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날아올라(1)
예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데뷔하면 세상이 달라지는 줄은 알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쪽으로 달라지더라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좋은 쪽으로 말고 나쁜 쪽으로 달라진다는 내용이었지.
그리고 나는 그 내용을 간접적으로 겪으면서 2주를 보냈다.
그러나, 나에겐 좋은 쪽으로 달라지고 있었다.
“이젠 눈 뜨고 자냐?”
“이게 또 헛소리하네.”
정정. 최힘찬의 입만 좀 닫을 수 있다면 더 좋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 그만두네 어쩌네 하고 혼자 속앓이 하던 놈을 잘 끌고 데뷔까지 시켜놨더니 시도 때도 없이 자꾸 건드려서 이제는 저놈의 허리를 밟아도 죄책감이 없는 상황까지 왔다.
그동안 3번의 음악방송 무대가 있었고, 큰 실수 없이 무대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잡지사와 인터뷰도 두 번 있었고. 몇 가지 프로에서 제의도 들어왔던 걸로 알고 있었다.
다만, 출연 제의한 프로가 전부 질이 좋지 못하다는 판단에 실장님 선에서 좋게 거절했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 팬분들의 이름이 결정되었다.
이전처럼 솜뭉치라는 이름으로 정해졌는데, 이 솜뭉치로 결정되는 과정이 이전에 들었던 것과 동일한 상황이라 나는 다시 한번 소름이 돋았다.
팬들이 적어준 후보와 세빈이가 제시한 솜뭉치를 두고 최종 투표를 했는데 기가 막히게 동점의 이름이 3개가 나왔다.
어느 것 하나를 점찍기 어려운 상황이었던지라 최대한 공평하게 진행하도록 GIVE 앱을 켜서 팬들의 의견을 들었다.
사다리 타기를 통해 최후의 승자를 결정하자는 씩씩한 팬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공정하게 사다리 타기를 진행했고, 그 결과 선택된 이름이 솜뭉치였다.
나중에 해외 팬들이 발음하기 어려울 것을 걱정한 홍보팀 팀장님의 의견은 안타깝게도 아무도 고려해 주지 않았다.
나는 해외 팬들도 기가 막히게 솜뭉치라는 단어를 배워서 외치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기에 그저 평소처럼 미소를 지었다.
팀장님, 죄송합니다….
연수 선배님의 콘서트가 이제 당장 다음 주로 다가왔고, 틈날 때마다 연습을 했지만 선배님의 허들은 높고 높아서… 하준과 경환을 제외한 멤버들은 목에 좋다는 건 다 먹고 있었다.
그리고 새벽 유닛의 피처링을 위한 연습이 오늘부터 시작이었다.
적어도 일이 끊기지 않고 계속 들어오고 있었고, 우리 타이틀곡이 30위권을 한번 찍고 내려간 것도 크게 축하할만한 일이었다.
“…가영 형은 그때처럼 날 쥐어짜겠지?”
“…죽지 마라. 네 김치볶음밥을 위해서 죽지 마.”
“진짜 네 입은 뇌를 거치고 말을 뱉는 게 맞는 거야?”
겨우 꿀 같은 휴식 시간을 누리고 있는데 옆에서 한다는 소리 하고는.
“지환이랑 찬이는 동갑이라 그런가 사이가 참 좋네.”
“예…?”
“지환이가 절 좀 많이 좋아하죠!”
“우진 형, 미치셨어요…?”
거친 말을 하지 않고 언제나 바르고 고운 말을 하며 살아가려는 나에게 최힘찬은 너무 큰 시련이었고, 우진 형이 가끔 한 번씩 하는 말들은 행간을 읽을 수가 없었다.
“너희 때는 다 그렇게 싸우면서 친해지는 거지 뭐.”
“주먹질 안 해서 참 다행이네요….”
이제는 일상 같은 이 상황을 지켜보던 하준 형은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저것들은 언제쯤 사람이 될까 하는 그런 눈빛이어서 힘찬과 동급으로 취급되는 게 몹시 서글퍼졌다.
나와 하준 형만 피처링 인원으로 요청했을 때 솔직히 조금 걱정했었다.
메인 보컬은 영빈 형인데 나에게 제의가 들어왔다는 사실도 조금 놀랍기도 했고.
그래서 멤버들에게 말하지 않았었는데 하준 형이 점심 먹다가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고 멤버들 반응은 한결같았다.
‘죽지 말고 돌아와.’
‘그래도 선배님이니까 욕은 안된다.’
‘가영 형이 괴롭히면 세비 형한테 꼭 말해요!’
아, 우리 팀에서 가영 형의 이미지는 다들 비슷하구나….
다른 멤버들이 서운해하거나 의기소침해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그런 멤버들의 반응을 보고 나서야 조금 넣어둘 수 있었다.
이런 나를 보고 포잉은 누구라도 가서 돈 벌어 오는 게 중요하지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쓴다며 혀를 찼지만, 걱정되는 걸 어떡해.
매니저 형을 따라 가영 형의 작업실에 도착했을 때,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자기 작업실을 갖게 되면 자기 취향껏 꾸민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나중에 하준 형이랑 경환 형이 GIVE 앱에서 자기 작업실도 공개하고 비하인드 영상도 풀어주는 걸 봤으니까.
하지만 피규어를 모아놓는다든가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을 걸어둔다든가 하는 그런 모습만 봤지… 이건 조금, 아니 조금 많이 적응이 안 됐다.
“안녕하세요…?”
“어? 왔어?”
분명히 회사 건물 들어왔을 때는 굉장히 깔끔하고 잘 정돈된 분위기였다.
이 방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도 분명히 그런 복도를 보고 있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오니 악마의 소굴이 있었다.
어두운 조명. 벽에는 공포 영화에 나오는 크리처들의 피규어와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소품으로 보이는 것들까지 같이 있어서 지금 당장 여기를 탈출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저, 여기서 작업….”
“아아, 지환이 공포물 못 봐?”
히죽 웃으며 나를 돌아보는 악마의 눈빛을 보았다.
“준이 형!”
“선배님, 저희 애 놀라서 쓰러지겠어요….”
“하하, 진짜 지환이는 생긴 거랑 다르다니까.”
나도 모르게 하준 형의 이름을 부르며 등 뒤에 숨어버렸고, 가영은 한참을 낄낄댔다.
아, 회사로 돌아가고 싶다.
차라리 연수 선배님이랑 연습하는 게 더 신날 뻔했어….
“녹음은 다른 데서 할 건데 일단 난 기본 작업은 여기서 해. 너희한테 샘플 보내준 건 들었지?”
“네….”
그토록 섬세하고 애절한 마음을 담은 곡들이 이런 흉물스러운 공간에서 만들어진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충격이었다.
역시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어.
“애들 제대까진 한참 남았는데 팬들이 기다리기 힘들테니까, 우리끼리 앨범 하나 해보려고 했거든. 근데 아무래도 이번 곡은 3명 목소리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새벽의 메인 보컬은 가영과 지금은 입대해서 열심히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반다진이라는 선배님이었다.
세비나 키스는 보통 연주에 집중하거나 약간 목소리를 더하는 수준이었어서 무심코 그 기준으로 곡을 쓴 가영이 외부 요인을 넣기로 했다고.
“너희 거 만들고 나서 떠오르는 걸로 만들어서 그런가? 너희 목소리가 들어가면 좋을 것 같더라.”
“그, 지환아. 형 옷은 좀 놔줘….”
“네? 아, 네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이 공간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 심력이 쪽쪽 빨리는 느낌이어서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것을 애써 참고 있는 상태였다.
가영 형의 말에 집중하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하필이면 정면에 빌리 인형이 자전거에 탄 상태로 나를 바라보고 있어서 힘들었다.
“아이고, 안 되겠네. 장소 옮기자.”
“네!”
식은땀까지 흘리는 내 상태가 그제야 눈에 들어온 건지, 가영 형은 우리를 옆에 있는 정상적인 녹음실로 데려갔다.
“하준아, 얘 원래 이렇게 겁이 많아?”
“저도 오늘 처음 알았어요.”
“하…. 이게 다 이유가 있어요.”
겨우 살만해진 나는 선물로 들고 왔던 커피 중 내 몫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넘긴 후 둘을 바라봤다.
“어릴 때 누나가…. ”
내가 6살인가 7살인가 그즈음이었다.
누나랑 내 나이 터울이 10살이었다. 이미 자랄 만큼 자란 누나는 부모님이 집을 비운 사이 공포 영화를 마음껏 시청하기 시작했다.
귀신, 좀비물 가리지 않고 틀어댄 통에 그때 나는 거의 울면서 누나 옆에서 귀를 막고 있었던 것 같았다.
혼자 방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때 누나는 한참 그 무섭다는 사춘기를 겪는 중이었고, 그러다 보니 아직 어린 내 상태를 신경 쓰지 못했다.
그날의 공포를 겨우 넘기고 나서 내가 조금 더 자라게 되자 누나는 공포 영화를 극복하자고 나를 데리고 영화관을 갔고, 나는 팝콘이 눈처럼 날아다니는 광경을 목격했다.
사연을 들은 두 형님들은 말을 잇지 못했고 트라우마가 될만하다며 내 어깨를 사이좋게 한쪽씩 두드렸다.
“그럼 공포 영화는 다 못 봐?”
“아, 지금은 많이 좋아지긴 했는데 아까 거긴 분위기 자체가 너무…. 초자연적인 거나 좀비물은 저도 이제 잘 봐요. 하지만 엽기 사이코 살인마가 나오는 건 더 못 보겠어요. 진짜 저런 사람 있을 것 같아서요.”
“아깝네. 나중에 너랑 영화 보러 가자고 하려고 했는데.”
진심으로 아깝다는 듯 혀를 차는 가영 형의 모습에 내 얼굴이 또 핼쑥해졌는지 하준 형이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러다 우리 리더 늙어 죽겠네.
”좀비물은 환영할게요. 일단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다시 지옥의 문이 열렸다.
“이상하네, 이 부분은 조금 더 서글픈 느낌으로 하는 게 낫겠는데. 지환아? 벌써 지친 거 아니지?”
“…아뇨. 할 수 있어요.”
목을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가영 형이 원하는 서글픈 느낌이 어떤 건지 감 잡기가 힘들었다.
이대로 반복하는 건 서로 시간이 아까울 것 같아, 나는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그냥 막연히 서글프게라고 생각하고 했더니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잘 감을 못 잡겠어요. 형, 조금만 설명해 주세요….”
“그러니까….”
가영의 설명은 이미지였다.
그가 부르고자 하는 노래는 저마다 뚜렷한 이미지가 있었다. 보통은 그걸 곡명으로 정한다고 했다.
유독 제목이나 가사가 서정적인 느낌이 든다고 느꼈는데, 그게 이런 이미지를 구현하는 과정 중에 나타난 느낌이었던 것 같았다.
예를 들면 내가 맡은 파트의 이미지는 이런 것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던 남자가 있는데, 그는 이 장소에 오기까지 수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더없이 지쳐있는 데다 일생을 하나의 약속을 위해 소모해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 비어버린 불쌍한 남자였다.
마침내 약속 장소에 도착한 남자가 그 모든 것을 이 장소에 내려놓고, 그래도 후회는 없다는 말을 남긴 뒤 시간을 되새겨보는 그런 장면이었다.
이런 복잡한 상황을 서글프게라고만 하면 어떻게 알아들어!
“네, 일단 이미지는 알겠어요. 그 약속이 무엇인지는 제가 임의로 정해도 되는 거죠?”
“응. 일단 그렇게 해보자.”
이미 얼음이 다 녹아버린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신 뒤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녹음 부스에서 마이크 앞에 서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어쩐지 아직도 이 공간이 조금은 낯선 느낌이 있었다.
“걸음은 많이 무거웠고 내 손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세상과 단절되어, 들리는 거라곤 멜로디와 내 목소리만 남는 공간.
“모든 것과 바꾼 가장 소중한 단 하나가 이제야 내 앞에 다가왔네요. 나를 봐요, 이런 내가 가엽다 느껴지나요?”
이를테면 이건 인생을 하나의 목적에 배팅한 사람의 노래이기도 했다.
그게 사랑일 수도, 혹은 꿈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가족과의 약속일 수도 있고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 될 수도 있었다.
“접어간 손가락이 몇 개였던가, 바스러진 마음이 몇 번이었던가. 그래도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
“그래, 이게 훨씬 낫네! 역시 네 목소리랑 어울릴 줄 알았어.”
녹음이 시작되고 2시간이 흐른 시점에 겨우 들은 긍정적인 말이었다.
힘이 쭉 빠진 나는 녹음실 뒤쪽에 있는 소파에 드러누웠다.
너무 진이 빠져서 남의 회사라 예의를 차릴 기운도 없었다.
“어라, 너희 언제 왔어?”
“아, 키스 형. 아까 와서 녹음하고 있었어요.”
“그냥 누워있어. 어차피 또 저 인간이 닦달하느라 진 다 뺐을 텐데.”
“하, 하하….”
뻔하다는 얼굴로 다른 의자에 앉은 키스 형은 하준 형의 랩을 듣느라 집중하고 있는 가영 형을 지켜봤다.
“여태 외부에 곡을 아예 주거나 우리가 부르는 게 전부였는데, 웬일로 협업하자고 말을 꺼내더라고.”
“가영 형이 먼저요?”
“응. 그래서 누구랑? 했더니 너희 이름 나와서 좋다고 했지.”
“아….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들어보니까 너희가 딱일 거라고, 나도 그 생각이 들더라고.”
모자를 눌러쓴 키스 형은 들고 온 커피의 빨대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하준 형의 랩을 주의 깊게 듣기 시작했다.
“아, 죄송합니다. 다시 갈게요.”
하준 형은 몇 번이나 같은 구간을 반복하면서 미묘하게 달라지는 자신만의 느낌을 찾아갔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감탄했다.
아직 햇병아리 같은 나는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나 느낌이 없으면 종잡지도 못하는데 하준 형뿐만 아니라 가영 형도, 키스 형도 모두 달랐다.
“언제쯤….”
“어?”
“아, 아뇨. 언제쯤 저도 형들처럼 할 수 있을까 싶어서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걸 키스 형이 들었는지 되물어 오기에 왠지 쑥스러워서 작게 대답했지만, 그걸 또 가영 형이 용케 들은 모양이었다.
“어이구, 이제 막 걷는 거 배운 병아리가 날갯짓부터 하려고 하네.”
“기특하지 뭐. 형은 쥐뿔도 없을 때도 자기가 제일 잘났었잖아.”
하준 형에게 시선을 고정한 가영 형이 투덜거렸지만 키스 형은 가볍게 무시하고 내 옆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긴 팔다리를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우리는 데뷔 빼고 이걸 10년은 했어. 하준이도 언더 때부터 활동했다며? 넌 이제 시작하는 거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마.”
“와, 키스 형 방금 되게 멋있었어요.”
느긋하고 조금 나른한 듯한 분위기를 가진 키스 형이 이런 말을 하니까 정말 선배님 같아서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얼씨구, 욕심내서 무리하다 사고 치지 말란 뜻이다.”
“넵! 잘 기억해두겠습니다.”
오늘 이 녹음실에서의 분위기와 대화 덕에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크게 바뀌었다.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진심과 전력의 기준을, 음악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려둘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만큼 정신력과 체력은 한 톨도 남김없이 모두 쥐어짜지고 나서야 겨우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