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8)화 (38/456)

38. So What(4)

아이돌 창조를 졸업한 언래블로서의 첫 소통 방송이었기에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예쁘게 꾸민 모습으로 보여줄 것인지,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팬분들이 어떤 모습이든 좋아해 주는 때가 오겠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경환이 중얼거렸다.

“이미 언래블의 팬인 분들은 우리가 보여드리는 모습들을 다 좋게 봐주실 거야.”

앨범 준비를 할 때만큼의 날카로움은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조금 기운이 빠진 것 같은 경환을 달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멤버들을 둘러봤다.

내 팬들에게 언제나 멋지고 잘생긴 모습, 예쁜 모습만 보이고 싶은 마음이 뭉클뭉클 솟아오르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난 우리가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어제는 무대 위에서 노력하는 모습이었다면, 오늘은 그런 무대를 위해 평소에 준비하던 모습 그대로.”

“저도 지환이 형처럼 연습실에서 인사드리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세빈이와 내가 연습실에서 촬영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고심하던 하준이 결정을 내렸다.

“일단 메이크업은 이미 했으니까 좀 정리하고, 옷도 그냥 이거 입자.”

마침 아이돌 창조 막방을 촬영한 덕에 후줄근한 추리닝 차림은 아닌 게 천만다행이었다.

마침 캐주얼하게 입고 있으니 이대로 찍어도 될 것 같았다.

팬들을 만날 최소한의 준비를 갖춘 우리는 매니저 형이 챙겨준 촬영용 핸드폰을 셀카봉에 연결하고 시간을 확인했다.

나는 미리 몇 번이나 매니저 형에게 조작 방법을 배웠다.

이전 생이 생각났다. 몇몇 아이돌이 기계를 제대로 조작하지 못해서 귀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 탓에 자기들끼리 대화하던 내용이 의도치 않게 방송으로 나가기도 했다.

차라리 대화가 제대로 나갔다면 생기지 않았을 오해도 왕왕 있었기에, 변수를 최대한 줄이려고 했다.

이제 막 데뷔한 우리 멤버들의 이미지를 아주 조금이라도 지켜주고자 하는 내 작은 노력이었다.

방송이 꺼진 줄 알고 경환이랑 세빈이가 장난치다 하준에게 혼나는 장면 따위, 이번 생에는 없애줄 테다.

“다들 준비됐어요?”

“응!”

“켤게요!”

멤버들이 화면 앞에 옹기종기 모인 모습을 보고도 웃지 않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된 건가?”

“여러분 보여요?”

하나둘 팬들의 숫자와 하트가 올라가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멤버들의 모습에, 결국 하준의 옆구리를 쿡 찌를 수밖에 없었다.

하준아, 너까지 정신 못 차리면 어떡하냐!

“아, 여러분, 저희가 GIVE 앱 방송이 처음이라 서툴러요. 미안해요.”

괜찮다는 댓글이 무수히 많이 올라가자 가뜩이나 큰 세빈의 눈이 더 커졌다.

“와, 여러분! 메시지가 엄청 빨라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희 잘 보여요?”

“우리 인사부터… 제발.”

힘찬이 또 혼자 텐션이 올라갈 것 같아서 재빨리 정강이를 툭 차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인사, 인사해야지. 얘들아.

“얘들아, 인사하자. 둘, 셋! 안녕하세요! 함께 풀어나갈 미래 언래블 입니다!”

“함께 풀어나갈 미래 언래블 입니다!”

다행히 하준이 정신을 붙잡고 방송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저희가 지금 조금 놀랐어요. 다들 SNS 보고 와주신 거예요?”

하준의 질문에 다양한 답변들이 올라왔다.

미리 GIVE 앱을 검색해서 알림 설정해두었다는 말들, 공지를 보고 대기하고 있었다는 대답 등등.

“고마워요. 저희 조금 긴장하고 있었거든요. 아무도 안 와주시면 어떡하지 하고요.”

이제야 조금 마음을 놓은 건지 하준의 부드러운 눈매가 예쁘게 휘었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혹시 모를 분들을 위해서 각자 인사드릴게요. 얘들아?”

잠시 넋 놓고 채팅창을 응시하던 멤버들이 일제히 하준을 바라봤다. 멤버들에게 한 명씩 인사해야지, 라고 타이르듯 말하는 하준의 모습에 채팅창이 또 빨라졌다.

“언래블의 리더 하준입니다. 반가워요, 여러분.”

“언래블에서 메인 보컬을 맡고 있는 히스입니다.”

“랩하는 C.I입니다. 보고 싶었어요.”

맏형들이 그래도 차분하게 자기가 누구인지 얘기하면서 손을 흔들어 줬고, 난 그때마다 그 멤버의 얼굴을 중점적으로 잡았다.

“안녕하세요! 언래블 찬입니다!”

팬들을 만난다는 것 때문인지 힘찬이 활짝 웃었다.

“안녕하세요, 막내 세빈입니다.”

“빈아, 고개 숙이면 사라지잖아!”

예의 바르게 카메라에 대고 고개를 숙이는 세빈이 덕분에 난 다급하게 카메라를 움직여야 했다.

“안녕하세요, 언래블에서 중재를 맡은 환입니다.”

나까지 모두 인사를 끝내고 다시 모든 멤버를 앵글에 담기 위해 팔을 들었다.

생각보다 이게 되게 힘들구나. 얘들아, 그동안 아쉬워해서 미안하다….

“오늘은 여러분이 보고 싶기도 하고, 한 가지 이벤트에 대해서 말씀드릴 겸 해서 방송을 켰어요.”

“진짜 보고 싶었어요! 더 자주 방송에서 보면 좋을 텐데.”

야생의 힘찬이는 여러모로 위험했다.

강제할 수단이 필요했던 하준이 영빈에게 눈짓하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영빈이 힘찬을 뒤에서 안고 눌렀다.

“저희는 막내보다 찬이가 더 막내 같아서. 하하, 가끔씩 이렇게 눌러줘야 해요. 너무 에너지가 넘치거든요.”

이 방송을 켜기 전 매니저 형이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일러줬다.

절대 어그로 끄는 애들한테 먹이 주지 말 것.

팬뿐만 아니라 기자들도 보고 있는 경우가 있으니 말조심할 것.

그 많은 주의사항 중에 이 두 개가 가장 중요했다.

벌써부터 채팅창에는 온갖 얘기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일단 이벤트 얘기는 여러분 이야기부터 조금 듣고 얘기할게요.”

다행히 하준은 대화도 괜찮게 끌고 가고 있었다.

“저희는 오늘 평소처럼 연습할 거 연습하고, 아이돌 창조 마지막 분을 촬영했어요. 꼭 봐주실 거죠?”

“여러분들한테 영상 편지도 남겼어요.”

하준과 경환은 은근히 차분한 대화를 잘 이끌어 나갔다.

“특히 우리 막내가 이번에 작정하고 영상 편지 남겼다고 하니까 꼭 봐주세요!”

“아, 환이 형!”

너무 대화가 처지지 않도록 중간중간 내가 멘트를 넣어줬다. 그 와중에 우리 세빈이는 놀릴 때마다 파드득하고 놀라는 게 귀여웠다.

채팅창에도 수많은 눈물과 귀엽다는 말이 올라오는 걸 보니 역시 내 새끼는 누가 봐도 귀여운 게 맞는 것 같았다.

“어제 데뷔 쇼케이스 어땠어요? 저희가 더 잘하고 싶었는데… 다시 보니까 너무 부족하더라고요.”

“다시 하면 더 잘할 것 같은데 아쉬워요.”

힘찬이 영빈을 등에 걸친 채로 우는 시늉을 하는 하자 채팅창은 ‘ㅋㅋㅋ’으로 도배되었다.

“저 덩치로 저렇게 애교 부리는 데 귀여운 것도 신기해요, 그쵸?”

“아무래도 찬이는 등본 다시 떼오라고 해야 할 거 같아. 세빈이보다 나이가 많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

“아니, 왜죠?! 저만큼 형아 같은 사람이 어딨어요!”

“네, 다음 최힘찬.”

“성 붙여서 부르지 말라니까! 소름 돋아! 여러분 그거 알아요? 지환이는 쫌만 화나면 성 붙여서 불러요!”

쇼케이스 얘기가 느닷없는 폭로전이 되고 결국 하준은 또 이마를 짚었다.

하하하, 아주 아수라장이 따로 없구나.

“어제 가면이 무슨 뜻이냐는 질문이 꽤 많네요. 히스가 대답해 줄래?”

“음, 저희가 생각한 두려움들을 가면으로 만든 거예요. 되게 막연한 느낌을 말했는데, 잘 만들어주셔서 좋았어요.”

“누가 어떤 걸 맡은 건지는 여러분이 맞춰주세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히스도 하준이 잘 챙겼다.

“아, 저희 움찔한 거 봤다는 분들이 많네요. 하하, 잊어주세요. 자 지금부터 제가 박수 치면 잊는 거예요!”

“전 귀여운 거 말고 멋있는 걸로 해주세요!”

함성 소리에 움찔거린 게 귀엽다는 메시지와 어떻게 한 게 멋있었다, 좋았다는 등의 다양한 감상이 꽤 빠른 속도로 화면에서 사라졌다.

중간중간 어그로성 메시지도 있었다.

우빈에 대한 말들도 있었고, 특정 멤버를 부르면서 지속적으로 말을 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마다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멤버들의 다리나 손이 움찔거려서 내 팔이 닿는 곳을 한 번씩 툭 쳐주었다.

이런 걸로 지지 마, 얘들아.

상처받지도 마. 이런 것들은 그냥 아무것도 아닌 거야.

몇 가지 더 질문이 지나가고 다시 사람 좋게 웃던 하준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 이벤트가 있을 예정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바로바로, 저희 팬분들의 이름을 정하는 투표를 하려고 해요.”

“우와!”

“짝짝짝!”

하준의 멘트에 맞춰 다 같이 박수를 쳤고 카메라를 드느라 양쪽 팔이 바쁜 나는 입으로 대신해 주었다.

“앞으로 우리가 계속 불러드릴, 굉장히 소중한 여러분들의 이름을 투표해 주세요. 자세한 내용은 팬카페 매니저분들이 올려주실 텐데요. 투표한 후에 인증 샷을 찍어서 저희 공식 카페나 SNS를 태그 해서 올려주세요.”

“몇 분을 뽑아서 소정의 상품을 보내드릴 예정이니까 많이 참여해 주세요.”

줄곧 채팅창을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며 눈을 깜박이던 영빈이 하준의 말을 받아서 이어갔다.

다만, 너무 대본을 읽는 것 같아서 힘찬이 결국 웃어버렸다.

“아, 우리 히스 형은 아직 여러분들이랑 대화하는 게 부끄럽대요!”

“히스 형이 부끄럼을 좀 많이 타요. 부끄럼 타는 걸로 배틀 뜨면 히스 형이 세빈이를 근소하게 이기는 정도?”

하지 말라고 그 긴 팔을 힘찬의 입을 막는 데 쓴 영빈이었지만, 곧 힘찬이 이얍! 하며 기합 소리를 내며 팔을 잡고 굴렀다.

멤버들 중에 힘이 제일 센 힘찬을 이기지 못하고 영빈의 긴 팔이 불쌍하게 허우적거렸다.

“카메라 밖으로 나가지 말라니까! 찬아! 히스 형!”

“그냥 둬. 우리끼리 팬분들이랑 놀자.”

덕분에 카메라를 잡은 나만 바빴지만 아무렇지 않게 카메라 봉을 가져간 경환이 정말 4명만 화면에 잡았다.

“형아들 때문에 팬분들이 우리 이상한 애들인 줄 알면 어떡해요.”

우리끼리 있을 때 버릇을 못 버리고 막장으로 치닫자 세빈이 시무룩한 얼굴로 중얼거렸고, 경환이 세빈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괜찮아. 히스 형이랑 찬이만 이상한 거니까.”

“여러분, 오해하시면 안 돼요. 저희가 늘 이렇지는… 않아요.”

어떻게든 수습하려는 불쌍한 리더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확신이 없었다.

그 후로도 여러 아무 말과 질문이 오고 갔고 결국 이 길었던 GIVE 앱도 끝마칠 시간이 다가왔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조금 있다가 푸른 음악 노트에 출연하니까 또 볼 수 있어요!”

“그때 또 많이 와서 들어주실 거죠?”

“자, 그럼 다 같이 인사드릴게요. 둘, 셋! I'm OK! 언래블 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I'm OK! 언래블 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요란했던 첫 GIVE 앱 방송을 끝낸 뒤 멤버들은 자리에 축 늘어졌고, 나는 재빨리 앱이 제대로 잘 꺼졌는지부터 확인했다.

혹시라도 이 몰골이 방송되어선 안 돼!

“우리 이렇게 막 우리끼리 아무 말 해도 괜찮은 거예요?”

“괜찮아. 우린 아직 신인이잖아. 신인 기간 동안은 너그럽게들 봐주실 거야. 그리고 대본을 짜고 하면 너무 티 나.”

내심 걱정된다는 듯 우리를 바라보는 세빈을 향해 씩 웃었다.

“근데 진짜 신기하네. 되게 많은 분들이 봐주셨어.”

“그치? 생각보다 많이 봐주셔서 나도 좀 놀랐다.”

긴 시간 방송한 것도 아니었지만 어째서인지 기운이 좀 빠졌다.

“팬분들이랑 대화하니까 되게 재밌다….”

세빈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지금은 꺼져있는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고 하준이 널브러진 영빈과 다른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최대한 많이, 자주 얼굴을 보여야 하는 바쁜 신인 시절에 이렇게 바로 스케줄이 생겼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도 될만한 수준이었다.

“지금부터는 곡 준비해서 이동해야 되니까 움직이자.”

“네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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