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땅속 황금이 보여-66화 (66/188)

66화

부회장 큰아버지의 외아들. 김상진.

보물선 작전주를 하다가 아버지의 비자금을 왕창 깨 먹은 놈이다.

그렇게 깨 먹었어도 그놈의 ‘자식’이라는 것이 뭔지.

큰엄마가 매일 남편인 부회장님을 닦달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앞길을! 애비가 막아? 당신 미쳤어?”

원래 와이프를 이기는 남편은 없었다.

겨우 2개월 만에, 상진이 형은 그룹 보안과 부장으로 승진 발령을 받았다. 비자금을 깨 먹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기록이 없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승진 발령은 너무 했다는 것이 회장 비서실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역시 ‘로열패밀리’에게 실패 따위는 없다. 그냥 사장으로 가는 길에 겪은 ‘작은 해프닝’일 뿐이었다.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한 김상진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래서, 첫 번째로 내가 어떻게 사업을 하는지 조사하며 지켜보고 있다가 바로 기회를 잡았다.

두원 솔라의 연구원을 매수하여, 펄벅 교수가 연구하던 차세대 태양열 셀 설계도를 빼낸 것이었다.

이것으로 상진 형은 큰아버지에게 큰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도둑질했는데···. 부모가 칭찬하는 것은 교육상 안 좋지 않나?

어쨌든 훔친 설계도를 써먹어야 하는데, 인화 그룹에는 태양광 발전 사업이 없었다.

그래서 이 설계도를 이용하여, LD 그룹과 태양광 발전 사업의 합작을 제안했다.

LD 그룹은 이 태양광 셀의 가치를 확인하고 합자를 진행하기로 했다.

인화, LD 그룹이 각각 5천억씩 투자를 결정. 총 1조원 투자.

시장 상황을 보고 2차 3차의 투자를 진행하기로 했다.

김상진은 이 합자 사업의 중심에 있었고 아버지의 신망을 얻었다. ···도둑질도 공功이라고 한다면 대공을 세운 것이었다.

사람들은 김상진이 미국의 한 연구소에서 이 연구를 매입했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부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김상진에게 ‘투자의 귀재’라는 말까지 했다.

‘도둑질의 귀재’겠지.

인화와 LD의 태양광 계약이 이루어졌고 사업이 궤도에 올랐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이쪽 사업을 꺾을 수 없다는 확신이 섰다.

그래서 김상진은 나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너의 뒤통수를 친 사람은 나라고.

네가 모든 자금을 끌어들여 태양광 사업을 시작했지만, 곧 망할 것이라고.

그룹과 그룹이 손잡고 진행하는 사업과 일개 계열사가 진행하는 사업은 비교를 할 수 없다고.

‘이미 끝난 싸움이니 포기하라고.’ 그 말을 비웃으며 하고 싶었다.

김상진은 내가 지금 ‘피를 토하며’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그는 전화기를 들었다. 하지만 망설였다. 끝까지 전화하지 않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나의 실망하거나 화난 목소리를 너무 듣고 싶었다.

그래서 끝내 참지 못하고 전화했다.

-김 대표. 나 본사 김상진이야.

“아이고~ 형님~ 오랜만입니다.”

하지만 나의 목소리는 너무도 해맑았다.

어? 뭐지?”

-···잘 지냈어?

나는 씁쓸한 추억을 불러와, 한 방 먹이며 시작했다.

“저야 잘 지냈지요. 부회장님이 형님을 방에 감금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큰아버지 너무 하시네. 설마 가둬두고 ‘군만두’만 주지 않았죠? 하하하하 농담입니다. 형님.”

나의 목소리에 힘이 넘치자 김상진은 조금 당황했다. 혹시 자신의 연구물이 해킹당한 것을 모르는 것인가?

김상진은 답답한 듯 혀를 찼다.

-이번에 두원 솔라를 합병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다 형님이 신경 써준 덕분입니다.”

작전주로 털어먹은 자금이 제법 들어갔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회사를 경영 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생각지도 않은 사건이 터지고 말이야.

“무슨 사건이요? 지금까지는 아주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김상진은 답답한 듯 말했다.

-그래? 작은 사고가 있다고 들었는데?

“무슨 작은 사고요?”

-뭐. 보안 사고가 있다고 들었다.

병신. 대 놓고 자신이 해킹했다는 자백을 하는군. 프린스턴 대학은 ‘모지리’만 뽑나?

나는 갑자기 정색하며 강하게 말했다.

“형님이 그것을 어떻게 아세요? 형님이 범인입니까?”

순간 김상진은 ‘아차’ 하면서 말이 없었다.

나는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형님. 농담입니다. 아~ 최근 해킹 사고가 하나 있었는데,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김상진은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대화가 흐르자, 실망한 표정이 되었지만, 자신에게는 ‘필살기’가 있었다.

-그런데 어쩌지? 안 좋은 소식을 전달할 수밖에 없구나.

“안 좋은 소식이요?”

-인화 그룹과 LD와 태양광 합작 회사를 만들었다. 그룹 내 컨트롤 타워가 없어서 너희 회사와 중복 투자가 이루어졌어.

대사는 큰일인데, 나의 목소리는 웃고 있었다.

“하하하하 그러니까요. 정말 난감합니다. 너무 큰 일이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김상진은 순간 판단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도 준비한 대사를 했다.

-태양광 지분 정리가 필요하면 말해라. 도와줄게.

“빵구 낸 비자금 메우기도 힘드실 텐데, 저를 도와줄 정신이 있겠습니까?”

“너···”

나는 목소리에 웃음을 담아 대답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 드리겠습니다. 죄송한데 바빠서 먼저 끊겠습니다. 형님 건강히 지내십시오.”

나는 핸드폰으로 태양광 기사를 확인했는데, 국책 사업으로 ‘전국 태양광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업 규모만 7천억에 가까웠다.

나는 펄벅 교수와 이번 사업에 대해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눴고 곧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나누어 마시며 크게 웃었다.

64% 셀로 가볍게 다 먹을 수 있을 것이었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왔더니, 엄마가 고생했다며 걱정하셨다.

맥주 한 캔은 음료수인데, 엄마가 타주는 꿀물.

요즘 김 여사님에게 입금을 빵빵하게 하니 서비스가 좋네. 김 여사님 땡큐~

나는 따듯한 엄마의 사랑에, 깊은 꿀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귀걸이를 한 곳이 아팠다.

아 씨발. 쇳독 올랐나? 황금 나침반이 찍어준 것만 아니면 당장 빼고 싶은데···

그 생각을 하면서도, 피곤하여 바로 잠이 들었다.

하지만 리얼한 나이트 메어~~~ 그날 아주 뒤숭숭한 꿈을 꾸었다.

나는 갑자기 썸플러스 대형 물류 창고에서 야간 창고 정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여기 직원인가? 사다리를 올라타고 3층에 있는 캠핑 도구를 꺼내려고 했는데.

우당탕~~

갑자기 박스가 내 쪽으로 무너져, 나는 바닥에 떨어져 기절했다.

곧 정신이 들었는데, 상자에서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야? 무슨 액체가 흘러나오는지 확인했고, 금방 지포 라이터 기름이었다.

화재가 일어날 수 있는 기름 같은 것은 절대 물류 창고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들어왔지?

이때 형광등이 터지며 불꽃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윽!!!

온몸을 움츠렸지만, 다행히 불이 붙지 않았다.

“아 씨발. 놀래라.”

나는 몸을 일으키려 했는데 허리가 삐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누구 없나요? 누가 구급차 좀 불러줘요!!!”

이때 등 뒤에서 사람 하나가 나타났다. 지각이 잦다며 퇴사를 강요당한 안대리가 들어왔다.

“안 대리?”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마지막 인사? 우리 이미 인사했잖아.”

안 대리는 차갑지만,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혼자 죽으면 조금 쓸쓸할 것 같았는데, 다행이군요.”

그는 바닥에 떨어진 지포 라이터 기름을 자신의 몸에 부었다. 그리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이 빌어먹을 세상 그만 삽시다. 윤 팀장님.”

나는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세상에서 저의 흔적을 지우려고 합니다”

“홀로 계신 어머니를 생각해야지?”

안 대리는 후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니는··· 오늘 새벽에 먼저 보내 드렸습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안 대리는 새벽에 중풍으로 고생하는 어머니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그에 따라 우울증이 극에 달해 벌어진 참극이었다.

그는 라이터를 손에 쥐었다.

“잘리지만 않았어도. 어떻게 버텨보려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안 대리!! 이러지 마.”

“지난번 빌려 간 100만원도 못 갚았는데. 면목이 없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안 갚아도 돼. 정말이야.”

“그렇게 말씀하시니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 대리는 손을 떨었다. 쉽게 라이터에 불을 붙이지 못했다.

그러다가 끝내 이를 악물고 라이터에 부싯돌을 돌렸다.

“안돼!!!”

엄청난 화염이 일어나며 나를 집어삼켰다.

“으아아아아악~~”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너무도 생생한 빌어먹을 악몽.

엄마의 강요로 억지로 아침밥을 한술 뜨고, 아버지와 함께 출근했다.

출근하자마자 태경이에게 어제 꿈에 대해서 말했다.

그랬더니 태경이가

“뭐? 썸플러스 화재라고?”

그리고 매우 놀라면서 나에게 인터넷 기사를 보여주었다.

‘썸플러스 초대형 화재로 15명 사망 추정.’

“그래 여기야! 꿈에서 본 곳이 여기 맞아. 진짜 이곳을 꿈에서 봤어.”

태경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썸플러스 화재는 전기 합선에 의한 사고이고. 네 꿈은 방화잖아. 너 꺼는 그냥 개꿈이야. 신경 꺼라.”

나는 눈을 크게 떴다가, 순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내가 너무 리얼한 개꿈을 꾼 것이겠지?”

이때 유 비서가 상큼한 미소와 커피를 타서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나는 기분을 바꾸기 위해서, 고마움을 표시하며 칭찬했다.

“유 비서가 타서 이렇게 커피에 풍미가 있나? 콜롬비아 산이군?”

“그냥 막심 달달이 커피인데요?”

푸하하하하. 우리는 쪽팔려서 그냥 웃었다.

나는 뻘쭘함을 없애기 위해서 리모컨으로 TV를 틀었다.

이때 TV에서는 썸플러스 물류에서 처음 화재가 일어나게 된 장면을 보여주었다.

어? 3층 박스를 정리하던 사람이 떨어지고. 그곳으로 한 사람이 찾아와 지포 라이터를 던졌다. 그리고 화염이 치솟았다.

내가 태경이에게 말해준 꿈의 내용과 똑같았다.

그것을 보고 태경이가 기겁하며 놀라 나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소파 뒤에 숨어서 나를 귀신 바라보듯 했다.

“너 씨발, 뭐야? 귀신이냐?”

“개새끼야. 이쪽으로 안 와.”

태경이가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너 정말 저 장면을 꿈꿨다고?”

인정하기가 무섭다. 그냥 개꿈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 새벽에 일어나서 TV를 봤는데.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것일 수 있어. 아마 그럴 거야.”

“‘단독 최초 보도’라고 나오 잖아.”

“아 몰라. 몰라. 몰라~ 그냥 봤어.”

경복이도 심각하게 한마디 했다.

“드디어 신내림 받는 건가? 그동안 좀 수상했지.”

“신내림?”

“귀신에 들린 사람에게 이상한 능력이 생기곤 하잖아.”

“내가 왜 신내림을 받아?”

태경이가 갑자기 옛 생각을 하고 말했다.

“어렸을 때 무당집에 불 지른 것 생각 안 나?”

“기억나지.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로 손꼽는다.”

경복이가 손을 내밀어 나와 강하게 ‘하이파이브’ 했다.

“우리가 정말 잘했지.”

나는 정색하며 말했다.

“무당으로 꾸몄는데, 소아 성범죄자였어. 동네 동생을 건든 개새끼였다, 그래서 피해자인 그 동생과 함께 그 무당집에 불을 질렀다. 나중에 봤더니 역시나 소아 강간범으로 감옥에 갔더라고. 무려 18명이나 건든 죽일 놈이었다.”

태경이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산 채로 화형을 해야 했는데. 아쉽다.”

나는 정색하면서 말했다.

“이제 와 고백하자면···. 금을 보는 능력이 생기고, 신을 좀 받았어.”

태경이가 놀라고 말했다.

“뭐라고? 진짜 신내림을 받았어?”

“너 요즘. 머리도 아프고, 잠을 자도 피곤하고, 오줌발도 약하고.”

“어떻게 알아?”

나는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네 고추에 귀신이 쓰여서 그래. 퇴마봉으로 100대를 내려치면 귀신을 내쫓을 수 있다.”

“우리 집안 대를 끊을 참이냐?”

“너 닮아 태어날 애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못생긴 벌’을 받게 하냐?”

“내가 어때서?”

“거울 봐.”

나는 경복이를 노려보았다.

“너는 돈귀신이 붙었어. 돈을 버려야 해.”

“뭔 신종 사기 멘트냐?”

“네 돈에 있는 귀신이 내가 빼줄 테니까. 다 현금으로 바꿔서 나에게 가져와라. 내가 다 써서 귀신 없애 줄 테니.”

경복이가 사악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어디서 되지도 않는 개소리야?’

“부적이라도 싸게 써줄까?”

“퇴마, 엑소시스트 이런 것은 우리 쪽이 전문이다. 네 몸에 있는 그 귀신. 내가 빼줄게. 우리 교회에 ‘안수 기도’만 전문으로 하는 집사님들이 많다. 첫 경험이니까 살살해줄 거야”

“어디서 ‘서양 귀신’을 내 몸에 넣으려고 해?”

“설마 서양 귀신이 그분을 이야기하는 거 아니지?”

“그분이 서양 귀신이 맞지.”

경복이가 분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성 모독이다. 너를 ‘긴급정화’해야겠다. 태경아 가서 바퀴벌레 에프킬라 가지고 와. 당장 뿌려야겠다.”

“바퀴벌레? 야 씨발 너무 한 거 아니냐?”

“너 같은 놈은 약 뿌리고, 안수 기도 콤보를 때려줘야 해.”

이때 유 비서가 다급하게 고모님이 도착했다고 알렸다.

고모님이? 아침부터 왜?” 아버지도 출근해 있지만, 아버지 방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고모는 마치 자신의 사무실처럼 들어와 바로 상석에 앉았다. 그리고 부하 직원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두원 솔라를 샀다가 뒤통수 맞았다는 소문이 그룹 내에 돌고 있다. 창피한 일이야.”

나는 미주알고주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당황스럽게 되었습니다만 잘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자금이 많이 들어갔는데 괜찮아?”

“아직 여유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나에게 연락해.”

나는 낮게 웃었다.

“고모님이 송곳니를 보일 때마다 제가 자꾸 놀랍니다.”

“조카. 나는 정말 좋은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한 거야.”

혹시 돈이 급하면, 고모 돈을 쓰고 인화 물산 주식을 넘겨라. 이렇게 들린다.

“아직은 누구의 도움도 필요할 것 같지 않습니다.”

고모님은 낮게 웃으면서 말했다.

“태양광 회사를 산 것은 실책이야. 시장이 안 익었어.”

나는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모님도 그렇게 판단하시는군요.”

“아닌가?”

“천천히 지켜보세요. 인생은 재미있는 일의 연속입니다.”

“우리 조카 눈빛이 살아 있네.”

“괴산 남아는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허풍이 아니기를 바라지.”

고모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이제부터 나오는 말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이다.

“요즘 그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

모른다. 내 사업하기도 바쁘다.

“모르겠습니다. 다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네요.”

고 과장이 매주 그룹 리포트를 공유하는데, 전혀 특별한 내용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은밀하게 움직이는 뭔가 있는 모양이었다.

고모는 혀를 몇 번 차고 말했다.

“둘째가 엄마와 짜고 그룹 대부분을 먹었지만 먹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회장님의 비자금이지. 그것을 쥐면 큰 힘을 가질 수 있다.”

회장님의 비자금. 듣기만 해도 확 ‘땡기는’ 맛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표정은 전혀 관심 없는 듯 꾸몄다.

“제 물건이 아닌 것은 관심 없습니다.”

“둘째가 그룹 내 주력 사업을 챙겼는데, 비자금까지 넘어가면 싸움은 완전히 끝나.”

“고모님이 가지고 있는 힘과 재산이면, 부회장님을 충분히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고모님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과 연관되었던 사람들의 비밀과 약점이 있는 적혀 장부가 있다. 그것이 둘째의 손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나?”

나는 약점이 잡혀 있는 것이 없다.

“확실한 것은, 데뷔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제 이야기는 없을 것 같군요.”

고모님은 나를 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청와대와 친한 것 아는데. 거기 주인은 금방 바꿔. 새로운 주인이 네 큰 아비와 선이 닿아 있으면 너에게 검사 늑대들이 떼로 덤빌 수 있다. 그럼 없는 죄도 만들어지는 거다.”

나는 오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좀 귀찮기는 하겠습니다.”

고모만 더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박사님의 말로는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것이라고 하셨어. 그러면 바로 주주총회를 할 거야.”

내가 약을 드려서, 할아버지는 일어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러자 고모의 표정은 날카롭게 날아와 박혔다.

“나를 지지한다고 믿어도 되겠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반드시 지지할 것이라고 이야기해도 안 믿을 거잖아요.”

고모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나를 지지하면 백화점 지분 1%를 더 주지. 그리고 동생을 승진시키겠다.”

“지분만 받겠습니다. 승진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사회 초년생이 벼락출세하면 성격 버린다. 지가 잘 나서 승진하는 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 꼴은 못 보지.

고모는 마지막으로 단도리 쳤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는데. 둘째가 그룹을 장악하면, 우리의 목에 칼이 들어올 것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돼. 특히 너에게 무섭게 들어올 거야.”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고모는 눈을 부릅떴다.

“게다가 요즘 우리집 여사님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정신병이 심해지고 있어. 무슨 말인지 알아? 감당하기 힘들 정도야.”

이제서야 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렇습니까?”

“주변을 더욱 신경 쓰도록 해. 그 이야기를 해주러 왔다.”

“조심하겠습니다.”

꿈자리도 뒤숭숭한데. 무섭다.

“알아서 잘하리라 생각하고 간다.”

고모가 문밖으로 나가려다 갑자기 멈춰 서서 나에게 말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것인데. ‘제갈 집사’가 오면 절대 만나지 마라.”

갑자기 새로운 이름이 튀어나왔다.

“‘제갈 집사’가 누굽니까?”

고모는 인심 쓰는 얼굴에서 경고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버지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사람이지. 그룹 비서실장이야. 야망 있는 사람이다. ‘왕 비서’라 불렸다.”

“이름도 처음 들었습니다.”

고모의 눈빛이 매서웠다.

“혹시 그가 다가오면 나에게 연락해라.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이것이 진정 나에게 말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제갈 집사를 만나지 마라.’

“제 앞가림하기도 정신없습니다. 누구를 신경 쓸 처지가 아닙니다.”

“내 말을 잘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제갈 집사’와 ‘할아버지의 비자금’이라 들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보물 동굴’과 ‘요술램프’로 들렸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살아 계시는데, 그분의 돈을 노리는 것은 ‘패륜’이다. 나는 그렇게 싸가지가 없지 않았음으로 머릿속에서 ‘요술램프’를 지워버렸다.

그랬더니 머릿속에 깨끗해졌다.

“나는 그런 사람 모르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것을 먹으려고 한다면 배가 터질 것이라고 내가 장담하지. 아니 누가 와서 배를 찌르겠지.”

“독극물이군요.”

“독을 소화할 수 있는 나 같은 사람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나는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아직 할아버지께서 살아 계시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따위 말랑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네 큰 애비가 비자금으로 ‘큰 칼’을 만들어서 덤빌 거다. 넌 찍소리도 못하고 죽겠지.”

나는 낮게 웃었다.

“최소. 제가 비자금에 건드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좋아. 그렇게 믿지.”

유 비서가 이제서야 보이차를 가지고 들어 오고 있었는데, 고모는 바람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제갈 집사도 관심 없고, 비자금도 내 돈 아니다.

신경 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말했다.

“유비서. 그거 우리 줘.”

나는 보이차를 마시며 유 비서를 바라보았다.

와 예쁘다. 하지만 회사 생활은 장난이 아니다. 아무리 예뻐도 공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아~ 힘들군. 못생긴 애로 바꿔 볼까? 그럼 더 힘들까?

유 비서를 바꾸면 태경이 경복이에게 맞아 죽을 수도 있겠다.

유 비서를 보고 태경이가 ‘김 비서가 왜 그래’ 그 드라마를 찍겠다고, 나보고 대표이사 자리를 내놓으라는 ‘대역죄’ 멘트를 날렸다.

이 미친 새끼는 예쁜 애들만 보면 정신줄을 놓는다.

이때 길고 긴 전화번호의 전화가 왔다.

국가 번호 1. 미국이다.

뉴욕 크리스티의 워렌의 전화번호였다.

나는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워렌씨.”

뉴욕과는 낮 밤이 바뀔 정도의 시차가 난다.

하지만 워렌은 내가 출근하는 9시에 맞춰서 전화했다. 이것은 한국 시각을 조사하고 나에게 맞춰서 전화했다는 말이었다.

나를 그렇게 신경 쓴다는 말은, 호주 폐광에서 발견한 ‘작품’의 가격이 괜찮다는 방증.

워렌의 목소리도 가벼웠다.

“안녕하십니까. 에드워드 씨. 서울에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네 호주에서 한국으로 넘어왔지요. 회사 일이라는 것이 해도 해도 끝이 없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바쁘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일한 만큼 돈이 따라서 오지요.”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미국 시각은 지금 자정이 넘어 있었다.

“미국 시각으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저에게 전화한 용건을 물어도 될까요? 빨리 일을 처리해야 워렌씨도 마음 편하게 주무실 수 있을 것 같군요.”

수화기에서 들리는 워렌의 목소리는 아주 조심스러웠다.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에드워드 씨에게 컨펌을 받을 일이 있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제가 무엇을 확인해 드릴까요?”

“에드워드 씨가 의뢰하신 ‘절규하는 현대의 황금 인간’을 경매 없이 바로 사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흠. 전과 말이 다른데? 무조건 경매하는 것이 원칙이라 하지 않았나?

“크리스티의 원칙과 위배 되는 것 아닙니까? 원칙은 무조건 경매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워렌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원칙을 따지기에, 상대가 부른 금액이 상당히 많습니다.”

상당히 많다라···. 얼마인데 그러지?

“워렌씨의 말이 제 심장을 뛰게 만드는군요.”

“가격을 바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상대가 부른 금액은 1억 달러입니다.”

나는 순간 대답을 하지 못했다.

1억 달러. 대략 1100억. 원칙 따위는 개나 줘버려~

나의 목소리에 웃음이 걸려 있었다.

“상당히 마음에 드는 숫자이군요.”

“하지만 조건 하나가 있습니다.”

어쩐지 뭔가 너무 쉽더라.

“무슨 조건입니까?

1100억이면··· 나는 빤스 벗고 엉덩이춤도 출 수 있다. 태경이와 경복이를 꼬셔서 세트로도 춘다.

“에드워드 씨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콜~ 1억 달러면, 저승사자도 만날 수 있다.

혹시 범죄 단체는 아니겠지?

“신원은 확실한 사람입니까?”

워렌은 단호하게 말했다.

“대단한 분이십니다. 알면 앞으로 사업에 큰 도움이 될 분이지요. 이분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입니다.”

“누구입니까?”

“보안상. 만나신다고 하면 그때 알려드리겠습니다.”

“언제까지 결정해야 합니까?”

“이번 주까지 연락해주세요.”

1억 달러를 준다는 놈이 나는 너무도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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