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59)화 (59/456)

59. 어떻게 생각해?(5)

“첫 번째로 곡이 마음에 듭니다. 듣자마자 왠지 내가 만든 곡처럼 친근했고, 이번에 요청받은 드라마 내용이랑도 잘 맞아요.”

그거야 원래 님이 만든 곡이니까요….

차마 말하지 못한 진실 탓에 속이 새까맣게 타고 있었다. 그 와중에 김건욱 실장님이 들었을 버전이 내가 편곡한 버전이라는 게 아주 조금 위안이 되었다.

“두 번째, 이번에 ON 엔터랑 전속 계약을 추진 중이거든요. 이왕이면 한솥밥 먹을 식구한테 공을 주면 좋잖아요?”

“회사 차원에서 전속 작곡가를 구하는 쪽으로 생각 중이었는데, 마침 에단이 긍정적으로 나서줘서.”

두 번째 이유를 듣고 어느 정도 수긍이 됐다.

자신이 새 곡을 쓸 상황이 아니라면 적어도 계약할 회사에 던져주는 게 에단 입장에서도 실보다는 득이 더 될 테니까.

“감사합니다…. 그러면 저 곡만 파는 건가요?”

“이왕이면 부르고 싶은 거지?”

“헤헤….”

원래도 언래블의 앨범에 있었던 곡이니 언래블이 부르는 게 가장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곡을 편집할 때도 멤버들을 생각하면서 손대기도 했었고.

내 생각을 읽은 두 사람은 피식 웃으며 드라마 쪽과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했다.

양심이 파사삭하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 멤버들이 내가 편곡한 곡을 부른다는 건 덕후 입장에서 심장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상황은 이상해졌지만, 잘만 하면 언래블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표절한 죄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서든 에단에게 갚아나가자.

“앞으로 자주 봤으면 좋겠네요. 잘 부탁합니다.”

“제가 더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 부탁드려요.”

‘제가 앞으로 잘할게요. 미안합니다….’

먼저 악수를 청한 에단의 손을 맞잡은 나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속으로 사과의 말을 건넸다.

“다음에 같이 작업 한번 해요. 기대할게요.”

“!”

“어휴, 그만들 해요! 서로 금칠 그만하고. 지환이 너는 가서 일 봐.”

“선후배 간의 훈훈한 분위기도 모르고 정윤 씨는 잔소리가 너무 심해.”

“쟤는 이제 신입이라 할 일이 태산이에요.”

“하하…. 내려가 보겠습니다!”

둘이 점점 티격태격할 기미가 보여서 슬그머니 몸을 뺀 나는 멤버들이 있는 연습실로 돌아왔다.

“왔어? 실장님이 왜 부르신 거야?”

“우리 잘하면 OST 부를 수도 있어요!”

“엥?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OST?”

“환아 진정하고 말해봐.”

내려오면서 죄책감을 가슴 깊이 묻어버린 나는 쾌활한 척 멤버들에게 외쳤다.

“사실 될지 안 될지 잘 모르겠는데… ‘지금, 우리’라는 드라마가 있는데 거기 OST에 제가 만진 곡이 들어갈지도 몰라요. 그래서 그거 저희 멤버들이 부를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실장님이 그쪽이랑 얘기해본대요!”

“숨 쉬면서 얘기해!”

어디까지나 가정이고 어쩌면 이라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에단이 직접 언급할 정도고 PD도 괜찮다고 했으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이야, 우리 지환이 이제 막 저작권료도 받고, 응?”

“우리 팀은 그러면 3명이나 곡을 쓸 수 있는 거네요? 우와!”

힘찬이랑 세빈이는 될지 안 될지 모른다는 내 말보다 다른 내용들이 더 신났는지 나를 붙잡고 방방 뛰기 시작했다.

그런 우리 모습이 웃겼는지 피식거리며 웃고 있던 경환 형과 하준 형이 세빈이랑 힘찬이를 떼어냈다.

“너희도 언제든 좋으니까 곡이 쓰고 싶으면 공부하고 우리한테 물어보고 해. 힘찬이나 세빈이도 그런 순간이 올 거야. 이런 내용으로 노래를 만들어보고 싶다, 그런 기분.”

우리 참 리더 하준은 오늘도 차분하게 동생들을 다독이면서 다른 멤버들의 마음에 살짝 자극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작사 작곡 공부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걸 먼저 체험해본 나는 하준 형의 말을 들은 경환 형이 뒤에서 ‘저 형, 또 약파네.’하고 중얼거리는 것을 못 들은 척하기로 했다.

다 같이 공부하고 다 같이 잘되면 좋지 뭐. 하하.

그리고 오후 개별 연습 시간에 적어두었던 가사를 들고 하준 형을 찾았다.

“그러니까 이걸로 곡을 만들고 있는데 잘 안된다고?”

“네…. 갑자기 생각나서 막 적었는데 정작….”

“흠…. 그냥 이 가사 보고 내가 생각난 음이 이런 느낌이거든?”

하준 형의 손이 몇 번 움직이더니 단조로운 리듬 하나가 만들어졌다.

“어? 괜찮은데요?”

“약간 간질간질하고 살랑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가사 읽으니까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 아, 아예 애들한테 다 보여주고 어떤 기분인지 들어보는 건 어때?”

“그럴까요? 와, 역시 형한테 물어보길 잘했네요.”

“됐다, 인마.”

싱글벙글하는 내 얼굴을 보고 짧게 혀를 찬 하준 형은 따로 연습 중이던 멤버들을 모두 형의 작업실로 불러 모았다.

“이거 읽어보고 어떤 느낌이 드는지 말해줄래? 아무래도 우리 첫 팬송은 지환이가 만들 거 같아.”

“그냥 느낌만 말하면 돼요?”

“응.”

솜뭉치들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내가 솜뭉치였던 마음을 담아 쓰긴 했지만 하준 형에게 직접적으로 팬송이라는 말을 듣자 왠지 부끄러워졌다.

아니, 쑥스럽다고 하는 게 더 맞으려나.

팬송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에 영빈 형부터 세빈까지 모두가 진지하게 내가 적어온 가사를 읽기 시작했다.

모두가 가사를 곱씹는 동안 하준 형에게 양해를 구한 나는 하준 형이 만들었던 짧은 뼈대에 방금 떠오른 멜로디를 덧붙였고, 경환 형이 거기에 조금 더 첨언했다.

“노래는 너무 빠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첫사랑한테 고백하듯이 최대한 내 마음을 다 넣었어! 라는 느낌으로.”

“약간 고조되는 부분이 있었으면 좋을 것 같아. 여기, 이 부분이 싸비가 될 것 같은데 이쯤에서 터트리는 걸로?”

덜렁 이 가사만 보여주는 걸로 이렇게 많은 의견이 나올 줄 몰랐다.

어느새 하준 형이 앉았던 자리에는 내가 앉아있었고 멤버들이 하나씩 의견을 말할 때마다 혼자 만질 때는 텅텅 비어있었던 화면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사에 음이 생기고 모두의 의견이 일치할 때까지 수없이 많은 수정이 시작됐다.

“너희 여기서 다 뭐해?”

“우진 형? 왜요?”

“왜긴 인마! 하준이 오늘 라디오 가야 되잖아.”

“아, 맞다! 경환아, 애들 마무리 도와줘라!”

다 같이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곡 하나에 매달리는 동안 시간이 왕창 흘러버린 모양이었다.

“형, 톡 할게요!”

“어어, 다녀올게!”

“잘하고 와요! 우리도 듣고 있을게!”

급하게 나서는 하준 형과 그런 하준 형을 챙기는 우진 형의 모습에 우리는 왠지 웃음이 터져 나와 감출 수가 없었다.

“아, 이거 되게 기분 좋네요.”

뭔가 답답했던 마음이 풀렸다. 멤버들과 처음으로 곡 작업을 해본 나는 가슴 가득 들어차는 뿌듯함을 만끽했다.

“가이드 따보자.”

“그럼 여기에서 여기까지는 세빈이 목소리가 들어가야 할 거 같고, 터트리는 건 영빈 형이 해야 할 것 같아요.”

대략적인 틀이 만들어졌고 거기에 파트까지 나누기 시작했다.

“녹음해보죠?”

다들 개인 수련은 젖혀두고 곡 만드는 데 동참해 줘서 고마웠고, 그걸 옆에 진지한 얼굴로 화면을 보고 있던 경환 형에게 말했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변이 돌아왔다.

“네가 이걸 들고 와준 덕분에 다들 삘 받고 좋지 뭐. 팬 송이 있으면 솜뭉치들이 더 좋아할 것 아냐.”

앞으로 몇 개의 팬 송이 더 생길 거고 그중에는 경환 형이 만들 노래도, 하준 형이 만들 노래도 있을 것을 알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적어도 우리 멤버들의 노래를 내가 끼어들어서 망치고 싶지 않았다.

콘서트에서 다 같이 부르던 팬 송,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무대 아래를 바라보던 세빈이와 영빈 형의 얼굴, 그 모습에 같이 울던 솜뭉치들.

나는 그 모습을 속으로 그리며 어서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때, 작업실 문이 다시 열리면서 소현 팀장님이 나타났다.

“너희 왜 죄다 여기 있어?”

“아, 지환이가 곡을 하나 썼는데 팬 송이라 다 같이 좀 만지고 있었어요.”

“어머, 벌써?”

의외라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팀장님은 잠시 무언가 고민하더니 짝하고 손뼉을 치며 말했다.

“마침 팬 사인회 날짜 정해진 거 말해주러 왔는데 잘됐네. 그날 공개하는 건 어때?”

“팬싸 언제예요?”

“7월 마지막 주 토, 일. 토요일은 서울, 일요일은 부산.”

“저희 무사이 촬영이랑은 안 겹치겠죠?”

“괜찮을 것 같던데? 일단 PD님이랑은 얘기해보려고. 그나저나 기특하네, 말 안 해도 다 같이 작업도 하고.”

흐뭇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팀장님은 영빈 형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적당히 하고 숙소로 복귀해. 오늘 하준이 보라로 한다더라.”

“아, 진짜요?”

“응. 그러니까 너희가 모니터링해주면 좋아할 거야.”

보이는 라디오로 진행된다는 건 몰랐던 우리는 하준 형의 부담감을 생각하며 짧게 애도를 표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지 싶어 금세 다시 들떴다.

“하준이는 우진이가 따라갔으니까 조금 있다가 갈 때 나한테 얘기해. 너희끼리 가지 말고.”

“넵.”

그렇게 소현 팀장님도 돌아가고, 대충 나눈 파트대로 녹음을 해본 우리는 생각보다 잘 나온 곡에 기뻐했다.

“이거 작사, 작곡에 우리 이름 다 올릴 수 있겠다.”

“왠지 되게 뜻깊은 일을 한 것 같은데 기분이 이상해!”

그 뒤로 한참 동안 부르고 녹음하고를 반복하다 영빈 형이 자리를 정리하자고 애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쯤에는 숙소에 돌아가서 씻고 앉아야 하준 형의 방송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시간 계산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 석환이 형!”

“오냐, 오늘은 내가 데려다줄 거야. 팀장님한테 들었지?”

서글서글하게 웃는 저 사람은 지석환으로 처음 여기 생활을 할 때 가장 적응이 힘들었던 사람이기도 했다.

다른게 아니라, 세빈이와 저 사람을 만난 후, 콘서트장으로 돌아가다 사고를 당했던 기억이 초반에는 너무 강했던 탓이었다.

어째서인지 세빈이보다 저 사람을 만날 때 그 당시의 감정이나 통증이 더 잘 떠올라서 병원에서 타온 약을 한참 동안 먹어야 했다.

그리고 다행히 지금은 그런 통증도 이명도 사라져서 평범하게 대할 수 있었다.

본인 자체로도 성격이 좋은 편이라 힘찬이랑 제일 쿵짝이 잘 맞기도 했고, 종종 숙소로 오거나 데려다주는 일을 도왔기 때문에 우리랑도 꽤 친했다.

“얼른 가자~. 그래야 너희도 쉬고 나도 퇴근하지.”

“퇴근이 더 좋은 거죠?”

“말이라고 하냐. 내 집이 최고지….”

아무래도 다들 야근이 일상인 탓에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들어가면 씻고 잠부터 잔다고 했다.

짠한 마음이 들었지만 남을 동정할 때가 아니긴 했다.

우리도 점점 수면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고, 그만큼 아침에 멤버들 깨우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숙소에 도착했고 행복한 얼굴로 돌아가는 지석환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긴 했지만, 저 얼굴을 하고 퇴근하는데 어떻게 연락하냐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다 씻었지?”

“세빈이는 제발 머리 좀 말리고 다녀라.”

“놔둬도 잘 말라요.”

늘상 그렇듯 자잘한 투닥거림이 있었다. 밥 먹을 때 펼쳐두던 상을 펴고 노트북을 꺼낸 영빈 형이 푸른 음악 노트가 방송되는 HS 라디오를 켰다.

“와, 왜 내가 떨리지?”

“형, 좀 가만히 있어요.”

힘찬이 긴장했는지 연신 손을 꼼지락거리며 가만있지를 못했고 덕분에 세빈에게 타박을 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 푸른 음악 노트의 로고송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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