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1)화 (21/456)

21. EVERYDAY(2)

긴장 풀린 멤버들이 온 사방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전 생에서는 보지 못한 신선한 모습이었지만 이왕이면 나 말고 다른 팬들은 이 모습을 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팬들에게 아주 약간이라도 우리 애들의 멋진 이미지를 남겨줘야 해….

“좀 자기 침대 가서 눕던가 해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야….”

“왜, 뭐, 우리가 창피해?”

하아.

카메라 없어서 다행이지.

“하준이 형! 지환이가 우리가 창피한가 봐!”

“내가 생각했을 때도 창피할 거 같으니까 그만해. 이거 진짜 수치플이야, 인마….”

벽에 기대서 무기력하게 멤버들을 바라보던 하준과 침대에 가서 누우라는 말에 뭉그적거리며 방으로 들어간 영빈은 양반이었다.

좁은 숙소 온 사방을 투닥대며 돌아다니는 경환과 힘찬을 보면 궁둥이를 걷어차 주고 싶지만, 막내 교육상 참고 있었다.

우리 착한 세빈이는 이렇게 수줍음도 많이 타면서 어떻게 그렇게 무대만 올라가면 다른 사람이 되는지.

“하준이 형! 지환이가 또 이상한 표정으로 세빈이 본대요!”

“최힘찬.”

“와, 성 붙여서 부르지 마라…. 무서우니까.”

“그만 까불고 여기 좀 앉아봐. 경환이 너는 영빈이 끌고 나오고.”

오늘 촬영은 회사에서까지 분량만이고 로그 촬영도 없었다. 온전히 우리들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많지 않은 날이었기에 하준이 멤버들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귀찮다고 건드리지 말라는 영빈을 경환과 힘찬이 힘으로 제압해 들고 나왔는데, 세상에 키는 그렇게 큰 애가… 이렇게까지 하찮게 보일 수 있구나 싶었다.

“세빈아, 눈 감아.”

“…못 본 척해 줄게요.”

둘째 형의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너네 좀 있음 다 잘 거 같으니까 지금 얘기하자.”

“왜요?”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자세를 바로잡은 하준은 자유분방한 모습이긴 하지만 자신 앞에 나름대로 얌전히 모여있는 우리를 바라봤다.

“참… 잘생겼다, 내 친구, 내 동생들.”

“어우, 이 형 갑자기 왜 이래….”

“자유분방하게 생긴 게 아니라?”

“그냥 좀 들어, 이것들아.

어휴…. 여튼, 앞으로 욕 나오는 상황도 많을 거고 더 힘들 거야. 그래도 서로 믿고, 회사도 조금만 믿고 견디자. 그리고 무슨 일 있으면 형한테 꼭 말 좀 하고.”

이 중에서 제일 잘생긴 건 본인인 거 같은데 내 최애님은 그런 자각이 아직 없으신 듯했다.

여러 번 엎어진 데뷔가 진짜 코앞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하준은 꽤 감상적인 말을 하며 피식 웃었다.

그 모습에 몸서리치며 몸을 뒤로 빼는 힘찬을 경환이 발로 다시 쓱 밀었다.

“우빈이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상황이야. 알지? 앞으로도 우린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왜 갑자기 당연한 얘길 하고 그래요.”

“맞아, 김우빈이 미쳐가지고 자기 혼자 돌발 행동한 건데 뭐.”

“걔는 또 자기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

알게 모르게 우빈에게 쌓인 불만이 많았는지 투덜거리는 힘찬의 모습에 하준이 한숨 섞인 말로 다독여보려 했다. 내가 그만하라고 힘찬의 옆구리를 쿡 찔렀지만 이 주둥이는 멈출 줄 몰랐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여기서 고생 안 한 사람이 어딨어. 근데 김우빈이 그러면 안 되지. 우리 앞에선 사람 좋은 얼굴로 자긴 다 괜찮다 그래놓고 맨날 회사에 따로 얘기해서 제일 좋은 것만 쏙쏙 빼먹었잖아. 안 그래요?”

“힘찬아.”

“아창 촬영 초반에도 영빈이 형 분량 지가 다 처먹고! 맨날 이미지 좀 깰 거 같은 촬영은 동생이라고 우리한테 다 떠넘기고.”

“야야, 갑자기 왜 그래.”

“난 김우빈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다 그냥 걔 욕하고 털자고. 앞으로 어디서 마주쳐도 아는 척 안 할 거니까 형들도 그러지 마요.”

얘는 왜 이렇게 급발진이야 싶긴 했지만 내가 보기엔 하준이 하고 싶은 말도 힘찬이 하고 싶은 말도 같은 얘기 같았다. 그저 어투가 좀 달랐을 뿐.

“그러니까 둘 다 똑같은 얘기하는 거잖아, 지금. 사고 치고 나간 놈은 그냥 잊어버리고 우리끼리 잘해보자 이거 아냐. 뭘 빙빙 돌려서 말해.”

웬일로 경환이 정리된 문장으로 깔끔하게 요약해 줬다.

내가 기억하는 언래블의 C.I와는 또 다른 모습에 조금 웃었다.

“그러네, 왜 준이 형도 찬이도 어렵게 말해. 그냥 우리끼리 잘 먹고 잘살자~ 하면 되죠. 안 그래요, 영빈이 형?”

“민하준 너는 걱정이 너무 많아. 우리 애들 그렇게 애 아냐.”

내가 영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뜻을 비추자 한숨을 크게 내쉰 영빈이 하준의 어깨에 손을 툭 얹었다.

“어휴, 이 철딱서니 없는 것들.”

어쩔 수 없다는 듯 웃는 모습에 조금씩 하준의 눈치를 보던 멤버들도 그제서야 히죽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모자란 형들끼리 투닥대는 꼴을 얌전히 구경하던 세빈이 배시시 웃으며 한마디 보탰다.

“저는 형들이랑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진짜 좋아요.”

“우리 애가 이렇게 착하고, 예쁘고, 참하고…!”

가뜩이나 눈매도 동글동글해서 작은 강아지 같은 애가 말도 이렇게 예쁘게 하니 안 예뻐할 수가 없었다. 한 군데씩 이상한 사내놈들 사이에 이렇게 마음의 위안이 되는 애가 있다니.

“주접 그만 떨어!”

“아, 형 아파!”

“저 형은 좀 맞아야 돼. 왜 사람이 점점…. 어휴.”

“쟤 진짜 교통사고 나면서 영혼 바뀐 거 아닌지 확인해봐야 된다.”

“무슨 수로 확인할 건데? 뭐 점집이라도 갈 거야?”

예쁜 우리 강아지를 껴안고 우쭈쭈하는 내 모습을 한심하게 보던 하준이 등짝을 내려쳤다.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하준의 손이 매워서 세빈을 놔주자 그거 보라는 듯 옆에서 또 한마디씩 거든다.

그들이 그동안 부대끼며 겪어온 공지환과 내가 지나치게 다른 성격인 건 알지만, 나는 굳이 그 성격을 연기할 생각이 없었다.

벽 쌓고 고립되고 혼자 삽질하다 사라지느니 저런 소리 좀 듣는 게 낫지.

“내가 그동안 그 주접 참아가면서 연습에만 매달린 게 더 신기하지 않아? 나름 컨셉이었음!”

“그게 컨셉이었으면 넌 연기 대상감이다.”

“얘 나중에 연기한다고 까부는 거 아닌가 몰라.”

씩 웃으며 되려 당당히 말하는 나에게 한마디씩 던지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는 하준과 영빈이 꽤 피곤해 보였다. 일주일간 팀장 하느라 신경이 한껏 곤두섰을 거라 안쓰럽기도 했다.

제일 큰형들이 사라진 거실은 이제 동생들의 차지가 돼버렸고, 이리저리 엉겨서 대충 바닥에 눌어붙은 우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갑작스레 흐르는 침묵이 되려 편안했다.

그날로부터 고작 열흘이 지났다.

그 열흘을 한 달처럼 바쁘게 살았고, 적응하기도 전에 사방에 치이고 무의식중에 사고치고.

차라리 아예 더 앞 시간이었다면 덜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매일 밤 했다.

연습생이 된 직후라면? 아니면 차라리 아창 촬영 전이거나 최소한 초반이라면?

예전의 나였다면 이렇게 움직이는 게 신기할 만큼 잠자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사고 친 거 수습한다고 프로그램이며 작곡을 배우느라 그런 것도 있었지만, 자는 게 무서웠다.

엄마, 아빠가 그리고 누나가 나를 부르는 꿈을 꾸기도 하고 다시 교통사고를 당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꿈을 꾸고 난 후에는 늘 울면서 깼다.

그때의 통증이 떠올라서 온몸이 덜덜덜 떨려도, 누구한테도 그런 모습을 보일 수가 없어서 이불을 입에 물고 참고, 포잉을 끌어안고 웅크려서 참고.

그래도 이제 제일 처음 단추는 잘 끼워 맞춘 거니까, 그러니까….

“형, 지환이 형.”

“어? 아 세빈아 왜.”

“형, 괜찮아요?”

그제서야 거실에 퍼져있던 3명이 모두 몸을 일으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너 그사이에 꿈꿨어? 얼굴이 왜 이래.”

“아, 깜박 졸았나 보다.”

“얘는 가뜩이나 허연 애가 더 하얘졌네.

“형 그동안 너무 무리하긴 했어요. 잠자는 시간 너무 줄였어….”

눈 감고 이것저것 생각한다는 게 너무 깊게 들어갔던 모양이었다.

“맞아. 너 이번 주 내내 잘 못 잤잖아. 들어가서 좀 자.”

“아냐. 내가 언제 또 이렇게 게으름 부려보겠어.”

“내일부터 또 지옥이겠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거 같은데요….”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앉았다.

다시 한두 마디씩 던지며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멤버들과 그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나.

그런 내 옆으로 포잉이 조용히 다가왔다.

‘계약자 놈아, 달걀귀신이 친구 하자고 하겠다.’

‘그게 뭐야.’

‘얼굴이 희멀건 한 것이 한 대 치면 훅 가게 생겼음.’

‘네가 안 치면 괜찮을 듯?’

‘먼 길 보낼 순 없지. 그나저나 어서 날 칭찬하셈.’

‘갑자기?’

‘내가 제일 걸리적거리는 놈을 치웠잖슴.’

걸리적거리는 놈? 김우빈을 말하는 건가?

‘김우빈 쫓겨난 거 너랑 연관 있는 거야?’

‘여태 안 걸리던 핸드폰을 다른 인간들이 어떻게 찾았겠음?’

‘아…. 헐? 너 그런 것도 할 수 있어?’

이건 진짜 의외였다. 포잉이 맨날 툭하면 사라져서 어디 볕 좋은 데서 낮잠이나 자는 줄 알았더니 이런 기특한 일도 하고 있었구나!

‘꽁꽁 숨겨놓은 핸드폰 내가 찾아서 침대 밑에 넣어둠.’

‘이야, 역시 포잉은 요정이구나! 대단해!’

요정 세계에도 모델이나 배우가 있다면 포잉이 참 잘할 것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고양이 표정이 다채로울 수 있지?

칭찬할 때마다 우쭐한 표정으로 바라보길래 다른 멤버들 몰래 턱 밑을 긁어주었더니 앞발로 툭 쳐낸다.

‘거기 아님.’

‘아, 죄송….’

다시 궁둥이 쪽을 토닥토닥해줬더니 그제서야 고롱고롱 소리를 내며 만족스러워한다. 세상 까탈스러운 내 요정님 같으니라고.

그래도 포잉이 너무 따뜻해서 방금까지 뻣뻣했던 손끝에 조금씩 온기가 돌았다.

등장 타이밍이 너무 절묘해서 몰래 나를 지켜보고 있었나 싶을 정도랄까.

정말이지 요망하기 짝이 없는 요정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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