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105)화 (105/456)

105. 이게 무슨 일이야(6)

최태성은 미칠 것 같았다.

조서 작성이 끝나고 상당한 금액의 합의금을 지급하게 되었지만, 바로 회사의 변호사들이 찾아온 데다 초범이었기에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여태 이루었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고작 그깟 신인들 때문에.

돈 몇 푼 쥐여주고 끝났던 피해자들이야 최태성의 머릿속에서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사고 치고 적당히 합의금을 쥐여주는 일은 이미 그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사고를 쳤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그저 운이 없었다고 생각할 뿐.

그저 자신이 집에 감금된 건 건방진 신인 그룹 때문이었고, 그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니 최태성에게 잘못된 것은 언래블이라는 신인과 박세날 PD였다.

물론 여태 음습한 충동대로, 되는대로 살아온 건 최태성이었고, 이 지경이 돼서도 정신 못 차리고 만취해 행패를 부린 것도 그였다.

다만 그런 것을 구분할 만큼 최태성은 분별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정도 정신머리가 있었다면 이런 일들을 벌이지도 않았겠지만.

그저 당장 연예계에서 쫓겨나게 생긴 일도, 아버지의 분노도 모두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탓할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 대상은 가장 약해 보이고 하찮아 보였던 그들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순서였다.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어차피 아버지는 나 못 버려.”

“그래도 이건 너무 일이 커지는데….”

“내가 다 뒤집어쓴다고 했잖아! 너희는 그냥 내 협박에 억지로 끌려왔다고 해.”

다행히도 손이 귀한 집안의 외동아들이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한들 결국 아버지의 모든 것은 자신의 것이 된다.

최태성은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거리낌이 없었다.

어차피 망한 거라면 그 새끼들 얼굴에 칼자국 내주든가 팔다리를 못 쓰게 만들자고, 그래서 카메라 앞에 못 서게 해주자고 웃는 최태성의 얼굴은 소름 끼치게 일그러져 있었다.

마침 하늘이 돕는지 새까만 구름이 가득 낀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투둑하고 떨어지고 있었다.

평소에 어울렸던 회사 연습생 두 명과 양아치 셋을 데리고 처음 확인한 것은 그들의 숙소였다.

가진 건 돈밖에 없다고 평소에도 시시덕거렸던 최태성은 그간 돈과 아버지의 영향력을 빌어서 꽤 다양한 방면에 인맥을 만들어 두었다.

그리고 오늘 그 인맥을 쓸만한 기회가 생긴 것.

처음 갔던 곳에서 허탕을 치고, 최태성은 더 길길이 날뛰었다. 마침내 그들이 최근에 이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오피스텔을 찾아냈다.

다만, 생각보다 돈을 들인 건지 출입구부터 보안카드가 있어야 입장이 가능했다.

“썅, 진짜!”

“태성아, 그만 돌아가자…. 이, 이건 아닌 거 같아.”

“닥쳐. 더 지껄이면 가만 안 둬.”

목소리를 낮춰 윽박지르는 최태성의 눈이 홱 돌아가 있었다. 일행은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일행은 지금이라도 경찰에 신고하는 게 더 안전한 게 아닌가 하는 불안에 휩싸였다.

당장 들어갈 방법을 찾는다고 해도, 문은 어떻게 열 것이고… 앞일이 어떻게 될지 눈앞이 캄캄해졌다.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최태성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야식을 든 배달원이었다.

* * *

‘님, 일어나.’

“으응… 포잉.”

‘님, 지금 잘 때가 아니라고!’

밤늦게까지 방송 출연에 뭔가 불이익이 생기진 않을지 전전긍긍하다 잠든 나는 잠결에 들린 포잉의 목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품 안을 더듬었다.

그리고 그 순간 손등을 후려치는 느낌에 눈이 번쩍 떠졌다.

“아이고….”

‘님, 경찰 신고해. 빨리.’

“응…?”

‘얼 타지 말고 빨리 신고해. 망둥이랑 처음 보는 놈들이 문 앞에 있다.’

포잉의 다그침에 깜짝 놀란 나는 잠들어 있는 경환 형을 잠깐 내려다보고 화장실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112에 전화해서 수상한 남자들 한 무리가 현관문 앞에 있다고 확인을 부탁드린다고 하자 경찰이 집 주소와 상대방의 인상착의를 물었다.

포잉이 말해준 대로 모자로 얼굴을 가려서 보지 못했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고 나니, 자다 벌어진 날벼락에 어질어질해졌다.

회사에 얘길 해야겠지? 팀장님? 누구한테 하지? 도대체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쉼 없이 이어지는 의문에 핸드폰을 쥔 손이 조금 떨렸다.

핸드폰을 떨어트릴까 봐 손에 힘을 줘 붙잡자 그제야 조금 떨림이 멈췄다.

혹시나 몸싸움이 벌어지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우진 형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신호가 몇 번 가지도 않고 형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 어, 지환아. 무슨 일이야?

“형, 지금 어디예요? 숙소에 누가 온 거 같아요.”

- 뭐? 누가 와? 아니다, 형 지금 갈게.

“문 앞에 남자들이 모여있어요. 경찰에 신고는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 지환아, 애들 자고 있지? 지금 하준이랑 애들 깨워. 절대 문 열지 말고.

침착하게 말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몇 번이나 목이 졸리는 것 같은 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 내 상태를 형도 눈치챘는지 최대한 나를 진정시키면서 주변에 무어라 소리쳤다.

꽤 늦은 시간인데 아직 회사에 있는 것 같았다.

- 지환아, 듣고 있지? 형 지금 가니까….

형의 목소리에 조금씩 진정되어가던 중 고요했던 집안에 철컥하는 쇳소리가 들렸다.

- 지환아? 무슨 일이야!

“형,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요.”

- 문 잘 잠긴 것만 확인하고 애들 깨워. 얼른!

지금 당장 간다는 말과 함께 전화는 끊겼고, 어느새 곁에 온 포잉이 나를 툭툭 건드렸다.

‘쟤네 바보야. 걱정 말고 시킨 대로 해.’

‘응?’

‘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전기 충격기야.’

콧방귀를 뀌며 나를 두 번 더 두드린 포잉은 빨리 멤버들을 깨우라고 재촉했다.

‘요새 도어락은 전기 충격 무력화 기능이 들어있어서 쟤네가 들고 온 허접한 걸로는 안 열리니까 걱정하지 마.’

‘아….’

포잉의 말을 듣고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예전에 도둑들이 전기 충격기로 도어락을 무력화시켜서 집에 숨어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정말로 그게 가능했다고?

밖에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여,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하준 형과 힘찬이가 쓰는 방에 들어갔다.

“형, 일어나요. 큰일 났어요.”

“…지환아? 무슨 일이야.”

한참 달게 자고 있었던 탓인지 몇 번 흔든 뒤에야 눈을 뜬 하준 형이 푹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혹시나 밖에 소리가 들릴까 쉿 하는 표시를 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가리켜 메시지를 입력했다.

[밖에 망둥이랑 누가 있어요. 경찰에 신고했고 우진 형 금방 온댔는데 다 깨워야 할 거 같아요.]

“미친!”

내 메시지를 확인한 하준 형은 낮게 욕설을 내뱉으며 나에게 힘찬이를 깨우라고 한 뒤 조심스럽게 현관문의 작은 구멍 밖으로 주변을 살폈다.

이윽고 내가 말한 대로 문밖에 누군가 있다는 걸 확인한 하준 형은 영빈 형과 세빈이가 잠들어 있는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힘찬이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잠에서 깨지 못하고 흐느적거리는 힘찬이를 억지로 일으켜 앉혀놓고 밖의 상황을 보기 위해 문을 열자, 마찬가지로 문을 열려던 하준 형이 문 앞에 있었다.

깜짝 놀라서 소리 지를 뻔한 입을 겨우 틀어막고 형을 바라보자 영빈 형과 세빈이가 있는 방을 가리켰다.

가장 안쪽에 있으니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거라 판단한 건지 다들 그 방에 있다는 말에 그사이 졸고 있던 힘찬이를 하준 형과 부축해서 방으로 옮겼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밖에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울렸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늘 생각하는 건데 저 사이렌 소리는 왜 울리는 거야…. 다 도망가라고?”

“모르겠고, 일단 지금은 경찰이 왔다는 게 중요하지.”

그때, 문 너머로 고함 소리와 우진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설마 우진 형 혼자 도착한 거야?

경찰이 도착하기 전이면 우진 형이 위험할 수도 있는데…!

위험한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반응했다.

“우진 형!”

마음이 급해진 내가 문을 열어젖히고 현관문을 나가자, 뒤에서 영빈 형과 경환 형이 목소리를 죽이던 것도 잊고 큰 소리로 내 이름을 외쳤다.

그러나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동안 우진 형이 나를 위해 고생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빨리 형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지환아!”

“너 이 새끼!”

“야, 쟤 잡아!”

현관문 밖에는 경찰에 잡혀서 실랑이 중인 한 무리의 사람들과 그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우진 형이 있었다.

아, 다행이다. 형이 위험한 건 아니었어.

라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던 순간, 문밖으로 나온 나와 눈이 마주친 망둥이는 눈이 뒤집혀서 자신 앞에 있던 경찰을 밀어내고 나에게 달려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이상하게 내 눈에는 그 모습이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꿈 같은 상황에 피할 생각도 못 하고 멍청하게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망둥이가 달려드는 순간. 누군가 나를 자기 쪽으로 확 잡아당겨 그쪽으로 넘어졌다.

“공지환! 너 멋대로 행동할 거야!”

멍청한 얼굴로 고개를 젖히니 경환 형이 잔뜩 화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환아! 너 괜찮냐!”

“지환아!”

사방에서 나를 부르는 통에 더 정신이 없었지만, 경찰에게 질질 끌려가는 망둥이와 모두 체념한 듯 순순히 뒤를 따르는 낯선 남자들의 모습에 무언가 끝이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넘어진 나를 일으키는 경환 형의 얼굴에는 희미하지만 공포가 어려있었다.

달려 나온 멤버들이 내 곁에 달라붙어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우진 형은 크게 숨을 내뱉으며 우리를 집 안으로 밀어 넣었다.

“너희 집에서 꼼짝하지 말고 있어. 회사에서 사람 올 거야.”

“형은요?”

“경찰서 쫓아가야지.”

“아….”

“쟤 못 튀어 나가게 잘 보고.”

나를 가리키며 목덜미를 주무르는 우진 형의 말에 멤버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거길 뛰쳐나가!”

“아니, 우진 형이 위험할까 봐….”

“나가면 네가 도움은 되고?”

“나도 모르게 그런 거라니까요.”

“형 단증 있는 남자다. 그러니까 네 몸이나 잘 챙겨, 이놈 자식아.”

내 부실한 대답은 순식간에 찌그러졌고, 우진 형은 단증 있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문을 닫아버렸다.

“뭐지? 갑자기 우진 형이 되게 멋있어 보였어.”

“어, 나도….”

평소 늘 느긋하고 푸근했던 우진 형의 새로운 모습에 힘찬이랑 세빈이가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보던 영빈 형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나를 끌고 거실에 앉혔다.

아까까지만 해도 여기서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몇 시간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생겨서 머리에는 과부하가 올 것 같았다.

“지환아, 제발 앞뒤 상황 안 보고 튀어 나가는 그거 좀 고쳐.”

“조심할게요…. 나도 모르게 자꾸 몸이 먼저 움직여버려서….”

어깨를 축 늘어트린 내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시무룩하게 중얼거리자, 사방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러다 진짜 크게 다치는 일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불길하게 그런 건 입에 담지 말고.”

자다 깬 상태 그대로 폭풍 같은 상황을 겪은 우리는 진이 다 빠져서 그대로 거실 바닥에 뻗어버렸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아니면 너무 피곤했는지 멤버들은 하나둘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포잉을 찾던 나도 푹신한 러그의 촉감에 못 이겨 결국 잠이 들고 말았다.

잠결에 소현 팀장님과 하준 형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아 눈을 뜨려고 꼼지락거리자 누군가 눈가를 덮어주며 자라고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머지 일들은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야겠다는 게 그날 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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