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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한 번만 해요, 그거-41화 (41/132)

♬  #41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평가하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대단한 마력을 가지고 계시긴 했지만, 드래곤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겁니다.”

어마마마가 왜 아바마마처럼 철없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당부를 했는지 이해가 갔다. 사정을 듣고 나서야 모든 것이 납득이 되었다.

하지만 싸움은 싸움이지, 치사하게 패배한 이에게 그런 못된 짓을 저지르다니. 드래곤이 워낙 자비도 없는 종족이라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아무래도 기분전환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잠시 혼자 외출을 할 생각으로 홀로 성을 빠져나왔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날다 보니 우리 블랑 제국의 변경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 변경 끄트머리에서 낯선 결계의 기운이 느껴졌다. 사람이 살지 않는 험한 산. 그곳에서 인기척과 마력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누가 있는 거지?

어쩐지 불길해졌다. 저만큼 대단한 마력이라니. 설마 루즈 제국의 첩자가 아닐까 우려가 되었다. 나는 그곳을 탐색하기 위해 하늘 꼭대기로 올라가 두 눈을 부릅뜨고 살폈다. 그 산꼭대기에 펼쳐진 들꽃밭에서 뛰노는 어린 여자 아이를 발견했다. 또 그 근처에 실물로 처음 보는 블랙 드래곤 카르디옌이 서 있었다.

저놈이 그놈이군. 내 아바마마의 원수.

딱히 복수를 할 생각은 없지만 대체 얼마나 강한지 궁금해졌다. 게다가 혹시 저 여자 아이에게 해코지를 하나 싶어 보호할 생각으로 공격했었다. 물론 내가 당했지만.

[그만, 그만해요! 죽이려고 작정했어? 살인은 나쁘다고!]

그때 만난 그 여자아이가 치즈였다. 치즈 덕분에 다행히 목숨을 건진 거다. 게다가 악랄한 블랙 드래곤의 저주를 받지 않았고 무사히 살아남았지. 그건 지금 생각해도 천운이기는 했다.

그리고 그날 꽃보다 더 향긋하고 좋은 체취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군침이 돌 만큼 달콤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편하게 가라앉혀주는 의미 모를 향기가 감돌았다.

보면 볼수록 자꾸만 눈길이 갔다. 이미 아이의 몸에서 폴폴 흘러나오는 단내에 매혹되어 취할 것만 같았다. 비록 하체가 욱신거리긴 해도 그 고통보다 청아한 웃음소리를 듣는 기쁨이 더 컸다.

[너무 귀엽다, 너. 나한테 시집올래?]

정말 대수롭지 않게,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이었다. 나중에 치즈를 보내놓고 혼자 남았을 때 미친 듯이 웃어 재꼈다. 살다 살다 이런 어이없는 일도 다 생기는구나 싶어서 배를 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다. 웃느라 기운이 쪽 빠져서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로.

내가 내 입으로 여성에게 청혼을 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그것도 아직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에게.

완전 농담으로 했던 말은 아니다. 우리 황실에 호의적인 귀족가에 양녀로 입적시키면 아무 제제 없이 혼인이 가능할 테니까. 내가 혼인만 하겠다고 하면 다들 알아서 물밑작업을 해줄 테고.

무엇보다 내게는 치즈가 꼭 필요하다. 여성기피증이 생길까 봐 걱정했었는데 치즈를 보고 있을 때면 조금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그 맑고 깨끗해서 티끌 하나 없을 것 같은 순수함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자신을 귀찮게 하는 걸 가장 싫어하던 카르디옌과 십 년을 넘게 같이 살아왔다니 더 궁금하다.

과연 지금 저 순수한 모습을 간직한 채 성인이 될 수 있을까?

그해에 아바마마께서 결국 숨을 거두셨다. 그래서 국장을 치른 이후에 내가 황위에 오르게 되었다. 내가 성년이 되는 날까지 버티지는 못하셨지만. 차라리 고통어린 삶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안락한 죽음을 맞는 것이 나을 거라 여겼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여전히 여인의 근처에만 서도 하체가 욱신거려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주치의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도저히 말문이 떨어지지 않아서 포기한 것만 수십 번.

더 늦기 전에 황후를 맞이해야 한다고 해서 더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그때 루즈 제국의 황제가 밀서를 보내와 짜증이 확 일었다.

이 예쁜이 때문에 내가 지금 욕구도 풀지 못하고 이 무슨… 어라? 잠깐. 설마 그 예쁜이가 그때 내 하체에 마력이라도 심어놓은 건가?

그래서 보내온 밀서를 펼쳐서 읽어보니 어이없게도 내 안부를 묻는 내용이었다. 지금 나와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아도 매일 밤마다 괴로워 죽겠는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러 담고 조만간 따로 만남을 가졌으면 한다는 말에 짧은 답신을 보냈다.

오면 죽인다.

하지만 얼마 뒤에 그 붉은 머리의 예쁜이가 전보다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어린 티가 완전히 가셔서 완벽한 어른의 모습으로.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이름이… 에이든, 이라고 했던가?”

“…내 답신을 보지 못했나? 오면 죽인다고 했을 텐데.”

“매정하기는. 앞으로 같은 황제로서 잘 좀 지내보자고 인사 차 왔는데 이러기야?”

“우리가 동맹국은 아니잖아?”

무려 7년이 흘렀다. 그 7년간 내가 얼마나 피 말리는 삶을 살아왔는데. 이제와 대체 무슨 꿍꿍이로! 또 무엇으로 나를 괴롭히려 왔지? 그때처럼 방심하다가 당하지 않겠다.

그런데 그 예쁜이의 분위기가 전보다 더 요염해졌다. 더 야해지고 저 관능적인 미소만 봐도 하체에 피가 몰리는 느낌이다. 터질 듯 부풀어 올라 건들기만 해도 사정할 것 같은 묘한 향기에 목구멍이 바짝 말라왔다.

가까이 오지도 않았는데 대체 왜?

“내 도움은 필요 없는 모양이네? 매정하게 구는 걸 보니 아직은 살만한가 봐?”

“도움?”

“지난번에는 미안했다고 사과도 할 겸. 그때는 내가 좀… 예민해서 그랬어. 끈덕지게 들러붙는 놈들이 귀찮기도 했거든.”

대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 잔뜩 경계했다. 그러자 나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다가와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가까워질수록 하체가 욱신거려서 복부와 엉덩이 근육이 바짝 굳어지며 움찔거렸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생각해보니까 내가 너무 못되게 굴었더라고.”

“더 오면 공격한다.”

“알아. 그래. 아팠지? 많이 아플 거야. 그래서 그때 홧김에 걸었던 마력을 제거해주려고 하는데, 싫어? 그거 네 힘으로 풀지 못하는 거라서.”

역시, 그때 내 몸에 못된 마력을 걸어두었나 보군. 저 앙큼한 예쁜이 같으니라고.

“적국의 황제에게 아무 이유 없이 선의를 베풀 이유가 없을 텐데? 이제와 갑자기 풀어줄 이유라도 생겼나?”

“오, 제법 눈치는 있나보네? 이유가 있기는 하지. 하지만 나쁜 건 아니라고.”

은근슬쩍 자리를 이리저리 옮겨 걸으면서 조금씩 가까워지는 그녀를 피해 나 역시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

“도움 따위 필요 없으니까 그만 가지? 기사들을 부르기 전에 꺼지는 게 좋을 거다.”

“황궁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싶은가봐? 7년 전에는 순진하더니 그새 발톱 좀 세우는 고양이가 되어버렸는걸?”

“도발하지 마라. 그대의 도움 따위 필요 하지 않다.”

“딱딱하기는. 같은 황제끼리는 편하게 지내자고.”

“…그런 말이 참 쉽게 나오는군.”

서로 기 싸움을 하다가 예쁜이가 먼저 포기했는지 내게서 등을 돌려 멀어지더니 소파에 풀썩 주저앉는다. 어깨가 축 늘어진 뒷모습이 어딘지 안쓰럽다가도 수상하다. 일부러 나를 회유하려고 연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해서.

“그만 돌아가라. 앞으로는 절대 마주치는 일이 없었으면 하니 서찰도 보내지 마.”

“나 요새 고민이 있어.”

…저 예쁜이는 왜 여기까지 와서 내게 고민을 털어놓으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착각하는 모양인데 나는 너희와 대적하는 나라의 황제다.”

“알아. 그래서 이 고민을 털어놓을 곳이 너밖에 없어. 과거에 네 아비가 날 왜 보자고 했는지 알고 있어?”

궁금하긴 하지만 선뜻 물어보기도 애매해서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알아서 술술 털어놓는다.

“저는 곧 죽을 거라고, 나더러 나라에 안정이 올 때까지 잠시 휴전을 하자고 하더라. 차기 황제가 될 아들 녀석이 아직 어리니 성인이 되어 혼인을 하기 전까지만.”

“…아바마마께서?”

그때의 비밀 회담이 그거였나.

“그런데 네가 혼인을 안 하니까 우리 쪽에서 다들 불만이 많아. 블랑 제국 놈들을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거든. 왜 자꾸 전쟁을 이어가지 않느냐고 난리야.”

“불의 나라답게 속에 화가 많은 모양이군 그래?”

“…너 왜 루즈 제국이 블랑 제국을 치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지?”

“알고 싶지 않으니까 어서 돌아가라.”

“우리 루즈 제국을 세운 왕이 블랑 제국의 초대 왕에게 버림받았기 때문이래. 원래 혼인을 약속했던 사이인데 너희 조상이 혼인 대신 인간세계에 제왕으로 군림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저런 이야기를 거짓으로 꾸밀 리는 없을 테고. 루즈 제국은 워낙 알려진 이야기가 별로 없는 강대국이다 보니 베일에 싸인 곳으로 유명했다.

“그게 루즈 제국에 내려오는 역사인가?”

“여자의 한은 무서워. 그 초대 왕의 한이 몇 천 년간 전쟁을 이어가게 하고 있잖아? 그래서 나도 압박을 좀 많이 당하는데 그게 꽤 힘들어서.”

“무슨 압박인데?”

“뭐겠어? 후계문제지. 더 강한 마력을 가진 후계를 낳아야 한다고. 그게 뭐 내 뜻대로 되는 건가? 나라고 그런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 안 낳는 게 아니라고.”

“듣기로는 그대 역시 혼인하지 않은 거로 아는데?”

“꼭 혼인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일단 후계만 생성하면 되니까.”

…사고가 꽤 열렸다고는 생각하는데 개방이 되어도 너무 되었군. 혼인하지 않고 후계만 낳는다, 라.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내게 털어놓는 이유가 뭐지?”

조잘조잘 잘 떠들던 그녀가 입을 꾹 다물고는 침묵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저도 어이없다는 걸 느낀 건가? 내게 후계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웃긴다는 걸 좀 알았으면.

“있잖아, 에이든?”

몸을 반쯤 돌려 소파 등받이 위에 팔을 얹고 삐딱하게 고개를 돌린 그녀가 나를 쳐다본다.

“친한 척 이름 부르지 말지?”

“…은근 속이 좁네? 까칠하게 굴지 말고. 내가 그 마력 풀어줄 테니까 나랑 거래하지 않을래?”

“마력?”

“네 그 거시기에 걸린 마력.”

가느다랗고 길쭉한 손가락으로 내 하체를 가리키는 행동에 또 한 번 아래가 욱신거려 흠칫 놀랐다.

일부러 저러는 거 같은데. 정말 짜증 나는군.

“무슨 거래를 하자는 거냐.”

“내가 생각해봤는데, 우리 루즈 제국과 블랑 제국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전쟁이 끝날 수 있지 않을까?”

“…뭐?”

“너도 잘 생각해봐. 일단 두 제국이 서로 앙숙이 된 이유가 배신과 파혼 때문이잖아? 지금이라도 합치면 그 의미 없는 전쟁을 끝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야.”

…저 예쁜이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닐까? 저 말인즉슨 저와 혼인이라도 하자는 건… 아니, 후계만 필요하다고 했으니 나하고…….

딱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더불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면서 수만 가지의 야한 장면들이 해일처럼 몰려왔다. 실사에 가까운 생생한 춘화집의 남녀 얼굴에 나와 저 예쁜이의 얼굴이 박혀서 둥둥 떠다닌다. 야릇한 신음성이 바로 귀에서 들려오는 느낌까지.

“어때? 솔깃하지? 너 원래 나한테 반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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