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37)화 (37/456)

37. So What(3)

제영 쌤에게 까분 우리는 꽤 혹독한 꼴을 당했다.

내가 언래블을 좋아하기 이전,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노동강도를 우습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돈 쉽게 번다며.

그리고 불교에는 구업이라는 게 있다 했다.

쉽게 말해서 말로 짓는 죄라는 건데, 지금 내 힘듦이 이전 삶의 구업이라 생각하니 주둥이를 쉽게 놀린 그 어린 시절의 내 머리통을 깨고 싶어졌다.

그만큼 지금 내 몸뚱이가 너무 힘들었다.

졸면서 춰도 딱딱 맞을 거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타이틀곡 무대를 다시 돌려보면서 나도 멤버들도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왜 내 실수는 이렇게나 잘 보이는지. 내 몸뚱이인데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걸까?

팔은 더 직선으로, 다리는 무게 중심을 잡아서, 옆 동료와 내 간격을 유지하면서.

분명 제대로 한 것 같았는데 아직 멀었구나.

다시 한번 안무 체크하고, 개인별 동작 체크하고, 단체 대형을 맞추고 하다 보니 세 시간은 훌쩍 흘러버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밥 먹으러 가라, 병아리들.”

“네!”

계란에서 병아리로 승급한 힘찬이 크게 대답하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대답은 씩씩한데 몸뚱이는 곧 쓰러지게 생겼으니 언행 불일치가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주는 꼴이었다.

늘 멤버들과 투닥거리긴 해도 힘찬은 항상 뒤끝이 없었다.

그 장난기에 경환과 세빈이 휘말려 더 큰 소동이 벌어지곤 했지만, 결국엔 힘찬의 장난 덕에 형들도 웃고 나도 웃게 돼버리니까.

귀여운 녀석.

피식 웃으며 널브러진 힘찬을 바라보자 저 주둥이가 기어코 또 한마디를 내뱉는다.

“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헐떡대면서 왜 또 그렇게 웃어! 무서우니까 그렇게 좀 웃지 마.”

“…앓느니 죽지.”

의도치는 않았지만 이렇게 또 맏형들이 느끼는 고충을 이해하게 되었다.

한바탕 땀을 쭉 뺀 멤버들은 그사이 부기도 빠져서 다시 훤칠한 얼굴이 되었다.

그 훤칠한 얼굴로 더위 먹은 것처럼 헉헉대고 있어서 불쌍함이 두 배가 되었지만 내 꼴도 다르지 않으니 할 말은 없었다.

“맛있는 거 먹고 싶다. 제육볶음 같은 거.”

“거기에 김치 볶은 거 추가요.”

“난 소불고기…. 당면 많이 넣은 걸로.”

“돼지고기 넣고 푹 끓인 김치찌개도 먹고 싶다….”

욕망의 화신들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악마의 속삭임처럼 들려왔다. 하지만 정작 우리 앞에 놓은 건 드레싱 하나 없는, 샐러드라는 이름의 풀과 찐 고구마 반개, 삶은 달걀 2개였다.

누가 소금 좀 줬으면 좋겠다….

뭐라도 씹을 거리가 있는 점심을 먹기는 했지만 속이 허했다.

배가 찼는데 차지 않은 느낌.

치킨이나 피자를 먹어서 배는 부른데 밥은 안 먹은 느낌이라 총각김치에 밥 한 그릇을 다시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어야 했던 그때 느낌?

왠지 모를 공허함을 뱃속에 가득 담고 돌아오자, 서포트 팀 인원들이 달려들어 우리를 사람같이 꾸며줬다.

드디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아이돌 창조의 마지막 촬영이 끝났다.

그래도 이제 제법 아이돌 티도 나고 카메라 앞에서 예쁜 짓도 많이 하는 멤버들이 기특했지만 내 머릿속은 자꾸 복잡해져 갔다.

생각보다 잘되고 있는 것 같은데 결국 주어진 방송 일정은 큰 차이가 없다.

아이돌은 결국 팬덤이 전부다.

팬덤의 크기가 출연할 수 있는 방송의 가짓수를 늘려주고 활동 영역을 넓혀준다.

팬을 늘리려면 대체 뭘 해야 하지?

수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데 머리에 툭 하고 손이 올라왔다.

“어?”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아.”

“아, 그냥요.”

“개인적인 거야, 아니면 팀 일이야.”

“음, 둘 다?”

“욕심도 많지, 우리 지환이.”

혼자 너무 생각에 빠졌던 탓인지 하준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이 곁눈질로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걱정을 끼친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우리 팬이 많아질까 고민돼서요.”

어깨를 으쓱하며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이전 언래블은 나 같은 사람 없이도 자기들끼리 충분히 빛을 냈던 사람들이다.

내가 어떻게 좌우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오만인데, 그 사이 또 혼자 선을 넘어버렸다.

“잘해야지.”

“어떻게요?”

“뭐든지. 춤도, 노래도, 방송도 다.”

“에이, 그게 뭐예요.”

담담하게 툭툭 내뱉는 영빈의 말에 내가 툴툴대자 경환도 한마디 거들었다.

“근데 우린 아직 잘하지 못하잖아. 그러니까 덜 좋아해 주는 게 아닐까?”

“…듣고 보니 또 그러네요. 당장 어제 무대만 해도….”

“그만, 더 말하지 마…. 눈물 날 거 같으니까.”

정작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지나고 나니 한없이 아쉽고 아까운 게 첫 무대였다.

언래블에서 욕심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힘찬도 무대를 보며 울상이 되었으니까.

그렇게 우리가 자아비판에 빠져있던 도중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친구들이 의욕적이고 좋네.”

“누구세요?”

“?”

시원시원한 인상을 지닌 남자가 어느샌가 연습실 안에 있었다.

멤버들이 당황해서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뒤이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아, 안녕하세요, 선배님!”

익숙할 수밖에 없는 목소리와 함께 하연수가 갑자기 등장했다.

“콘서트 게스트 출연 때문에 왔는데 너희끼리 있어?”

“아, 네. 어… 매니저 형은 잠깐 사무실 갔고 팀장님은 아까 나가서 모르겠어요.”

“그래? 그럼 우진 씨 오면 다시 얘기하고 일단 이거 마실래?”

그리고 대선배님은 우리에게 시원한 생과일주스를 하사해 주셨다.

“나중에 매니저나 팀장님이 뭐라 하면 내가 줬다고 해. 선배가 주는 건데 어떻게 안 먹어. 그렇지?”

선이 가늘고 유려해 미남이라기보단 미인에 가깝지만, 외모와 달리 허스키하고 시원시원한 가창력을 가진 하연수. 우리에겐 직속 대선배님 같은 그런 존재였다.

평가 때도 참여했던 어려운 사람이 우리 앞에 털썩 앉아서 딸기 스무디를 쪽쪽 빨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갑자기 한없이 친근해졌다.

“근데 선배님, 저희가 게스트로 출연하면 팬분들이 아쉬워하지 않을까요…?”

여태 별다른 말 없이 딸기주스를 깔짝거리던 하준이 넌지시 하연수에게 질문을 했다.

우리가 못해서 욕먹는 거야 당연했다. 그 정도도 못 견디면 연예인을 할 수 없을 테니까.

정말로 두려운 건, 열심히 해도 그 사람들이 우리 노래를 들어줄까 하는 것들이었다.

“저희가 선배님 콘서트에 게스트로 올라가기엔 아직 ….”

주저하듯 영빈이 말을 보태자, 하연수는 피식 웃었다.

“내 팬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써. 너희 내 콘서트 망치라고 부르는 거 아니잖아.”

“그거야 그렇죠!”

“이번 앨범이 록 발라드? 같은 느낌이야. 그래서 밴드랑 협업한 곡도 있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엡.”

걱정이 태산 같은 형님들과 다르게 세빈의 두 눈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저, 선배님…. 사인해주시면 안 될까요…?”

“응? 얼마든지.”

후다닥 구석에 던져둔 가방을 끌고 온 세빈은 가방에서 하연수의 앨범과 팬을 꺼냈다.

저걸 가지고 다녔다고?

“어라, 이런 걸 평소에 갖고 다녀?”

“네! 선배님 팬이어서 언젠가 회사에서 뵈면 사인받으려구요.”

수줍게 말하는 막내의 눈망울은 목소리만큼 수줍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살짝 한숨이 흘러나왔다.

지나치게 내성적이던 세빈이 점점 더 적극적으로 변하는 건 좋은데, 어째 성격이 힘찬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 걱정이었다.

세빈아, 힘찬이는 안된다….

“찐팬이네! 좋아, 좋아. 너네 두 곡 말고 세곡 해볼래?”

“네?”

“서울 막콘 때로 날짜 맞추자. 그게 너희한테도 더 도움 될 거고.”

“너무 감사한데 그게 저희 맘대로 할 수가….”

“단우야! 우진이 빨리 데려와 봐.”

하연수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호탕했고 성격이 급했다.

우리 세빈이가 자기 팬이라는 걸 알자마자 자기 콘서트 시간을 더 내어줄 만큼.

그렇게 하연수가 태풍처럼 우리를 휘두르는 사이에 매니저 형이 등장하더니,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허허롭게 웃으며 하연수의 매니저와 함께 나갔다.

“방금 뭔가 되게 폭풍처럼 지나가지 않았어요?”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랬던 것 같다….”

자꾸 하루 내내 뭐가 몰아치는 것 같아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그래도 연습을 늦출 수는 없었던 우리는 보컬 트레이닝을 위해 자리에서 어기적거리며 일어났다.

그때, 두 번째 폭풍이 몰아쳤다.

“얘들아, 오늘 11시에 명준 씨 라디오 출연한다!”

“네?!”

“갑자기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아이들이 입을 쩍 벌리고 소현 팀장님을 바라보는 모습이 가관이다.

절로 한숨이 나와 양손으로 얼굴을 덮어버렸다.

이런 모습, 우리 솜뭉치들은 안 봐서 다행이다….

먼저, 예정대로 보컬 트레이닝을 마친 우리는 연습실에 모여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다.

“준이 형,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푸른 음악 노트에서 우리가 부를 수 있는 곡은 총 2곡이었다.

타이틀곡 한 곡과 우리가 가져가는 다른 곡 하나.

심지어 보이는 라디오로 진행되기 때문에 얼굴 알리기도 더없이 좋고, 팬들에게도 좋은 소식이 될 수 있었다.

다만, 이렇게 당일에 갑자기 일정이 바뀌는 경우는 흔치 않아서 의아했는데, 이어진 팀장님의 설명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제로라는 신인 남돌이 나올 예정이었는데, 걔네 멤버 중 하나가 학폭 가해자라고 소문 돌아서 잘렸대.”

“소속사에 어떻게 안 걸리고 데뷔까지 했네요?”

신인 아이돌이고 회사도 작다면 크게 기삿거리가 되지는 않겠지만, 방송국에서 위험 부담을 안고 갈 리 없었다.

이름 있는 엔터의 아이돌 데뷔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연예인은 공인이라며 남들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소속사는 한 번씩 소속 연습생의 과거를 턴다.

물론 신이 내린 재능이 있고 감당할 수 있는 죄를 지었다면 돈이 되는 쪽으로 움직일 테고, 당사자가 작정하고 과거를 숨긴다면 한시적으로 덮을 수는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계약서에는 이런 내용들이 모두 들어간다.

개인의 일탈로 회사와 팀에 피해를 입힐 경우 그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내용이.

그래서 어지간히 좋은 빽이 없는 이상 과거가 불순한 사람은 괜찮은 소속사의 연습생조차 될 수 없었다.

“작은 소속사에서 오랜만에 실력 좋은 애들 나오나 싶었는데 피해자가 회사에 자료 보냈대.”

“아, 걔는 끝났네요.”

“같은 팀 애들만 불쌍하네….”

물론 소문이 모두 믿을 만한 건 아니겠지만, 그저 소문이어도 아이돌에겐 치명적이니까.

그리고 그 빈자리가 팀장님의 능력과 약간의 운으로 언래블에게 기회로 돌아온 것이었다.

회사 홍보팀은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이미 SNS에 깜짝 스케줄이라며 GIVE 앱 방송 예정과 라디오 출연을 알렸다고, 매니저 형에게 전해 들었다.

“음, 결국 이렇게 두 개가 가장 나을 것 같은데 너희 생각은 어때?”

우리는 멤버들끼리 모여서 의견을 나눌 때 종이를 두고 적어가면서 얘기하는 버릇이 있었다.

각자 종이에 별 시답잖은 소리까지 다 끄적거리긴 하지만 나중에 한데 모아놓고 보면 의외로 쓸만한 것들이 하나씩 튀어나왔다.

방금 전의 짧은 회의에서 나온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저는 찬성.”

“저도요!”

“이게 제일 나을 것 같긴 해.”

그렇게 적은 2개의 곡명을 매니저 형에게 전달했다.

GIVE 앱 방송을 준비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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