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26화
다니엘이 자기의 모습을 보고 악당 박사가 되어가고 있다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태현은 던전을 돌며 몬스터들을 쓸어나갔다.
-좌측 상단 대각선 방향 적 발견. 적 발견. 공격.
거대 대포는 엄청나게 유능했다.
태현이 발견하지 못하고 숨어 있는 적을 잡아내고, 적을 유인해내고, 섬멸까지!
케인과 최상윤이 위기를 느낄 정도였다.
‘김태현만 아니라 저 대포도 우리 할 일을 대신하고 있어…!’
‘진짜 팝콘이나 가져왔어야 했나?’
빠르게 움직이고는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초조함이 가득!
콰콰쾅!
-처리. 처리.
네 번째 구역까지 깔끔하게 쓸어버리는 대포를 본 태현은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이 위화감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너무 멀쩡해서 위화감이 드는 거였군!’
태현은 왜 위화감이 드는지 깨달았다.
원래 태현이 쓰는 스킬들은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부분들이 있었다.
아키서스의 신수나 사디크의 신수도 그러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신성력이 부여된 거대 대포>는 유능해도 너무 유능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고, 자기가 할 일을 알아서 척척척 하는 대포!
이런 대포가 10개 정도만 있으면 판온 정복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아니. 흔들리지 말자. 저 대포도 분명 무슨 단점이 있을 거야.’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도 아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스킬 시간이 끝나면 그냥 대포로 돌아오게 된다니.
‘다른 아이템한테 신성 부여를 해도 똑같이 이렇게 유능하겠지?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
왠지 모르게 그런 슬픈 예감이 들었다.
앞으로 이렇게 유능한 기계공학 아이템은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
“김태현! 위험해!”
“…?”
신나게 다음 위치로 이동하던 도중 케인이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방패를 들어 몬스터의 공격을 막았다.
“위험했어!”
“…너 지금 카메라 신경 쓰는 거 아니지?”
“아, 아니야.”
* * *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태현이 생각지도 못한 스킬을 꺼내자 경기장은 아까와 다른 흥분에 휩싸였다.
언제나 기계공학 메타에 새로운 답을 제시하는 태현!
벌써부터 사람들은 저 스킬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아무리 그래도 저 스킬 하나 얻자고 기계공학 하는 건 미친 짓이라든지로 떠들고 있었다.
태현이 꺼낸 대포가 화려하게 화면을 장식하며 몬스터들을 쓸어버릴 때만 해도 사람들은 태현 팀의 승리를 예상했다.
-아! 그렇지만 유성 게임단도 밀리지 않습니다! 이제 막 네 번째 구역을 돌파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세연 팀은 따라붙었다.
태현 팀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이세연 팀은 견실하게 균형 잡힌 강함이 있었다.
이세연 팀의 카드는 단순히 <폭발하는 가스 거인 골렘> 같은 것뿐만이 아니었다.
이세연 본인이 서버에서 제일가는 네크로맨서라는 것 자체가 장점!
이세연이 아껴뒀던 직업 버프 스킬들을 전부 꺼내 팀원들한테 걸고, 이세연 팀 사제까지 버프를 걸자 팀원들의 전력은 무시무시하게 증가했다.
너무 정석적이고, 이미 다 알려진 스킬들이라 화려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세연 정도 되는 플레이어가 쿨타임 때문에 아껴놨던 버프들까지 다 꺼내면 그 위력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균형 잡힌 강함!
태현 팀처럼 괴상한 조합의 팀은 보여줄 수 없는 강함이었다.
이세연 팀은 골렘으로 부족한 화력은 팀원들의 힘으로 극복하고 따라붙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요상한 구도가 완성되었다.
미쳐 날뛰는 태현 팀의 뒤를 따라붙는, 서로 손에 손을 잡고 협력해서 따라가는 이세연 팀!
마치 태현 팀이 악당 같고 이세연 팀이 주인공 같은 느낌이었다.
-김태현! 날 널 응원한다! 사악하면 어떠냐! 이기면 그만이지!
-김태현! 그냥 케인을 대포에 넣고 쏴라!
몇몇 태현의 광팬들이 외치는 대사가 더욱더 태현을 악당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 * *
밖에서 악당처럼 보이든 말든 태현의 머리는 계산으로 복잡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단순히 플레이어들의 스킬이나 화려한 전투 컨트롤을 보고 환호했지만, 안에서 뛰는 선수들에게는 다른 능력도 필요했다.
밖으로 보이진 않지만 필요한 능력들!
지형 파악, 전략 짜기, 집중력 유지하기 등….
-아. 케인 선수. 김태현 선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갈림길을 앞두고 뭐부터 돌지 계획을 짜고 있는 거겠죠. 놓치기 쉽지만, 던전 안에서 뛰는 선수 입장에서는 정말 초조하고 혼란스러울 겁니다. 한끝 차이로 시간을 잡아먹힐 수 있거든요.
-사실 이런 건 혼자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일류 팀일수록 팀원들이 같이 판단을 내리죠. 얼마나 합이 맞고 의사소통이 잘 되는지도 팀의 능력 아니겠습니까.
-아! 팀 KL 움직입니다! 바로 결정을 내렸나봅니다. 역시 빠릅니다!
하지만 사실은 조금 달랐다.
지형 파악부터 전략 짜는 것까지, 태현 팀은 태현이 전부 맡아서 했다.
태현은 처음 들어오는 던전의 지도를 머릿속에서 그리며 빠르게 다음 지역을 예측했다.
‘북서쪽에 방 2개 있었고 오른쪽으로 길 있었으니….’
-야, 어디로 가지? 헉. 이세연 팀이 역전했으면 어떡하지? 나 한 거 없는데…! 사람들이 나 때문이라고 욕할 거야!
결승전의 압박!
빠르게 뛸 때는 몰랐지만 잠시 멈추자 바로 공포가 올라왔다.
이런 혼란을 잡아주고 사기를 올리는 것도 주장의 역할이었다.
-케인.
-응?
-입 안 다물면 너부터 죽이고 간다.
-…….
-계산 다 했다. 가자!
* * *
-김태현! 먼저 보스 던전에 들어갑니다!
-이세연 팀도 30초 안에 들어갑니다. 역시 결승전답습니다! 두 팀! 조금도 양보하지 않습니다! 팽팽합니다!
-두 팀 다 일반 몬스터들은 전부 해치운 상태. 보스 몬스터를 누가 먼저 잡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립니다!
-하지만 절대 만만하지 않을 겁니다. 특히 결승전의 보스 몬스터는 몇 배나 더 높은 지능에 까다로운 패턴을 갖고 있을 거라고 이미 사전에 예고가 되어 있었거든요! 두 팀 모두 그걸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 패턴을 파악하고 어떻게 들어갈지가 승부겠지요?
-그렇습니다. 대포나 가스 골렘의 화력으로 밀어붙이고 싶겠지만 아쉽게도 보스 몬스터는 그 정도로는 힘들 겁니다.
캐스터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콰콰쾅!
-목표 방어력 높음. 데미지 잘 안 들어감.
[<피에 미친 외눈 거인 전사>가 울부짖…]
-아키서스의 축복!
[…습니다!]
상대방이 뭔가 하려는 순간 태현은 버프부터 걸고 봤다. 빠른 판단이었다.
[회피에 성공…]
[회피에 성공…]
거인 전사가 쏘아 보낸 음파가 일행들을 미친듯이 공격했지만 전부 다 회피가 떴다.
-두 팀 다 공격이 느려졌습니다. 보스 몬스터 방어가 단단하다는 걸 깨달은 거겠죠.
-어떻게 공략할지 고민하고 있을… 어, 지금 뭐하는 거죠? 팀 KL? 설, 설마….
-지금 설마….
해설자들과 캐스터들은 경악했다.
팬들도 경악했다.
지금 태현 팀은….
케인을 대포에 넣고 있었다!
-목표 조준. 목표 조준.
“준비 됐냐? 간다!”
태현은 케인에게 살라비안 권능과 살아 움직이는 폭탄까지 사용했다.
-살라비안의 폭주, 살아 움직이는 폭탄!
어차피 이 특별 던전 내에서는 사망해도 페널티가 없었다.
플레이어의 목숨도 쓸 수 있는 자원 중 하나!
‘최대한 폭딜 넣은 다음 케인까지 폭발시킨다.’
지금 가능한 최선의 폭딜 시나리오!
물론 이론상 그런 것이고, 실제로 팀원까지 동원해서 자폭 공세를 가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까 팬들 중에서 ‘케인을 넣고 쏴라!’라고 했던 팬들도 입이 떡 벌어져서 다물지 못했다.
진짜 쏘란다고 쏠 줄이야!
“가자!”
준비는 끝났다.
태현은 아키서스 직업 스킬들과 각종 신성 권능 스킬들을 보스 몬스터에게 걸고 덤벼들었다.
-살라비안의 생명력 봉인, 아키서스의 저주!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 아키서스의 첫 번째 공격, 치명타 폭발! 파이토스의 일격!
하나하나만 해도 무시무시한 스킬들이 풀려나왔다.
<피에 미친 외눈 거인 전사>가 맞받아치기 위해 무기를 휘둘렀지만 태현은 오히려 무기 위를 타고 올라가 보스 몬스터의 약점을 집중 공략했다.
MP나 스킬 쿨타임 생각은 안 하고 한 번에 전부 쏟아붓는 폭딜!
[적이 일시적으로 너무 많은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한동안 눈을 뜨지 못합니다!]
[적이 살라비안의 생명력 봉인으로 인해…]
[적이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 안에 있습니다!]
[적이 사디크의 화염에…]
[……]
-크아아악!
그걸 본 해설자와 캐스터들은 대포에 케인이 들어가 있는 것도 잊고 열광했다.
-김, 김태현 선수! 폭발적입니다! 정말 폭발적이에요! 보스 몬스터를 그대로 밀어붙입니다!
-…그런데 케인 선수는 대체 왜 대포 안에 들어가 있는 거죠?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MP가 전부 소모되었습니다!]
[MP가 0이 된 것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멀미 상태에 빠집니다!]
가상현실게임에서 시야가 흔들리는 멀미 상태는 사람을 아주 짜증 나게 만들었다.
특히 이런 보스 몬스터 레이드일 경우에는 더더욱!
태현은 이를 악물고 균형을 잡았다. 그리고 외쳤다.
“케인! 쏴라!”
“…그래! 이렇게라도 눈에 들 수 있다면!”
콰아앙!
케인이 뭔가 이상한 소리와 함께 발사되었다. 두들겨 맞던 거인은 태현을 붙잡고 반격하려다가 무언가 날아오는 걸 보고 움찔했다.
꽝!
[거대한 충격에 스턴 상태에…]
[<살라비안의 폭주> 상태입니다! 스턴 상태에 걸리지 않습니다!]
“컥!”
케인이 들이박자 거인도, 케인도 신음을 내뱉었다.
그러나 케인은 태현처럼 빠르게 반응하고 균형을 잡는 능력이 없었다.
탁!
거인이 한 발 더 빨리 케인을 붙잡았다.
-쿠오오!
케인을 물어뜯으려고 하는 거인! 그걸 본 태현은 웃었다.
아주 알아서 목을 내미는구나!
“잘 가라!”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경기를 중계하는 화면이 화염과 폭발, 빛에 휩싸였다.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볼 수 없을 정도로!
* * *
유성 게임단은 모범적으로 공략했다.
전설 직업 네크로맨서다운 각종 직업 저주 스킬을 중첩시켜 보스 몬스터를 약하게 만든다.
느려지고 판단력이 흐려진 보스 몬스터를 각종 방어력 관통 있는 스킬들과 데미지 높은 스킬들로 때린다.
두들겨 맞은 보스 몬스터에게 빈틈이 보이면 가스 골렘을 접근시켜 폭발시킨다.
이 과정을 반복!
그 강하던 보스 몬스터가 고작 5명 앞에서 농락당하듯이 두들겨만 맞고 있었다.
안정적인 레이드 그 자체였다.
‘으… 불안해….’
손끝은 한 치의 떨림도 없이 각종 스킬들을 최적의 순서대로 연사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다!
마지막을 앞두자 밖의 상황이 정말 궁금했다. 과연 김태현은 얼마까지 갔을까? 설마 먼저 깨고 나왔을까?
‘그 자식도 분명히 숨기고 있는 게 있을 텐데….’
“됐다!”
[<피에 미친 외눈 거인 전사>가 쓰러졌습니다!]
[던전 공략이 완료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팀원들의 환호성과, 던전 공략 메시지창이 떴다.
이세연은 두근거리는 기분으로 밖으로 나왔다.
-이세연! 이세연! 이세연!
가장 먼저 들린 건 그녀의 이름을 환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그 순간 이세연은 직감했다.
‘…졌구나!’
이긴 걸 축하하는 환호성이 아닌, 졌지만 잘 싸웠다는 환호성.
이세연은 결과를 보고 싶지 않았지만 꾹 참고 고개를 들었다. 이것도 프로의 역할!
‘김태현 쪽은 보지 말아야지.’
얼굴 보면 화병 난다!
경기장의 스크린에서는 태현 팀의 승리를 축하하는 메시지와 함께 하이라이트 영상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케인이 대포로 쏘아지고 있었다.
“…….”
이세연은 눈을 깜박였다. 내가 제대로 본 거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