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106)화 (106/456)

106. 불타오르네(1)

“하준아, 넌 괜찮아?”

“네. 놀라긴 했는데 괜찮아요.”

하준의 눈에는 소현이 더 놀란 것 같아 보였다.

급하게 달려온 건지 평소의 깔끔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후, 이사한 게 신의 한 수였다… 진짜로.”

“애들이 좀 놀란 것 같아요. 특히 지환이가….”

“쟤는 진짜 몸부터 튀어 나가는 거 어떻게 못 고치니?”

“그러니까 말이에요. 하아….”

잠결에도 마주했던 지환의 얼굴이 질려있었다.

잘 때 잘 안 깨던 앤데 오늘따라 왜 먼저 깨서 그런 걸 봤는지….

한편으로는 누구라도 깨서 경찰에 신고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직 어린 동생들 말고 자신이나 영빈이가 깼어야 했다는 자책감도 들었다.

세빈이는 잠들기 직전까지 손을 덜덜 떨고 있었고, 그런 세빈이 손을 꽉 잡아주던 힘찬이 얼굴도 핼쑥했다.

우진 형을 부르며 튀어 나가는 지환이 얼굴은 색이 다 빠져버린 것처럼 절박해 보였고, 뒤쫓아가 지환이를 끌어당긴 경환이 얼굴은 겁에 질려있었다.

하준은 오늘 일이 멤버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진 않을까 걱정되었다. 동생들 앞이라고 내색하지 않았지만 영빈이도 많이 놀랐다는 걸 알고 있었다.

평소라면 느리지만 차분하게 말하던 영빈이가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면서 동생들을 끌어안아 자기 뒤로 밀어 넣는 걸 봤으니까.

“하준아, 빠른 시일 내로 상담받을 수 있게 선생님 모실 테니까 그동안 애들 잘 보다가 이상하면 꼭 말해줘.”

“네. 고마워요, 팀장님.”

“고맙기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 너도 얼른 자. 애가 얼마나 놀랐으면 이렇게 창백해….”

하준은 그제야 자신도 많이 놀랐다는 걸 인지했다.

항상 리더로서, 형으로서 동생들을 챙겨야 한다는 강박증에 가까운 감정이 이 순간에는 도움이 된 것 같아서 쓰게 웃었다.

“그나저나 얘들 여기서 이렇게 자게 둬도 되려나….”

“깨우는 것보다 그냥 재우는 게 나을 거 같아요.”

“그래, 우진이가 서에 갔다가 여기로 온다고 했으니까 오늘은 우진이랑 같이 있어.”

“그러면 형이 너무 피곤하지 않아요?”

“내일 휴가 줄 거야. 그러니까 오늘은 우진이랑 같이 있어. 우진이 올 때까지 내가 있을 거야.”

방으로 가서 자라는 소현의 말에 방에 가서 이불만 챙겨서 나온 하준은 멤버들에게 이불 덮어주고 그 옆에 누웠다.

자는 동안에도 안 좋은 꿈을 꾸는지 미간을 찌푸린 채 무어라 중얼거리는 힘찬이를 토닥여주었고, 그새 깨려는 것 같은 지환이 눈을 가려줬다.

“괜찮으니까 자, 인마.”

“아주 하준이 네가 엄마네, 엄마야.”

“애를 다섯 명이나 키우려니 죽겠어요.”

“어이구, 영빈이도 애 취급이야?”

분위기를 조금 바꿔보려 소소한 이야기를 하며 멤버들을 살피던 소현은 세빈이가 생각보다 잠버릇이 나쁘다는 걸 알게 되었고, 하준이 세빈이한테 깔려서 끙끙대는 경환이를 구해줬다.

“세빈아, 형 그렇게 막 깔아뭉개는 거 아냐.”

“으응….”

“그래, 착하다. 이거 안고.”

세빈이가 방에서 끌어안고 자던 베개를 안겨주었더니 그제야 얌전해졌다.

“얘네는 어떻게 잘 때도 이러냐.”

“가끔 새벽에 깨서 애들 자는 거 확인하는데 가관이에요.”

“2층 침대에서 안 떨어진 게 다행이었네.”

“그러게요.”

몸을 웅크리고 자는 영빈이에게 아예 이불 하나를 따로 덮어주었고, 자꾸 뭐라 중얼거리는 힘찬이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줬다.

“힘찬이 쟤 잠꼬대하는 거야?”

“좀 심한 편이에요. 처음에는 자다가 많이 놀랐다니까요.”

“한밤중에 보면 공포영화네. 어휴.”

그렇게 멤버들을 지켜보며 평소에 다 얘기하지 못했던 멤버들의 소소한 상태나 힘들어하는 것들을 하나씩 소현과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우진에게서 집 앞이라는 연락이 왔다.

“팀장님, 이제 들어가세요. 제가 있을게요.”

“우진아, 고생이 많아. 내일 애들 깰 때까지 그냥 재우고 너도 이제 좀 자. 일어나면 그때 연락하고.”

“넵. 택시 불러드려요?”

“아냐, 차 가지고 왔어. 조금 이따 보자.”

손을 휘적거리며 문을 나서는 소현의 등에는 피로가 덕지덕지 묻어났다.

우진은 현관문이 잘 잠겼는지 다시 한번 점검한 후 이불 하나를 끌고 와 바닥에 깔았다.

“하준아, 너도 이제 자라. 형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형. 오늘 고마워요….”

“형은 이게 일이야. 그러니까 다른 생각 말고 얼른 자.”

“안녕히 주무세요.”

“오야, 잘 자라.”

소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좀처럼 곤두선 신경이 가라앉지 않아 눈이 뻑뻑했던 하준은 우진이 자리에 눕자 그제야 날카롭던 신경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에 하준 역시 크게 놀랐었지만, 항상 의지하던 든든한 사람이 함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모두에게 너무 길었던 저녁 시간이었다.

* * *

갑자기 눈을 떴는데 품 안에 포잉이 없어서 이상했다.

“어…?”

허전한 품과 내가 왜 거실에 있는지, 왜 멤버들이 이 꼴로 바닥을 굴러다니는지 잠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그제야 지난 새벽을 떠올렸다.

“아, 우리 그대로 잠들었구나.”

멤버들이 거실에서 자고 있다면, 우진 형은 출입문을 막으려는 듯 그쪽에서 자고 있었다.

그래도 모두 무사히 누워있어서 다행이었다.

‘님, 일어남?’

‘응. 포잉은 좀 잤어?’

지난밤, 포잉이 먼저 알아채고 나를 깨워주지 않았다면 위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며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보안 장치가 잘 되어 있다지만 혹시라도 그걸 뜯어내고 들어왔다면?

망둥이는 여러모로 미친놈이 틀림없었다.

‘포잉, 고마워. 덕분에 무사히 넘어갔어.’

‘계약자를 지키는 것도 요정의 일임.’

아무렇지 않은 척 도도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말하는 포잉의 모습에 조금 웃어버렸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내 다리 위에 자기 다리를 올리고 자는 힘찬이를 한 대 쥐어박을까 짧은 고민이 있었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짝 내리고 일어났다.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포잉이 불렀고, 자면서도 긴장했는지 굳어진 몸을 주무르며 같이 우리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푹신한 침대 감촉에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며 핸드폰으로 지난 밤사이 넘쳐났을 기사들을 살폈다.

“아….”

연예란은 무슨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난장판이었고, 망둥이에 대한 기사가 지난밤의 일들로 대체되어 있었다.

기자들은 누구보다 빨랐다. 어디서 제보를 받은 건지 모르겠지만 경찰서까지 들이닥쳐 사건을 알아낸 건지 우리 숙소에 침입하려고 했던 내용이 이미 기사로 올라가 있었다.

다만, 우리 이름이 신인 그룹 A로 되어 있었다.

다른 기사들을 조금 더 찾아볼까 하다 그냥 꺼버렸다.

어차피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이고… 회사에 나가면 그때는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겠지.

아직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꼭 몸살이 나기 전의 전조증상 같아서 앞으로 해야 할 스케줄이 뭐가 있는지 떠올려보았다.

‘슬기로운 탐구생활’의 미팅은 다음 주였고, 제일 중요한 건 다음 앨범 작업이었다. 리얼리티 촬영도 예고되어 있었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온갖 것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지만 깊은 한숨과 함께 털어냈다.

냥톡에는 무수히 많은 메시지들이 와있었다.

그중에 가장 먼저 눌러본 건 누나.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아직은… 그래 아직은 조금 힘들었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 이전의 가족들을 떠올리는 시간이 조금은 줄었지만 이렇게 숨을 돌리는 순간순간, 그리운 얼굴이 떠올라 괴롭다.

“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심호흡을 하는 동안 포잉이 내 허벅지 위에 올라와 앉았다.

나만 느낄 수 있는 무게와 체온, 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가 잔뜩 헝클어졌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게 도와주었다.

“지환아, 너 괜찮아?”

“아, 형. 괜찮아요.”

언제 일어난 건지 우진 형이 열린 방문 너머에서 나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눈 빨개, 너 좀 더 자야 하지 않겠냐.”

“더 자면 되려 더 쳐질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누나한테 연락이 오기도 했고….”

“아, 누님 놀라셨겠네. 어서 연락드려.”

“넵.”

손안에 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입술을 꾹 깨물었다.

지환아, 여기서 살아야 하잖아. 이 사람을 내 누나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잖아.

속으로 다시 한번 중얼거리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가슴의 죄책감은 늘 있는 듯 없는 듯 숨어있다가 불현듯 이렇게 한 번씩 튀어나와서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문장을 몇 번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한 단어만을 조심스럽게 완성해서 보냈다.

[누나]

누님 [그 새끼가 너네 숙소 찾아간 거 맞지? 걔 미쳤니? 너 어디 안 다쳤어?]

[응. 나 괜찮아. 회사에서 우진 형이 바로 와줘서]

누님 [그 미친놈은 왜 엄한 너희한테 지랄이야 진짜!]

[현장에서 끌려갔으니까 이제 볼일 없을 거야.]

누님 [다리 나은지 얼마나 됐다고….]

[에헤이, 괜찮다니까. 여기 보안도 엄청 튼튼해서 걔네 우리 숙소 문도 못 땄어]

누님 [닥쳐, 이것아! 내가 진짜! 아오!]

방금까지 울렁거리던 감정들이 누나의 화려한 욕설에 차분히 가라앉았다. 이게 다행인지 뭔지 모르겠다.

이 누님 성격에 당장 회사로 안 쫓아온 게 다행이지.

분통이 터지는지 그 후로 한참 동안 현란한 욕설들이 채팅방에 주르륵 올라오는 걸 바라보며 누나의 타이핑 속도에 감탄했다.

처음부터 반대했던 일을 기어코 하겠다고 집을 뛰쳐나간 동생이 얼마나 걱정됐을까.

겨우 데뷔하나 했더니 다치고, 이상한 놈들이 집 앞까지 찾아오고.

나 같아도 속이 터질 거 같아서 일부러 얌전히 누나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전화 안 하고 톡 하길 잘했지, 이걸 실시간으로 들을 뻔했잖아…?

그 뒤로도 누나를 어르고 달래던 나는 조만간 만나기로 약속을 마친 후에야 겨우 메시지를 멈출 수 있었다.

그 뒤로 채팅 목록을 살펴보니 회사 사람들뿐만 아니라 새벽 형들과 하겸 형, 진우 형과 효정 누님까지 메시지가 잔뜩 와있었다.

하나씩 일일이 읽고 우리는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자세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피했다.

이미 무사이의 광고가 나간 지 한참 된 상황이었기에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들이어서 그 신인 그룹이 우리가 아니라고 이 사람들한테까지 발뺌할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새벽 형들이나 겸이 형은 이미 대충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다행히 그들도 우리가 무사하다는 말에 안도할 뿐 다른 내용을 캐묻지 않았다.

그렇게 밀린 메시지에 답을 해주고 나니 하준 형이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지환아, 자?”

“아뇨, 저 안 자요.”

방을 나오자 슬슬 일어나는 건지 부스스한 모습으로 눈만 꿈뻑거리는 멤버들이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와…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 못 했는데.”

“아냐, 너 아무 말도 하지 마.”

“지금 되게 못생겼다….”

내가 무슨 말을 할 건지 예상한 영빈 형이 다급히 말을 막았지만 난 결국 생각을 입 밖으로 전했고, 세빈이가 울상이 돼서는 나를 바라봤다.

“우리 세빈이는 좀 못나져도 귀여우니까 얼른 가서 씻자.”

“네에….”

“크, 이 와중에도 우리 준이 형은 말끔하네.”

“넌 눈에 핏발 섰거든? 지는 멀쩡한 줄 알아!”

“자자, 씻읍시다. 씻고 밥 먹어야지. 나 배고파.”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힘찬이 말을 모른척하며 멤버들을 재촉했다.

배가 고프기도 했고, 이렇게 퍼져있으면 더 지치니까 움직이는 게 나았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형이 사 올 테니까 밥 먹고 회사 가자.”

“고기요! 고기!”

“저도 고기 먹으면 괜찮아질 거 같아요.”

배달을 시키는 것도 걱정됐는지 직접 사 오겠다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우진 형의 모습에 우리는 모처럼 한마음 한뜻이 되어 외쳤다.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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