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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26화 (226/317)

# 226

쾅! 쿵. 쩌저저적.

여전히 위력적인 아르테인 공작의 공격이 이어진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랐다. 약 두 달. 그 기간 동안 나는 아르테인 공작과 매일같이 대련을 했왔고, 그런 만큼 이제는 익숙해진 공격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르테인 공작의 공격이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간 훈련을 하며 상대에게 익숙해진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또 그쪽인가? 여전하군.”

아르테인 공작의 공격을 비끼듯 스치며 회피 겸 공격을 하려 하자 공작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뒤로 물러나며 검을 강하게 당겼다.

마치 당기는 톱질을 하듯 내가 있던 장소를 향해 대검이 빠르게 다가온다.

나는 경종을 울리는 직감의 말을 따라 몸을 바닥으로 굴리며 공격을 회피한다.

스각!

그리고는 잽싸게 하늘 밟기를 이용, 애매한 자세임에도 두 번 땅과 허공을 연속으로 차며 일어나기 무섭게 자세를 바로잡는 것을 포기하고 최대한 뒤로 물러난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엎어졌던 자리에 공작의 검이 그대로 틀어박힌다.

살떨리는 공방전. 대련이라고는 하나 조금만 집중이 흐트러진다면 언제든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작은 내 한계를 잘 알기에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빌어먹을 본능은 여전히 백작, 그대의 움직임을 단순화하는군. 오크들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야.”

“그래도 위기의 순간만 되면 알아서 수그러들더군요. 이제는 대부분 제어가 가능한 수준이 되었습니다.”

“스킬이라고는 해도 역시 완전한 오크의 감각을 그대가 갖지는 못한 모양이군. 아니, 스킬 때문이 아니라 역시 종의 차이 때문인가?”

‘단순히 경험의 차이일 수도 있지.’

오크들 같은 경우에는 성인만 되면 대개 전쟁에 투입된다. 그리고 생과 사를 지나는 전투를 거의 매일같이 해대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삶을 보내온다.

거기서 살아남고 강해진 이들만이 전사의 이름을 얻으며 마력을 다루고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오크의 감각을 얻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들이 몇 년간 치열한 실전을 겪으며 단련한 감각이 아닌, 갓 얻은 한참 부족한 감각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원천이 카바락이기는 하나 감각을 베꼈을 뿐 그 경험을 가져온 것은 아니니까.

물론 가설 중 하나일 뿐이다.

공작의 말대로 시스템의 한계 내지는 종이 달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그래도 좋은 무기를 얻은 것은 사실이니까요. 통제만 할 수 있다면 변화야 제가 넣으면 그만입니다.”

“그건 그렇지. 요즘 그 가능성을 보이고 있긴 하고.”

공작은 내 말을 긍정했다.

지난 2개월간 훈련해 온 성과라고 볼 수 있었다. 본능을 조절하는 것. 더 나아가 카바락이 사용했던 강기의 길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기술을 체득하는 것.

후자는 아직 멀었지만 본능의 제어라면 최근 거의 가능해져 가고 있었다. 방금처럼 한창 전투 중일 때 제멋대로 튀어 나가기는 하지만 역으로 위기가 다가오는 즉시 수그러들어 버리니까. 본능의 자신감을 죽이는 작업이라고 할까. 본능대로 움직이면 죽는다는 사실을 각인시킨다고 볼 수 있었다.

본능의 감각을 선택지 중 하나로 격하시키는 것. 이렇게 된다면 카바락의 검술을 완벽하게 체득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뭐, 검술을 익히려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경지를 올리기 위해서였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내 본능은 카바락에 비하면 너무 떨어졌고, 최대한 성장한다고 해도 너무 오래 걸리거나 잠재력이 부족할 가능성마저 있었다.

레벨도 벌써 3차 전직을 한 상황. 더는 중층에서 잠재력을 확보할 방법이 없었다. 이제는 시스템이 제공하는 것에 한해서는 거의 완성에 가까운 상태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다.

내가 회귀 초기 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위치다. 모습도 조금 달라졌고. 중간에 성녀 쪽 보상을 포기한 것이 원인이었다.

‘그래도 오히려 더 나은 점도 있으니까.’

애초에 나는 내가 이정도까지 강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능력치야 순수 능력치를 기준으로 어떻게 해서든 90 후반대를 확보할 생각이었고 거기에 아이템을 더하는 정도가 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스킬도 어마어마하게 확보한 상황에 휘하의 길드원들 수준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상태다. 내가 강해진 만큼 더 높은 장악력을 바탕으로 길드를 키울 수 있었던 덕분이다. 아마 이 정도로 강하지 못했다면 지금 수준의 길드 장악은 힘들었을 터다. 아마 일행의 도움을 조금 많이 받았어야 했을 거다.

“일행들의 성장도 그렇고, 역시 수련자들은 미쳤군. 아니, 가이아 길드원들이 보통이 아닌 건가? 타 수련자들 또한 제국민들에 비해 빠르게 강해지고는 있지만 한계가 명확한 경우가 많았으니 말이야. 어떻게 이런 괴물들만 모아 놓았는지….”

신의 안배일 가능성이 높다고 공작이 중얼거렸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기는 하지.’

애초에 관리자의 눈동자를 준 것부터가 이들이 말하는 신이니까. 행동이야 내가 했지만.

“최근 나서윤 경이 상급 마스터가 되었다고 들었네. 축하한다고 전해주었으면 하는군.”

“서윤이가 기뻐할 겁니다.”

내 말에 공작이 가볍게 웃음 지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오크의 조사가 거의 끝나간다고 하더군. 덕분에 정말 샅샅이 확인해 볼 수 있었어. 고맙네.”

“그만큼 많이 받아서 괜찮습니다.”

나는 중간중간 카바락의 시체를 연구하는 공작 쪽 사람들을 만났고, 여러 가지를 확인해 본 결과 이쪽에 완전히 맡기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카바락의 마력 회로와 신체를 며칠에 걸쳐 확인이 끝나자 나는 공작에게 더 자세한 조사를 위한 해부를 허가했다. 공작은 설마 그렇게 해 줄 줄은 몰랐는지 무척 기뻐했었다. 물론 자료는 당연히 공유 받았다.

그 덕분인지 평소에도 우리 훈련을 무척 잘 봐주던 공작이 이제는 열과 성을 다해 나와 일행을 돕기 시작했다.

그 호의의 대가 중 하나로 일행은 최근 다른 장소에서 특별한 훈련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르테인 공작가의 기사단이 훈련하는 연무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막아! 뚫리지 마라!”

“어쌔신을 조심해!”

일행은 한참 훈련 중이었다.

“사샤! 앞! 앞!”

“나도 알아!”

“은주야, 버텨! 이번 돌격만 막을 수 있으면…!”

기사들과의 대련. 공작이 호의를 베푼 결과였다.

일행들의 모습은 두 달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시간을 내어 중간에 대신전까지 이동해 3차 전직까지 끝마친 상황이다. 본래라면 아무 신전을 가더라도 상관은 없었지만 남은주와 나서윤, 한바다가 문제였다.

둘은 성자와 성녀를 위한 수호 기사고 남은주는 성녀인 만큼 교황 측은 나 때처럼 3차 전직을 대신전에서 했으면 했고, 일행은 거절하지 않았다.

나처럼 준신화급 직업을 얻은 것은 둘이었다. 주하연과 남은주. 주하연은 나라는 예시가 있었기에 어쩌면 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남은주는 아니었다. 좋은 일이기는 했지만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얼떨떨했던 것은 사실이었고, 그런 내 표정을 보고는 일행이 조금 웃었던 헤프닝도 있었다.

가장 극적인 변화를 얻은 것은 한바다였다.

‘마력의 바다… 라고 했던가?’

3차 전직을 마치며 받은 스킬. 레어급 스킬에 불과했지만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한바다 말로는 자신의 고유 스킬과 연합해 전설급 이상의 효율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을 정도다.

‘자신의 마력에 한해 저장 및 회수가 가능하다고 했던가?’

물론 100퍼센트는 아니다. 효율은 떨어지는 편이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이대로 한바다의 능력치와 스킬의 숙련도가 성장한다면 마력에 한해서는 나보다 더 지속력이 좋아질지도 모르겠다. 잘만 발전하면 호신강기를 남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본인은 꿈만 같은 이야기라고 했지만.

게다가 한바다는 그간 비어있던 스킬 슬롯을 여기서 왕창 채우는 중이었다.

공작은 일행에 한해 일부 공작가의 기술들을 공개했다. 야마모토가 배웠던 공작가의 비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직속 기사단이 배우는 무기술과 체술이다. 그 가치는 어지간한 가문의 비전보다 나으면 나았지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물론 외부유출은 금지되었다. 상당한 신뢰를 보여준 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카바락의 가치가 높았던 덕분이다.

조사를 하면 할수록 이건 다시는 구하기 힘든 육체라고 했던가?

최상급 마스터는 분명 넘었지만 그랜드 마스터에는 조금 못 미치는, 경지에 맞게 변화가 되던 와중 죽은 이다. 다시 구하기 힘들만 하기는 했다.

나는 일행의 대련 모습을 바라보았다.

기사들은 그간 하유진에게 당한 것들이 많았는지 최대한 경계를 하며 일행들에게 달려들었고, 일행은 어떻게든 버텨내며 상대의 돌격을 무마했다.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진다. 결과는 일행들의 승리였다. 그렇게 경계하던 하유진이 남은주가 무너지려는 순간을 정확하게 잡아채 방해했던 것. 하유진 뿐만은 아니다. 일행 모두 확실히 그간의 대련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은 것이 눈에 보였다. 대부분 약자들을 상대로 했던 전투와는 다르게 기사들과의 대련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상대들이었고 보기 드물게 단체전까지 제대로 연습한 이들이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십 년 이상 합을 맞춘 기사들과의 전투는 돈을 주고도 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저들 사이에는 야마모토가 끼어 있기는 했지만 승부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다들 고생했다.”

“오빠?”

“아, 신후 씨. 보셨어요?”

“형! 이번에 또 이겼어요! 4연승이에요!”

“어쩐 일이에요, 신후 오빠?”

나서윤이 상급 마스터에 이른 이후 일행은 최근 대련에서 연승 중이었다. 기사들도 만만하지는 않았지만 일행의 성장 속도를 제대로 따라오지는 못했다.

‘한바다도 상급을 앞두고 있다고 했었지….’

한바다마저 상급 마스터에 이른다면 어지간해서는 기사들이 일행을 이기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쯤 되면 대련의 의미가 없어질 테니 기사들의 숫자가 더 늘어나야 하지 않을까. 나서윤이 워낙 빨라서 그렇지 한바다 또한 재능을 꽃피우고 있었다. 사실 이번 훈련에서 가장 빠르게, 많이 성장하고 있는 것은 한바다였다.

“오늘은 내 쪽이 일찍 끝나서.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아, 저희야 좋죠.”

“하긴 요새는 바빴으니까. 전쟁이 끝났는데 어째 더 바빠진 것 같아.”

나서윤의 말에 일행들이 쓴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그만큼 성장하고 있으니까.”

일행들과 함께 식사를 즐기며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점점 스킬의 조율이 나아지고 있어서, 공작가에서 지내는 기간이 아주 길지만은 않을 겁니다.”

“…하기야 그거 조율하는 것이랑 공작님과 대련 경험을 쌓는 것이 조건이었죠?”

공작의 호의를 보이고는 있지만 그게 영원히 이어질 수는 없었다. 아마 내가 완전히 스킬을 조율하기 시작하면 떨어질 수밖에 없을 터다.

“아쉽다. 여기만큼 좋은 훈련 장소도 없는데.”

“맞아요. 대련 상대도 널렸고, 수준도 높고, 게다가 서로 의견 교환도 엄청 자유롭고.”

“그래도 당장 끝나는 건 아니라고 하니,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자. 신후 님이 주신 기회인데, 최대한 이용해 먹어야지.”

“그렇게 언니도 상급 마스터 찍으시려고요?”

남은주가 한바다를 조금 놀리자 한바다가 헛기침을 내뱉는다.

“뭐, 목표이기는 해.”

한바다는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나서윤이 이후 강해진 것을 보면서 나름 탐나기는 한 모양이다.

“뭐, 욕심이 있는 것은 좋습니다. 너무 무리만 하지 마세요.”

“…신후 님이 하실 말씀은 아닌 거 같지만….”

“뭐, 저는 상대가 그랜드 마스터라 힘 조절 잘 해 줄 겁니다.”

나는 잠시 식사를 멈추고는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뭐, 이쪽 일이 끝나면 다음에는 엘프의 숲으로 한 번 가볼 예정입니다.”

“…엘프의 숲.”

“리더님아, 드디어 가는 거야?”

사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들르기는 해야지. 다들 아시겠지만, 엘프의 숲에는….”

“상층으로 가기 위한 길이 있다고 했었죠.”

“네, 맞습니다.”

정보 자체는 얻은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아직 중층에서도 부족한 우리에게 상층은 너무 이르기에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

“당장 갈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이제 슬슬 정보 정도는 모아야 할 듯해서요. 그리고….”

나는 나연을 바라보았다.

“나연이에게도 필요한 일이기도 하구요.”

3차 전직을 한 나연.

그녀의 정령 사샤는 아직도 중급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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