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0레벨 플레이어-5
“왜? 내가 뭘 잘못했냐?”
영호는 자신이 공을 잘못 던졌나 싶어 진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그냥 혼잣말이다. 이제 투구 300회 됐다. 오랜만에 하니 힘드네. 고맙다.”
“그래? 그래도 안 쉬고 계속 던지는 걸 보니까 근성은 안 죽었네. 음, 2시간 지났다. 나 이제 가 봐야겠다.”
영호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왼손에 낀 글러브를 벗었다.
“그러냐. 바쁜 와중에도 고맙다. 나중에 밥이라도 살게.”
“그래.”
아무 말 없이 공을 받아 준 영호가 내심 고마웠다. 영호는 천천히 뛰면서 공원을 나갔다.
진원은 영호가 간 것을 본 후, 고개를 들어 새롭게 갱신된 퀘스트 내용을 확인했다.
[플레이어가 되기 위한 첫걸음-2]
점핑 스쿼트 : 0/500회
팔 벌려 높이뛰기 : 0/500회
크런치 : 0/500회
# 제한 시간: 3일
‘첫 번째도 그렇고, 두 번째도 체력 관련 퀘스트라니.’
그만큼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체력이라는 것일까.
하긴, 엘릭서 하나만 해도 말도 안 되는 보상인데 퀘스트가 그렇게 쉬울 리가 없지.
“까짓것 빠르게 끝내야지.”
밤은 이미 깊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엘릭서를 얻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좀 전의 퀘스트 수행으로 피로감이 생겼지만 그만큼 오기도 생겼다.
“그럼 점핑 스쿼트부터 해 볼까.”
그렇게 공원의 밤은 깊어져 갔다.
“헉, 헉, 후욱-.”
다음 날 아침, 병실을 지나다니던 간호사는 병실 안에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것을 듣고 환자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나 싶어 빠르게 문을 열었다.
드르륵!
“김진원 씨, 어디 아프신가요? 어?”
간호사가 문을 열고 처음 본 것은 침대 앞에서 상의를 벗고 팔 벌려 높이뛰기를 하는 진원의 등이었다.
어깨 쪽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병실에 다른 사람이 있었으면 민폐였겠지만, 피닉스 길드가 미리 지불해 준 1인실을 사용 중이라 큰 문제는 없었다.
진원은 병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아, 괜찮아요. 운동 좀 하고 있었죠.”
얼마나 운동을 했는지 온몸에 땀이 맺혀 있었다.
“그러다 상처 벌어져요. 도대체 어떻게 쉬지를 않으세요?
간호사는 그런 진원을 질렸다는 듯이 보며 말했다.
“저기요, 혹시 매트 같은 것 있나요? 바닥에다가 깔 만한 거요.”
점핑 스쿼트 : 500/500회 (완료)
팔 벌려 높이뛰기 : 500/500회 (완료)
진원은 퀘스트를 잠깐 확인 후, 간호사의 말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매트를 찾았다. 크런치를 하기 위해서였다.
“매트요? 매트는 또 왜요? 환자용 매트 말고는 없어요.”
간호사는 또 이 환자가 뭘 하려나 싶어 눈을 가늘게 뜨고 되물었다.
“아, 다른 운동을 좀 하려고요.”
“하아……. 진원 씨, 운동 중독 증상이 있으신 것 같은데 따로 상담받으실래요?”
결국 진원은 간호사를 피해 병원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 도착한 진원은 주위를 둘러보고, 가장 안쪽에 있는 벤치에 누워 크런치 자세를 잡았다. 두 팔은 교차해 가슴으로 당긴다.
‘민폐니까 최대한 빠르게 끝내자.’
연속된 퀘스트로 인해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최대한 이를 악물고 크런치를 시작했다.
크런치 : 202/500회
“후욱- 후우-.”
복근이 찢어질 듯 비명을 질렀지만 진원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진행했다.
공원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런 진원을 한 번씩 쳐다봤다.
‘매트 좀 살걸 그랬나. 괜히 아프네.’
이제 남은 건 300개가량. 이것만 끝내면 엘릭서가 손에 들어온다는 기대감에 더더욱 가속을 붙여 퀘스트를 빠르게 진행했다.
크런치 : 500/500회 (완료)
띠링.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을 수령하시겠습니까?
Y/N
“드디어 끝났다!”
공원에서 퀘스트를 끝낸 후, 진원은 뛰듯이 병실로 돌아와 바로 퀘스트 보상을 수령했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퀘스트를 클리어함과 동시에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들렸다.
[엘릭서 전용 열쇠를 획득했습니다.]
[중급 스킬 북: 불굴을 획득했습니다.]
[플레이어의 레벨이 1이 되어 HP와 MP가 표시됩니다.]
연이어 퀘스트 보상이 수령되었다는 메시지가 출력되며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다.
‘내가 0레벨이라서 HP와 MP가 상태 창에 나타나지 않았던 건가.’
진원은 일단 제일먼저 엘릭서 전용 열쇠로 엘릭서가 들어 있는 상자의 자물쇠를 열고, 복잡하게 얽혀 있던 사슬을 풀었다.
상자를 열어 보니, 엄지와 검지로도 잡히는, 보랏빛을 띠는 아주 작은 크기의 물약이 있었다.
엘릭서를 들어 올려 뚜껑을 열고, 바로 입으로 털어 넣었다.
[엘릭서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시원한 물이 온몸으로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제발 어깨가 움직이기를 바라면서, 오른손을 서서히 위로 들어 올려 보았다.
‘올라간다. 끝까지 올라간다!’
본래라면 조금만 올려도 안 올라가던 팔이, 만세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높게 올라갔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귓가에 추가로 메시지가 들려왔다.
[엘릭서의 잔여 효과가 많이 남아, 추가로 이로운 효과가 적용됩니다.]
“이로운 효과라고?”
자신의 혼잣말이 끝나기도 전에, 몸에서 뚜두둑 하는 소리가 나더니 골격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두드득- 뚜드득-.
밤에 들으면 소름 돋는 소리였겠지만, 이상하리만치 통증은 1도 없었다.
그렇게 요란한 소리는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없어졌다. 그 후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싶어 거울을 찾았다.
“여긴 거울이 없네.”
진원은 병실 문을 열고 화장실을 찾아 들어갔다.
세면대 위에 있는 거울을 보니, 눈앞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서 있는 것 같아 흠칫했다.
‘키가…… 5cm는 컸다. 어깨도 더 넓어지고.’
야구부였던 진원의 키는 176cm 정도. 거기다 운동을 꾸준히 했지만 이렇다 할 몸의 변화는 딱히 없었다.
거기다가 운동을 그만둔 후에는 군살이 붙었었다.
“558억이나 하는 이유가 있었네.”
그런데 엘릭서를 마시니 어깨가 완치된 것뿐만 아니라 몸의 형태가 완전히 변했다.
골격과 근육이 딱 필요한 곳에 정확히 안착해 있는 느낌이다.
‘다음은…… 스킬 북.’
스타터 팩에서 얻은 마구와 함께 익혔다.
띠링.
[스킬: 마구]를 습득하시겠습니까? Y/N
스킬 북에 손을 대자 메시지가 출력되고, 불굴과 함께 Yes를 눌렀다.
[스킬:마구를 습득했습니다!]
[스킬:불굴을 습득했습니다!]
스킬을 습득했다는 알림이 들렸다.
그 후, 확인을 위해 상태창을 불러왔다.
<플레이어>
이름:김진원
레벨:1
직업:미정
등급:미정
업적:없음
칭호:없음
HP:200
MP:0
[스텟]
근력:10 민첩:15 체력:20 마력:0 ??:0
미분배 포인트:5
# 플레이어 중 유일하게 상점 기능이 개방됩니다.
[스킬]
마구 Lv.1
불굴 Lv.1
미분배 포인트:1
[상점]
Lv.1
어깨 부상으로 인해 낮아졌던 근력이, 다시 돌아와 있었다. 마력이 0이라 그런지 MP가 0이었다. 이어서 바로 스킬을 확인해 보았다.
[마구 Lv.1]
액티브 스킬.
마력이 담긴 구를 생성해 날립니다.
자신이 직접 날릴 시, 플레이어의 기량에 따라 추가 대미지가 적용됩니다. (MP:10 생성 개수:1개)
[불굴 Lv.1]
패시브 스킬.
자신의 HP가 40퍼센트 이하로 줄어들면, 불굴 효과가 적용되어 3초 동안 피해 면역 상태가 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1일)
스타터 팩에 들어 있던 마구는 하급 스킬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런데 스킬 북이 이렇게 흔했었나? 분명히 상당한 가격일 텐데.’
스마트폰으로 거래소에 ‘스킬 북’이라고 검색해 보았다.
[검색 결과 없음]
이번엔 다시 ‘스킬’이라고 검색해 봤다.
“아니, 이렇게 비싸다고? 하급 스킬이?”
거래소에 등록된 것은 스킬 북이 아닌, 알약이었다. 우선 형태 자체가 달랐다.
그리고 하급 스킬이 기본 100억대를 넘기고 있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상점 이용이라는 특전, 생각보다 엄청나다. 상점 기능이 처음에는 닫혀 있었고, 그것이 몇 년 동안 잠긴 채 그대로니 쓸모없는 것인 줄만 알았다.
거기다가 상점에도 레벨이 있다는 것을 보면,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뜻이겠지.
진원은 일단 마력 스텟부터 올리기로 하고 미분배 포인트를 전부 마력에 사용했다.
마력 : 5
MP: 50
‘마력 1에 MP 10이라. 마구 5번이면 끝이네. 한동안은 마력 스텟에 올인이다.’
??로 표기된 스텟이 뭔지 궁금했지만, 이내 생각을 지웠다. 현재 자신의 마력 스텟이 너무나도 낮았기 때문이다.
‘아, 일단 좀 자자. 피곤해 죽겠다.’
오늘 많은 변화를 겪은 진원은 갑작스럽게 잠이 몰려와 병원 침대에 그대로 쓰러지듯이 누워 잠들었다.
**
다음 날 아침, 현재 진원은 원무과에서 퇴원 수속을 하는 중이다.
몸도 다 나았겠다, 병원에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었다.
“우와, 저 사람 몸 좀 봐.”
“몸 진짜 좋다. 키도 되게 커. 모델 아냐?”
젊은 간호사들이나, 지나가던 여성들은 꼭 한 번씩 진원을 쳐다보곤 했다.
엘릭서의 잔여 효과로 인해 체격이나 몸의 골격이 보기 좋게 바뀐 영향인 듯했다.
하긴, 누가 500억 이상을 주고 단순한 육체적인 상처만 치유하려고 하겠는가.
‘다 들린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네.’
특히 진원을 담당했던 간호사는 아까부터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김진원 씨, 정말 본인 맞으세요?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달라지지? 어깨가 굉장히 넓어졌네요?”
간호사는 진원의 변화에 놀라워하며 팔을 들어 어깨를 만졌다.
“네. 맞아요. 플레이어가 다 그렇죠 뭐.”
원래라면 말도 안 되는 현상이지만 플레이어라는 단어로 모든 납득이 되는 세상.
진원은 지나가던 여성들의 시선이 자꾸만 자신에게 쏠리자 슬슬 귀찮음을 느껴 퇴원 수속을 마치고 빠르게 병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E급 던전 입장권을 구입하기 위해 플레이어 협회로 향했다.
어깨도 완전히 회복했겠다, 혼자서 E급 던전 정도는 괜찮겠지.
한시라도 빨리 집안의 빚을 없애고 싶었다. E급 던전의 입장권 가격은 대략 200만 원. 던전 입장권은 플레이어 협회에서만 구입할 수 있었다.
직접 협회에 방문하여 입장권을 구입하게 하는 것으로 일반인이 던전에 입장하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확보했다.
당연히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기 싫어 무단으로 들어가려는 플레이어들도 많았다.
그 때문에 정부와 협회에서 감시 업무를 담당하는 감시원들을 꾸준히 확보했다.
“입장권 구매하시려고요? 이쪽에 손을 올려놓으세요.”
진원은 플레이어 협회 직원의 안내에 따라서 간이 측정기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잠시 후, 흰색 불이 들어왔다.
그것은 자신이 플레이어라는 증거였다. 간이 측정기로 알 수 있는 것은 딱 이 정도였다.
“어떤 입장권을 구매하시겠어요?”
“E급 던전 하나 주세요.”
협회 직원은 200만 원이 결재된 것을 확인한 뒤 별다른 말없이 입장권을 내주었다.
혼자서 E급 던전에 들어가느냐는 질문 같은 것은 없었다.
보통 E급 던전은 1레벨 플레이어 4명이 구성된 파티로 들어가는 것이 정석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혼자서도 충분히 클리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여기 있습니다.”
그렇게 진원은 입장권을 받아 들고 곧장 던전으로 향했다.
플레이어로서의 첫 던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