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꽃길을 위해 (20)화 (20/456)

20. EVERYDAY(1)

김우빈의 행동은 정말 예상 범위 밖이었다.

음흉한 놈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파일을 가져다 쓸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내가 한 일은 별거 아니었다.

안 대리님이 B팀 무대 중에 잠깐 들리셨길래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작업하던 곡이 쪼개져서 쓰였던데 혹시 대리님이 봐주신 거냐고.

난 B팀이 편곡을 회사 사람들에게 맡겼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회사 공용 PC에 저장된 음원이 적당히 가져다 쓰이지 않았나 추리했었다.

B팀에는 작곡이나 편곡을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촉박한 시간 내에서는 그게 가장 베스트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5번 작업실은 설비도 썩 좋은 편이 아니었고 작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잘 찾지 않았다. 정말 가끔 개개인이 생각나는 것들을 임시로 작업하거나 저장해두는 용도로만 썼을 뿐.

그래서 나도 딱히 이름을 기재하지 않고 다른 작업 곡들처럼 바탕화면에 ‘환이 연습용’이라는 폴더 하나 만들어 저장해두었을 뿐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얼떨결에 사고 친 탓에 미래에 만들어질 곡을 미리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내 취향이 가미된 상태로 바꿔서 저장을 해놨고.

그걸 김우빈이 가져다 쓰는 이 상황은 무슨 코미디인가 싶었다.

안 대리님은 내가 작업하던 곡 대부분을 봐주던 사람인만큼 이상한 점을 바로 알아차렸고, 그 짧은 시간 동안 A&R 팀에 확인해본 것 같았다.

보통 A&R 팀과 작사, 작곡가는 별개로 팀을 이뤄 움직이지만, ON 엔터의 A&R 팀에는 본인이 직접 곡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지 않으면 음반을 기획하고 제작 관리하는 전반적인 일을 해낼 수 없다 보니 평균 이상의 실력자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내가 조금씩이나마 기기나 프로그램 다루는 법을 배울 수 있기도 했고.

크게 사고 쳤다고 생각한, 미래의 곡을 훔쳐버린 일이 나에게는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했다.

* * *

차마 데뷔도 못 한 이 인원으로 한우를 먹으러 갈 수 없었던 소현 팀장님은 우진 매니저님까지 불러서 차 2대에 우리를 태우고 반짝거리는 번화가로 나갔다.

번화가라니. 시골에 살던 것도 아닌데….

서울 한복판에 살다가 숙소 생활을 일주일 한 나에겐 웃긴 단어였지만, 나보다 더 오랜 시간 회사와 숙소만 오갔던 멤버들이 실제로 거리에 내려서 내뱉은 말이었다.

창피해서 팀장님과 매니저님 옆에 붙어 있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진정한 팬이다. 그렇고말고.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삼겹살과 목살, 차돌박이의 모습에 우리는 각자 취향껏 자리를 잡고 앉아 먹기 바빴다. 간혹 소소하게 쌈 싸는 모습으로 투닥거리기도 했다.

깻잎 파가 어쩌고 상추 파가 어쩌고 그 사이에서 정신이 없었던 하준이 니 말도 옳고 네 말도 옳구나 하는 황희 정승 같은 모습을 보여 되려 비난을 샀다.

그 무리를 비웃어준 나는 명이나물에 목살을 싸 먹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고기를 먹게 된 우리는 한껏 신이 났고 콜라와 사이다에 취한 것처럼 들떠있었다.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차돌박이 된장찌개에 공깃밥을 야무지게 말아먹던 소현 팀장님에게 세빈이가 우물쭈물하더니 결국 질문을 던졌다.

“팀장님, 그럼 우리 이제 진짜 데뷔해요?”

“…밥 좀 먹고 얘기하자, 이 녀석아.”

“왜 우리 애 기를 죽이고 그래요!”

“세빈이가 언제부터 네 애였냐.”

“오늘부터 제 앱니다.”

열심히 고기 판을 아작내던 멤버들까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팀장님에게 시선을 던지자, 결국 소현 팀장님은 투덜댔고 나는 우리 애를 감쌌다.

가뜩이나 B팀에서 맘고생 많이 한 앤데 기분 좋게 밥 먹는 와중에 기를 죽이긴 왜 기를 죽이고 그런대.

“자세한 건 숙소 가서 말해줄게. 여기서 할 말은 아니고. 일단은 데뷔 준비할 거야. 너희 다.”

나한테 주먹을 흔들던 소현 팀장님은 결국 밥 먹던 수저를 내려놓고 주변에 들릴세라 작게 이야기해주었다.

일단 데뷔 준비할 거라는 한마디에 여기저기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원래대로라면 2번째 경연까지 준비하고 마음 졸여야 했을 텐데, 이제 더 이상의 멤버 변동 없이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했던 모양이었다.

고기 파티가 끝나자 소현 팀장님은 사비로 아이스크림까지 사서 우리 입에 하나씩 물려주었다.

한동안 못 먹을 테니 오늘 양껏 먹으라고.

“우와… 점심에 고기 먹고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매일 이랬으면 좋겠다….”

“고기는 삼시 세끼 다 먹어도 맛있지.”

멤버들의 구성이 바뀐 만큼, 언래블이 내가 알던 것과 얼마나 달라질지 불안하기도 했다. 내가 가진 패가 그만큼 줄어들 텐데 애들 앞길에 꽃길도 깔아주고 나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

하지만 모처럼 신나 보이는 세빈과 경환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 조금 긴장이 풀린 듯한 영빈의 미소와 하준에게 깐죽거리는 힘찬의 모습을 보니 그저 웃음만 나왔다.

입덕하기 전의 내가 본, 서럽게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던 그 모습이 아니라서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적어도 지금 내 눈앞의 멤버들은 ‘김우빈’이라는 사람이 이 자리에 없는 것에 대해 알게 모르게들 수긍했고, 울기보단 웃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갑자기 잘려나갔는데도 멤버들이 별말 없는 걸 보면 그놈도 어지간했던 모양이었다.

그 후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오늘 남은 시간은 쉬어도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얘기를 한 팀장님이 나가기도 전, 숙소의 문이 열리고 정윤 실장님이 들어왔다. 방금까지 바닥을 구를 것 같았던 경환과 힘찬이 빛의 속도로 정좌하고 앉는 모습은 기네스북에 올려도 될 법한 속도였다.

“분위기 깨서 미안. 그래도 오늘 얘기를 대충이라도 마무리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왔어.”

“넵.”

실장님이 가운데 앉아있고 소현 팀장님과 우진 매니저 형이 실장님의 뒤에 자리했다.

작은 상 하나를 두고 맞은편에 6명의 사내놈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으니 가뜩이나 좁은 숙소 거실이 더 좁아 보였다.

“원래대로라면 2차 경연을 하고, 그때 팬들의 투표가 멤버 선정에 영향을 줄 예정이었어. 그런데 불순한 의도를 가진 멤버가 발견돼서 급하게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순식간에 내려앉은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기의 무게를 느낀 기분이었다.

“타인의 작업물을 본인의 것이라 속이며 편곡에 사용해달라고 전달해왔고, 심지어 그게 누구 작업물인지도 알면서 저지른 행동이었어.”

그 순간 맞은편에 앉아있던 하준 형의 시선이 어째서인지 나에게 닿았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김우빈 연습생이 계약을 위반하려고 한 정황이 확인되어서 숙소에서 퇴실 조치했다. 회사에서 강경하게 대응할 방침이니까 너희는 흔들리지 말고.”

그리고 잠시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인 정윤 실장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흘러내린 안경을 다시 치켜들었다.

“너희는 직접 부대끼면서 지낸 사람들이니까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얘기해 주는 건데, 우빈이가 다른 기획사로 이적하려고 했어.”

“네?”

“왜요…?”

멤버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정윤 실장을 바라보았다. 이 일은 나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이어질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단순히 회사와 상의하고 이적하는 거였으면 아무 문제 없었을 거야. 너희도 알다시피 회사는 너희라는 원석에 투자해서 별을 만드는 곳이잖아.”

보통 연습생은 몇 개월에서 년 단위로 계약을 하고, 회사는 그 연습생에게 기본적인 투자를 한다. 모든 레슨과 생활에 관련된 비용을 회사가 부담하고 초기 계약 당시 소액의 계약금도 오고 가니까.

“우빈이는 회사와 상의 없이 타 업체와 가계약을 맺었어. 이번에 사용한 음원도 개인 휴대폰에서 발견되었고.”

“휴대폰이요?”

하준도 회사와의 비상연락을 위한 휴대폰이 있었지만, 그건 하준의 개인 휴대폰이 아니었다.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휴대폰 없이 생활하고 있었고 이 내용은 계약서에도 기재된 내용이었다.

“숙소에 주기적으로 청소해 주시는 분이 드나드는 건 알고 있지? 그분이랑 소현 팀장이 숙소 점검하다가 발견했어.”

그제야 소현 팀장이 우빈에게 그토록 차갑게 말했던 게 이해가 됐다.

그 뒤에 이어진 이야기들은 가관이었다.

핸드폰을 발견한 것은 불과 2일 전 청소일이었고, 누구 물건인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당장 경연을 앞둔 상황이라 섣불리 멤버들을 추궁하기보다 자진해서 말하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청소일은 사전에 매니저 형을 통해 수시로 공지되었던 일이고, 연습생들이 반입 금지 물품을 들여오는 일이 없도록 팀장이나 매니저가 확인하는 일도 항상 있어왔던 일이었다.

회사나 내 입장에서는 어쩌면 정말 운 좋게 꼬리를 잡은 거고, 우빈의 입장에서는 운이 더럽게 없었던 거다.

처음부터 소현 팀장이 대화 내용을 확인한 건 아니라고 했다.

내가 안 대리님에게 음원에 대해 얘기한 게 우리를 전담하던 팀장님과 윗분들에게 알려지면서, 팀장님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켜봤다고 했다.

휴대폰이 켜지자마자 부재중 전화와 문자, 냥톡 메시지가 한꺼번에 알림을 띄웠고, 그중에 익숙한 동종 업계 사람의 이름이 보여서 문자 내용을 확인했다고 했다.

물론 저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었지만 전후 사정이 어찌 되었든 김우빈이 계약서 내용을 어긴 건 빼도 박도 못할 일들이 되어버렸다.

멤버들에게서 한숨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 상황을 묵묵히 지켜만 보던 나는 정윤 실장님에게 멤버들을 보호하기 위해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저희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 우빈이도 우리랑 그쪽에서 간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우리 손을 완전히 떠나기 전에 해결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 뭐.”

겨우 감정을 조금 털어낸 듯 정윤 실장의 목소리는 다시 무덤덤하게 변했다. 그리고 나는 김우빈이 어떻게 되었는지보다 변경될 아이돌 창조의 내용이 더 중요했다.

“그럼 시청자 투표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영빈도 나와 같은 게 궁금했는지 질문을 던졌고 잠깐 흐트러졌던 분위기에 다시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데뷔 타이틀곡의 센터를 시청자 투표로 결정할 거야. 더 자세한 내용은 내일 회사에서 하자. 오늘은 그만 쉬어, 얘들아.”

오늘따라 조금 지쳐 보이는 실장님의 모습에 모두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고, 실장님이 문을 나서자마자 다들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게 왜 죄지은 것 마냥 무릎을 꿇고 있었어.”

바닷가에 널브러진 미역 같아진 멤버들을 바라본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바로 옆에서 뒹굴고 있는 힘찬의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세빈아, 형들 이런 거 보고 배우면 안 된다….”

“네, 지환이 형.”

역시 우리 세빈이는 똑똑하고 야무져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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