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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은 만렙이다-25화 (25/200)

< 메인 시나리오의 시작 >

길성현의 활약은 대단한 환호를 받았다.

17살의 후보생. 그것도 마법의 천재가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마법을 두 배로 상승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역시 주인공 급 악역.

하지만 한성은 많은 생각을 해야 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플레이어가 길성현을 아군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했다. 물론, 주야장천 끈기 있게 노력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어차피 한 별은 진 훈에게 피해만 안 주면 대충 선(善)이고 진 훈이야 옆에서 얼굴만 잘 내밀어도 적은 안 되니까. 그런 식으로 착한 캐릭터만 끌어모아도 이 세상의 클리어는 가능하다.

문제는.

그들은 무한 코인이라는 거고.

한성은 목숨으로 실험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거다.

‘없어도 클리어는 가능해.’

하지만 원 코인. 단 한 번도 죽지 않고 가능할까?

지금까지 그게 가능했던 사람은 없었다.

“한성?”

“어어. 시작해야지.”

이번엔 5조. 한성의 차례다.

줄리아 마틴은 보조 마법사였다. 어차피 적극적으로 움직일 생각은 없어 보였기에 없는 셈 치는 게 낫다.

‘굳이 필요하지도 않지.’

미안하지만, 한성의 [마력 지배]가 B등급이 되었으며 [공간관여]가 C등급이 됐다. 사실 이제 이 정도 오우거는 레이드를 할 필요도 없는 대상이 된 거다.

문제는 이 수업이 ‘레이드’라는 거고.

협동 수업이라는 거다.

‘귀찮지만.’

한성이 아무리 관종이라지만, 최소한의 예의와 기본은 있는 놈이니까.

“가볍게 7분 컷 정도면 괜찮겠지?”

한성의 중얼거림에 성시연과 줄리아 마틴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미 레이드는 시작되었다.

한성이 오우거의 품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어그로 끌기.

아무래도 오우거는 다혈질에 무식한 편이라, 인간이 앞에 얼쩡거리는데 손이 닿지 않으면 굉장히 흥분한다.

현재 C등급의 [공간 관여]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은.

[방벽], [넉백], [왜곡], [부분 분쇄].

이 정도가 전부다.

세세하게 조정한다면 훈련장에서 했던 다양한 응용도 가능하지만, 전투에서 쉽게 사용할 정도는 아니다.

지이잉.

한성 앞에 방벽이 세워지는 동시에 오우거의 주먹이 날아든다.

콰아아앙.

역시 대단한 완력.

그저 주먹일 뿐인데 굳어진 공간이 흔들리며 바닥의 진동이 주변에 뿌려진다. 진 훈은 역시 난 놈이다. 이런 놈과 몸싸움을 하다니.

오우거가 흥분하는 게 보인다.

공격당하는 것보다 공격이 통하지 않는 걸 더 싫어하기 때문이다.

콰아앙!

다시 한 번 공격을 막아내고.

한성은 공격을 시도한다.

‘[부분 분쇄]’

쉽게 말하면 A등급에 오른 [포쉘]이 사용했던 응용 방법인데, 일정 공간을 일순간 0에 가까운 크기로 압축시켜 버리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밸런스 붕괴에 가까운 기술이라고 할 수 있지만, 건물 크기의 공간을 주먹으로 줄이는 것보다 주먹 정도를 0으로 줄이는 게 더 과한 부하를 가져온다.

말 그대로 포쉘은 A등급이니 자동차 정도의 크기를 압착 했던 거고, 한성은 주먹 정도 크기가 전부라는 거다.

쿠우우.

한성의 시선이 오우거의 목에 닿았다.

1의 공간이 0에 닿기까지 찰나의 순간.

오우거는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고개를 돌려 피했다.

콰직.

하지만 어깨 끝부분이 닿았고. 닿은 부분은 이미 찢겨나간 후였다.

크아아아앙!

그래도 어그로는 성공이었다.

한성이 손짓으로 오더를 내리자 안혜림의 화살이 날아들었고 성시연이 오우거의 그림자로 스며들었다. 안기성의 마법이 ‘바람의 기류’를 생성해내며 안혜림을 보조하고 줄리아 마틴이 ‘아이스 애로우’와 ‘매직 애로우’를 이용해 오우거를 괴롭힌다.

말이 ‘레이드의 기본’이지 모두 기본적인 교육은 받고 온 [한국 영웅 아카데미]에 합격한 후보생들이다.

이 정도 레이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 손발을 맞추며 오우거를 압박해갔다.

특히, 성시연의 활약은 대단했다.

한성이 강화한 단검, [그림자 타기]라는 이능, 새로 얻은 [바람의 결]. 거기에 재능충이긴 한 것인지 숙련도 또한 대단했다. 어둠이 깔린 것도 아닌데 두 눈으로 좇기도 힘들 정도.

진 훈, 한 별, 길성현까지.

성시연의 급격한 성장을 보곤 절로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한성은 조금 더 두고 보려다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다 끝도 없겠는데.’

파티 플레이가 워낙 견고해서 별다른 반격은 못 하지만 맷집이 워낙 단단해서 쉽게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살짝만 때려보자.’

[부분 분쇄]를 사용했다.

그것도 일부러 어깨에.

쿠우우.

한성에게만 느껴지는 공간의 울림.

오우거도 그것을 느낀 것인지 다시 고개를 피해······.

콰직.

“이런 멍청한 녀석!”

오우거는 어깨를 조준한 것도 모르고 목과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틀었고, 결과적으로 목 반쪽이 한 움큼 뜯겨 나가 버렸다.

콸콸.

목에서 피가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했음에도 아직 움직인다. 하지만 안혜림의 활, 성시연의 단검, 안기성과 줄리아의 마법이 순식간에 상처로 쇄도했다.

콰과과광!

뿌연 연기가 올라오며 정적이 흘렀다.

곧 연기가 흩어지며 마력 입자로 사라지는 오우거의 사체가 드러났다.

와아아아!

반 후보생들이 소리친다.

- 기록 : 3분 43초.

다른 파티보다 배는 빠른 기록 때문이었다.

한성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생각을 바꿔먹고 카메라를 끌어당겼다.

“아차, 7분은 견딜 줄 알았는데.”

어제보다 3배는 잘생겨진 얼굴이라 자신감이 확 붙는다. 한성은 쓰러진 오우거를 배경으로 삼으며 살포시 꺾인 손가락을 미간에 얻었다.

“실수로 보내 버렸네.”

찰칵.

- 완벽한 구도입니다.

역시 섬네일은 어그로다.

*  *  *

한성은 다른 조의 레이드를 보면서 오전에 있던 거래를 복기했다.

‘나쁘지 않은 거래였어.’

기존 [속성 부여 킷] 특허의 독점 사용권한을 3년 동안 매출의 3%를 받고 넘겼다. 순이익이 아닌 매출의 3%이기에 제현 그룹에서는 남는 게 거의 없을 정도다.

하지만 길이현은 그 거래를 깰 수 없었다.

이런 물건을 독점 판매한다는 건 단순히 ‘돈’을 제외하고라도 남는 건 충분하다. 매출 그 자체, 이미지, 영향력 등등.

거기에 가장 포기할 수 없는 건 한성과의 관계.

‘길이현은 야망이 엄청나지.’

대외적으로는 PMC 하나로 만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룹 전체를 집어삼키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계획해 왔다는 설정이다. 그렇기에 다른 플레이어의 개입이 없다면 10년 후쯤엔 길이현이 제현 그룹의 회장이 된다.

‘그렇기에 모든 계열사를 대신 PMC 하나만 선택했다.’

그게 그녀가 세운 계획의 시발점이고 한성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기에 한성이 보여준 [마력 붕괴 폭탄]도 함께 판매하기로 했으니 포기한다는 선택지는 애초부터 없던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정기적인 게 아닌 단 3개에 650억이라는 가격에 넘겼다.

이건 아무리 연구해도 만들 수 없다.

한 3년쯤 연구하다가 [공간 관여] 이능을 지닌 사람과 S등급 이상의 마력 회로 전문 마법사를 구한다면 혹시 모르지.

그때는 상관없다.

사실상 3년 후의 [대변혁]이라는 시기가 오면 이 정도 무기는 크게 쓸모가 없으니까.

한성이 받은 것?

사실 돈은 큰 게 아니다.

시간이 걸릴 뿐, 이 정도 돈을 버는 건 한성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중요한 건 길이현 자체를 얻은 것.

‘길성현을 다루는데 이만한 루트는 없지.’

길성현이 시크하고 차가운 이미지라고 하지만, 자신의 누나인 길이현에겐 찍소리도 못하는 막내일 뿐이다. 이걸 잘만 이용하면 길성현을 악(惡)의 구렁텅이에서 구할 수 있다.

거기에 줄리아 마틴을 잘 구슬리거나······.

‘죽인다면 깔끔한데 말이지.’

그건 더 생각해 봐야 한다.

마틴 사를 적으로 둘 게 아니라면 줄리아를 아군으로 만드는 게 좋다. 하지만 줄리아 마틴의 성향은 굉장히 악(惡)에 치우쳐 있어서 교정할 수 있을지 미지수.

‘지금 보면 전혀 악이라고 생각되지 않지만.’

오히려 한 별이나 성시연이 더 악(惡)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선과 악의 기준은,

이 세상의 멸망을 막으려 하느냐.

혹은 그 반대에 서느냐로 결정된다.

겉으로 보기에 길성현과 줄리아는 악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속한 기업의 이득을 위해 약간의 이기적인 짓을 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종장(終章)이 다가오면 달라진다.

‘길성현의 신념’이라는 설정엔 이런 게 있었다.

[세계의 환란과 악신(惡神)의 등장은 인간 사회가 자초한 것이다. 그들에 맞서는 것이 아닌, 그들과 같은 길을 걸으며 세상을 정화하고 인간의 수를 줄이는 것이야 말로······.]

어쩌고저쩌고.

나쁜 건 아니다.

신념이 다른 것일 뿐이다.

뻔하면서 흔하디흔한 설정이다. 결국은 그냥 플레이어를 엿 먹이려는 운영진의 농간이지 않겠나.

하여튼 중요한 건, 그들을 아군으로 만들기 위해선 100% 한성의 말에 복종하게 하거나 성향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거다.

‘그건 천천히 해결해 봐야 하고.’

한성은 길이현에게 또 받은 게 있다.

제현 그룹 무기공학연구소 [명예 수석 연구원]

제현 그룹 PMC의 [명예 고문관]

[영웅]에도 급이 있기에 평범한 영웅에게는 꽤 괜찮은 선물이다. 하지만 한성이 영웅이 된다면 크게 영향력 있는 직위는 아니다.

‘그래도 후보생일 때는 쓸모가 많지.’

길이현은 어떻게든 이 직위를 넘기려 애썼다.

의무는 단 하나도 없고 권리만 있는 이 직위를.

한성의 그림자에라도 한 발 걸치고 싶은 마음일 거다.

‘확실히 능력은 있어.’

보는 눈도 좋고 감도 제법 괜찮다. 거기에 인재를 보면 자존심 따위는 버릴 수 있는 게 그녀만의 능력이 아닐까.

“후, 복잡하구나.”

수업은 금방 끝났다. 한성의 활약 때문인지 줄리아는 조용했고 성시연은 어깨가 잔뜩 올라와 있었다.

성시연이 저러고 있으니 굉장히 어색하다. 아무리 호감도 80이 넘었다고 해도 본래 성격이 어디 가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그것보다 시작할 때가 됐는데.”

한성은 멀리 주르륵 서 있는 아카데미 건물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꺄아아아.

먼 곳에서 비명이 들려왔고.

-위이이이잉!

사방에서 경고음이 울려 퍼진다.

쿠우웅.

몇 번의 폭발음과 괴수의 울음소리.

“시작이군.”

메인 시나리오의 시작이었다.

- [Main Story – 01]

- 아카데미가 습격당했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목적을 지닌 것인지 확인하고 아카데미 내의 안전을 지키십시오.

간략한 메시지.

하지만 충분하다.

메인 시나리오는 퀘스트 중에 가장 어렵고 힘들지만, 변수가 가장 적기도 하다. 그것은 한성이 겪었던 경험과 지식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

“훈! 별!”

가장 먼저 둘을 불렀다.

“사람을 구해야 해!”

진 훈은 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한 별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다. 다른 이들의 목숨보다 진 훈의 안전이 더 중요할 테니까.

가끔 보면 정말 한 별이 진 훈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진 훈을 아는 한 별은 거절할 수 없다.

“세르게이, 얜 샤를, 성시연······ 도와줘.”

세르게이, 얜 샤를, 성시연은 고민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래서 지금까지 호감도를 올리고 친해진 거다.

문제는 다음이다.

받아들일지 거절할지.

“길성현, 줄리아. 너희의 도움도 필요해.”

길성현은 놀란 표정을 해 보였다. 먼저 말을 걸 줄은 몰랐던 거겠지. 하지만 길성현의 [마법 복제]는 아주 유용하고 지금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친밀도를 올릴 좋은 기회다.

“······난 따로 움직인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아직 인사도 제대로 안 하는 사이인데, 이런 걸 받아들일 리가 없다.

한성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것만은 알아뒀으면 좋겠어.”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아카데미는 고립됐어. 밖과 이동은커녕 연락도 안 닿을 거야.”

모든 시선이 한성에게로 꽂힌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느냐는 뜻이다.

하지만 한성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이제 마지막.

“안혜림. 네가 가장 중요해.”

안혜림의 [다중인격]을 개화할 가장 좋은 무대이자, 단번에 한성에 대한 호감도를 끌어 올릴 기회다.

< 메인 시나리오의 시작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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