망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연습 때마다 포잉이 웃으며 바닥을 구르는 모습이 내 눈에만 보이는 게 얼마나 얄밉던지.

지금에 와서는 꾸준한 연습과 교수님의 무수히 많은 칭찬들 덕에 꽤 그럴듯하게 워킹을 흉내 낼 수 있게 되었지만.

“잠깐 쉬었다가 바로 무대 체크하러 갈 거야. 무대를 한번 경험해보는 게 너희한테는 필요할 것 같아서.”

“네. 리허설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았는데 다행이에요….”

“DCL도 같이 서보기로 했으니까 사이좋게 지내고.”

“안 그래도 보고 싶었는데 잘 됐다!”

이어질 스케줄을 듣는 동안 힘없이 고개를 흔들거리던 힘찬이가 마지막 말에 고개를 벌떡 들며 환호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영빈 형이랑 찬이, 세빈이는 요리 프로그램 촬영 때문에 불참했었지.

아무래도 DCL 분들이 꽤 마음에 들었던지 나중에 우리에게 이야기를 듣고는 많이 아쉬워했었다.

반면 준이 형의 얼굴엔 애매한 미소가 걸렸다.

그 얼굴을 본 순간 저번 미팅 때 DCL의 리더 리우 님에게 준이 형이 입 모양으로 욕했던 모습이 생각나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혀를 깨물며 꾹 참았다.

준이 형 앞에서 그 그걸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달까.

목숨은 소중한 거니까 아끼기로 했다.

그렇게 본무대가 설치된 곳에 도착한 우리는 꽤 커다란 규모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전에 현장을 숙지한 우진 형이 무대를 설명해 주며 우리에게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알려줬다.

“첫 스테이지 때는 여기서부터 저쪽으로 갈 거야. 쇼에 쓸 음악은 오늘 보내주신다고 했으니까 저녁에 한 번 들어봐.”

U자형 스테이지의 양쪽과 정면에 자리할 손님들의 양을 가늠해보니 약간 긴장되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넓은데?

“처음 양쪽에서 모델이 나오면 가운데에서 잠시 포즈를 취한대. 그 후 각자 라인으로 걸어가서 제일 끝부분에서 포즈. 그 후에 턴해서 들어오면 되고.”

“같이 나갈 모델이랑 속도가 맞아야겠네요.”

설명을 들을 듣고 있던 내가 묻자 우진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음악을 미리 보내준다고 하신 것 같아. 그 박자에 맞춰서 속도를 조절해야 하니까.”

우리가 무대와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DCL 측에서도 도착한 건지 잠시 현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요, 오랜만!”

“힘찬, 하이!”

여전히 빨갛고 파란 머리를 자랑하는 DCL의 활기찬 멤버 둘이 달려와 찬이와 세빈이를 껴안았다.

“왔냐.”

“어, 무인도 탈출은 잘함?”

“말도 마….”

DCL의 리더 리우 님은 어느새 준이 형 옆에 와서 형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친밀함을 표했다.

영빈 형이 어슬렁어슬렁 도망가려는 걸 누구보다 빠른 손길로 잡아채는 리우 님의 손길에 나도 모르게 움찔하기도 했고.

형은 곧 반가움과 귀찮음이 동시에 드러나는 신기한 표정이 되었지만, 상대방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런저런 말을 걸어 신기할 지경이었다.

“화니! 보고 싶었어!”

“본 지 얼마 안 됐잖아.”

휴이는 신난 얼굴을 하고 내 옆에 딱 붙어서 최근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들기 시작했다.

미팅 당시 동갑이니 말을 놓자기에 그러자 했더니, 오늘은 마치 십년지기 절친처럼 굴었다.

“C.I 형님도 잘 지냈어요?”

“어. 무인도에서 헤맨 거 빼면….”

“우리는 이번 프로에서 미친 듯이 달리기만 하다 왔어요. 화면에 얼굴이나 제대로 나올런지 모르겠다니까요.”

휴이는 굉장히 사교적인 성격인 것 같았다.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이었지만, 휴이가 우리에게 대하는 걸 남들이 봤으면 절친인 줄 알 것 같았다.

본인의 말로는 평소에 리우 님이 우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줘서 그런지 처음 볼 때부터 이유 없이 친근했다고.

DCL은 개인 휴대폰이 없지만, 가끔 리우 님을 통해 연락했던 터라 서로 스케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물론 비공개 스케줄을 이야기할 때는 서로에게만 들리게 소곤거리긴 했지만.

“이왕 온 김에 한 번 맞춰보죠.”

“그럴까요?”

깐깐해 보이는 DCL의 매니저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고 말하는 우진 형.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하준 형이 리우 님에게 눈짓을 했다.

무언가 둘 사이에 어떤 사인이 오고 간 것 같았지만 알 수 없었다.

“그나저나 레노랑 자인이가 찬이랑 세빈이랑 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라. 저번에 너무 짧게 놀았다고 엄청 아쉬워했어.”

첫 대면은 졸업식 특별 무대였고, 두 번째 대면은 기부 패션쇼를 위한 미팅 때였다.

둘 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눌 상황은 아니었지만 또래라는 게 이런 상황을 상쇄시킬 만큼 큰 메리트였나 보다.

어쩌면 리더의 친구 그룹이라는 게 더 컸을지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상대방의 호의가 어떤 의미인지 해석하려다 순간 멈칫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삭막하게 사람을 바라보고 살았다고.

무대 입장 전, 대기 라인에 서 있다가 호기심과 기쁨이 섞여 반짝이는 눈동자를 한 휴이와 마주치자 미약한 죄책감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아, 진짜 나 너무 썩은 것 같아.’

‘갑자기?’

‘그냥….’

‘쓸데없는 걱정 할 시간에 걷는 모습에 더 신경 써라, 계약자 놈아. ’

뜬금없는 내 말에 시끌벅적한 DCL 사람들을 한번 힐끔 바라본 포잉은 슬쩍 내 다리에 자신의 몸통을 문지르고 지나갔다.

저런 행동이 친애의 표현이라는 걸 알기에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내 요정님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고마워.’

‘흥. 이 몸의 계약자가 워킹도 제대로 못 한다고 소문이 나면 곤란함.’

미리 정해진 순서대로 우리 멤버들과 DCL 멤버들이 차례로 무대를 한 번씩 경험하고 내려왔고, 다행히 키가 엇비슷했던 덕분인지 보폭이 크게 다르지 않아 안심할 수 있었다.

최종 무대 점검을 앞둔 탓에 한 번 서본 후 퇴장해야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내일 리허설 때 보자!”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쉬운 얼굴로 손을 흔들며 내일을 기약하는 우리 애들을 바라보던 나는 DCL에 대한 혼자만의 경계를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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