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60)화 (60/456)

60. Happiness(1)

“과자 먹고 싶다…. 라디오 들으면서 과자 먹으면 진짜 꿀인데….”

“조용해. 말로 꺼내지 마. 나도 먹고 싶어지잖아.”

과자 타령하는 힘찬을 타박하던 경환은 볼륨을 조금 더 올리면서 손에 든 핸드폰에도 앱을 다운받았다.

“앱은 왜?”

“그래야 메시지도 빨리빨리 보내고 시청자 수도 하나라도 더 늘지.”

“야, 다 앱 다운받아. 빨리.”

여태까지 노트북으로 다 같이 볼 생각만 했던 우리는 경환 형의 조용한 한방에 급하게 앱을 다운받고 채널을 찾아 푸른 음악 노트를 켰다.

방송에서 부드럽고 다정다감한 목소리가 새로운 식구를 소개하고 있었고, 곧 묵직하고 침착한 목소리가 자기소개를 이어갔다.

우리는 방송을 통해 들리는 하준 형의 목소리가 낯설었다.

“어우, 왜 이렇게 닭살 돋지?”

“녹음할 때랑도 다르고, 다른 사람 같아.”

“우리한테 성질낼 때랑도 다른데?”

“방송에서 성질부릴 순 없잖아.”

우리가 하는 게 아니었지만 어째서인지 모르게 심장이 콩닥거리고 기대감이 하늘을 찌를 것 같아서 다들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 자, 새로 코너를 맡게 된 하준 씨 저희 시청자분들께 자기소개해 주셨는데요. 그럼 이제는 신고식을 해야겠죠?

- 형이 신고식이라고 하니까 무섭잖아요.

- 아니, 이렇게 날 음해한다고?

- 음해라뇨. 전 사실만 말합니다? 그렇죠, 여러분?

- 와, 이게 미인계로 우리 시청자들 꼬시네. 안 되겠다. 하준이 신고식은 애교로 합시다!

둘의 대본도 티키타카를 중심으로 넣은 것 같았다.

평소에도 따로 연락할 정도로 어느새 친해졌던 둘이기에 대본을 소화하는 데 능숙해 보였고, 마지막에 하겸 형이 말한 애교에 채팅창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우와, 솜뭉치들이 많이 왔나 봐요.”

“솜뭉치가 아니었던 분들이어도 저 얼굴이 애교부리는 건 좋아하실걸….”

내가 지극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중얼거리자 찬이가 되물었다.

“저 얼굴?”

“봐봐, 우리는 맨날 저 얼굴을 보고 있고 남자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준이 형이 웃으면 엄청 따뜻하고 다정하게 생긴 미인이란 말이야. 근데 그런 사람이 무대 올라가면 개쌘 랩으로 바르니까 미치지.”

지금이야 공중파에 나와야 하고 우리랑 있으니까 좀 유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지만, 사실 하준 형의 성격은 강한 쪽이었다.

“옛날에 D.P 시절 랩 안 들어봤어? 진짜 쩌니까 다음에 들어봐. 듣고 나면 다음부터 넌 준이 형한테 못 덤빌걸.”

언더 시절의 하준 형의 랩은 좀 센 편이었다.

그래서 처음 내가 언래블에 입덕하고 준이 형이 최애가 되고 난 후에 선배 솜뭉치들이 왜 그렇게 갭에 치인다고 했는지 이해했달까?

“난 지금도 준이 형은 무서워….”

“맞을 짓을 안 하면 되잖아요.

찬이 형은 꼭 한 발 더 나가서 혼나더라.”

라디오에서는 난감한 얼굴로 애교를 해본 적 없다는 하준 형과 아이돌인 이상 언젠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며 설전이 오가고 있었다.

- 솔직히 제가 애교부려서 뭐가 좋겠어요, 볼 것도 없는데.

- 어허, 우리 하준이가 뭘 모르네. 안 할 것 같은 사람이 해야 팬들이 좋아하는 거야. 오늘 언래블 팬분들도 많이 왔을 텐데 자꾸 이렇게 뺄 거야?

- 우리 솜뭉치들이요…. 하아. 제가 뭐 해야 돼요?

하준 형의 항복 선언에 웃음소리를 내며 진심으로 즐거워하던 하겸 형이 준이 형에게 미션을 주었다.

- 자, 꽃받침 3초, 귀여운 척 3초, 하트 3초 합시다.

- 예…? 형, 저한테 왜 그래요…?

- 빨리 다음 거 해야 하니까 얼른 합시다, 시간이 금이에요, 금! 여러분, 보라라서 다행이죠? 캡처하라고 3초 드린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준 형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애교라니, 이 중에 그걸 아무렇지 않게 해낼 사람이… 한 명은 있구나.

멤버들의 마음이 통했는지 모두 힘찬을 바라봤고 어리둥절해 하던 힘찬은 갑자기 하준 형이 해야 할 꽃받침을 자기가 하다가 다시 모두에게 외면당했다.

“아, 왜!”

“됐다….”

하준 형의 목덜미가 빨개지는 걸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우리는 남 일 같지 않은 안타까움과 리더 형의 망가지는 모습에 즐거움을 동시에 느꼈다.

“이런 게 배덕감인가 봐요….”

“쉿. 애기는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무서운 단어를 중얼거리는 세빈이의 모습에 화들짝 놀란 나는 입을 막아버렸다.

얘는 이런 단어를 어디서 배워온 거야?

줌까지 당겨서 화면 가득 들어찬 준이 형의 애교….

볼에 바람을 가득 넣고 뺨에 손가락을 찌르는 소년 가장의 모습에 결국 모두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어우, 나중에 우리도 저런 거 해야 되지…?”

“돈 버는 게 쉬울 줄 알았어?”

냉정한 내 발언에 경환 형의 귀도 빨개졌다.

수치심도 공유하는 언래블. 참, 사이가 좋구나. 하하.

그리고 거의 해탈한 얼굴로 하트를 하는 하준 형을 보고 나는 마시던 물을 뿜을 뻔했다.

“아니, 저 형은 왜 저기서 저걸 하고 있어?”

“어? 왜?”

- 마지막으로 한 건 뭐예요? 그것도 하트?

- 네. 저희 환이가 저번에 솜뭉치들한테 해주던 건데 귀엽더라고요.

- 작가 누님이 재빠르게 자료 화면을 주셨는데요. 와, 혼자 보기 아깝네요. 환이가 이러니까 왠지 더 귀엽네.

- 그렇죠? 그래서 저번에 다 같이 손가락 하트 해서 사진 올려드렸더니 좋아하시더라고요.

오늘도 업보가 쌓였다.

이거 원래 누가 유행시킨 거지?

그분의 방송 지분을 내가 지금 말아먹은 것 같은데 괜찮을까?

회사에서는 표절곡 편집한 걸로 양심을 불태우고 오더니 밤에는 미래에 다른 사람의 방송 지분을 내가 이렇게 말아먹었다.

나 다시 죽으면 지옥 가는 거 아닐까?

포잉이 지켜주려나…?

약간의 서글픔을 느끼며 방송이 진행되는 걸 지켜보는데 원래 하준 형이 나오기로 했던 코너는 다른 출연자가 한 명 더 있어야 하고 그걸 하준 형이 보조하는 방식이었다.

다만, 첫날이기 때문에 앞으로 같이 진행할 하준 형을 초대 손님으로 넣을 거라고 했다.

- 자, 코너 설명은 이쯤하고 질문을 풀어볼 시간인데요, 하준 씨 자신 있어요?

- 자신은 없지만 최선은 다해볼게요.

- 하준 씨는 그게 문제야. 너무 진지하잖아요. 재밌게 합시다!

- 재미없는 사람을 불러서 재미를 찾으시면 안 되죠.

- 아주, 한마디를 안 진다니까?

- 어휴, 제가 어떻게 선배님을 이기려고 들겠어요.

- 됐고! 나 문제 세게 갈 거야.

오늘 언래블 노래 한 곡도 안 나오면 하준 씨 탓입니다!

사전에 조율된 티키타카겠지만 작가분들이 하준 형의 대외적인 이미지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한 대본이라는 게 보였다.

“아, 준이 형 많이 긴장했나 보다.”

“응? 왜?”

세빈이가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경환 형이 물었다.

“저기 준이 형 팔 떨리잖아요. 형 많이 긴장하면 다리가 아니라 팔이 떨리더라고요.”

“세빈이 너는 저게 보여?”

“형은 저게 안 보여요? 와, 멤버들한테 관심이 없네.”

투닥투닥이 라디오랑 내 옆에서 동시에 진행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문제가 너무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언제나처럼 내 바람과는 반대로 들려오는 질문의 난이도가 높았다.

- 첫 번째 질문! 언래블의 팬덤 명은 솜뭉치라고 하죠. 어떤 인터뷰에서 막내 세빈 군이 아기 고양이가 털실을 가지고 노는 것을 떠올리면서 털실이 뭉쳐있는 걸 솜뭉치라고 바꿔서 표현했다고 들었습니다.

- 네. 맞아요. 저희 팬분들이 그만큼 귀엽거든요.

- 우리 타임들도 귀엽거든요? 아니지, 이제는 강한가?

여하튼 솜뭉치 하면 보통 인형을 떠올릴 텐데요.

그렇다면 언래블은 인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해서 보낸 문제라고 합니다.

- 네?!

당황스러운 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인형이요?

질문이 무슨 의식의 흐름이야!

- 인형 하면 대표적인 테디 베어가 있죠. 최초의 테디 베어는 몇 년도에 탄생했을까요? 10초 드립니다.

- 아니,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 10, 9, 8….

- 보기도 없어요?

- 네, 없어요. 주관식입니다.

당황한 하준 형의 외침과는 별개로 시간은 흘렀고 결국 찍을 수밖에 없었다.

“저건 우리도 몰라!”

“형, 진정해. 우리가 푸는 거 아니잖아?”

얼마나 당황했는지 영빈 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외쳤고, 나는 그런 영빈 형을 잘 달래서 앉혔다.

- 테디 베어가 미국에 루스벨트 대통령 이름에서 따온 건 알겠는데.

- 네, 그래서 몇 년도요?

- 1923년…?

언제 준비해놨는지 하겸 형의 옆에는 딩동댕 소리가 나는 실로폰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그사이 검색을 해본 세빈이는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1903년이래요…. ”

- 땡!

- 도대체 몇 년이죠?

- 1903년 독일에서 탄생되었다고 합니다. 어휴, 팬분들이 솜뭉치인데 이런 것도 모르면 안 되죠.

- 아니, 제가 인형을 안 좋아하는데요?

- 지금 솜뭉치들 싫다고 발언하신 건가요?

- 솜뭉치들이랑 인형은 별개죠!

- 네, 다음 질문 갑니다. 아쉽게 곡 하나 날렸죠?

그 뒤로 이어진 질문들도 이런 식이었다.

Unravel의 단어 뜻처럼 미스터리한 것을 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셜록 홈즈를 탄생시킨 아서 코난 도일의 생일을 알아야 하지 않겠냐는 등

보통의 범주를 벗어난 질문들이 쏟아졌고 하준 형은 그중에 두 문제를 맞혀서 간신히 한 곡을 틀 기회를 얻었다.

- 문제가 너무 어려워요.

- 이 문제들은 전부 언래블의 팬분들이 적어주신 문제 중에 골랐습니다.

- 우리 솜뭉치들은 저희의 지적 수준을 너무 높게 평가해 주신 것 같아요. 살려주세요….

그리고 오늘 라디오에서 하준 형이 기진맥진한 얼굴로 ’살려주세요’라며 얼굴을 감싼 화면이 캡처되어 수많은 짤로 돌아다니게 될 것이라는 걸 이때는 나도, 멤버들도 당사자도 몰랐다.

그렇게 퀴즈가 끝나고 잠깐 대화를 나누는 동안 틈틈이 시청자들의 채팅창을 살피던 하겸 형이 메시지 하나를 발견하고 씩 웃었다.

- 하준 씨, 멤버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데요.

- 네? 아, 저희 애들도 오늘 같이 보고 있을 거예요.

- 방금 힘찬 군으로 추정되는 메시지가 있었는데요, ‘쭌디가 하준 형을 짤짤짤 해줘서 너무 즐겁다’라고요.

- 와….

그리고 그 순간 하준 형이 카메라를 바라보더니 서늘하게 웃었다.

- 기대해, 찬아.

그 모습에 부르르 떨던 힘찬이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툭 떨궜다.

“그걸 읽었어?! 그 짧은 시간에?”

“찬아, 잘 가…. 즐거웠어….”

“아니, 다 같이 웃었잖아! 왜 나만!”

“너만 메시지를 보내서 그래. 그러게 왜 걸려.”

하준 형의 미소에서 살기를 느낀 힘찬은 머리를 쥐어뜯었지만 이미 전송된 메시지고 모두가 들어버렸다.

“나 연습실 가서 잘까? 형 오면 진짜 날 조질 것 같은데?”

“말 좀 예쁘게 안 할래? 그러게 누가 지르래.”

힘찬의 등짝을 하준 형 대신에 때려준 나는 옆에서 발광하는 힘찬을 발로 밀어버리고 다시 라디오에 집중했다.

우리가 직접 출연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들었다. 생각보다 하준 형이 방송 분위기에 잘 맞춰가서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하겸 형과 준이 형의 케미가 괜찮아서 한동안은 코너에서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하준 형 이제 슬슬 돌아오겠다.”

라디오는 1부가 끝났고, 하준 형이 나오는 코너는 1부에서 끝이 났다.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오는 타이틀곡을 들으며 흥얼거리는 세빈이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내 행동으로 달라진 내용들도 있지만, 여전히 우리 애들은 하나씩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얼마 전처럼 끝없는 두려움만 남아있지는 않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땅 파고 있는 힘찬이를 자기 침대로 던지는 것만 남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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