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화
어거스트가 태현을 좋아해 준 덕분에 태현은 갖고 있던 물건들을 모두 팔아치울 수 있었다.
“음? 이건?”
토끼 가죽과, 토끼 고기와, 토끼 발톱과…… 하여튼 나온 잡템을 모두 처리하는 동안, 어거스트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토끼발이잖아?”
“이건 안 사주십니까?”
태현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한 푼이 아까운 초반이었다.
“아니, 사줄 수는 있네. 그렇지만 이건 내가 돈을 주고 사는 것보단 자네가 갖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
토끼발(1)
토끼의 발이다. 별다른 의미는 없다.
판타지 온라인에서는 아이템의 성능을 확인하는 것도 자격이 필요했다.
감정 스킬이 낮거나, 레벨이 낮거나, 관련된 직업 스킬이 낮거나…… 하여튼 자격이 부족한 사람은 아이템의 진정한 성능을 볼 수 없었다.
어거스트가 저러는 걸 보면, 토끼발은 태현은 볼 수 없지만 어거스트 같은 고렙 NPC는 볼 수 있는 성능이 있는 게 분명했다.
“이건 행운의 상징이거든. 갖고 있으면 행운에 도움이 되네. 자네 같은 초심자한테는 행운이 많이 필요할 거야.”
원래라면 말해주지 않을 걸 저렇게 말해주는 걸 보니, 태현이 어거스트한테 제대로 호감을 산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신기하군. 토끼발은 원래 잘 보이는 게 아니거든. 초보자한테도 가끔 나오는 물건인데, 꽤나 운이 좋은 편 아닌가?”
토끼발(1)
토끼의 발이다. 예전부터 타이럼 사냥꾼들에게는 행운의 상징으로 통해왔다. 복용 시 행운 +5.
“?!?!?!?!”
태현은 눈을 번쩍 떴다. 복용 시 행운 +5?
다른 플레이어들은 이런 걸 모를 가능성이 컸다. 애초에 타이럼에서 시작한 사람이 적을뿐더러, 이 레벨 정도가 되면 다른 곳으로 떠나거나 전직을 하려고 했으니까.
게다가 어거스트의 말을 들어보니 흔한 아이템도 아닌 모양이었다. 태현도 행운을 올리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이건 기회다!’
태현은 뛰어난 직업이 아닌, 안 좋은 직업의 장점을 발견해서 이기는 걸 좋아했다.
말이야 좋았지 사실 이건 불가능에 가까운 길이었다. 뛰어난 직업이 왜 뛰어난 직업이겠는가?
안 좋은 직업으로 이기기 위해서는 남들이 하지 않는 짓은 다 해야 했다.
노가다, 스탯 작업, 아이템 강화 작업…… 그렇게 해야 간신히 같은 선에 서는 게 가능했다.
이번에 태현이 고른 건 행운과 백수였다.
이 불리한 조건에서 싸우려면 그나마 스탯 자체를 엄청나게 올려야 했다.
태현은 바로 토끼발을 들어 입에 넣었다.
“자, 자네! 미쳤나?”
“예?”
“조리해서 먹어야지! 식중독이라도 걸리면 어떡하려고!”
“……!”
판타지 온라인 1에서는 그냥 먹어도 식중독 같은 게 없었기에, 태현은 아무 생각 없이 토끼발을 먹은 것이다.
‘젠장…….’
* * *
이름 : 김태현
레벨 : 15
직업 : 백수
HP(체력) : 240
MP(마력) : 240
힘 : 10
민첩 : 10
체력 : 10
지혜 : 10
행운 : 420
보너스 스탯: 0
식중독을 이겨내고, 태현은 계속 토끼를 잡고 있었다.
사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이 토끼들은 초반에는 좋지만 레벨이 10 넘어가는 순간부터 효율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초반에야 폭발적인 레벨 업이 가능했지만, 아무리 토끼가 강해도 초보자용이었다. 레벨이 10 넘으면 경험치 양은 급격하게 줄었다.
다른 레벨 높은 몬스터는 이 토끼보다 약하면서 경험치는 많이 주는데, 굳이 여기서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들 전직을 하거나 돈을 모아서 마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잘츠 왕국이 괜히 욕을 먹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태현은 버텼다.
토끼발 때문이었다.
‘아, 이거 지금 떠나기에는 너무 아쉬운데.’
다른 곳으로 가서, 퀘스트를 깨고, 레벨 업을 하고, 아이템을 얻고…… 이런 게 정석이었다.
그렇지만 그러기에는 토끼발이 너무 아까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어거스트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초보자한테도 가끔 나온다고 했지?’
즉 전직을 하거나 일정 레벨 이상이 되면 안 나올지도 모르는 아이템이었다. 초보자에게 행운을 주기 위해 제한을 걸어놓았을 가능성이 컸다.
‘어쩔 수 없지. 안 나올 때까지 잡는다!’
다른 사람들은 파티 플레이다, 메인 퀘스트다, 신나게 노는 동안 태현은 토끼와 치열하게 싸움을 거듭했다.
행운을 올리기 위한 처절한 노가다였지만, 의외의 효과가 있었다.
“자네가 그 주변의 토끼들을 청소해주는 사냥꾼이라며? 좋은 일 하는군. 이거 받게!”
[날카롭게 벼려진 단검을 받았습니다.]
“아. 어거스트한테 이야기 들었지. 좋은 일 해주는 사람한테는 싸게 팔아주지! 뭐가 필요한가?”
[물약 상인 호론이 좋아합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레벨만 되면 바로 타이럼을 떠나고 있었다. 덕분에 태현만 NPC들과 친밀한 관계를 쌓을 수 있었다.
‘한 20~30 되면 더 이상 안 나오려나. 대충 그 정도에서 선을 그어놨을 거 같은데.’
태현은 기지개를 켜며 다시 토끼를 잡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응?”
저 멀리, 혼자서 토끼를 잡기 위해 분투하는 플레이어가 보였다. 태현처럼 특이한 성격이 아닌 이상 초보자 몇 명이 파티를 짜고 토끼를 잡는 게 보통이었는데, 저렇게 혼자서 싸우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았다.
‘나 같은 플레이어인가?’
태현은 얼마나 잘 싸우나 보려고 다가갔다.
퍽!
“……?”
그리고 그 플레이어는 토끼의 앞발을 맞고 뻗어버렸다.
“…….”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 플레이어를 쳐다보았다.
물론 여기 토끼가 초보자가 상대하기에는 매우 힘든 상대긴 했다. 그래서 파티를 짜는 것이었고.
그렇지만 방금 플레이어가 보여준 모습은 너무했다. 뻔히 보이는 공격도 피하지 못하고 맞다니.
마우스와 키보드로 하는 것과 달리 가상현실 게임은 실제의 센스가 중요했다. 저 플레이어는 이른바 몸치가 분명했다.
“이익!”
플레이어는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덤볐다. 토끼가 뛰어서 앞발을 휘두르자, 그는 눈을 질끈 감고 또 맞았다.
“…….”
두 대 맞았는데 죽지 않은 거 보니 레벨은 조금 올린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저 모양이라니.
이건 좀 심각했다.
태현은 끼어들었다. 단검으로 토끼를 잡고 급소를 푹푹 찔러대자 토끼는 금방 죽었다.
토끼는 공격력과 민첩에 비교해서 HP가 적은 몬스터였고, 태현은 행운 때문인지 치명타가 많이 터졌다.
“아니, 왜 눈을 감고 싸워? 눈을 떠야지! 토끼가 무서운 거야?”
태현은 쓰러진 플레이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쓰러진 플레이어가 정말 예쁘장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머리카락만 조금 더 길게 했으면 여자라고 착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판타지 온라인 2는 여러 문제 때문에 실제 얼굴을 변형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
다른 얼굴을 가질 수는 있었지만, 못생긴 사람이 잘생긴 사람으로 변신하는 건 불가능했다.
즉 앞의 플레이어는 실제로도 미소년일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태현은 잘생긴 사람을 싫어했다. 그의 친구도 저런 계열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잘생긴 놈들은 모두 저주받아라!’
“네, 네?”
“일어나라고. 미소년. 얼굴만 예쁘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야!”
“네? 미소년? 제가 왜 소년……?”
“조용히 하고 들어. 토끼가 까다롭기는 한데, 더 쉬운 몬스터도 덤빌 때마다 눈을 감으면 이길 수 없어!”
“아니, 그러니까 제가 왜 소년……?”
“내 말 끊지 말라니까?”
“……네.”
“왜 눈을 감는 거야?”
“덤비면 무섭잖아요.”
“…….”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토끼가 무슨 흉측한 몬스터도 아니고…….
“보니까 고등학생 같은데. 너 혹시 남고 다니지는 않지? 남고 다니면 괴롭힘당하기 딱 좋을 것 같은데.”
“아니 무슨 남고예요! 애초에 전…….”
“공학인가 보군. 공학이면 그나마 낫겠지. 어쨌든 여기서 토끼한테 쫄면 앞으로도 괴롭힘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쫄지 마! 토끼잖아! 이름이 뭐지?”
“……유지수요.”
“좋아. 눈 감지 말고, 저기 토끼한테 다시 가서 싸워보라고.”
지수는 여러모로 할 말이 많았지만, 태현을 보고 더 이상 말하는 걸 포기했다.
게다가 그녀한테 이렇게 친절하게 말을 걸어준 사람도 드물었던 것이다. 괜히 따져서 또 혼자 놀고 싶지는 않았다.
“으아아앗!”
퍽-
“……아니, 대체 어떻게 토끼한테 달려가면서 넘어질 수 있냐?”
“그러게요.”
몇 번 더 시도하고 나서 태현은 깨달을 수 있었다.
유지수는 정말 근접전 센스가 하나도 없었다.
토끼가 덤비면 눈을 감고, 토끼한테 달려가다가 넘어지고, 무기를 휘둘러서 자기를 때리고…….
“와. 이건 진짜 심하군.”
“저도 알고 있거든요…….”
“파티밖에 답이 없겠는데? 이 레벨까지는 어떻게 올렸어?”
“파티로 올렸어요.”
“그래서 그 파티원들은?”
“제가 너무 못한다고 쫓아냈어요.”
“……이해가 간다.”
유지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원래 친구들이랑 같이 시작한 건데, 제가 시작 마을을 잘못 듣는 바람에 잘츠 왕국에서 시작했거든요…… 빨리 레벨 올려서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는데…….”
“운이 좋군. 나는 원래 컨트롤이 허접한 사람을 보면 관대해지지. 네가 예쁘장하게 잘생겨서 마음에 안 들지만, 친절을 베풀어줄게.”
“네?”
“파티 신청 걸어. 레벨 10 찍어줄 테니까, 마차 타고 다른 곳으로 가.”
“정말요?!”
“내가 이런 거 갖고 거짓말하겠냐? 어차피 10 될 때까지 경험치는 금방이니까 괜찮아.”
[파티 신청을 수락하겠습니까?]
파티를 허락하자 유지수의 창이 떴다.
“자, 그러면 열심히 해보자! 넌 한 대만 때려!”
“네!”
* * *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냥을 시작하고 한 시간이 지나서, 태현은 왜 지수가 파티에서 쫓겨났는지 알 수 있었다.
“야…… 거기서 막으면…….”
“죄송해요! 죄송해요!”
경험치를 나눠 받으려면 몬스터를 한 대라도 쳐야 했다. 그런데 지수는 몬스터를 한 대 칠 때마다 사고를 일으켰다.
넘어지고 구르고 길을 막고 기타 등등.
이렇게 되니 태현도 움직이면서 토끼를 피할 수가 없었다. 태현이니까 간신히 잡았지, 레벨이 아슬아슬한 초보자들은 더 심했을 것이다.
’이러니까 당연히 쫓아내지.‘
“안 되겠다.”
“네?! 열, 열심히 할게요! 눈도 안 감을 테니까 파티 풀지 말아줘요!”
“뭐라는 거야? 파티 풀라는 게 아니야. 이거 들라고.”
“……?”
태현이 지수에게 준 건 단검이었다.
“단검 토끼한테 던져. 그걸로도 데미지는 들어가니까. 엄청 적겠지만 인정은 되겠지. 그런 다음에는 무조건 도망쳐서 내 뒤로 피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지수는 태현의 말에 감동해서 눈을 크게 떴다. 저렇게 친절한 사람은 처음 봤다. 보통 그녀처럼 이렇게 트롤링을 하면 다들 욕을 하며 떠나던데…….
“감사합니다! 화 안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뭐 이런 거 가지고. 내가 보기에 너나 다른 사람이나 다 못하거든.”
착한 사람이지만 약간 이상한 것 같다. 지수는 그렇게 태현에 대한 생각을 수정했다.
“하나, 둘, 셋. 던져!”
퍽!
“거 참. 그건 잘 맞추네. 원래 단검 맞추는 게 쉬운 게 아닌데.”
토끼가 달려오자 태현은 검을 휘둘렀다. 비명과 함께 토끼가 즉사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해냈어요!”
“네가 토끼 하나 간신히 잡았다는 건 알지? 누가 보면 레이드 뛴 줄 알겠다.”
태현의 말에 지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걸 본 태현이 혀를 끌끌 찼다.
사내자식이 저렇게 여려서 어떻게 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