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25화
“김태현한테 지면 죽어.”
이세연의 말에 팀원들은 화들짝 놀랐다.
평상시에는 언제나 예의 바르게 그들을 이끌던 든든한 주장, 이세연!
수많은 프로게임단들이 나오고 있었지만 팀원들은 이세연을 완벽한 주장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
“??!?!”
“…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휴. 농담이었구나.’
‘아니. 농담 아닌 것 같은데.’
입으로는 농담이라고 하고 있었지만 눈빛으로는 진짜라고 말하는 기분!
“죽을 정도로 기분이 좋지 않겠죠. 그렇죠?”
“네… 네!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럴 거 같아요! 언니!”
이세연의 눈빛은 살기가 번뜩였다. 여기서 ‘준우승도 만족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팀원들은 배짱이 좋지 못했다.
심지어 태현의 광팬인 류태수도 입을 벙긋하지 못했다.
‘무서워!’
-두 팀, 주장을 중심으로 모여서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마치고 있습니다.
-지금 케인 선수 눈가에 눈물이 맺힌 것 같은데, 제가 제대로 본 건가요?
-아니. 맞습니다! 이거 감동적이군요. 케인 선수는 여기까지 팀원들과 같이 온 여정에 감정이 북받쳤나봅니다!
-두 주장이 서로 악수합니다!
꽈아악!
태현과 이세연이 악수하자 안 그래도 컸던 함성이 몇 배로 커지는 기분이었다.
두 탑 플레이어들의 악수!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빛만 봐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느껴졌던 것이다.
-던전 안에서 서로 공격 가능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내 말이 그 말이야.
* * *
-두 팀. 조심스럽게 움직입니다.
-던전을 제대로 파악하기 전에는 조심스럽게 움직일 수밖에 없겠죠.
결승전 던전은 그 이전보다 정보가 적고, 난이도가 올라간다고 공지가 되어 있었다.
아무리 태현이나 이세연이라도 무작정 밀고 들어갈 순 없었다.
그리고 두 팀은 어차피 준비 단계가 필요했다.
지금은 파악하고 준비하는 시간!
땅땅땅땅!
태현은 빠르게 망치질하며 최상윤에게 물었다.
“던전 특성 확인했어?”
“몬스터 HP가 늘어난 것 같은데. 2배에서 3배 정도.”
던전의 특성은 랜덤으로 정해졌다.
이번 던전은 몬스터들의 HP가 늘어나는 특성!
심플하지만 어려운 특성이었다.
‘하지만 차라리 낫다.’
태현 팀의 전략은 빠르게 몬스터들을 몰아 한곳에 넣고 화력으로 쓸어버리는 것.
HP가 많아져도 커버가 될 것이다.
-어? 김태현 선수. 지금 뭘 만들고 있나요?
-창 발사대가 아니네요?
이제까지 태현 팀이 들고 다녔던 공성 병기들은 <창 발사대> 계열이었다.
태현의 스킬이라면 더 강력한 공성 병기들도 만들 수 있었지만, 제작 시간과 들고 다니는 걸 생각했을 때 가장 적당한 것이 <창 발사대> 계열!
-저건… 대포인가요? 대포를 여기서?
-대포가 좋긴 한데 저걸 들고 다니는 건 너무 무모한 거 아닌가요? 게다가 재료 수급도 힘들 것 같은데….
-마누엘 해설자님. 어떻게 보시나요?
-지금 김태현 선수는 몬스터 HP가 많아진 던전의 특성을 파악하고 대포를 고른 것 같습니다. 대포가 무겁지만 케인 선수와 이다비 선수가 같이 옮기면 못 옮길 것도 없지요.
-아… 그런!
-두 명이나 빠지는데도요?
-김태현 선수나 정수혁 선수의 화력 정도면 충분하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대포 포탄이 부족한 건 화려한 컨트롤로 커버가 가능한….
‘다 됐군.’
태현은 제작을 마친 후 스킬을 사용했다.
기계공학 스킬 최고급을 찍고 얻은 스킬, <기계장치로부터 온 신>!
마누엘을 포함한 아무도 알지 못했다. 태현이 이 상황까지 저런 강력한 스킬을 숨기며 왔다는 것을.
심지어 도중에 드래곤 사냥까지 있었는데!
-기계장치로부터 온 신!
[기계공학 아이템에 막대한 신성력을 불어넣어 일시적으로 생명을 부여합니다!]
* * *
한편 유성 게임단도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HP 특성? 알겠어요.”
이세연은 보고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속성이지만 다른 까다로운 속성보다는 나았다.
변수는 줄어들 테니까.
-이세연 선수가 주로 쓰는 골렘은 총 21가지입니다. 그리고 본선에서 주로 썼던 골렘은 <붉은 슬라임 골렘>이었죠?
-네. 그렇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본선에 진출한 거의 모든 팀들이 폭탄 아이템을 사용했었죠? 이 폭탄 아이템을 어떻게 안정되게 사용하냐에 따라 승패가 갈렸다고 과언이 아닙니다.
작고, 무게도 별로 안 나가지만 쿨타임 없이 강력한 화력을 만들 수 있는 아이템, 폭탄!
문제는 불안정해서 언제 오작동이나 부작용이 나올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이세연은 골렘들의 특수 효과로 이 문제를 해결했었다.
-이세연 선수의 <붉은 슬라임 골렘>은 골렘 안에 들어간 아이템을 안정화시키는 효과가 있었죠.
-아마 시간 정지나 동결 같은 효과가 아닌가 추측하고 있는데요. 또 <붉은 슬라임 골렘>을 사용할까요?
-당연하죠. 제가 말씀드렸지만 이 결승전에서 새로운 전략이 나오는 건….
그 순간 이세연은 준비를 마치고 골렘을 소환했다.
-<폭발하는 가스 거인 골렘> 소환!
-어? 방금 뭔가요?
-지금 뭘 소환한 거죠 이세연 선수? 저건 처음 보는 골렘인데요??
-마누엘 해설자님. 저건 뭐죠? 처음 보는 골렘 아닌가요?
-아, 아니… 저건 그러니까….
마누엘은 진땀을 흘렸다.
정말 처음 보는 골렘!
이세연이 깬 전설 퀘스트가 몇 개고, 심지어 길드 동맹과 평원에서 맞부딪혔는데….
그때에도 저런 골렘을 쓰지 않고 있었다고?
‘그게 말이 돼?! 아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초일류 선수들은 말도 안 되는 짓을 태연하게 저지르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이 둘은 치밀한 전략적인 계획보다는 ‘상대방한테 엿을 먹이고 싶어!’란 일념으로 저지른 일이었지만!
마누엘은 당황했지만 다른 캐스터들은 신이 나서 소리쳤다.
-아, 이세연 선수! 역시 결승전을 그냥 평범하게 끝내지 않습니다! 비장의 한 수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이겁니다! 저는 이세연 선수를 믿고 있었습니다! 이런 수가 바로 판온 아니겠습니까?
-결승전을 대비한 이 인내심! 이게 바로 이세연입니다!
<폭발하는 가스 거인 골렘>은 이세연이 준비한 비장의 카드였다.
전설 퀘스트를 깨고 얻은 소환 스킬!
안에 폭탄들을 잔뜩 쟁여놓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기 자신도 폭발할 수 있는 이 골렘은 어마어마한 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세연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리치 변신부터 각종 강화 스킬까지 전부 걸고 들어갔다.
전설 직업의 밑천을 모두 한 번에 보여준다!
‘언니… 그렇게 한 번에 다 할 필요는….’
김현아는 착잡해졌다. 평소에는 여유가 있었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김태현을 얼마나 이기고 싶으면 저럴까!
-이세연! 이세연! 이세연!
-이세연! 이세연! 이세연!
생각지도 못했던 스킬 깜짝 등장에, 전설 직업의 스킬들까지 총출동하자 경기장은 이세연의 이름을 부르는 외침으로 가득해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태현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태현도 시작한 것이다.
* * *
-소환됨. 주인. 명령.
“가자!”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태현 일행은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신성력이 부여된 거대 대포>는 마치 골렘처럼 자기가 알아서 움직였다.
‘진작에 좀 하지!’
짐을 들지 않아도 되자 케인의 어깨는 한결 가벼워졌다.
-저거 대체 무슨 스킬인가요! 공성 병기가 살아서 움직입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스킬은 아닌데요!
저런 스킬이 평범한 일반 스킬일 리 없었다.
-마누엘 해설자님! 저 스킬을 어떻게 보시는지… 마누엘 해설자님!
캐스터들이 마누엘의 옆구리를 찔렀다.
정신 차려!
정신이 혼미해진 마누엘은 고개를 흔들었다. 명해설자인 그가 여기서 이렇게 흔들릴 수는 없었다.
-두… 두 선수 모두 결승전을 대비해 비장의 한 수를 숨겨놓은 것 같군요. 허허허.
-아니, 해설자님께서는 그런 거 없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살다 보면 예측이 틀릴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안 그래요? 저기 김태현 선수가 소환한 대포 보십시오! 아주 화력이 대단합니다!
노골적인 말 돌리기!
캐스터들은 당황했지만 마누엘의 말을 맞춰줬다.
[<신성력이 부여된 거대 대포>가 포탄을 발사합니다!]
장전 과정 필요 없음!
포탄 만들어서 넣을 필요 없음!
들고 다니다가 자리 잡고 준비할 필요 없음!
공성 병기의 단점이 모두 사라진 거대 대포는 사기에 가까웠다.
게다가 태현의 기계공학 스킬은 거의 정점에 도달한 상황.
<기계장치로부터 온 신> 스킬의 힘은 더더욱 강해졌다.
‘다 좋은데….’
‘우리 할 일….’
‘너무 없는 거 아닌가?!’
덕분에 태현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은 민망함을 느낄 정도였다.
지금 경기장에는 수만 명이 넘게 모여 있고 온라인으로는 수천만이 넘게 보고 있을 텐데….
-발사. 처치. 발사. 처치.
몬스터들의 HP가 올라간 덕분인지 대포의 포격 난사에서도 버틴 놈들이 좀 있었다.
그걸 본 케인과 최상윤이 외쳤다.
“앗. 살아남았다!”
“내가… 내가 잡을 거야!”
“…기뻐 보이십니다?”
“아, 아니. 무슨.”
그러나 태현은 그런 기회도 주지 않았다.
-아키서스의 돌격!
[아키서스의 사악한 힘으로 공간을 무시하고 빠르게 돌진해 상대를 공격합니다!]
[상대를 쓰러뜨렸습니다! 스킬의 쿨타임이 초기화됩니다!]
-아키서스의 돌격!
슉슉슉!
사방에서 빛이 번쩍이며 몇 마리 남지 않은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쓰러져나갔다.
케인과 최상윤은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동시에 말했다.
“야!!!”
“…?”
태현은 왜 저러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우… 우리도 좀…!”
“새삼스럽게 왜 이래? 빨리 움직여! 이세연이 뭘 하고 있을지 어떻게 알아!”
* * *
기계공학 대장장이, 다니엘은 결승전 영상을 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태현이 폭탄으로 랭커들을 쓸어버린 걸 봤을 때와 비슷한 감동!
‘저… 저거다! 바로 저거야!’
살아 움직이는 기계공학 장치!
‘나는 이제까지 너무 머리가 굳어 있었어!’
폭탄만 만드는 가브리엘 쪽 기계공학 대장장이들과 작별하고 나서, 다니엘은 정말 빠르게 성장했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의 랜덤박스에 들어갈 아이템을 다니엘 혼자서 전부 만든 것이다.
뼈를 깎는 중노동이었지만 다니엘은 즐거웠다.
그렇지만 요즘 무언가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더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답답함!
그렇지만 오늘 태현의 영상을 보니 무언가 번개를 맞은 것 같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바로… 저거다!’
예전에는 기계공학 스킬이 낮았지만 이제는 수많은 랜덤박스 노가다로 단련된 상태.
그도 태현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었다. 다니엘은 무엇에 홀린 것처럼 설계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기계공학 말! 기계공학 새! 기계공학 전투견! 기계공학 칼날바퀴외발자전거!’
기계공학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입에서는 불을 내뿜고 말발굽에서는 벼락을 내뿜으며 옆구리에서는 화살이 쏘아져나가야 했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공방일체!
공격과 방어가 모두 한 번에 이뤄지는 궁극의 병기들!
[현재 기계공학 스킬 수준으로 다음과 같은 설계도를 만들 수 없습니다.]
[페널티가…]
[……]
어지간히도 고난이도였는지 안 된다는 메시지창만 계속 떴다.
그러나 다니엘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냥 쉽게 되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크크크… 크하하하하하하하!”
다니엘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이런 걸 도전할 수 있다니!
난 정말 행운아야!
밖에서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수군거렸다.
“다니엘 님 또 왜 저래?”
“내버려 둬.”
다니엘이 좀 이상한 것 같아도 그래도 일은 열심히 하는 그런 친구였으니까!
그렇지만 가끔 무서울 때가 있었다.
“어렸을 때 본 만화영화에서 나오는 악당 박사 같은….”
“쉿. 조용히 해.”
훗날 판온에서 <다니엘 시리즈>라고 불리는 각종 기계공학 병기들의 탄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