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588화 (1,587/1,826)

§ 나는 될놈이다 1588화

사실 태현이 지금 쓰는 가명은 예전에 길드 동맹 털고 다닐 때 쓰던 가명 중 하나였다.

멍청한 앨콧 놈이 이상하게 지어준 바람에 쓰게 된 이름!

‘그래도 케인보단 낫지.’

케인은 마오쩌둥이었으니까….

“어, 어쨌든 저렇게 김태현처럼 좀 잘 지으란 말야.”

“김 마루오까 멋있는데….”

“넌 그런 희한한 이름을 어디서 봤냐?”

“한국 드라마에서.”

“한국 드라마에 그런 이름이 나온다고?”

원정대 랭커들은 투덜거리면서도 다시 이름을 고쳤다.

서로 랭커들인 만큼 이번 퀘스트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었다.

“안내판이다. 목표가 가까워지고 있어. 김태현.”

“다행이군.”

길드 동맹이 길에 세워 놓은 안내판이 보였다.

<이쪽으로 가면 아레네 시>

아레네 시.

길드 동맹의 수도나 마찬가지인 도시였다.

그런 만큼 그 규모와 상징성은 어마어마했다.

판온에서 가장 많은 현금이 들어갔고, 가장 높고 두꺼운 성벽, 가장 깊은 해자, 가장 넓은 도시 광장, 가장 많은 수비병 NPC들 등등.

태현도 몇 번 아레네 시에 와봤던 만큼 여기가 얼마나 철옹성인지는 잘 알았다.

“미안하지만 아레네 시에서 오래 있을 수는 없다. 방어를 도와줄 수도 없고. 결국에는 넘어갈 테니까.”

태현의 말에 길드 동맹 랭커들은 각오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들은 도시를 구원하러 가는 게 아니었다.

도시에 있는 것들 중 갖고 나올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갖고 나오려고 가는 거였다.

“내가 직접 설득하겠다. 김태현.”

“나도 설득하겠어.”

길드 동맹 랭커들은 진지하게 말했다.

도시를 지키고 있는 길드원들은 물론이고 도시 안에 있는 여러 정예 NPC 부대들은 이대로 버리기 아까웠다.

그들이 빠지면 도시는 더 빨리 무너져내리겠지만….

그건 패배가 아니라 승리를 위한 인내였다.

길드 동맹 랭커들은 그렇게 믿었다.

“가자. 우리가 직접 말해야….”

“…….”

“…….”

갑자기 말이 없어진 길드 동맹 랭커들.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 그러냐?”

“…….”

대답은 곧 나왔다.

아레네 시 성벽 위에 길드 동맹의 깃발이 아닌, 스미스의 화이트 나이트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던 것이다.

“…….”

“…….”

일행은 모두가 침묵했다.

* * *

충격에서 벗어난 원정대 랭커들은 격렬하게 반응했다.

“이 첩자 새끼들 매달아버리죠!”

“말이 됩니까!? 여기까지 오는데 몰랐다는 게!?”

“진… 진짜 몰랐다. 믿어다오!”

길드 동맹 랭커들은 자기들이 변명하면서도 설득력이 없게 느껴졌다.

솔직히 자기들도 당황스러웠다.

아니, 어떻게 아레네 시가 함락되는 동안 연락이 없었지??

“어떻게 몰라 미친놈들아!”

“너희 길드 내에서 왕따냐?”

“…….”

길드 동맹 랭커들은 괜히 서러워졌다.

그런가?

사실 우리가 밖에 나가서 새로 채팅을 판 건가??

“30분 전에 함락됐군. 모를 수도 있었겠다.”

태현은 방송을 확인했다.

서로 게임단부터 길드까지 생방송을 하고 있는 덕분에 상황 확인은 쉬웠다.

스미스의 화이트 나이트가 30분 전에 아레네 시를 점령한 것이다.

“어, 어떻게… 어떻게? 말도 안 돼!”

“아레네 시에는 정말 온갖 방어 수단이 있다고! 김태현 놈… 아니, 외부 침입자를 막기 위한!”

“별 쓸모가 없었겠지. 항복했다는군.”

“…….”

“…….”

길드 동맹 랭커들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항복이라니!

아무리 길마가 로그아웃당하고 랭커들이 흩어졌다지만 항복이라니!

“항복하면 이것저것 챙겨준다고 했겠지.”

“배신자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스미스 놈한테 붙어!?”

“세상일이 그런 거지.”

태현은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아레네 시가 이렇게 쉽게 상대한테 넘어갔다는 건 좀 충격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이 달라지진 않는 것이다.

“우린 우리대로 할 일을 한다. 조금 더 어려워지긴 했지만.”

‘이 자식은 진짜 멘탈이 다이아몬드인가?’

길드 동맹 랭커들은 새삼스럽게 놀랐다.

지금 그들은 뒤통수가 아파서 어질어질한데 태현은 1초 만에 회복해서 ‘자 퀘스트나 하자’라고 하고 있었다.

이럴 때 보면 사람 같지가 않았다.

“항복했으니 아직 안에는 길드 동맹 길드원들이 많을 거야. 위장하기는 더 좋아졌어. 안으로 들어가서 돌아다닌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아레네 시는 넓었고 숨을 곳은 많았다. 거기에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숫자가 많았으니 몇 명 낀다고 눈치를 챌 수 없었다.

스미스와 화이트 나이트가 눈치채기 전에 최대한 많은 전력을 데리고 나간다!

“…그런데 김태현.”

길드 동맹 랭커, 린야오와 마이크가 말했다.

“항복하기 전이면 데리고 나올 수 있었지만, 항복한 뒤면 지금 시 창고부터 시작해서 중요한 곳들은 다 점령됐을 텐데… 그리고 우리 말을 듣지도 않을 거고.”

“괜찮다. 믿어라.”

태현의 말에 길드 동맹 랭커들은 감동했다.

진심을 믿으라는 것인가?

지금 몇몇 놈들은 배신했다지만 대부분의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분한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믿고 진심으로 설득한다면….

“안 되면 목에 칼 들이대고 협박하면 된다.”

“…아. 그런 이야기였구나….”

길드 동맹 랭커들은 정신을 차렸다.

하긴 그걸로 뭐가 되겠어!

* * *

“아레네 시를 철저하게 장악해라!”

뉴욕 라이온즈의 선수 중 하나인 고메즈는 사납게 외치며 부하들을 부렸다.

이번 퀘스트에서 뉴욕 라이온즈는 정말 파격적인 길을 선택했다.

선수들이 대거 악 성향 퀘스트에 참가한 것이다.

물론 그들이 원해서 참가한 건 아니었다. 스미스 때문에 반강제로 참가하게 된 것에 가까웠다.

가장 간판선수인 스미스가 참가했는데 그들이 빠질 수는 없지 않은가.

‘흥. 하지만 하게 된 이상… 철저하게 하겠다.’

고메즈는 그렇게 생각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실제로, 스미스가 거둔 성과는 놀라운 정도였다.

그 길드 동맹이 한 번의 전투로 몰락해서 분열 직전까지 몰리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김태현도 이런 업적은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창고, 수비 시설, 상급 건물들… 다 우리 플레이어들을 배치해라.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제한 구역 안에 있도록 해! 괜히 돌아다니게 했다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NPC들도 한곳에 모아! 언제 배신할지 모르는 놈들이야.”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시작한 이상, 대륙 대부분의 NPC들은 적대한다고 봐야 했다.

길드 동맹 간부들이 배신했다지만 남은 사람들이 전부 다 같이 배신한 것은 아니었다.

철저히 대비해야 했다.

“고메즈!”

“뭐야?”

“여기 이 NPC는 네가 직접 알고 있어야 할 거 같아서.”

뉴욕 라이온즈의 선수가 NPC 한 명을 데리고 달려왔다.

“오스턴 왕가의 핏줄을 이은 후계자래.”

“뭐!”

고메즈는 깜짝 놀랐다.

그런 중요 NPC가 있을 줄이야.

-나는 스타인하우어! 오스턴 왕가의 핏줄을 이은 적통이다! 나를 정당하게 대접해라! 모험가들!

태현 같은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황당해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스타인하우어는….

매우 아키서스 교단에 어울리는 NPC였던 것이다.

도박 좋아하고 한심하고 인생 날로 먹으려고 하고 등등.

물론 오스턴 왕가의 핏줄을 갖고 있긴 했다.

그래서 오스턴 왕국의 데스 나이트들이 밀어주지 않았던가. 길드 동맹도 눈물을 머금고 ‘알겠다 이 자식 챙겨주마’라고 약속했었고.

스타인하우어는 그런 이들을 시원하게 뒤통수쳤다.

-이 자식 또 도박하다가 돈 날렸어?!

-이 자식이라니! 정당한 왕가의 후계… 억! 쳤어!? 쳤어!?!

-이 자식이 성 문서 팔아서 도박할지도 모릅니다!

-감시 붙여! 아니다, 그냥 아레네 시로 끌고 와서 다른 귀족 NPC들 사이에 묶어버려!

쪽팔려서 외부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길드 동맹은 정말 치를 떨었다.

오죽하면 길드원들을 옆에 붙여서 24시간 감시를 했을까.

…물론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스타인하우어의 진면목을 알 리가 없었다.

핏줄도 그렇고 복장도 그렇고 정말 중요한 NPC인가 보다!

“저건 그냥 내버려 둘 수 없겠어. 음… 일단 아레네 시 중앙 탑에 가두자.”

“중앙 탑?”

“그래.”

아레네 시를 상징하는 중앙 탑.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높게 솟아 있는 탑은, 길드 동맹 길드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그 주변으로 중앙 광장이 지금 텅 빈 상태니 거기 안에 가두면 가장 안전하다고 할 수 있었다.

“다른 NPC들 중에서도 중요한 NPC들은 탑 안에 가두고, 주변으로 포위망을 쳐.”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흥. 이 정도는 당연한 거지. 허술하게 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

고메즈는 동료의 말에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물론 고메즈도 여기 항복한 길드 동맹 길드원들이 뭘 할 거라고 진지하게 걱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아레네 시에는 NPC들도 많았고,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게다가 지금 수많은 방송이 이 곳을 주목하고 있는 만큼 훨씬 더 부각되리라.

‘스미스가 없는 사이에 내 이름을 알리겠어.’

-이 자식들! 날 대접하라니까! 왜 끌고 가는 거냐! 아레네 시 여러분들! 이 창칼로 도시를 점령한 무뢰배 놈들이 고귀한 시민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저거 진짜 고귀한 NPC는 맞겠지??”

* * *

태현과 랭커들은 빠르게 돌아다니면서 도시 상황을 파악했다.

길드 동맹 랭커들은 도시에 남아 있던 길드원들에게 연락을 보내서 슬며시 질문을 던졌다.

-항복했다면서? 상황이 어떻지?

-말도 마세요! 미친놈들이 자기 멋대로 항복했어요! 간부 자리 약속 받았나 봐요. 지금 길드원들은 통제 구역에만 있어야 하고….

그런 식으로 태현은 차근차근 정보를 모아 지도를 완성해갔다.

“여기는… 그렇군. 남쪽 성벽을 지키기 위한 마법 시설이구나. 방어막을 켜고, 마법사들이 나올 수 있는.”

“그래. 김태현. 그리고 거기서 이어지는 이 통로는….”

“도시에서 기르는 야수를 밖으로 꺼내서 전투에 쓸 수 있는 비상용 통로겠지.”

“…너 어떻게 아냐?”

순간 어색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길드 동맹 랭커들은 모르고 넘어가려고 해도 눈치 챌 수밖에 없었다.

‘김태현 이 자식이 첩자 풀어서 알고 있었구나…!’

‘이걸 대체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야?’

나름 길드 동맹에서도 철저한 비밀로 지켜지고 있던 비밀 시설들도 알고 있는 거 보면 소름이 돋았다.

…혹시 길드 동맹 간부에 첩자가 있는 거 아닌가?

“일단 가장 가까운 곳부터 확보하자. 여기 <왕가의 전설적인 마굿간>이 있지 않나?”

“…그래. 있다!”

길드 동맹 랭커들은 왠지 분해서 말했다.

진짜 다 꿰고 있네!

“황금 그리핀과 순은 유니콘을 키우고 있다면서? 일단 그것부터 빼자.”

“…너 진짜 내가 안 물어보려고 했는데 대체 어떻게 아는 거냐??”

“다 소문이 들려오던데.”

“뭔 소문이 들려와!”

태현은 빼돌려도 소란이 덜한 놈들부터 빼돌리려고 했다.

그중 하나가 <왕가의 전설적인 마굿간>.

길드 동맹에서 아레네 시 깊숙한 비밀 장소에 준비한 시설이었다.

이런 비밀 장소들은 아직 적들은 모를 가능성이 높았다.

“아. 근데….”

“?”

“이거 마굿간 담당하고 있는 간부가 좀 까다로운 놈이거든. 장샨이라고, 일은 잘하는데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

“아. 장샨이라면….”

길드 동맹 랭커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일개 길드원 출신에서 간부 자리까지 오른 장샨은, 그 능력만큼 성격도 꼬장꼬장한 놈이었다.

아무리 비상상황이라고 말해도 ‘명령 없이는 풀어줄 수 없습니다’라고 할 가능성이 컸다.

“장샨을 죽여야 하나?”

“난 장샨을 죽이기 싫은데. 그놈처럼 일 열심히 하는 놈이 어디 있다고.”

“하지만 지금 상황이 설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길드 동맹 랭커들이 떠들고 있는 사이, 태현은 그냥 앞으로 걸어갔다.

“장샨?”

“앗. 김태현 선수! 오랜만입니다!”

“그래. 부탁 좀 할게.”

“예. 여기 열쇠 있습니다.”

“…….”

“…….”

길드 동맹 랭커들은 경악했다.

너….

너 첩자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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