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
연회 내내 랭커와 수련자의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만큼 나와 나서윤에게 가해지는 관심은 무척이나 컸고, 다가오는 귀족들도 많았다. 수련자들은 아예 다가오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귀족들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현재 내 관심은 그들보다는 아르테인 공작에게 맞춰져 있었다.
그의 가르침이나 그와의 대련이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 상황에 애초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는 귀족들의 접근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애슐란 백작이나 다이딘 대공 같은 무시할 수도, 적당히 상대할 수도 없는 이들은 어쩔 수 없었지만.
백작과는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고 대공과는 제법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공은 무공의 약점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무공을 창안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며 약점을 보완할 방법을 찾는 중이라는 말을 전해왔다.
내게 의견을 구하기는 했지만 내가 무공에 관심이 크게 없는 것은 슬슬 알려진 상태였기에 큰 도움을 줄 수는 없었다.
애초에 무공을 제공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길드원들 중 적극적으로 무공을 배운 이가 없을 지경이다.
“우리에게 무공을 배워간 이성훈은 잘 쓰고 있는 것 같던데….”
소식 자체는 들었다. 다른 두 명은 무공이 맞지 않아 실력이 떨어진 데 반해, 열화장을 배운 이성훈은 무공과의 상성이 정말 좋아서 이번 전쟁에서 나름 활약을 했다고 들었다.
훈장을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미래에 A급 용병에 다다를지도 모르는 인재라고 들었다.
성장세가 보통은 아니라고. 물론 평범한 수련자들 기준이었다.
그렇게 될 줄은 몰랐기에 내심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었지만, 본인 운이다. 이제는 관계도 없었고. 남은주와는 더이상의 접촉 시도도 없는 만큼 신경을 꺼버렸다.
“자신에게 맞는 무공을 찾을 방법을 알아보고 있어요. 아니면 새롭게 무공을 익힐 방법이라든지….”
“어딘가 길이 있을 겁니다.”
솔직한 말로 길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무난하게 연회가 지나갔고, 연회가 끝나고 황제의 초대를 받아 만찬을 즐긴 이후 나와 일행은 곧바로 아르테인 영지로 넘어갔다.
공작은 그런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태연하게 인사를 주고받은 나와 다르게 일행은 조금 긴장한 기색이었다.
하기야 그럴 만하다. 대전사에 닿지도 못한 카바락조차 이기지 못했던 일행이다. 저런 괴물과 정면으로 만나는 것이 마음 편할 리가 없었다.
비록 파벌이 다르다고는 하나 공작이 우리에게 해를 끼칠 이유도, 그럴 생각도 없을 터였다.
애초에 그런 짓을 한다면 황제가 가만히 있지도 않을 거고.
제국에는 두 명의 그랜드 마스터급 강자가 있었는데, 하나가 눈앞의 제국 제1검 아르테인 공작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최상급에 달한 마법사인 중앙 마탑의 마탑주였다.
황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자로서, 사실상 황실에 충성을 맹세한 이였다. 아무리 아르테인 공작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만만히 볼 수 없는 괴물이다.
애초에 그가 뒤도 생각지 않고 제 마음대로 움직이는 사람도 아니었고.
“대전사의 육체는 흥미롭더군.”
아르테인 공작은 짧은 시간 만에도 제법 많은 정보를 알아내었고, 약속대로 그것을 숨김없이 나와 공유했다.
“아쉽게도 육체가 미완성이더군. 하지만 분명 최상급 마스터와는 달랐다네.”
마력 회로에 대한 정보들, 인간과도 약간 다르고 평범한 네임드와도 분명 다른 한층 더 진화한 마력 회로를 조사하며 공작은 제법 만족한 모양이었다.
“인간과도 다르고, 나와도 다르더군.”
흥미로 가득한 공작의 얼굴. 그가 이것을 통해 당장의 이익을 보는 것은 아닐 거다. 아마 빨라도 다음 세대는 되어야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는 수련자처럼 시스템의 보정을 받고 있지 않으니까.
하지만 애초에 그것을 노렸으리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조사가 벌써 끝난 것도 아니었고.
조사 과정을 볼 것이냐는 공작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식사와 휴식할 방을 제공 받았고, 내일부터 곧바로 대련을 시작하기로 이야기를 마쳤다.
“…기대되네요. 근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하연 씨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원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는 하다. 수준 차이가 심하니 대련 자체가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지도 대련의 형식인 만큼 공작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비록 그가 수련자는 아니나 인간들 중 유일하게 검으로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존재다.
지도를 받아 나쁠 것은 없었다.
다만 나연이나 주하연 같은 경우에는 대응 방법 정도나 조금 겪어볼 수 있을 뿐 직접적인 조언을 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지구에서 싸우게 될 거인들은 하나같이 강자이니 대응 방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 정도는 될 겁니다.”
내 말에 나연과 주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바다는 무척이나 기대된다는 얼굴이었고 나서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유진은 조금 미묘한 표정이었다. 하기야 계통이 전혀 다르니까. 다만 그랜드 마스터가 된다면 쓸 수 있는, 진짜 무형검을 보게 되는 것만은 기대되는 모양이었다.
그에 반해 남은주는 조금 겁을 먹은 듯했다. 하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다음 날이 되어 연무장으로 안내받았을 때 공작은 자신의 제자인 야마모토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야마모토는 관전을 할 예정인 듯했다.
“식사와 잠자리는 괜찮았는가?”
“물론입니다. 좋은 대우에 감사드립니다.”
“그거 다행이로군.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하는 마당에 음식과 잠자리가 맞지 않으면 불편하지.”
그와 약속한 대련은 한 번이 아니다. 지도 대련이고 내 감각의 적응을 돕기로 한 만큼 짧아도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릴 터였다.
전쟁 중 얻은 오크의 감각은 상당히 다듬기는 했지만 아직 많이 모자라다. 애초에 길면 년 단위의 시간도 걸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것이다. 공작이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그게 영원하지는 않을 터. 이번 기회에 최대한 적응할 생각이었다.
“그럼 우선 실력을 봐야겠군. 백작, 자네부터 할 건가?”
“아뇨, 저희가 먼저 도전할 생각입니다.”
공작의 질문에 주하연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흐음… 뭐, 아무래도 좋겠지.”
공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행들이 즉시 진형을 갖춘다.
공작은 가볍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방어를 선택했는가? 아무래도 내가 공격을 해야 하겠군.”
카바락과의 전투 경험 때문인지 일행들은 방어 진형을 선택했다.
솔직한 말로 그나마 낫기는 하다만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저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주하연이 일행을 향해 버프와 축복을 걸어주는 사이 아르테인 공작은 천천히, 아주 여유롭게 일행을 향해 접근했다.
그러더니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든다. 그러자 도저히 그 작은 칼집에 들어있었다고는 믿을 수 없는, 거대한 대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티팩트인가?’
아공간 주머니와 비슷한 기능을 가진 칼집인 듯했다. 야마모토부터가 대검을 사용한다. 애초에 스타일을 바꿔버린 이유가 공작의 제자가 되어서인 만큼 공작의 본래 무기가 대검인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공작의 덩치도 작은 편은 아닌데, 대검은 그러한 공작보다도 거대했다. 날의 길이만 2m는 넘는 것 같았다. 어지간한 일반인은 제대로 들고 휘두르지도 못할, 거대한 크기. 잘못 휘둘렀다가는 그대로 손목이 부러질 것만 같았다.
검을 꺼낸 아르테인 공작은 곧바로 엄청난 속도로 가속했고 단숨에 일행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나서윤과 한바다가 즉시 반응했다. 단숨에 후열까지 뚫릴 수는 없었다.
“이정도는 반응하는군. 확실히 내 부족한 제자놈 보다는 나아.”
짧게 중얼거린 공작은 자신을 막아오는 나서윤과 한바다의 공격을 흘려버리고 반격했다.
“큭!”
공작의 검은 일반적인 한 손 검이 아닌 양손 대검이다. 한바다가 방패를 들어 방어했지만 그대로 뒤로 몇 미터나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저 크기의 검을 휘두르는데도 전혀 둔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당연하게도 힘 또한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바다가 공격당하기 무섭게 나서윤이 공작을 공격했고, 공작은 가볍게 나서윤의 두 개의 검을 피해내었다.
“빠르군. 아직은 중급인가? 상급이 머지않은 듯해.”
공작은 싸우는 와중에도 일행의 수준을 시험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성급….”
다시금 반격하려는 공작. 그 틈을 하유진이 파고들었다.
그러나 나도 파악할 수 있는 하유진의 은신이다. 정확하게는 불가능하지만 대강은 알아챌 수 있다. 그것은 공작이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콰득.
공작은 놀랍게도 맨손으로 하유진의 강기를 붙잡아 버렸다.
하유진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 지나간다. 하유진은 전혀 느끼지 못한 듯했지만 나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
‘손에 무형 강기를 둘렀군.’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 집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상급 마스터인 내가 이럴 지경인데 다른 일행들은 뻔했다.
한 손으로 하유진의 검을 붙잡고는 다른 한 손으로 대검을 휘둘러 다시 파고들려는 나서윤을 밀쳐낸다.
“사샤, 랜드 스피어!”
콰드득!
바닥에서 대지의 창이 솟아나 공작의 하체를 노린다.
그사이 밀려났던 한바다가 복귀해 왔다.
“하하. 좋군.”
일행의 대응이 마음에 든 것일까. 공작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사이 하유진이 또 다른 단검을 꺼내 들었다.
허공에서 단검을 뽑아내는 모습에 공작이 웃으며 말했다.
“인벤토리인가.”
그리고는 하유진의 팔을 잡은 채 그대로 바닥에 패대기쳐 버리며 발로 바닥을 힘껏 밟았다. 강대한 마력이 바닥을 구른 발끝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나연의 정령마법이 단숨에 박살 나고 접근하려던 한바다가 그 자리에서 멈춘다.
바닥에 내팽개쳐지던 하유진의 대응은 기민했다. 꺼낸 단검을 뒤쪽으로 날려버렸고 즉시 스킬을 사용했다.
전설급 아이템 틈새의 단검의 특수 효과.
단검이 있는 위치로 자신의 몸을 옮기는 것.
하유진은 단검의 주인으로 인정받은 상태였기에 그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덕분에 하유진은 무사히 몸을 빼낼 수 있었다.
흥미로운 스킬에 공작의 눈이 빛났다.
나는 그런 공작의 모습을 보며 그가 일행의 수준을 시험하기 위해 적당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가 마음먹었으면 처음 파고든 순간에 후열이 모조리 박살 나고 시작했을 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처음 움직임을 나서윤과 한바다가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무섭게 자신의 힘과 속도를 당시 정도로 고정했다.
아마 일행도 알 터다. 자신들이 시험받고 있다는 것 정도는. 그렇기 때문인지 일행들은 하나같이 최선을 다해 공작을 상대해 갔다.일행들의 틈으로 파고든 공작을 향해 갖가지 공격을 시도하며 그를 밀어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공작은 제자리에서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흘리고 튕겨내며 자리를 지켰다.
그사이 후열인 나연과 주하연이 조심스럽게 안전거리를 확보했고 남은주는 그런 둘을 보호하며 간간이 파고들려고 하는 공작을 막아갔다.
‘생각보다 잘 버티는군.’
확실히 카바락과 싸운 이후 실력이 성장했다.
공작은 지금의 대련이 무척이나 즐거운 듯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았고 제한했던 힘과 속도를 조금씩 올리기 시작했다.
약 20분 정도의 시간. 그게 일행의 한계였다.
어느새 공작의 속도는 나서윤조차 맞추기 힘들 정도로 빨라졌고 그 힘은 갖가지 스킬로 무장한 남은주가 뒤로 밀릴 정도가 되었다.
결국 일행은 채 30분을 버티지도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널브러진 일행을 향해 공작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수준이 굉장히 높군. 수련자라고 볼 수 없을 정도야. 내 제자는 그대들 중 한 명도 이기기 힘들 정도로군.”
나연이나 주하연이라면 모를까 확실히 남은주 정도만 되어도 어렵지 야마모토 정도는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을 터다.
야마모토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지만 뭐라 반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이는군. 그래도 대부분의 수련자들이 갖는 단점은 거의 없다시피 해. 백작, 그대가 직접 가르친 건가?”
“그렇습니다.”
“확실히 이들은 내가 봐 온 타 수련자와 다르군. 스킬에 과도하게 의지하지도 않고 스킬이 가르치는대로 딱딱하지도 않아.”
당연하다. 그런 방식의 단점은 너무나도 명백하니까.
“당장 조언해주고 싶은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우선 백작, 그대의 실력이 보고 싶군.”
공작은 즐겁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지목했고, 나는 곧바로 무기를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