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상점스킬-4화 (4/200)

4. 0레벨 플레이어-4

[상점]

Lv.1

잠겨 있던 상점이, 레벨 1이라는 표시와 함께 열려 있었다.

상태 창은 기본적으로 투명하다. 눈앞에 글과 숫자가 떠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상점 창은 진한 파란색이었다.

진원은 불편한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 가며 목록들을 확인해 보았다.

‘장비와 스킬, 나머지는 ??으로 표기되어 있다.’

장비와 스킬 항목을 눌러서 들어가 보았다.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아니, 이럴 거면 도대체 왜 열어 준 거야?”

실망감에 괜히 투덜댔다.

띠링.

[선물함에 패키지 상품이 도착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패키지?’

갑작스럽게 상품이 추가되었다는 메시지에 선물함을 열어 보았다.

<레벨 0플레이어를 위한 스타터 팩>

낡아빠진 글러브

하급 MP 회복 포션 10개

하급 HP 회복 포션 10개

하급 스킬 북 : 마구

엘릭서

‘딱 봐도 안 좋아 보이는 것투성이다.’

진원은 그것들을 대충 읽고 선물함을 닫으려고 했다.

“어?”

마지막 항목에 있는 ‘엘릭서’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엘릭서]

1. HP과 MP를 모두 회복시킵니다.

2. 신체의 모든 질병과 해로운 효과를 제거하며 플레이어를 최상의 몸 상태로 만들어 줍니다.

엘릭서의 정보를 읽고 침대 옆 탁자에 놓여있는 스마트폰을 집은 뒤, 어플을 켜 플레이어 거래소에 들어갔다.

“엘릭서 검색.”

거래소에 등록된 엘릭서는 단 두 개였다.

‘와……. 엘릭서가 이렇게 비싸다고?’

꿀꺽.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558억…….”

세상이 뒤바뀌고, 자신이 플레이어 중에서 0레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던전이니 아이템이니 아무 관심도 없었다. 0레벨에 어깨까지 다친 플레이어를 어느 누가 데려가려고 할까. 짐꾼조차 운이 좋아야 가능할 수준이었다.

‘이걸 거래소에 등록해서 판매한다면…….’

밀린 빚을 갚고도 넘치는 금액. 평생 돈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일이 편하게 진행될 리가 없다.

등급도 없는 플레이어가 엘릭서를 구했다? 소문은 금세 퍼질 것이며 악한 마음을 품은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어떤 짓을 당할지 모른다.

또한, 어쩌다가 일이 잘 풀려서 돈방석에 앉는다 해도, 남은 삶은 무료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겠지. 요즘 사회가 얼마나 각박하고 무서운데.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

‘내가 마시고, 원래의 몸 상태로 회복해서 강해진다.’

마운드 위에 서서 투구할 때의 그 열정이 샘솟기 시작했다. 레벨을 올리고 강해진다면, 돈이야 자동으로 뒤따라오겠지.

“선물 수락.”

수락 버튼을 누르자 무릎 위로 예쁘게 포장된 상자가 툭 하고 떨어졌다. 글러브와 스킬 북이 들어 있어서 그런지 크기가 컸다.

한 손으로 빨간 리본을 풀고, 상자를 열었다.

이어서 글러브와 스킬 북, 물약들을 꺼냈다.

엘릭서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살펴보니 작게 포장된 상자 1개가 안에 추가로 들어 있었다.

리본이 아닌 쇠사슬로 칭칭 감겨 있었고, 중앙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아마 이게 엘릭서겠지. 열쇠는 어디에 있지?’

상자를 들어 뒤집어 가며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열쇠를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선물이라면서 열지도 못하게 해 놨네, 치사하게.”

진원은 툴툴대며 빈 선물 박스를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었다.

띠링.

[특별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그때, 귓가에 메시지의 알림 음이 들렸다.

[플레이어가 되기 위한 첫걸음-1]

투구 : 0/300회

달리기 : 0/30km

보상 1 .레벨+1

보상 2 .엘릭서 전용 열쇠

보상 3 .중급 스킬 북 : 불굴

# 제한 시간: 5일

“뭐냐. 난 플레이어도 아니냐?”

마음 같아선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하루 만에 보란 듯이 퀘스트를 완료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기였다. 몸을 일으키려다 어깨의 통증을 느끼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2일 동안 좀 더 몸을 회복하자. 그리고 하루에 투구 100회, 달리기 10km면 3일차에 요구 조건을 채울 수 있다.

‘3일? 아니, 2일 만에 해치워 주지.’

**

진원이 입원해 있는 병실이 오늘따라 유난히 시끄럽다.

“저기 환자분! 아직 운동하시면 안 된다니까 그러네.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으세요?”

간호사는 병실에서 진원과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책임은 제가 집니다.”

“하아……. 앞으로 일주일 정도면 간단한 운동을 할 수 있으세요. 굳이 왜 지금 하려고 해요?”

“일주일 후면 제 인생은 망해요. 무조건 오늘부터 해야 됩니다. 지장이라도 찍을까요?”

환자를 설득하려고 한 지 어언 30분. 이렇게 고집불통인 남자는 처음이었다.

도대체 운동이 뭐길래 저런 비장한 표정으로 말하는 거지?

“알겠어요.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대신! 상처가 크게 벌어지거나 쓰러지시면 아예 강제로 몸을 묶어 버릴 거예요.”

간호사는 진원의 완강한 태도에 결국 두 손을 들었다.

“네. 그럼.”

눈앞의 환자는 짧은 대답을 남기고 운동화를 신은 뒤, 유유히 병실을 빠져나갔다.

“아, 머리 아파. 환자분이 쓰러지면 선생님한테 혼나는 건 난데…….”

하지만 이내 신경을 끄기로 했다. 자신이 담당해야 할 환자는 아직도 많았으므로.

**

“헉. 헉.”

병원 근처 공원을 찾은 진원은 외곽으로 계속해서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제길. 몸을 너무 쉬었어.’

어깨를 다친 후로는 운동은커녕 가벼운 산책조차 거의 나가질 않았다. 체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했다.

달리기 : 2/30km

“아오, 원래는 5km 정도는 그냥 달려야 하는데…….”

숨이 너무 차올라 근처 벤치에 앉은 채로 휴식을 취했다.

중간에 힘들어서 계속 걸어봤지만,//뛰는 대신 걸어 봤지만, 숫자는 올라가지 않았다.

잔꾀는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제대로 해 준다. 전 황제 투수의 의지가 뭔지 보여 주지.’

그렇게 10시간이 지났다.

“히엑, 히엑, 후욱.”

달리기 : 18/30km

반나절 만에 절반 이상의 목표치를 완료했다. 진원의 온몸은 비 맞은 것처럼 흠뻑 젖어있었다.

몰려오는 피로감에 그대로 공원 길바닥에 쓰러지듯이 누웠다.

“거봐라. 하려면 할 수 있잖냐.”

괜히 뿌듯했다. 목표치가 생기고, 눈앞에 보상이 있으니 더욱 의욕이 불타올랐다.

“저기……. 괜찮으세요?”

머리 위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원이 땀에 전 채로 길가에 누워 있으니 오해할 만도 했다.

“아……. 네. 괜찮아요. 이대로 쉬면 됩니다.”

트레이닝복을 입은 것을 보니 공원에 운동하러 나온 듯했다. 밤이라 자세히 얼굴은 안 보였다.

그러나 날씬한 몸매와 함께 고운 목소리. 그리고 어깨까지 내려온 붉은색의 머리카락을 보면 외모는 딱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이거 좀 드세요.”

여성은 가방에서 스포츠 음료를 꺼내 진원에게 건네주었다.

사실 한참 전부터 갈증을 느끼긴 했다. 그런데 따로 챙겨 온 물도 없고 해서 그냥 무식하게 달리고만 있었다.

그런데 눈앞의 스포츠 음료를 보니 괜히 갈증이 더 심해졌다.

‘아, 제길. 일단 마시고 보자.’

진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스포츠 음료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그러고는 500ml는 되는 음료수를 눈 깜짝할 새에 다 마셔 버렸다.

“저기,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서…….”

“괜찮아요. 하나 더 있거든요. 그럼.”

눈앞에 여분의 스포츠 음료를 흔들어 보이며 가볍게 웃은 여성은 그대로 진원을 지나쳐 갔다.

‘착한 분이구나. 나중에 만나면 꼭 보답해야지.’

스포츠 음료의 기운도 얻었겠다, 밤을 새워서라도 목표치를 이루기 위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달리기 : 30/30km (완료)

투구 : 0/300회

결국 진원은 그날 밤 내내 달리기만 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는 30km 완주.

‘이제 남은 건…… 투구 300회.’

어깨만 멀쩡했으면 투구 300회는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달리기보다는 훨씬 쉬운 수준이었다.

스타터 팩으로 받은 글러브를 들고 나가려 했지만, 우완투수용인 것을 보고 이내 내려놓는다.

‘내 어깨가 낫는 게 당연하다는 건가.’

그리고 스마트폰을 들어 전화를 건다.

뚜르르- 뚜르르-.

[뭐야. 네가 웬일이야?]

전화를 받은 영호는 의외라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오늘 연습 없지? 나 공 던지는 거 좀 받아 주라. 300개면 돼.”

[뭐? 야. 너 어깨 엄청 크게 다쳤다면서. 내가 병문안 가려고 했는데, 훈련이 있어서.]

“나 쌩쌩하다. 걱정 마라. 오늘은 시간 되냐? 병원 안에만 있으려니 답답해서 그런다. 그리고 왼손으로 던질 거야. 잠깐 받아 주기만 해라. 오늘 꼭 던져야 한다.”

[……그래, 오늘은 된다. 오래는 안 되지만. 그럼 있다가 보자.]

갑작스러운 진원의 부탁에도 영호는 별말 없이 알겠다고 대답한 후 통화를 끝냈다.

**

공원 앞의 두 남성은 2시간째 아무 말도 없이 서로 공만 주고받는 중이다.

캐치볼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그런 공.

투구 : 234/300회

“그건 그렇고, 고맙다, 나와 줘서. 혼자서 공 던지고 줍고 하면 하루 종일 걸릴 거 같아서.”

진원은 그렇게 영호에게 첫 말문을 열었다.

“겨우 이 정도 가지고 무슨. 근데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공 받아 달래? 너 그 뒤로 야구는커녕 체력 유지도 안 한 것 같더만.”

둘은 얘기를 하면서도, 공은 계속해서 주고받는다.

“그냥. 이제 슬슬 건강 좀 챙기려고. 그건 그렇고, 너 요새도 타율 괜찮더라? 4번 자리 유지 중인 거 보면.”

“남들보다 열심히 해서 그렇지 뭐.”

영호는 그 말을 남 얘기 듣는 것처럼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그게 대단한 거야, 짜샤.”

영호는 진원의 공을 받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다시 야구를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왼손으로 다시 해 보자고 하면 내가 너무한 거겠지.’

투구 : 300/300회 (완료)

띠링.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됐다!”

마침내 투구 300회를 완료하니 자신의 귓가에 알림 음이 들려왔다.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기쁨에 소리친 것도 잠시,

[플레이어가 되기 위한 첫걸음-2]

“에라이, 망할.”

아직 퀘스트가 끝나지 않은 것을 보자 김이 빠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