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행운은 만렙이다-24화 (24/200)

< 조별 수업 >

길이현은 기함했다.

절대로 놓쳐선 안 된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니, 변했다.

제발 적만 안 되면 된다고.

길이현은 눈앞에서 펼쳐진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이 사람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

‘저런 걸 만든다는 건 둘째.’

저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다. 임원들. 마법사, 이능 전문 영웅, 육체 영웅 등 여러 분야에 일가를 이룬 천재들이다.

그들은 저 폭발의 가치를 바로 판단했다.

공간의 뒤틀림과 마력의 폭발.

웬만한 영웅이라면 저런 단순한 폭발에 휩쓸 일은 없다. 하지만 함정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거기에 비슷한 수준의 영웅이 방어용으로 사용한다면 어떨까.

미친 살상력을 보유한 무기가 될 것이다.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한 단계 위의 영웅을 이길 카운터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전쟁이나 테러라면 그 가치가 얼마나 올라갈 것인가.

‘그런데 저런 곳에서 버티고 있어?’

공간 관련 이능을 지녔다는 건 알고 있다.

이미 조사를 끝냈으니까. 아니, 조사랄 것도 없었다. 튜브를 운영하고 있었고 그곳에 모두 공개했으니까.

하지만 같은 속성의 이능을 가졌다고 저런 폭풍 속에서 살아남는다? 말도 안 된다. 마력의 폭풍만 가지고도 수십 명의 영웅을 몰살하고 남을 파괴력이다.

마력 친화력이 S등급 이상.

혹은 마력 관련 재능이 SS등급 이상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길이현은 오소소 돋아나는 소름에 등줄기가 서늘했다.

‘그것도 모자라 공간 관련 재능이······?’

상상이 되질 않는다.

공간을 그냥 몸으로 받고 있는 게 아니다.

뒤틀린 공간, 왜곡된 공간을 옆으로 흘리고 저항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만든다. 마력은 받아들이고 주변의 공간은 완벽하게 제어한다.

이제 겨우 17살인 후보생에 불과한데 말이다.

길이현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어느 때보다 차갑게 변했다.

‘어떻게든 아군이 되어야 해.’

적은 절대로 안 되며, 아래로 들인다는 건 생각조차 하면 안 된다. 앞으로 걸어야 할 원대한 계획의 든든한 아군이 되어야 한다.

*  *  *

한성은 오후 수업에 늦을 뻔했다.

몸이 말이 아닐 정도로 과부하되기도 했으며 길이현과의 계약 과정에 조율해야 할 게 제법 많아졌기 때문이다.

“전공이 결정되고 첫 번째 수업입니다.”

각 전공에 따라 ‘공통 과목’, ‘전용 과목’, ‘협동 과목’ 등으로 나뉘고 전공에 상관없이 반 공통 과목과 기초 소양 교육 등이 존재한다.

이번 수업은 협력 과목인 [레이드의 기본]

말 그대로 레이드 수업이다.

하나의 강한 개체를 상대하기 위해 다수의 영웅이 서로 협력하는 것이며 낮은 등급의 영웅부터 S등급 이상의 영웅까지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소양이다.

강사는 레이드에 대한 개념과 어떻게 수업할지 설명했다.

“······레이드의 개념은 이렇습니다. 오늘 수업은 가볍게 파티를 짜고 가상 몬스터를 소환해 연습하는 것으로······.”

한성은 어떤 수업이든 마찬가지지만, 따로 수업을 듣는 건 중요하지 않다. 이미 레이드로 드래곤은 물론이고 마왕까지 잡아봤던 사람이다.

그것보다 주변에서 속삭이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됐다.

‘뭐야. 쟤 이한성 아니야? 성형이라도 했나?’

‘그게 말이 되냐. 엊그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뭐야뭐야. 왜 이렇게 잘생겨진 거야?’

‘사실 잘 생겼다고 하긴 무리지. 비호감은 아닌 정도랄까.’

‘미친, 너보단 훨씬 잘 생겼거든?’

‘피부 미쳤다. 어떻게 갑자기 저렇게 된 거지?’

“크흠.”

한성은 민망함에 헛기침했다.

스킬 로션 세트, 석고 팩, 보톡스 팩 등의 아이템을 모조리 써버리고 왔다. 사용 즉시 매력 각 3씩 9가 오르고 24시간이 유지된다.

그리고 하루에 영구적으로 0.1에서 0.2 정도가 오르며 한 달 정도 쓸 양이 있다.

‘지금 매력은 15 정도.’

한 달 정도 후면 지금 이 매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거다. 운이 좋으면 더 오를 수도 있고 말이다.

‘내 운은 만렙이니까.’

10대 후반까지는 맞춰지지 않을까.

거기에 하급 매력의 비약이 아직 효과를 발휘하는 중이고. 이번에 하나 더 얻은 것까지 생각한다면 20대 중반은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평균적인 매력이 10대 중반이고 20대가 넘어가면 잘 생겼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된다. 30이 넘어가면 아이돌 정도에 40이 넘어가면 배우급이다.

‘그러고 보니 성시연이 40이었지.’

게다가 아직 17살이라 10년 정도 매력이 쭉쭉 오를 것을 생각하면 성시연이 대단하긴 하다.

‘그 성격이라 매력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건가.’

플레이어 엿 먹이는 게 운영자 취미였으니,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제 조를 정하겠습니다.”

전공 협력 과목이라 반 전체가 모여있다.

여기서 5명씩 10개 조가 만들어진다.

“5조의 탱커는 이한성.”

탱커라. 나쁘지 않다.

마법과 검을 동시에 사용하면서 주가 검이라면 충분히 메인 탱커가 될 수 있다. 어차피 매 수업 역할은 달라지니까.

“5조 원거리 딜러 ‘안혜림’, 근접 딜러 ‘성시연’, 원거리 보조 ‘이기성’, ‘줄리아 마틴’.”

이한성이 561위. 안혜림과 이기성이 600위와 700위 정도이니 10위권 안쪽 성시연과 30위 권 줄리아 마틴이 있어도 이상할 건 없다.

“한 시간 동안 손발을 맞춘 후 실습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론 수업만 2시간을 했다. 그리고 1시간 쉬는 시간 겸 연습 시간을 주고 나머지 3시간 동안 조별로 실습한다.

한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혜림과 한 조가 되어 좋기는 하지만 줄리아 마틴과 한 조가 되어 벌써 불편하다.

“초반 오더는 내가 하는 게 맞지?”

이한성이 말했다.

보통 딜러의 공격 타이밍을 오더하는 건 어그로를 끄는 메인 탱커가 결정한다. 그러다 어그로가 풀릴 것 같으면 모든 공격을 중지시키기도 하고 말이다.

거기에 진짜 게임처럼 체력 게이지가 보이는 것도 아니니 보조 마법사도 메인 탱커의 오더에 따르는 게 맞다.

“뭐, 그게 맞기는 한데~ 이런 경험은 있나 모르겠네. 겨우 561위가.”

줄리아 마틴이다.

그럴 줄 알았다. 분명 길성현이 이한성을 고깝게 볼 게 뻔하고 줄리아는 그걸 알고는 길성현에게 관심받고 싶어 난리니까.

이한성은 비웃으면서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바로 옆에 서 있던 성시연이 먼저 말했다.

“어휴. 38위 두 자리 순위가 씨부리고 있네.”

“뭐? 씨부려? 교양 없게······!”

“알지도 못하면서 씨부리는 게 교양 없는 거 아닌가? 아, 금발은 무식하다던데. 그래서 그런가?”

“금발이 무식하다는 건 편견이고······!”

“네네~ 알겠습니다. 키도 작은 게 말은 떽떽 잘하네.”

“땅꼬마? 키만 멀대같이 큰 게!”

폭발했다. 자기는 마치 교양이 있다는 듯 차분하게 대답하고 있었지만, 이런 팩트 공격엔 장사가 없는 법.

“네네, 그거 아세요? 아스팔트에 껌이 붙으면 떨어지지도 않는 거? 키도 작고 그것도 작고. 난 키만 큰 게 아니라 어쩌지.”

이야. 저 정도면 거의 팩트리어트 미사일 아닌가.

직접 칼질할 때는 살 떨리게 잔인하면서 이럴 땐 손발 오그라들 정도로 유치하다. 하긴, 아직 17살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다.

“흥. 네가 8위인 거랑 리더가 561위인 것은 다르지 않을까?”

“다르겠지. 왜 네 뒤에 3위가 있으니까 8위는 무섭지도 않은가 봐?”

“아아, 네 옆엔 561위라 확실히 무섭진 않네. 뭐, 그래도 가문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이한성이 561위나 된 게 확실히 대단하긴 하지.”

“······.”

성시연은 갑자기 표정을 굳히고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순간 한기가 퍼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줄리아 마틴은 잘됐다는 듯 말을 이었다.

“하! 이제 할 말이 없지? 네 가문이 아무리 대단해도 마틴사와 제현 그룹을 동시에 감당할 수 있을까? 네 옆에 아무것도 없는 그 남자 하나 지키려고?”

이제 가문까지 끌어들이고 배경이 어쩌고저쩌고하는 말싸움까지 벌인다. 사실 17살이라도 이렇게까지 철이 없을 수 있을까 싶다.

‘줄리아 마틴은 어떤 사람인 줄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 정도면 이불킥할 흑역산데?’

20년 후. 한 기업의 수장이 되고 S등급까지는 오르는 영웅인데 이런 영상 하나 남겨두면 두고두고 이득이 될 게 분명했다.

다행히 옆에서 시스템 카메라가 그걸 찍고 있었다.

거의 24시간을 담은 시스템 카메라이기에 가능했다.

“왜? 더 할 말 없지? 어디서 감히 성현이를 끌어들여서······.”

움찔.

성시연의 손이 어느새 단검 손잡이에 가 있었다. 줄리아도 그걸 봤는지 말을 멈췄다.

“다들 그만하고. 우리 실습 준비부터 할까?”

한성은 일단 진정시키기로 했다.

사실 줄리아가 한성한테 뭐라뭐라 해도 별 느낌도 없다. 사실 줄리아의 키가 성시연보다 작고 가슴도······ 작은 건 사실이니까. 오히려 안타까울 정도.

침착하던 성시연이 왜 저렇게 날이 섰는지는 몰라도 여기서 단검을 뽑게 만들면 안 된다.

“일단 수업부터 하자고.”

한성이 성시연의 어깨를 잡았다.

“······알겠어.”

“흥. 일단은.”

그렇게 실습이 진행되었다.

1조는 한 별이 있었다.

상대는 오우거 한 마리.

홀로는 힘들지만 5명이 모였으며 일단은 가상 몬스터이기에 수업용으로 충분하다는 설정.

한 별도 메인 탱커 역할이었는데 염력으로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발목을 붙잡는 등 몬스터를 열 받게 해서 어그로를 끄는 방식이었다.

‘내가 몬스터였어도 짜증나서 다른 건 눈에도 안 들어오겠네.’

그 정도로 어그로를 잘 끌었다.

이 수업에선 어떤 직업을 지니는 탱커, 딜러, 보조 등의 역할을 맡게 한다.

마법사라도 방어 마법에 소질이 있을 수 있고 공격 마법이나 보조 마법에 소질이 있을 수 있으니까. 거기에 천성적인 성향도 방어 혹은 공격에 치우쳐 있을 수 있다.

“이야. 역시 한 별은 만능인데?”

“잠깐잠깐 손 흔드는 거 보이지? 한 손으론 염력을 쓰고 한 손으론 보조 마법을 쓰는 거야.”

“미쳤다. 저게 가능해?”

“더블 캐스팅처럼 하면 된다는데. 난 감이 안 잡힌다.”

“역시 천재는 천재야.”

- 기록 : 8분 54초

한성도 인정한다. 한 별은 천재다.

이능을 사용하는 것과 마법을 사용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저렇게 응용하는 건 절대로 쉽지 않은 일. 거기에 신입생 조가 10분대 안쪽이라니.

다음은 진 훈이었다.

진 훈 같은 경우엔 원거리 쪽 포지션은 맡지 않는다.

탱커 아니면 딜러.

콰아아아앙!

이놈은 탱커를 하라고 했더니 거의 오우거와 몸싸움을 하고 있다. 주먹과 주먹 대결은 물론이고 암바에 초크에. 그것도 활짝 핀 웃음과 함께.

“진 훈, 쟤는 육체가 대단하긴 해.”

“그러면 뭘 해, 마법이나 정신 쪽 몬스터면 쪽도 못 쓰는데.”

“2위인 게 신기하다니까.”

“아직 그런 시험이 없던 거지. 중간이랑 기말 끝나면 순위 확 내려가 있을걸?”

아마 그럴 리는 없을 거다.

중간에 주춤하긴 하겠지만, 정신력 하나만으로 마법과 정신쪽 이능에 면역을 얻어버리니까.

- 기록 : 10분 4초.

진 훈이 탱커이며 파티원의 딜러 쪽 화력이 약해 꽤 오래 걸렸다.

다음은 넘어가고 4조가 길성현이다.

“성현아! 파이팅!”

줄리아 마틴이 성시연을 슬쩍 보면서 폴짝폴짝 뛴다. 역시 인기가 많은 캐릭터라 몇몇 여자 후보생은 꺅꺅 소리를 지를 정도다.

같은 반에서 저러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길성현은 원거리 딜러.

“와, 역시 길성현. 마법 하나는 끝내주네.”

“그래도 딜러가 아니었으면 하는 거 별로 없었을 듯.”

“에이, 그래도 길성현인데? 이능이 없어서 그렇지 이능 작은 거 하나만 있었어도 바로 1위 각인데.”

하지만 마법만으로는 무리가 있다.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8분이 되었을 때.

길성현이 씨익 웃으며 마법진을 허공에 그렸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 주변의 마력이 모조리 고갈될 정도로 큼지막한 마법이었다.

“뭐지? 숨은 한 수가 있는 건가?”

누군가 그렇게 소리쳤다.

화르륵.

극도로 압축된 화염의 공. 말이 화염이지 거의 용광로에 비견될 정도로 강렬한 열기가 느껴졌다.

화륵. 화륵.

그 화염의 공이 두 개로 불어났다.

마력의 유동은 전혀 없이 말이다.

‘얻었군. [마법 복제].’

마법 보조에 특화된 이능. 숙련도만 제대로 올리면 어떤 마법이든 2배, 4배, 16배, 32배 이상까지도 복제 가능하다. 10년 뒤엔 헬파이어 수백 개를 날리는 [재앙] 등급 악역이 된다.

‘슬슬 결정할 때가 왔네.’

길성현을 죽일지, 아군으로 끌어들일지.

가능성은 모르겠다.

지금까지 아무도 성공한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그의 이능은 본인의 마법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법에도 적용할 수 있다. 그 말은 그가 아군일 때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보여줄 거라는 뜻이다.

< 조별 수업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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