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
아르테인 공작
“우선은 최선을 다해 덤비도록 하게. 조정은 이후야. 현재의 실력을 보여주었으면 하는군.”
“알겠습니다.”
나는 곧바로 앨거차의 문신을 극한 활성화했다.
내 기세가 바뀌어 나갔지만 공작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느껴지는 기세는 나에게 맞춰 점점 끓어오르고 있었다.
방금 전의 대련은 그의 흥미만을 돋구었을 뿐 몸풀기도 되지 못했다. 아마, 내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몸풀기에서 조금 나아진 정도에 불과할 터다.
승산은 없었지만 애초에 나는 이곳에 배우러 온 입장. 우선은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었다.
일행들이 수비를 선택한 것과는 다르게 나는 극한 활성화를 통해 능력이 증폭됨과 동시에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공작은 대검을 들어 올려 빠르게 달려드는 나를 향해 휘둘렀다.
가벼운 견제. 그것에 당할 수준은 아니었다. 나는 휘둘러진 검을 스쳐 지나가며 공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좋군. 정말 좋아.”
공작은 내가 휘두른 검을 대검의 가드로 튕겨버리고는 즉시 반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검날의 중간 부분으로 나를 베어왔다.
‘의도적인가.’
대검인 만큼 안쪽으로 파고들면 내가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공작은 그것을 허용해 주었다.
의도적인 행동으로 보였다.
하지만 나는 내가 유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분명 내가 유리한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날 밑의 가드, 날의 중간, 검의 손잡이나 손잡이 끝의 폼멜을 이용해 내 공격을 침착하게 막아내는 공작은 전혀 위태로워 보이지가 않았다.
나는 중간중간 애매한 높이를 노려 하늘 밟기를 이용 방어가 까다로운 위치를 노려 3차원적인 공격을 시도했지만 카바락과 다르게 처음 봄에도 불구하고 공작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능숙하고 방어에 성공했다.
“특이한 공격이로군.”
‘밀려.’
공격을 주도하는 것은 나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손해는 내가 입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강기의 질이 다르다.
공작은 분명 방어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완성된 무형강기는 내 불완전한 무형강기를 깎아 먹고 있었다.
때문에 내 마력의 손실이 무척이나 커지고 있었다.
그러던 순간 순간적인 직감이 뇌리를 강타했고 나는 즉시 공격을 멈추고 빠르게 허리를 뒤로 젖혔다.
훙!
내가 있던 자리에 공작의 검이 스쳐 지나간다. 설마 이렇게 깔끔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는지 공작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순간적인 가속에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그는 일행을 상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내 실력을 시험하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잠들었던 오크의 감각이 깨어남을 느끼고 있었다.
초기에는 평소에도 억누르지 않는 편이었지만 인간인 나에게 오크의 감각이 언제나 활성화 되어 있다면 상당히 곤란했다.
육체에 맞지 않는 감각이었으니까. 그래서 평소에는 억누르는 편이었는데 전투 상황이 되기 무섭게 빠르게 깨어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것에 적응하기 위해 응한 일이기도 하다. 시야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내 움직임이 변한다. 균형적인 움직임을 추구하던 모습이 극단적으로 공격으로 치닫는다.
공작은 단숨에 상황을 눈치챘다.
“오크의 감각인가!”
평소의 행동이 아니기 때문일까. 스스로의 공격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쉽게 흥분되고 감각이 제멋대로 날뛴다. 최대한 제어를 해 보지만 아직 미숙했다.
그러나 좋은 점이 없지만은 않았다.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나 자신의 거리를 되찾은 공작을 향해 내가 검을 내리긋는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불완전한 무형강기가 늘어나며 공작의 거리를 침범했다.
카바락의 특기였던 강기를 갖고 노는 기술이다. 그 기술을 본능적으로 베껴왔다. 애초에 내가 스킬을 얻계 된 계기는 카바락의 감각을 느끼는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런 만큼 이 기술과 궁합이 잘 맞는 것은 어찌 본다면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었다.
물론 제대로 쓰지는 못한다. 어쩌다 한 번씩 튀어나올 뿐.
본디 제대로 제어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은 많지 않다. 특히 나는 더더욱 그랬기에 지금의 모습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특이한 기술을 사용하는군.”
공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그 또한 이 기술이 오크나 사용할 수 있는 기술임을 알아챈 듯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이 굳은 것은 그러한 이유가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무척 즐거워 보였던 얼굴에는 더이상 즐거움임이라는 감정을 찾을 수 없었다.
“백작, 그대가 왜 그런 조건을 걸었는지 알만 하군. 처음 대련을 거절할만해.”
본래 그랜드 마스터쯤 되는 사람과 대련할 기회를 얻는다면 거절할 마스터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거절할 뉘앙스를 풍겼었고 그게 의아했던 모양이다.
아마 처음 대련을 제안한 것은 조금 더 가까워질 생각으로 제안했던 것 같은데 그게 그리 돌아가니 이상하게 생각했겠지.
그런데 지금 대련으로 그 이유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확실히… 이 꼴이라면 대련하기 싫을 만하군.”
마스터, 그것도 최상급에 도달한 마스터가 자기 몸 하나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무척이나 꼴사나운 모습이다.
공작이 대련하고 싶은 상대는 수련자들 중 최고의 자리에 오른 유신후 백작이지 이런 오크 짝퉁이 아닐 터였다.
공작은 곧바로 지금까지는 장난이었다는 듯이 마력을 폭발시켰다.
“흥미롭기는 해. 다만, 마음에 들지는 않아.”
무표정한 얼굴의 공작이 중얼거렸다.
“다만, 분명 가능성은 보이는군. 기대가 되기는 해.”
순간, 공작의 몸이 멈칫한다. 그리고는 아무런 전조도 없이 공작의 신형이 급속도로 커져 왔다.
어마어마한 순간 가속. 제대로 인지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직감과 함께하는 오크의 감각은 본능적으로 그런 공작의 움직임에 반응한다.
내 앞에 도달한 공작이 빠르게 검을 내리긋는다. 나 또한 반사적으로 그런 공작의 검을 막아갔다.
콰아아아앙!
이제껏 울린 격돌음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굉음이 연무장을 강타한다.
지잉-.
여운에 가까운 굉음. 내 발이 바닥을 파고든다. 발목이 땅에 박힐 정도의 위력.
하지만 버텼다. 내 몸은 얼마 전 환골탈태를 했고 시스템의 보정일지라도 전 능력치가 100에 도달한 몸이다.
분명 어마어마한 근력이었지만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내 무형강기는 완젼한 무형강기를 버텨내지 못했다.
쩌저적.
연무장 바닥과 강기가 박살 난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마치 대검을 장난감 다루듯이 휘둘러오는 공작. 그 속도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이었다.
폭음이 연속으로 연무장을 울린다.
특수 제작된 연무장임에도 그 충격을 쉬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일행과 야마모토의 턱이 천천히 벌어진다.
마력의 눈동자와 오크의 감각이 빠르게 공작의 검을 쫓는다.
‘보여.’
거기에 직감의 감각이 더해진다. 위기를 귀신같이 찾아내고 공작의 검로를 틀어막는다.
공작의 표정이 점점 묘해진다.
마치 이것 봐라? 싶은 표정.
나 또한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분명 어설프다. 어딘가 어긋났고, 내 평소 검술과는 전혀 다르다.
공작은 분명 나보다 윗줄인 사람이고 나보다 강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위태위태하면서도 내가 무너지지 않았다.
공작은 정말 죽을 수 있는, 위험한 공격을 배제했다 뿐이지 제법 진심으로 상대하는 와중이었다. 적어도 신체 능력만큼은 전혀 제한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실시간으로 공작의 공격에 대응하면서 스킬과 시스템 보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체감하고 있었다.
분명 보이기는 하나 나보다도 빠르고 미묘한 공격이라 언제나 손해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는다. 아무리 아이템 빨, 스킬 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랭커들이 번번이 대전사들의 손에서 살아남았는지를 실시간으로 깨닫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아이템도 부실한 편이다. 그런데도 무너지지 않는다.
꾸웅.
순간 어마어마한 압력이 나를 짓누른다. 동시에 직감이 미친듯한 경종을 울려왔다.
콰콰콰콰.
공작의 몸을 중심으로 거대한 마력의 폭풍이 몰아친다.
‘미친.’
순간적으로 저게 인간인가 싶은 수준의 마력이 느껴진다.
감각 뿐만이 아니다. 마력의 눈동자가 보는 세계에서 공작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거인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이것도 막아보게.”
공작이 검을 들어 올린다. 맨눈으로 본다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모습. 그러나 그 기세와 마력의 눈동자에 비치는 모습은 전혀 달랐다.
10m에 이르는 무형 강기로 이루어진 거대한 대검. 그것이 천천히, 하지만 결코 느리지 않은 속도로 내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거인의 징벌.”
조용히 읊조리는 공작.
오크의 감각이 비명을 지르고 직감이 경고를 울리다 못해 내 미쳐 날뛰고 있었다.
죽는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검이 다가올수록 나를 짓누르는 압력이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오크의 감각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오크의 감각이 삶을 포기했다. 아니, 아니다.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숙여야 함을 인정했다.
나는 마력의 눈동자를 통해 필사적으로 생로를 찾아 헤맸다.
짧은 순간. 마력의 폭풍 속에서 작은 틈을 발견했다.
어딘가 이상했다.
‘…의도했군.’
이건 대련이다. 압도적인 기세에 짓눌려 잊고 있었지만 공작은 나를 죽일 의도가 없었다.
뒤늦게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침과 동시에 나는 최대 길이로 뽑아낸 강기로 의도된 빈틈을 갈라내었고, 나를 짓누르는 압력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정말 간발의 차이로 검을 피해냈다.
쿠쿵-.
연무장이 반토막이 난다.
후폭풍이 나를 덮쳤다.
제자리에서 버텨내는 대신 흐름에 몸을 맡겼고,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았다.
“…하하하하하하!”
공작의 만면에 환한 미소가 깃든다.
“좋군, 정말 좋아!”
정말 즐거운 듯한 미소가 보인다.
처음 내게 대련을 제안했을 때, 분명 의도가 있었다. 카바락의 시체를 빌려달라. 그렇게 말했다. 나와의 대련과 일행의 지도 대련, 내 스킬을 몸에 적응시키기 위함은 분명 거래 조건에 불과했을 터다.
그러나 공작의 지금 모습은 일련의 일들을 무척이나 즐기는 것 같았다.
하기야 그는 전사. 그것도 그랜드 마스터에 이른 전사다. 그것에 미쳐있지 못하다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 한들 그랜드 마스터에 도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멀쩡히 살아있는 나와 일행들을 바라보며 공작이 말했다.
“정말, 수련자들의 성장 속도는 믿을 수가 없군. 시스템 보정이라고 했던가? 한 번쯤 그 보정을 받아보고 싶은 심정이야.”
잠시 웃음을 멈춘 공작이 말했다. 여전히 즐거운 기색이다.
“물론 그대들의 재능이나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네. 다만 궁금할 뿐이지. 분명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버텼어. 백작, 그대는 중간부터 정말 미숙한 오크 같았네. 많은 것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타고난 신체 능력과 기묘할 정도의 공격성으로 살아남는 모습이 특히 그랬지.”
“…솔직히, 저도 신기하기는 했습니다.”
“그런 경험은 자네도 처음인가? 하기야 그 실력이면 어디 가서 이렇게 일방적일 일도 거의 없었겠지.”
애초에 직감류 스킬은 귀하다. 이런 경험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운이 좋군. 어떻게 오크의 감각을 몸에 새길 수 있을지 막막했는데… 그 길을 찾은 듯해.”
내심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 물론 지도 대련도 계속할 생각이야. 내 제자인 야마모토도 함께 키울 생각인데, 괜찮겠나?”
“방법을 정하시는 것은 공작 각하께서 하실 일이죠.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고맙군. 분명 도움이 될 걸세. 후후.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즐거운 시간이 되겠어.”
험난한 수련이 예정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