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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은 만렙이다-26화 (26/200)

< 반드시 잃어야만 하는 것? >

메인 시나리오의 첫 번째 관문.

어떤 단체가 개입되었으며 어떤 이들이 왜 이런 짓을 벌이는지 알아내는 것도 클리어 조건에 포함된다. 그걸 알아야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으니 당연한 조건이다.

하지만 한성은 모두 안다.

이 사건의 발달은 [미국 영웅 아카데미]에서 시작되었다.

뻔한 설정이지만 1, 2위를 다투는 아카데미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몇몇 극단주의자들이 비슷한 성향의 기업 및 길드를 자극하면서 발생한다.

그 꼭대기엔 미국 정부가 있지만, 현재 퀘스트에선 쓸모없는 정보.

한성은 퀘스트 상세 정보를 열람했다.

- 테러 인원 : 212명

- 습격 몬스터 : 893마리

- 희생자 : 32명

- 진행 시간 : 00 : 04 : 34

테러리스트 수는 변화가 없고 습격 몬스터는 천천히 늘어나는 중이다. 그리고 희생자. 불과 몇 분이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30명이 넘어갔다.

“헤일렌. 메인 시나리오 첫 번째 장. 초기 진압이 필요한 지도 뽑아줘.”

- 알겠습니다. 바로 업로드 준비합니다.

한성은 스마트 워치에서 떠오르는 파일 하나를 훈과 별에게 날렸다. 그러자 한성의 파일이 둘의 스마트 워치에 업로드된다.

“너희가 가야 할 곳은 아카데미 치안대 본부야. 그곳에 [밤의 존재]를 비롯한 테러리스트가 점령하고 있을 거야. 그곳이 정상화 되어야 더 많은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어.”

“······어떻게 그런 걸 아는 거지?”

한 별이 물었다. 의심 가득한 질문.

진 훈도 그게 궁금한 것인지 가만히 한성을 바라봤다.

“나도 정보 라인이 없지는 않아. 특히 음지의 일이라면.”

한 별도 별도의 정보 라인을 지니고 있다. 한성처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의 적대 세력이 아카데미에 잠입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거다.

“······당장은 뜸 들일 시간이 없으니까 바로 움직이겠지만, 이 일이 끝나면 더 자세히 설명해야 할 거야.”

“원한다면.”

한 별의 눈에 스산한 살기가 깃들었다 사라졌다.

‘의심하고 있었군.’

검은 땅의 아이라는 의심. 아직은 아닌 줄 알았는데 이미 진행 중이었다. 다행히 메인 시나리오가 먼저 시작하면서 시간은 벌었다.

한 별과 진 훈은 치안대 본부 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세르게이, 얜 샤를, 성시연. 너희는 본부를 맡아줘.”

그들은 한성이 보낸 지도를 보고 있다.

한성이 미리 짜 놓은 지도엔 적의 규모. 적의 정체. 적이 무엇을 준비하고 원하는지까지 설명해 놨다.

“······한성. 이건······.”

성시연이다.

한 별이 물었던 것처럼 궁금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한 별과 성시연이 모르는 정보를 한성이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니까.

“일단 움직여 줘. 나중에 설명할게.”

“······알겠어.”

세르게이와 얜 샤를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세르게이는 원래 단순한 사람이고 얜 샤를은 성시연이나 한성을 무척이나 신뢰하는 편이니까.

이 정도로 나누면 된다.

한 별과 진 훈의 조합은 웬만한 현역 영웅이 와도 깨기 힘드니까. 성장한 성시연, 세르게이, 얜 샤를도 마찬가지다. 전 회차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졌다.

한성은 길성현과 줄리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혹시 모르니까 지도는 보내줄게. 그래도 알고 있는 게······.”

“됐다.”

길성현은 그렇게 등을 돌렸다.

‘저 싸가지 없는 놈.’

그냥 죽일까. 진심으로 고민했다.

한성은 안혜림을 바라봤다.

“도와줄 수 있겠어?”

“내, 내가?”

“그래. 사수가 필요해. 나 혼자는 무리인 곳이라.”

안혜림의 눈동자가 떨린다. 아직은 세 자리 순위의 평범한 후보생일 뿐이다. 실전 경험도 없고 육체 능력치도 20대가 겨우 넘는 정도.

소심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부탁할게. 엄호만 해줘.”

“······그, 그게.”

“도와줘······.”

그녀에겐 강하게 나가면 안 된다. 도와달라는 말. 부탁하는 말이면 충분하다. 그녀는 거절도 잘못하는 성격이니까.

“······엄호라면······”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해!”

한성은 안혜림의 팔목을 잡고 뛰었다.

*  *  *

[아카데미 강사 대회의]

한 학기에 한 번 모여 아카데미의 대소사를 결정하고 추진하는 회의다. S등급 영웅만 해도 5명이 넘어가고 A등급 영웅이 수백 명이다.

그런데 이 회의장이 S등급 이상의 결계로 막혀버렸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물론 밖으로 나가는 것도 완벽하게 차단되었고 전파조차 닿지 않았다.

“정현씨. 이 결계 해제할 수 있을까요?”

아카데미 내에서도 몇 안 되는 S등급 영웅 한도석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이 정도 결계는 결코 쉽게 펼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이 안에 갇힌 강사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 결국 목적은 하나.

‘후보생.’

화염의 마법사이자 월드 클래스 인기를 지닌 S등급 마도사 이정현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시작해도 12시간은 걸릴 겁니다.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좋아요. 가장 좋은 건······.”

“가장 좋은 건?”

“밖에서 해체하는 거죠. 그것도 S등급 이상에 회로 전문 마법사가 3시간 이상은 공들여야 할 거예요. 상급 마력석. 최소 A등급 이상의 마력석 수십 개까지 필요할 수 있어요.”

“결국, 불가능하다는 말이군요.”

한도석은 검을 뽑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힘으로라도 깨 보는 수밖에.

“그게 가장 빠를 수도 있죠.”

이 안에 S등급 영웅. A등급 영웅이 전부 힘을 합쳐도 최소 몇 시간은 걸린다.

너무 늦다.

그 시간이면 이미 너무 많은 희생이 발생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는 법.

‘도대체 누구냐.’

한도석은 이를 악물었다.

재룟값은 최소 수백억에서 수천억. 문제는 그게 아니다. 이 아카데미 내에서 이런 결계를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준비했다는 게 중요했다.

S등급 마법사가 최고 몇 주일. A등급 마법사 몇 명이 몇 개월을 공들여야 가능한 수준이다. 그런데 그걸 아카데미에서 모르고 있었다? 말이 안 된다.

분명 내부에도 적이 있다는 뜻.

“······제가 해보겠습니다.”

우우웅.

한도석의 검에 시퍼런 오러가 뿜어졌다.

그는 A등급에서 격을 얻은 S등급 영웅이다.

그 격이라는 것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수백 번의 죽음의 고비를 넘고 불가능한 업적을 이뤄내며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전설을 써내려 온 사람. 상위 신격과 계약하며 인간이라는 틀을 벗어던지기 시작한 영웅.

그게 바로 S등급 영웅이다.

웅후한 마력은 시뻘겋게 타오르기 시작하며 검의 형상을 이뤄냈다. 순식간에 5m까지 뻗어 나간 그의 오러 블레이드는 무엇이든 태워버릴 듯 작열했다.

주변의 A등급 이하의 영웅은 물러난다.

몇몇 S등급 영웅이 자리를 잡고 한도석을 돕는다.

‘최대한 빠르게 결계를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후보생과 시민들을 도와야 한다. 그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이며 인류를 위한 최후의 보루다. 그들은 문명이 지켜야 할 희망이라는 거다.

“하늘을 부수는 검.”

단 3식으로 이루어진 [파천신화공(破天神化攻)]

일식에 산을 가르고.

이식에 바다를 가르며.

삼식에 하늘을 가른다.

그가 상위 신격인 [하늘을 부수는 악동]과 계약하고 얻은 ‘특수능력’이자 그가 가진 최고의 절기. S등급이 되어 초인이 되었음에도 아직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힘.

이게 아니면 지금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무리하면 팔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팔 하나로 다른 후보생들을 살릴 수 있다면, 그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인류는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으니까.

“제 일식.”

쿠아아아아.

그의 몸에서 [격]이 다른 힘이 뿜어진다.

‘형의 제약을 넘어선다는 것은.’

우우웅.

대기와 한도석의 영혼이 공명한다.

‘육체의 제약에서 벗어났다는 것이고.’

좌에서 시작된 그의 검은.

천천히 허공을 가른다.

한없이 느리지만 강대한 기세를 지닌 검로(劍路).

콰과과과과.

‘길이 있어 가는 게 아닌, 지나기에 길이며.’

얇고 가느다란 검로엔 무형의 규칙이 생겨난다.

키이잉.

순간 세상이 멈춘 듯 보였고.

그의 검 끝은 ‘좌’에서 ‘우’를 도달하지 못한 중앙에 멈춰 있었다. 지금 그의 힘으론 여기까지다. 그런데도 결계는 흔들리는 정도에 불과했으며 검을 든 오른팔은 끔찍한 고통에 휩싸였다.

‘크윽.’

더 해야 한다.

한도석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잠까아아안!”

멈칫.

한도석은 그 자리에 굳은 듯 멈춰 버텼다.

밖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결계가 있기에 소리도 차단되어 있어야 정상이다.

검을 끝까지 휘둘러야 할까.

아니면······.

번쩍.

결계에 은은한 마력이 서리며 숨겨진 수백 개의 회로와 마법진이 드러났다. 동시에, 얇은 회로 하나하나가 끝에서부터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검 놓으라고 개새끼야아아아!”

멍.

결계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양손과 하나의 얼굴. 분명 아는 얼굴이었다. 그래, 기억났다. 이한성. 마법과 검을 동시에 선택한 이한성 후보생······?

한도석은 어이없다는 듯 소리쳤다.

“뭐라고 이 새끼야?”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털썩.

*  *  *

이 메인 시나리오에 가장 중요한 건 ‘잃어야만 하는 것’을 지키고, ‘얻을 수 있는 것’을 확실하게 아는 거다. 한성 정도 되는 고인물에게 첫 번째 시나리오는 ‘클리어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한성이 가장 먼저 도달한 곳은 아카데미 대회의장.

“혜림아. 날 엄호해줘.”

사방엔 C등급 이하의 몬스터가 돌아다닌다.

[밤의 존재]에 소속된 ‘괴수 소환사’의 활약이다.

한성은 뒤를 맡기고 바로 결계 해체에 들어갔다. 이걸 위해 A등급 마력석 30개를 챙겨뒀다. 다행히 오늘 길이현과 거래를 마칠 수 있어서 거의 염가에 구했다.

이럴 때 생각나는 거지만 겨우 5칸에 불과한 인벤토리는 최고였다.

시스템 그 자체이기에 걸릴 일도 없으며, 5칸이지만 재료 아이템이나 소모성 아이템은 같은 자리에 중복으로 넣을 수 있으니까.

공간 확장 가방을 만들 재료를 구하거나 직접 구매하기 전이나 후에도 최고의 한 수가 되어 줄 거다.

“꺄아악!”

안혜림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화살을 쏘는 족족 몬스터의 눈동자에 꽂아 버리고 있었다.

한성은 마음 편하게 해체를 시작했다.

말이 S등급 마법사가 필요하다는 거지, 그에 준하는 실력만 있으면 된다. 게다가 한성은 [마력 지배]라는 마력 친화력 관련 최고의 특성을 B등급까지 올린 상태.

이런 결계 따위는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나마 문제를 찾으려면 시간이랄까.

‘어떻게든 시간을 줄여야 해.’

이 퀘스트에서 잃어야만 하는 한 가지.

한도석의 오른팔이다.

그는 이 결계를 부수고 자신의 팔을 잃는다.

‘절대로 그렇게 둬선 안 된다.’

그는 지금도 S등급이며 [하늘을 부수는 악동]이라는 이명을 지닌 신격 [천마]와 계약한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른팔을 잃고 좌절한다.

그런 그도 옆에서 잘 보조하면 S등급을 유지하며 종장(終章)에 한 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인물이 된다. 그런데 그의 오른팔을 지킨다면?

SS등급까지 올라가 주인공과 나란히 선 인물이 될 거다. 아니, 분명 그렇게 된다. 한성은 [정보 열람]으로 그의 재능을 봤으니까.

쿠우우웅.

결계가 진동한다.

그가 검을 들어 올린 거다.

한성의 해체율은 이제 고작 30%

“젠장. 뭐가 이렇게 복잡해?”

길드의 고층 건물에 설치된 [대마법 방어진] 몇 개를 겹쳐서 그려놓은 정도다. 그러니 한도석이 팔을 잃을 때까지 검을 휘둘렀지.

“미친.”

오랜만에 머리를 썼더니 두통이 온다.

양팔은 과도한 마력 유용에 타들어 갔고 갈고리가 척추를 훑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회로를 쥐어뜯다시피 해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아아아.

회로의 중요 연결점이 끊어지고 주변 회로가 까맣게 타올랐다.

“잠까아아안!”

한성은 양팔을 틈에 끼워 억지로 벌리며 소리쳤다. 두꺼워서 보이진 않겠지만, 소리는 들릴 거다.

쿠우우웅.

아니, 이래도 안 멈춰?

한성은 남아있는 결계를 더 파고들면서 소리쳤다.

“검 놓으라고 개새끼야아아아!”

왜 안 멈추는 건데? 눈치가 없는 건가. 아니면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이벤트라서 시스템이 강제로 끌고 가는 건가?

한성은 빠르게 결계를 파고들어 얼굴을 내밀었다.

눈앞에 후보생이 있는데 검을 그대로 휘두르진 않겠지.

“뭐라고 이 새끼야?”

한성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정신을 잃는 한도석 강사를 바라보면서 웃었다.

됐다. 오른팔이 살아있다.

“어후, 죽겠네.”

몸은 극도로 지쳤지만 결계 해체를 마무리했다. 강사들은 빠져나오자마자 움직였다. 이런 상황에 메뉴얼이 있는 듯, 한도석을 챙겨야 하는 이정현 마도사를 제외하고 빠르게 이동했다.

“······감사합니다. 이한성 후보생.”

“아닙니다.”

“그것보다 어떻게 이걸 해체할 수 있었던 겁니까? 아무리 회로에 해박하다고 해도······ 이건 웬만한 전문 마법사가 아니고는······.”

정말 궁금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같은 마법사로서의 호기심이다.

“뭐, 알바로 [대마법 방어진] 같은 거 만들었었죠. 언제든지 의뢰만 주시면 지인 DC 해서 작업 들어가겠습니다.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한 제작 가능하니까 연락 주세요!”

장사는 이렇게 하는 거 아니겠나.

한성은 더 물으려 하는 이정현 마도사를 떼어내고 안혜림에게 다가갔다. 몬스터 수십 마리를 죽이며 한성을 지키고 있었지만, 아직 개화는 기미가 없다.

“몬스터론 안 되겠는데?”

아무래도 사람 피 맛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도살자’와 같은 인격이 자극을 받지 않겠는가.

< 반드시 잃어야만 하는 것?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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