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화
“아무래도 적성에 안 맞는 거 같은데, 제작 쪽 직업 하는 거 어때?”
“제작이요?”
“그래. 판타지 온라인은 전통적으로 제작 쪽 직업도 좋다고. 대장장이, 세공사, 재봉사, 이런 거 다 레벨 업 좀 해두면 다들 모셔가려고 할걸? 인기 엄청 있어.”
“하지만 그런 건 솔플(혼자서 플레이)하기 힘들잖아요.”
“응?”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친구들이랑 같이 한다고 하지 않았어?”
“갈라졌으니까요…… 그리고 같이하는 건 좋은데, 다른 사람한테 의존해야 하는 직업은 별로예요. 솔플 가능한 직업이 좋은데요…….”
“솔플이 좋다고?”
태현은 눈앞의 지수에게서 그와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다.
타고난 아싸의 분위기!
‘이 자식…… 사실 친구랑 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구나?’
친구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게임을 할 때는 혼자 고독하게 파고드는 걸 좋아하는, 말 그대로 타고난 아싸!
태현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지만, 태현은 그걸 받쳐주는 실력이 있었고…….
지수는 실력이란 게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대장장이도 솔플 가능하긴 해.”
“네? 말도 안 돼요. 시작하기 전에 다 조사해보고 했다고요.”
“다 조사해 봤다면서 판타지 온라인 1은 안 봤냐? 거기서 대장장이로 솔플 뛰던 놈 있었잖아.”
“아, 김태현이요? 그러고 보니 오ㅃ…… 아니, 형은 이름이 뭐예요?”
“……김태현.”
“그 김태현 따라 한 거는 아니죠?”
“아니야, 이 자식아!”
태현은 울컥해서 외쳤다. 상윤이 이런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받게 되니 억울했다.
“그거 보긴 했는데…… 그건 타고난 센스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자식. 보는 눈이 있군. 그래. 타고난 센스가 있어야지.”
‘진짜 팬 아냐?’
지수는 속으로 몰래 의심했다. 아무리 봐도 태현이 판타지 온라인 1의 김태현을 꽤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근접전 센스가 없는데도 솔플하고 싶으면 뭐…… 방법이 있긴 해.”
“진짜요?!”
“근접전을 적게 하는 직업 고르면 되지. 마법사나 궁수 계열. 원거리 공격 위주잖아.”
“아…….”
“그런데 마법사 할 거면 잘츠 왕국을 고르면 안 됐을 텐데? 잘츠 왕국은 마법사가 별로 없잖아.”
마법사가 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시작 지점은 따로 있었다.
“꼭 마법사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궁수도 좋아요!”
“그래? 어거스트한테 한 번 달라고 해볼까…….”
“어거스트요? 그 깐깐한 사냥꾼이요?”
“깐깐해?”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이제 그만 보면 반갑게 인사하는 NPC였다.
“제가 인사해도 받아주지도 않고, 침이나 뱉고…… 무시하던데요…….”
“…….”
태현은 어떻게 된 건지 깨달았다. 지수가 워낙 실력이 부족하다 보니 어거스트의 호감을 전혀 쌓지 못한 것이다.
“내가 달라고 할 테니까 가보자고.”
“감, 감사합니다!”
* * *
“지금 플레이어들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뭐 재밌는 거 있나?”
“아니요. 저번에 보셨을 때랑 달라진 거 별로 없습니다.”
“에잉. 사람들이 왜 이렇게 패기가 없어? 팍팍 진도를 나가서 전설 직업도 찾고 해야 시스템이 바뀌지. 지금 발견된 전설 직업 하나도 없지?”
일반-희귀-영웅-전설로 구분되는 직업 라인에서 전설 직업은 가장 희귀하고 독특한 직업군이었다.
찾기도 힘들고, 달성 조건도 힘들었으며, 한 번 찾고 나면 다른 사람은 그 직업으로 전직할 수 없었다.
영웅 이하 직업과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판타지 온라인 2는 일정 숫자의 전설 직업 숫자를 유지하고 있었고, 누군가 전설 직업으로 전직하면 다른 전설 직업이 새로 생기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직 하나도 발견이 안 되어 있는 상태니…….
“이쯤이면 슬슬 판타지 온라인 1 랭커 애들 중에서 나올 법한데. 이세연은?”
“아마 가장 먼저 전설 직업을 찾을 것 같습니다. 스피드가 엄청 빨라요. 벌써 퀘스트를 절반 정도 깼어요.”
“그야 그렇겠지. 걔는 천재잖아.”
최명성 팀장은 판타지 온라인 1에서 이세연이 보여줬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세연의 외모만을 좋아했지만, 최명성이 감탄한 부분은 그녀의 센스였다.
대장장이 직업으로 랭커를 썰고 다닌 김태현한테 묻혀서 그렇지, 그녀도 새로운 경지의 개척자였다.
일대일 대결에서 취약한 네크로맨서를 분석해, 저주 네크로맨서를 발견, PVP에서 명성을 쌓았다.
게다가 김태현한테 이긴 건 그녀였다. 물론 최명성은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그 싸움에서 이긴 걸 김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운은 인정할 수 없어!’
“이세연이 다 깰 거 같지?”
“아마 그렇겠죠.”
“네크로노미콘의 후계자를 갖고 가는 건가.”
네크로노미콘의 후계자는 네크로맨서 계열 직업 중 가장 위에 있는 전설 직업이었다.
달성 조건도 엄청나게 까다롭고 깨어야 하는 퀘스트 분량도 막막할 정도로 방대한 전설 직업.
그러나 이세연은 지금 판타지 온라인 1 때의 길드원들을 데리고 빠르게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최명성이나 그 밑 직원들은 네크로노미콘의 후계자라는 전설 직업을 알고 있었지만, 이세연은 그걸 알지 못했다.
단순히 게임 내에서 얻은 정보로 판단을 내리고 나아가는 것이다. 대단한 배짱과 정신력이었다.
“다른 놈들은 전설 직업 찾는 거 포기했나?”
“몇 명 있긴 한데 이세연 아니면 가능성이 너무 적어 보여요. 영웅 직업 정도로 만족하고 레벨 업 하는 랭커들이 대부분이에요.”
영웅 직업은 전설 직업보다 훨씬 찾기 쉬웠다.
게다가 전설 직업은 그 성능이 어떨지 너무 랜덤성이 강했다. 기껏 고생을 했는데 영웅 직업보다 못한 직업이 나온다면 그만큼 억울한 일도 없을 것이다.
덕분에 전설 직업에 목숨을 거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세연이 네크로노미콘의 후계자로 전직하면 너무 독주하는 거 아닐지 모르겠어.”
“에이, 그 정도까진 아닐 겁니다. 전설은 아니어도 밝혀진 영웅 직업 보면 꽤 괜찮은 거 많이 나왔어요. 이세연보다 먼저 전직했으니 시간적으로도 유리하고, 그렇게 쉽게 밀리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 랭커들이 대충 100 안팎인가.”
“영웅 직업 전직한 이름 불러드려요? 도동수는 일단 그림자 춤꾼으로 전직했습니다.”
도적 계열 영웅 직업인 그림자 춤꾼은 은신과 기습에 특화된, 매우 좋은 직업이었다.
“도동수? 아. 그 김태현한테 깨진 놈.”
그러나 누구도 도동수를 판타지 온라인 1 랭커로 기억하지 않았다.
그는 가장 첫 번째로 김태현한테 깨진 도적 플레이어였던 것이다.
“그런 놈을 왜 말해줘?”
“예? 도동수 정도면 괜찮은 플레이어잖아요.”
“일대일 특화 탄 도적으로 대장장이한테 깨진 놈이 무슨…… 아, 김태현은 없냐?”
“김태현은 너무 많아서 문제죠.”
“내가 누구 말하는지 알잖아.”
최명성은 판타지 온라인 1에서 김태현이 나타났을 때 가장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그 특유의 센스, 약한 직업을 극한까지 파고들어 강한 직업을 쓰러뜨릴 때 느껴지는 희열!
당연히 판타지 온라인 2를 한다면 뭘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러나 김태현은 오픈 당시부터 보이지 않았다.
“어, 김태현 접속했네요?”
“뭐?! 어디!?”
그는 바로 모니터로 달려갔다. 잘츠 왕국에 표시된 점이 보였다.
“잘츠 왕국? 거기서 시작했어?”
“특이한 거 좋아하잖아요.”
“거기 함정으로 만든 지역이잖아? 왜 하필 거기를 골랐대. 거기 그리고 전설 직업도 없지 않아?”
“영웅 직업인 타이럼 레인저 있습니다. 이거 엄청 좋은 직업 아닙니까?”
타이럼 레인저는 궁수 계열의 영웅 직업으로, 영웅 직업 중에서도 아주 좋은 성능을 자랑했다.
“좋긴 해. 김태현은 타이럼 레인저해도 잘할 거야. 근접전 센스는 타고났고 에임도 굉장하니까. 근데 난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예? 왜요?”
“타이럼 레인저는 그냥 평범하게 좋은 직업이잖아. 차라리 전설을 하면 모를까, 영웅 직업은…….”
팀장의 말에 태현의 창을 이것저것 확인해보던 윤주환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말했다.
“어. 팀장님. 김태현 창 보셨어요?”
“창? 왜? 아직 레벨 낮아서 봐봤자 별거 없잖아.”
“스탯 보세요. 스탯.”
최명성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
“역시 김태현이라고 해야 하나…….”
“이 미친놈, 다 행운에만 박을 생각인가?! 아니, 뭔가 이상한데. 레벨 보면 행운에만 박아도 저 정도까지는 안 나오잖아? 뭐야?”
“어, 그러게요. 확인을…… 아. 타이럼시 근처에 있는 토끼네요.”
“응? 그 토끼가 왜?”
타이럼시 주변의 토끼는 왕국의 난이도를 높인 김에 따라서 높여진 몬스터였다.
초보자들이 눈물을 흘리는 난이도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정말로 못 잡을 정도는 아니었고, 어찌어찌 10만 찍으면 다른 왕국으로 가면 됐다. 애초에 그러라고 만들어놓은 곳이었다.
거기서 계속할 자신이 있으면 퀘스트를 깨면 되고.
“타이럼시 난이도가 워낙 높으니 보상 좀 주기로 했잖습니까.”
“아. 토끼발?”
난이도를 높인 대신, 거기서 시작한 사람들은 소소한 이득을 보게 해주었다. 토끼발은 그중 하나였다.
토끼를 잡으면 아주 낮은 확률로 나오는 스탯 상승 아이템.
처음에는 힘이나 민첩 같은 중요한 스탯을 올려주기로 했었는데, 금세 문제점을 발견했다.
그런 식으로 하면 바로 타이럼시로 플레이어들이 몰릴 것이라는 점이었다.
스탯을 올리는 건 어려운 일이었고, 올릴 수만 있다면 플레이어는 뭐든지 했다.
난이도고 뭐고 고렙들이 다 몰려와서 토끼만 사냥하면 시작 마을의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떠올린 게 행운이었다.
아주 낮은 확률로 나오는데, 기껏 올려주는 게 행운 같은 스탯이라면?
사람들은 별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냥 소소한 이득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겠지. 그게 바로 개발팀이 노린 바였다.
“네. 그 토끼발로 올린 거 같은데요.”
“아니, 그게 뭐 얼마나 나온다고? 그거 엄청 안 나오잖아?”
“그…… 레벨 업 하면 스탯을 다 행운에 찍고, 토끼발로 또 행운을 올리고 하다 보니까 계속 행운이 올라가서…… 아이템 드랍률도 계속 올라가는데요…….”
“…….”
최명성의 입이 다시 벌어졌다. 이게 무슨…….
레벨 업 하면 포인트를 행운에 투자하고, 토끼발로 행운을 올리면 토끼발이 나올 확률이 계속 올라간다.
그리고 나온 토끼발로 또 행운을 올린다. 무한 반복이었다.
“레, 레벨 제한 있잖아? 레벨 제한 안 달아놨어?”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 스탯을 힘이나 민첩이 아닌 행운으로 골랐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었다.
일정 레벨이 넘어가면 아이템이 나오지 않는 제한.
“달아놨는데, 그때 이거 하면 얼마나 하겠냐고…… 레벨 제한 100으로 해놨는데요.”
“100?”
100이 되기 전까지는 계속 토끼발이 나온다는 뜻이었다.
“아, 아무리 그래도 레벨 한 20~30 찍으면 퀘스트 깨러 움직이지 않을까요? 토끼만 잡으려고 이 게임 하는 거 아니잖아요.”
“그거야 평범한 놈이면 그렇겠지.”
최명성은 침을 삼켰다.
“저놈은 그 김태현이라고.”
최명성은 김태현이 판타지 온라인 1에서 대장장이로 이기기 위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결과야 화려하지만 거기까지는 정말로 미친 노가다와 근성의 반복이었던 것이다.
광산에서 금속 하나 찾겠다고 석 달 내내 곡괭이질만 한 놈이었다.
함정 하나 만들겠다고 대장장이의 잔심부름을 여섯 달 동안 들었던 놈이었다.
그런 놈이 레벨 20~30 찍으면 질려서 떠날 거라고?
절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