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괴산이 낳은 의인(義人). 속초 연쇄살인마를 체포.’
나는 대학 정문에서 펄럭이는 플래카드를 보고 있었다.
최근 출석을 못 한 변명 거리로 ‘이상적’이었다.
당당히 담임 교수님을 만나 큰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존경하는 이준석 교수님!!”
그리고 로열샬룻 21년을 책상 아래 깊게 집어넣었다.
그것을 보고 이준석 교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인연 끊은 거 아니었냐?”
“저는 항상 우리 교수님께서 ‘만수무강하신가?’ 그것만 걱정했습니다.”
“그런 놈이 왜 수업을 안 나와?”
나는 심각한 얼굴로 꾸미며 말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아십니까? 일명 PTSD. 제가 속초 연쇄살인마를 격투 끝에 잡은 사람이고 피해자 시체를 두 눈으로 직접 본 사람입니다. 정말 엄청난 충격이었죠.”
이준석 담임 교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진짜! 정말 네가 잡았냐?”
“무인도에 계셨어요? TV에도 제 얼굴이 나오더만요. 교문에도 플래카드 딱 붙어 있구요. 용감한 괴산의 의인 김성열! 와~ 멋지다.”
“10번쯤 봤지만, 볼수록 믿을 수가 없으니 말이야···.”
“괴산 대학교가 배출한 최고 인재의 말을 믿으세요.”
ㅡ..-ㅗ
아 교수님~
이때 총장님의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은 교수님은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겨우 전화를 끊고 나를 바라보았다.
“할 말은 많지만, 일단 총장님 SNS에 올릴 사진 찍으러 가자.”
“SNS요?”
“그 양반 뒤늦게 이상한 것을 배워 가지고 사람 귀찮게 한다.”
나는 총장님 방으로 찾아가 ‘#속초 연쇄살인마’ ‘#대한민국 의인’으로 올릴 SNS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보답으로 PTSD 치료를 위해 한 달간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역시 멋진 우리 총장님!
나와 함께 찍은 사진에 ‘좋아요’가 500개나 찍히자. 총장님은 기분이 좋아서 괴산 최고의 공장인 삼송 백색가전 생산직 자리를 소개해 줬다.
총장님 감사합니다만 저는 황금을 보는 각성자입니다.
이런 괴산 촌구석에 있을 인재가 아니라고요.
이때 아버지가 전화하여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크게 편찮으시다. 당장 서울 갈 준비해라.”
“네? 할아버지요?”
할아버지께서 편찮으셔서 놀란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스스로 할아버지 자체를 언급해서 놀란 것이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싸우고 의절했다고 우리에게 알려줬다.
그래서 우리가 할아버지에 관해서 물어봐도 잘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나는 할아버지 정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바로 국내 5대 그룹 ‘인화’의 회장님.
처음 그 사실을 알고. 왜 우리가 이렇게 시골에서 살까 생각했는데, 뉴스를 검색하다가 대충 감을 잡았다.
할아버지는 40대쯤에 20대 초의 한 여배우를 사랑하게 되어 납치하듯 살림을 차렸다.
그리고 아들 둘을 낳았다.
나의 큰아버지와 아버지.
하지만 이미 할아버지에게는 이미 본부인이 있었고 누나와 아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재벌가의 흔한 두 집 살림이었으나 할아버지가 몸이 아프면서 쇠약해지자 재벌가 사모님이 사람을 써서 단도리 치기 시작했다.
회장님께서 돌아가시면 우리가 재산 분할 요청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얼굴에 물을 뿌리고 봉투를 던지는 것이 국룰이었지만 사모님은 독한 여자였다.
그래서 뺑소니 사고를 일으켰고 젊은 여배우와 큰아들이 트럭에 받혀서 즉사했다. 뒷자리에 있었던 작은 아들만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그 작은 아들이 바로 아버지였다.
경찰이나 검찰도 이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대충 예상했으나 큰할머니의 집안이 검사 판사가 즐비한 법조인 집안이라 미제 뺑소니 사건으로 마무리되었다.
아버지는 사고 이후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극히 두려워하였다.
그 결과 정신병원에 들어갈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다.
정신병원에서 무려 5년이나 있었다.
이때 그곳에서 간호사였던 어머니를 만나 겨우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식도 없이 혼인신고를 한 후 어머니의 고향인 괴산에 정착하여 살았다.
가끔 명절 때 아버지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펑펑 울 때가 있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왜 우는지 짐작할 수 있어서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우리집은 할아버지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암묵적 금지 사항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먼저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자고 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대학교 정문으로 오래된 코란도를 끌고 나오셨다.
코란도는 시끄러웠고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서울로 향했다.
국내 최고의 병원인 현산병원에 도착하여 VIP 병동으로 갔다.
우리가 VIP 병동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이 앞을 막아섰다.
그때 고모라고 불러야 하는 50대 강남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그냥 딱 봐도 돈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분은 아버지를 보더니 반가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어서 와 막내야. 올라오느냐 고생했다.”
고모는 경호원을 밀어내고 우리를 VIP 병실 안으로 데리고 왔다.
나는 할아버지라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키가 컸지만, 몸무게가 50kg도 되지 않아 보였다. 완전히 뼈만 남아 있었다.
약에 취해 있는지 아버지가 왔지만,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울기 시작했다. 너무도 서럽게 울어서 가족들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아버지를 병실에 두고 대기실로 돌아와 앉았다. 길게 한숨만 쉬고 아버지의 감정이 누그러지기를 기다렸다.
1시간이 지났을 때 아버지가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했고 우리는 아버지를 꼭 안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세상에 저 같은 사람을 온전히 믿어 주신 분은 아버지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합니다.’
이때 큰아버지로 불러야 하는 사내가 나타났다.
인화 그룹 부회장 김도영이었다. 그는 10명의 이사를 이끌고 VIP 병실로 다가왔다.
그러다가 아버지를 알아보고 인상을 쓰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너까지 연락이 갔나?”
큰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분노와 공포가 가득했다. 하지만 겁이 나서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큰아버지는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아직도 소 키우냐?”
이때 큰고모가 다가와 강하게 말했다.
“아버지께서 막내를 찾으셨어. 쓸데없는 이야기 하지 말고 그냥 들어가.”
큰아버지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놈이 성열이냐? 벌써 이렇게 컸나?”
나는 내키지 않지만,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는 한국사람으로서 머리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큰아버지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
“괴산대라고 했지? 멍청하기는···. 등록금이 아깝다.”
그리고 뒤를 돌아서 멀어졌다.
뭐? 등록금이 아까워? 네가 뭘 보태 줬다고 나를 비웃어?
순간 화가나 큰아버지를 향해서 큰소리쳤다.
“제가 속초 연쇄살인마를 잡은 대한민국 의인입니다. 저는 눈앞에 살인범은 절대 용서하지 않습니다.”
강한 눈빛으로 큰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너희들이 우리 아버지의 엄마와 형을 뺑소니로 죽이지 않았냐고 눈으로 외치고 있었다.
“멍청한 놈이 뭐라는 거야?”
그리고 긴 웃음을 남기며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한동안 우리는 패배감을 씹으면서 입을 닫고 있었다.
그러자 엄마가 조심스럽게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님 뵈었으니 이제 내려가요. 당신 건강이 다시 나빠질까 걱정돼요.”
어머니의 말을 들었지만,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 천천히 머리를 들어 말했다.
“큰누나가 왜 우리를 병원으로 불렀는지 알아?”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숨겼으면 숨겼지 할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고 우리를 부를 이유가 없었다.
“모르겠네요. 언제부터 우리를 가족 취급했다고···.”
“며칠 전 알았어. 회장님이 나에게 주식을 물려줬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것도 인화물산 주식 4%를 주셨어. 아버지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인화물산이라면 인화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인 회사였다.
한마디로 인화물산의 주인이 그룹 전체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가 되었다.
“인화물산 주식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이때 고모가 다가와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가 죽을 때가 되니, 이제 와 미안해 주식을 주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누님···.”
“아버지께서 왜 너에게 인화물산 주식을 주셨을까?”
한참 동안 생각하던 아버지는 긴 한숨과 함께 머리를 흔들었다.
“무슨 의중으로 그리하신 지 모르겠습니다.
“한 번만 더 생각해 봐. 앞으로 닥칠 본인의 미래에 대해서 말이야.”
“저는 그룹과 조금도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과 같은 곳에서 숨도 쉬기 싫어요.”
큰고모는 길게 숨을 쉬고 아버지 앞에 앉았다.
“회장님께서 돌아가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아? 홍 여사, 아니 우리 엄마가 미친 짓을 또 할 수 있어. 그러니 너도 준비해야 해.”
“우리가 무엇을 했다고요? 무슨 잘못을 했다고요?”
“홍 여사의 정신병이 깊어지고 있어. 피해망상증과 편집증이 있다.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도 있지. 돌아가신 작은 어머니와 너희가 회장님을 빼앗아 가는 꿈을 꾼다고 하셨어.”
우리 할머니는 이미 홍 여사의 손에 죽었다.
죽은 사람이 회장님을 어떻게 빼앗아?
홍 여사는 완전히 미쳐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셨어요···. 그것도 본인 손으로 저희 어머니를 죽였지 않습니까!”
고모는 대답하지 못하고 입맛을 다셨다. 어렸을 때지만 홍 여사가 무엇을 했는지 듣고 보았다.
살인교사.
“엄마를 정신병원에 넣는 것이 맞아. 하지만 엄마는 회장님의 부인이자 인화그룹 대주주야. 누구도 함부로 건들지 못해. 어쩌겠어?”
아버지는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었다. 갑자기 몸이 떨리며 이명이 들렸다.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현상이었다.
“저는 그냥 주식을 던지겠습니다.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세요.”
“홍 여사는 자신의 모든 불행이 다 작은어머니와 가족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믿고 있어. 매일 곱씹고 또 곱씹으며 분노를 키우고 있다. 회장님께서 돌아가시면, 우리 엄마는 안전핀이 뽑힌 핵폭탄이 될 수 있어. 그러니···.”
이때 내가 고모에게 한발 다가가 아버지 대신 대답했다.
“할아버지께서는 이 인화물산 주식으로 우리가 살길을 찾으라고 하는 것이군요.”
고모는 의외라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내 말을 알아먹은 사람이 있었네?”
내가 본 재벌물만 몇 권인가?
이 정도는 바로 알아먹어야지.
“저도 김씨 집안 사람입니다. 그 정도는 바로 알아들어야죠. 제 생명과도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고요.”
고모는 이제 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남궁 박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6개월 이상은 살기 힘들다고 하셨다. 그렇게 회장님께서 돌아가시면 후계자 자리를 두고 싸움이 벌어지지. 그러면 단 한 주가 아쉬워. 이때 4%는 상당한 힘을 가질 수 있을 거야. 그 기회를 잡아서 어떻게 든 살길을 마련해 보라는 의미의 주식이다.”
“그렇다면 고모님께서도 아버지의 주식을 확보하려고 지금 손을 내밀고 계신 것이네요.”
고모는 순순히 머리를 끄덕였다.
“인화 그룹 주식 보유 현황은 회장님 30%, 엄마 10%, 나 13%, 둘째 22%, 막내 4%, 연기금 12%, 기타 9%다. 곧 그룹 승계작업이 이루어지는데, 막내가 나를 밀면 그룹에서 좀 더 큰 덩어리를 먹을 수 있겠지.”
고모의 눈에 욕심이 하나 가득했다. 작은 고깃덩어리로 만족할 여자가 아니었다.
“회장님 주식하고 고모님 주식 그리고 아버지 주식을 더하면 47%가 되네요. 연기금만 끌어오면 고모님이 회장님도 될 수 있겠는데요?”
“우리 조카님 ‘멘트’가 상당히 마음에 드는구나.”
“대학생이 더하기 빼기도 못 하면 안 되죠.”
고모는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막내야. 피하고 싶다고 피해지는 싸움이 아니라는 것만 알아 둬.”
아버지는 머리를 더욱 숙였다.
어렸을 때 겪었던 사고의 악몽이 다시 살아나 아버지를 괴롭히고 있었다.
“뭐라고 이야기해도··· 나는 관심 없어요.”
엄마는 아버지의 어깨를 감싸며 밖으로 이끌었다.
“이곳에서 어서 나가요. 더 이상 이곳에 있으면 안 되겠어요.”
아버지는 병원 밖으로 나왔다. 한동안 아무 말도 없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우리를 보며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조금 충격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일부러 숨기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아버지···.”
“잘 들어라. 옛날에 말이야···.”
나는 아버지가 말을 이어 나가기 전에 말했다.
“나도 가율이도 할아버지에 대해서 대충 알고 있어요.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알고요.”
아버지는 눈만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할아버지를 안다고? 너희들이 어찌 그것을 알아?”
“아버지가 컴맹이시라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요즘은 인터넷 몇 번 쳐 보면 다 나와요. 구골에 ‘인화그룹’ 쳐보세요. 아버지가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이 나올 거에요.”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헤이! 브라더! 나 왔다!”
이때 태경이와 경복이가 나타나 부모님께 꾸벅 인사드렸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아버님. 저희 왔습니다.”
엄마는 태경이 경복이와 내가 눈빛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며 살짝 인상을 썼다.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엄마의 눈치를 보았다.
“한강 변에서 금속 탐지기로 금반지 몇 개 챙기려고 애들 불렀어요. 서울 공기도 좀 마시고.”
엄마가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지금은 안돼. 위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 못 들었어?”
엄마를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 차분한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강변에서 금반지 찾고 있으면 더욱 아무 일도 없을 것이에요.”
“왜 일이 없어?”
“우리는 후계자 싸움에 참전하지 않겠다는 퍼포먼스 같은 거예요. 그냥 서울에서 바보짓 좀 하고 내려갈게요.”
엄마가 이제야 표정이 풀어지며 슬픈 얼굴이 되었다.
“그 정도를 생각하다니. 우리 아들···. 이제 다 컸구나.”
“먼저 내려가세요. 이곳에서 애들이랑 일 보고 내려갈게요.”
“그래도 너무 걱정된다. 진짜 걱정돼.”
“우리 3명에서 속초 연쇄살인마를 잡았어요. 우리가 맞고 다닐 애들은 아니잖아요.”
“조금만 있다가 내려와. 술 너무 마시지 말고.”
“모레쯤 괴산으로 내려갈게요.”
나와 애들은 도망치듯 병원에서 나왔다. 그리고 경복이 차를 타고 한강 둔치를 향했다.
사실은 괴산을 출발하자마자 <<금 200g을 채굴>>하라는 미션이 떴다.
그래서 한강 둔치에서 금을 찾기로 태경이 경복이와 바로 약속했다.
태경이가 창문을 열고 외쳤다.
“서울아! 나 윤태경이가 왔다!!!”
경복이는 서울길을 몰라서 긴장하고 있는데 저 자식은 눈치도 없이 해맑았다.
“닥치고 좀 앉아 있어. 정신없어!”
“아~ 이 향긋한 서울 매연 냄새~ 역시 난 서울 스타일이야.”
한강 변 주차장에 차를 넣으면서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주차비가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촌놈이라고 더 받는 거 아니야?
그래서 주차 요금표를 확인해 봤더니, 그 금액이 맞았다.
한 시간에 탕수육 짜장면 세트값이 사라진다.
서울은 미쳤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차를 머리에 이고 다닐 수 없지 않은가?
우리는 온몸에 기합을 넣고 한강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주차비를 뽑기 위해서 금가루까지 주워 갈 기세였다.
하지만 서울은 생각보다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주변을 샅샅이 살폈으나 빛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서울깍쟁이들 절대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구나.
저녁이 될 때까지 돌았으나 손에 쥔 것은 금귀걸이 하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태경이나 경복이 모두 실망한 표정이 아니었다.
둘 다 한강공원을 돌아다니는 여자들을 구경하느냐고 넋이 나가 있었다.
오~ 브라보~
역시 서울 여자들은 어나 더 레벨~
나는 빌어먹을 두 놈의 목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이 발정 난 수컷 새끼들아! 우리 일하러 온 거 아니냐?”
태경이가 버럭 화를 냈다.
“이 고자 새끼야. 이 아름다운 서울 여인들을 보면서 어떻게 금 따위가 눈에 들어오냐?”
“금을 찾아야 기름값이라도 챙겨 가지!”
“씨발놈아. 뛰어서 집에 갈 거니까. 나 방해하지마!”
“완전 눈깔이 돌았구만.”
“금은 니가 찾아. 난 지금 서울 이쁜이들밖에 안 보인다.”
“이 씨발놈들~ 따라와~”
정신 빠진 수캐 두 마리를 끌고 공원을 돌아다녔으나 노~~~력과 정성이 부족했는지 더 이상 금은 보이지 않았다.
해가 떨어지고 우리는 끝내 금 찾는 것을 포기하였다.
없어도 이렇게 없나?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고 이제 쉬고 싶었다.
일도 거의~~~ 안 한 두 놈이 이제 징징거렸다.
“야! 서울 놈들이 먹는 치킨하고 맥주. 우리도 먹자.”
“그래 우리도 치킨하고 맥주 먹을 줄 안다고!”
나는 버럭 외쳤다.
“그래 처먹자! 처먹어!”
우리는 서울 놈들이 먹는 치킨과 맥주를 배달시켰다.
온종일 걸었기에 맥주는 달았고 치킨은 입에서 녹았다.
괴산에서 먹지 못했던 명품 프라닭 치킨을 영접하고 우리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이래서 사람이 서울에 살아야 하는구나.
치킨부터 레벨이 달랐다.
이때 기적이 일어났다.
우리가 둘러앉은 곳에 여자 3명이 찾아와 말했다.
“합석하실래요?”
우리는 놀란 토끼 눈을 뜨고 서울 선녀들에게 물었다.
“네? 저희랑요?”
“오빠. 귀엽게 생겼다.”
그렇지. 내가 좀 귀엽지. 하하하
우리는 서울 여자들과 합석을 했고 운명적인 건배를 하였다.
그리고 술을 부었다.
세상에 이렇게 술이 달 수 있다는 말인가?
소주를 마셨지만 마치 여신이 내려주는 성수(聖水)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보통 때 같으면 시작하자고 한 놈의 죽빵을 날릴 유치한 게임을 했다.
하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보다 긴장되고 코미디 영화보다 웃음이 많이 나왔다.
순간. 필름이 끊겼다.
그리고 아침이 되었다.
태경이가 나를 깨웠다.
우리는 덜덜 떨면서 한강 둔치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루 만에 노숙자가 되어 있었다.
“그 씨발년들이 우리 지갑 다 털었다.”
“뭐?”
우리는 수면제가 들어있는 술을 마시고 뻑치기를 당한 것이었다.
모두 지갑도 없고 핸드폰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순간 사고가 마비되었다.
“그년들 꽃뱀이었어. 뉴스에도 나왔었다. 이제 생각나네.”
“이경복. 이 멍청한 새끼. 군바리한테 잘 생겼다고 이야기했을 때 꽃뱀인 것을 알아봤어야지.”
“지는 어제 종일 고생해서 챙긴 금귀걸이를 옆에 있는 여자에게 줬잖아. 뭐 첫사랑을 닮았다나 뭐라나?”
“내가? 그럴 리가 없어. 없는 말로 날조하지 마라.”
경복이가 강하게 소리쳤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야! 돈도 없고. 핸드폰도 없고. 어떻게 집에 돌아가지?”
눈감으면 서울 놈들이 코 베어 간다고 하더니 정말 사실이었다.
신이여 우리 괴산의 아들을 버리시나이까!
나의 간절한 기도에 신께서 즉시 응답을 해주셨다.
빛이다!
거대한 한강 가운데에 섬 하나가 보였다.
표지판을 보니 ‘밤섬’이라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밝은 빛이 보였다.
나는 손가락으로 밤섬을 가리켰다.
“어? 저기··· 저기 빛이 보인다. 빛이 보인다고!”
“빛? 그럼 금이야?”
“존나 밝아. 씨발! 겁나 밝다고!”
나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