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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은 만렙이다-23화 (23/200)

< 고인물의 숙련도 노가다 >

성시연에게 수많은 정보가 들어온다.

각국 주요 인사의 정보, 특정 암살 가문의 움직임, 몇몇 중요한 암살 임무, 성시연의 타겟으로 설정된 인물의 위치 등등.

그중에서도 1순위는 ‘이한성’과 관련된 정보다.

“요즘 한별은 딱히 움직임이 없네.”

뒤로 조금씩은 움직이는 모양인데, 어차피 아카데미 내에서는 [정연]의 인물들이라도 쉽게 움직일 수 없다. 게다가 요즘은 뭐가 그렇게 급한지 진 훈이라는 친구와 훈련하기 바쁘다.

그리고 오늘 새로 들어온 정보.

“줄리아 마틴. 이년도 꽤 눈치가 안 돌아가네. 눈이 필요 없으면 그냥 눈을 파버릴까?”

이한성을 자기네 그룹에 넣고 어쩌고저쩌고? 벌써 뒷공작을 시작한 모양인데, 흑연의 정보망엔 훤히 보인다.

“하긴, 눈 없으면 뭐하겠어. 그냥 죽여주는 게 낫겠네.”

마틴. 큰 회사이긴 하다.

PMC가 주고 작은 마탑을 운영하고 커다란 길드도 연계되어 있다. 하지만 못 죽일 것도 없다. 아무도 모르게 죽이면 되는 거니까.

당연히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흑연]은 그럴 수 있다.

“일단은 조금 두고 봐야겠어.”

괜히 한성의 즐거움을 뺏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야 한다.

이한성.

보면 볼수록 이상한 남자다.

말도 안 되는 재능을 가졌다. 검과 마법에. 게다가 이번에 [공간 관여]라는 이능을 개화했다며 튜브에 올렸다. 공개했다는 것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다.

강자는 자신의 힘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권리가 있으니까.

그런데 [공간 관여]라는 이능에 재능이 있다는 게 문제다.

“마법, 검, 이능까지······.”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살인이나 암살에도 재능이 있으면 최곤데. 하긴, 검은 땅의 아이인데 살인을 못 할 리는 없다.

그런데도 같이 하자는 암살 임무를 거부한 이유는?

“너무 질려 버린 건가?”

성시연도 슬슬 질리던 참이라 공감이 되긴 했다. 아주 어려운 암살이 아니면 손도 잘 안 가니까.

성시연은 홀로그램을 끄고 복면을 올렸다.

50층짜리 건물 옥상이었다. 눈부신 야경은 가느다란 긴장을 선사했고 얼굴에 스치는 차가운 바람은 뜨겁게 흥분하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툭.

성시연은 몸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휘이이이잉.

어둠으로 가득한 서울의 밤은 성시연의 공간이다.

아직 후보생에 불과하다지만, 그녀는 어둠 안에서만큼은 [밤의 존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특히 바람의 결을 배우고 이한성이 단검을 강화해준 후로는 완전히 그녀의 세상이었다.

50층은 순식간에 32층으로 변했고.

성시연은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빨려 들어갔다.

탁.

동시에 꺼진 불빛.

성시연은 차분하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접근했다.

푸욱.

눈을 통해 뇌를 갈랐다.

‘한 놈.’

푸큭.

이번엔 뒤통수로 뇌를 가른다.

‘두 놈.’

푸욱. 콰직.

이놈은 심장이다.

한 바퀴 돌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두꺼운 심장 근육을 가를 때 손맛이 가장 좋다. 아무래도 전신의 피를 돌리는 곳이라 그런지 살려고 발악하는 꿈틀거림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시체가 쓰러진 곳에 모여든 피를 보자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다음은 현역 영웅이다.

이능 하나 가졌다고 자신만만해 하던 일반 ‘헌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자. 하지만 이곳은 이미 성시연의 세계였다. 불꽃을 뿜고 마법으로 방어했지만, 그녀의 단검은 이미 그의 목에 닿아 있었다.

그극. 쿨럭.

목 가죽을 지나 기도와 식도를 가를 때.

그리고 뼈와 뼈 사이를 분리할 때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 공포로 가득한 검은 동공을 볼 때면 희열이 차오른다.

“자, 다음.”

성시연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피에 젖은 살귀(殺鬼)의 미소였다.

*  *  *

한성은 일어나자 눈앞에 새하얀 하얀이가 보였다.

정말 드래곤의 피를 이은 드래고니안이 맞는 것일까. 어쩜 이렇게 뽀얀 희색에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귀여움으로 가득 차 있을 수 있을까.

한성은 하얀이를 꽉 안았다.

그러자 하얀이가 답답하다는 듯 꼬리와 양발로 한성을 민다.

“어우, 무슨 힘이.”

저항조차 못 하고 손이 풀렸다. 하긴, 한성보다 육체 능력치가 훨씬 높다.

한성은 하얀이의 몸을 돌려 뒤에서 안았다.

“끄앙.”

하얀이가 입을 벌리자 백색 마력이 방출된다. 자연스러운 하품이겠지만, 그 용적은 어마어마했기에 한성은 [마력 지배]를 이용해 흩어버려야 했다.

“······기숙사 무너질 뻔했네.”

그래도 귀여우면 됐다.

한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얀이에게 이불을 덮어주곤 거실로 나왔다. 헤일렌이 홈 시스템을 이용해 커피와 토스트를 준비했다.

“오늘 수업은?”

- [레이드의 기본]인 조별 수업 6시간짜리가 있습니다.

“드디어 메인 스토리의 시작인가.”

전조라고나 할까.

이제부터는 잔뜩 긴장해야 한다.

“주식 현황은?”

- 큰 변동은 없습니다. 현재 제현 PMC가 상승세를 타며 5% 수익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큰 변동이 있으면 알려주고.”

- 알겠습니다.

“하얀이도 잘 부탁해.”

-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헤일렌은 인공지능이기 때문에 여러 장소에서 동시에 활동할 수 있다.

“당장은 힘들지만, 내가 괜찮은 아바타 구해줄 테니까.”

- ······감사합니다.

구할 때도 됐다. 돌봐야 할 하얀이도 생겼고 한성을 제대로 보조하기 위해선 육체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잘 골라야겠네.’

웬만한 육체론 하얀이를 절대로 감당할 수 없을 거다. 마력에 치우친 거대한 에너지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이능’을 보유한 몸체면 딱 좋을 텐데.

한성은 저녁에 [언더월드]를 들려야겠다고 생각하며 토스트를 씹었다. 이 게임에 맛이 존재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수업까지 몇 시간 여유가 있다.

그때 연락이 왔다.

“당장 만나고 싶다라······.”

길이현에게 온 메시지다.

드디어 때가 왔다. 한성이 세운 계획의 절반이 끝났다. 오늘을 잘 버티고, 며칠만 공을 들인다면 첫 메인 스토리를 어렵지 않게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  *

길이현은 경매에서 두 개의 [속성 부여 킷]을 낙찰받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높은 금액이었지만, 연구소에서 들려오는 행복의 비명을 듣자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상상을 초월합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한 것인지. 저 같은 범재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제현 그룹 연구소의 연구원이면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천재다. 연봉 수십억은 가뿐하게 받아가는 인재들. 그들의 뻣뻣한 콧대가 쑥 내려간다.

“분명 마법 분야에 획을 그은 현자일 겁니다! S등급 마법사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들은 알까. 이걸 만든 게 아직 영웅도 되지 못한 17살 후보생이라는 것을. 그것도 ‘검’이 주무기인 영웅 후보생.

“저희 연구소에서도 몇 년 전부터 연구해 오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저희보다도 10년은 앞서 있습니다.”

겨우 한 명의 후보생의 발명품 하나가 다국적 기업의 10년을 앞선다.

“마법진과 회로의 조화. 특허를 빗겨나가 사용할 순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이 아니면 최적의 효율을 낼 수 없습니다.”

연구소는 난리가 났다.

특허 사용으로 나가는 지출은 상당하다. 빌려 사용하는 것보다 사는 게 백배는 낫지만, 그게 가능할 리 없다.

독점이면 그래도 괜찮다.

아니, 특허의 주인이 평범한 마법사였으면 무조건 그렇게 만들었을 거다. 돈으로 사든지, 배경으로 협박하든지, 암살 가문에 의뢰를 주든지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다.

세계 3대 아카데미인 [한국 영웅 아카데미]이 학생이며, 겨우 후보생에 불과한 이가 이런 물건을 만들었다.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지 않은가.

희대의 천재이며, 앞으로 세계를 움직일 거물이 될 거다.

길이현의 본능이 말했다. 무조건 잡아야 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던 아군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여긴 그대로군요.”

길이현과 한성이 있는 곳은 제현 그룹의 무기 실험을 하는 30만 평 정도의 한적한 부지였다. 그가 무언가 보여준다며 이곳에서 만나자고 했다.

“여길 와본 적 있나요?”

“네, 뭐.”

한성은 전 플레이 때는 회장이 된 길이현과 같이 왔었다. 한성도 S등급에 이른 영웅이었고 길이현이 한성을 영입하기 위해 바쁘게 뛰던 시절이었다.

“1급 실험 경계령 내려주세요.”

“1급이요?”

길이현은 이걸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다.

30만 평이면 가로세로 3,140m 정도 된다. 제현 그룹 정도의 PMC가 무기 실험을 하기에 충분히 큰 곳은 아니지만, 수천억 원을 들여 만든 [마법 방어 결계]가 펼쳐져 있다.

여기서 1급을 발령하면 추가 마법진이 발동하며 수십억 원어치의 상급 마력석이 증발하며 방음(防音), 방진(防振), 항마 등의 수십 가지의 저항 기능이 발현된다.

쉽게 말하면, 1킬로톤 정도의 핵폭탄 정도를 실험할 때 사용되는 경계령이다.

‘1킬로톤이면 반경 10m의 건물 증발, 모든 생명체 사망. 반경 150m의 모든 물체는 녹아내림, 비슷하게 모든 생명체는 사망한다. 800m까지는 건물이 반파되고······.’

핵이라는 무기는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지닌다.

마력을 이용한 무기이기에 방사능 따위의 문제는 없지만, 그 자체 파괴력만으로도 인간 최고의 무기라 불린다.

“아아, 핵은 아니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되고요.”

“······알겠습니다.”

길이현은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한 자신에게 놀랐다. 아무리 황금알을 낳을 거위라고는 하지만, 그런 개인이 [핵] 급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다니.

“하지만 비슷한 충격은 있을 테니 조심하는 게 좋죠.”

“네?”

한성은 씨익 웃으며 공간이 압축된 포션 병을 꺼냈다.

트리거는 [공간의 해방]

추가 속성은 [마력 붕괴]

한성이 아는 최고의 파괴력을 가진 조합이다.

보통은 사용자 본인도 휩쓸릴 수 있기에 쉽게 사용할 순 없다. 하지만 이런 실험에서만큼은 그 어떤 것보다 큰 충격을 선사할 수 있기도 하다.

‘지금의 나는 상관없겠지만.’

다른 누군가가 사용한다면 후폭풍을 견딜 수 없을 거다.

“아름답네요.”

길이현의 입이 열렸다.

한성이 든 포션 병을 보고 하는 말이다.

그럴 수 있다.

한성이 완성한 [공간이 담긴 ‘■■’ 포션 병]에 상급 마력석 하나가 통째로 갈아 넣었고 유리병 표면엔 한성이 공들여 추가로 새긴 수십 개의 회로가 새겨져 있으니까.

진하게 빛나는 푸른 병. 위엔 황금빛으로 마법 회로가 빽빽하게 새겨져 빛나고 있다.

척 봐도 ‘나 무지하게 비싸요.’라고 외치는 게 보인다.

“아름답다라······.”

검은 땅에서 사용하면 아름다울 순 있다.

수백의 마족과 마물이 한순간에 증발하는 모습을 볼 때면 그런 감상이 들곤 했으니까. 이게 그때 사용하던 것보단 훨씬 약하겠지만, 이 파괴력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A급 영웅도 즉살할 수 있는 파괴력이다. 물론, A급 정도 되면 이런 걸 맞을 이유가 없지만.

“시작할게요.”

한성의 말에 길이현이 뒤에 대기하던 임원에게 눈치를 줬다. 그러자 실험장 전체에 푸른 빛이 서리며 1급 경계령이 내려졌다.

“준비됐습니다.”

임원의 말에 한성이 한 발 앞으로 나갔다.

“이한성씨, 그곳은······!”

안전지대 밖이다.

길이현과 임원들이 대기하는 곳은 실험장 전체에 퍼진 결계보다 배는 안전한 곳. 그러면서도 인증된 인물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한성은 웃으며 포션 병을 던졌다.

훅.

휘리리릭.

한성의 마법이 부여된 투척에 포션 병은 순식간에 10m 정도 날아갔다. 그것은 곧 이곳이 폭풍의 눈이 될 거라는 뜻.

쨍그랑.

작은 소리와 함께 병이 깨지고.

번쩍.

선명한 빛이 터지기 시작했으며.

실험장 전체의 마력이 요동쳤다.

콰과과과과!

극도로 압축된 공간은 주변의 공간을 밀어내고 당기며 사방의 마력을 끌어들였다. 순간적으로 실험일 안쪽의 모든 마력이 고갈될 정도로.

하지만 마력은 이 ‘결계’ 자체에서 충분히 보급된다.

평범한 ‘밖’이었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거다.

키이잉.

거대한 면적의 마력과 공간이 다시 한 점으로 변했을 때.

[마력 붕괴] 현상이 일어났다.

극도로 압축된 공간 안에서 붕괴되는 마력.

폭발이 폭발을 부르는 연쇄 폭발.

마치 원자 폭탄과 비슷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실험장 전체를 휘감았다.

붉은 화염의 폭발이 아닌, 순수한 마력과 공간의 폭발이다.

‘이게 돈의 힘이지.’

재룟값만 따지면 상급 마력석 1개로 수십억 정도. 하지만 공간 이능, 마력 회로, 마법진 등등 인건비를 생각한다면 최소 수백억짜리 폭탄이다.

한성은 왜 이런 것까지 보여줘야 했을까.

그리고 왜 안전지대 밖으로 나온 것일까.

- 한계 이상의 마력의 폭풍에 저항합니다!

- 과도한 마력에 과부하가 시작됩니다!

- 초고농도의 마력이 모여듭니다.

- [마력 지배]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마력 붕괴’와 ‘공간 왜곡’의 현상 조합에 공간이 폭발을 시작합니다.

- [공간 관여]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그렇다.

이게 바로 고인물의 숙련도 노가다.

초대규모의 실험장, 1급 결계, [공간 관여], [마력 지배], 수십억에 이르는 돈, 위험할 때 바로 피할 수 있는 안전지대 등등. 모든 조건이 맞아야 할 수 있는 일.

만족스러운 설계였다.

‘끄으응. 죽겠네.’

두 번 할 짓은 아니다.

그래도 과실은 달콤했다.

한성은 계속되는 폭발 속에 [마력 지배] B등급을 만들었고 [공간 관여]까지 C등급으로 만들 수 있었다. 평균적으로 1년 이상은 플레이해야 하는 숙련도를 단번에 끌어 올린 것이다.

한성은 슬쩍 뒤를 돌아봤다.

입을 벌리고 굳어버린 길이현이 보였다.

< 고인물의 숙련도 노가다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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