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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한 번만 해요, 그거-40화 (40/132)

♬  #40

역사학에서도 루즈 제국과 우리 블랑 제국의 황제가 가진 마력이 비슷하다고 했다. 차기 황제가 될 내가, 지금 루즈 제국의 황제인 저 여성의 마력에 지진 않을 거다.

혹시라도 당장 마력을 사용해 공격하려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박물관이 쑥대밭으로 변해버리면 곤란하니까. 하지만 곧 그녀의 손에 잔뜩 구겨서 공처럼 된 종이가 쥐어지고, 그녀는 그것을 내게 던졌다.

“증거라면 여기 있어. 네 아비 필체는 알아보겠지?”

꾸깃꾸깃 동그랗게 말린 종이를 내려다보던 나는 루즈 제국의 황제를 노려봤다. 언뜻 보아도 구겨진 종이에 찍힌 인장은 아바마마의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감히 한 제국의 황제가 보낸 서찰을 이런 식으로 구겨놓다니.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는군.

일단 나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서찰을 펼쳤다. 그곳에는 정말 아바마마의 필체와 인장이 확실하게 찍혀있었다. 또 그녀의 말대로 두 제국 황제간의 비밀 회담을 아바마마 쪽에서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사실이군. 모두 검을 거두고 루즈 제국의 황제에게 예를 갖춰라.”

아무리 상대가 황제이긴 해도 적국인지라. 기사들은 물론 박물관 내의 모든 사람들 표정이 바퀴벌레 씹은 표정이긴 했다. 하지만 다들 루즈 제국의 황제를 향해 정중히 자세를 낮춰 허리를 숙였다. 그 상황은 제국민이 황실에 얼마나 충성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서 괜히 뿌듯해졌다.

“황궁은 타국의 사람이 단신으로 방문할 수 없다.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내가 직접 안내해주지.”

“안내는 고맙지만 나는 말을 타고 오지 않아서. 마차도 없고.”

“그럼 어떻게 왔지?”

“소리소문없이 적국을 방문해야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이동 마법을 사용했군.”

“정답.”

활짝 웃는 그녀의 눈웃음에 가슴이 설렘을 느껴 찝찝해졌다. 예쁜 사람의 미소에 마음이 동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니까 나쁜 건 아니다. 그래도 괜히 죄책감이 들어서 한숨을 내쉬며 앞장서 박물관을 벗어났다.

“아는지는 모르지만 황궁 내에서는 마력이 금지되어 있다. 말을 빌려줄 테니…….”

“네 말에 같이 타고 싶은데. 사실 나 말 타는 거 별로 안 좋아해.”

…누가 보면 말 타고 곡예도 할 수 있을 것처럼 전문적인 승마복을 입고 있으면서. 참으로 제멋대로군.

나는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 내 애마위에 올라타도록 도와줬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 올라타 출발시키면서 비아냥거렸다.

“승마를 하지도 않는데 왜 승마복을 입고 다니지?”

“편하잖아. 움직임에 제한도 없고.”

“루즈 제국에서는 의복의 자유가 있나 보군.”

“의복에 사람을 맞추는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사람에게 의복을 맞춰야지. 그리고 의복으로만 평가하는 건 고지식한 옛날 사람이나 하는 짓이야.”

성격이 화끈할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황제답게 배포도 두둑하다. 다만 건방진 건 역시 내 취향이 아니다. 딱 보기에는 완벽한데 성격이 영…….

어차피 적국의 황제인데 별걸 다 신경 쓴다 싶어 자조했다. 게다가 같이 말을 타고 있으니 은근 밀착이 되어 몸이 닿으니까 느낌이 이상하다. 시원한 향이 은은하게 퍼져와 코를 간질였다. 생각 외로 말랑한 느낌의 피부가 느껴져서 몸이 후끈 달아오르기도.

“너.”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고 마음을 비우는데 그녀가 고개를 뒤로 돌리더니 나를 노려본다. 왜 저러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자, 뽀얗고 매끄러운 그녀가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하여간 사내놈들이란. 황태자 주제에 적국의 황제를 상대로 발정이라도 해?”

“무슨 말이지?”

“네 그 하체 좀 어떻게 해보라는 뜻이다. 닿는 느낌이 이상하잖아.”

…흠, 내 소중이가 혈기왕성한 한창의 나이인지라. 가끔 제어를 벗어나 제멋대로 발기하는 건 본능이기도 하고 말이지.

“미안하군. 그러게 말을 빌려준다고 하지 않았나.”

“당장 잘라버리기 전에 떨어져.”

“여기가 그대의 적국이라는 사실을 좀 명심해줬으면 좋겠군. 불편해도 남의 제국에 몰래 쳐들어왔으면 얌전히 있어.”

나를 흘겨보던 그녀가 픽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앞으로 돌린다. 뒤로 묶어 내린 붉은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귀 끝이 빨갛게 변해있었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긴 했군 그래? 이런 귀여운 면도 있었다니.

더 골려줄까 하다가 관뒀다. 이미 사이가 좋지 않은데 더 도발하다가는 이 자리에서 큰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엉덩이를 뒤로 물려 최대한 하체가 접촉하지 않도록 배려해주었다.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서로의 예의는 지켜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서.

곧 황궁에 도착해 아바마마와 만나기로 했다던 비밀 접견실로 안내해주었다.

“이쪽이다.”

비밀 회담으로 진행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녀만 들여보내려고 문만 열어주었다. 그러자 안으로 들어서려던 그녀가 나를 힐끔 올려다 봤다.

“잠시 기다려주겠어? 얘기가 길어질 것 같진 않으니 돌아갈 때도 안내를 해주었으면 하는데.”

“…그러지.”

황제의 부탁을 또 거절할 수도 없고. 그녀가 안으로 들어선 뒤에 문을 닫고 우리를 따라오던 기사들을 물렸다. 설마 적진 한가운데 단신으로 들어와 우리를 공격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죽을 생각이라면 모를까.

인적이 드문 복도의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팔짱을 낀 채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리고 아까 함께 말을 탔던 기억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여제라니. 내 품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고 가냘픈 체구를 가진 이가 황제라. 손목이 어찌나 가늘던지 내가 한 손에 쥐어 조금만 힘을 줘도 부러질 것 같던데. 허리는 이 정도 되려나?

나는 두 손으로 그녀의 얇은 허리를 가늠하며 허공에 동그랗고 넓적한 모형을 만들었다. 또 작은 육체에 비해 커보이던 가슴을 상상하며 손가락을 꼬물꼬물 거리고 히죽 웃었다.

입이 바짝 마르면서 은근히 허기짐이 느껴졌다. 게다가 또 하체가 바지 안에서 발딱 세워지고 머릿속에 이런저런 상상들을 떠올리며 수줍게 피식거렸다. 뭐 이정도 생각쯤이야. 어마마마께서도 상상까지는 괜찮다고 했으니까.

그 사이에 접견실 문이 열렸다. 불꽃처럼 아름다운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가 문을 닫은 뒤에 옆에 서 있는 나를 쳐다본다. 뭔가 굉장히 불쾌함을 담아 노려보는 것 같아서 나는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헛기침을 뱉어냈다.

“흠흠, 밖으로 안내해주겠다.”

“잠깐.”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멈춰 세운 그녀가 손가락을 들어 이리 와보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감히 황태자인 내게 저런 건방진 태도라니.

순간 살짝 기분 나빠지려고 했다. 그러다가 지금 싸워봐야 득 될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어차피 내가 황위에 오르면 자주 보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무차별한 살생은 인간임을 포기한 악마가 되는 짓이라고 신신당부를 했으니 참아야지.

“왜?”

“너도 곧 황제의 자리에 오르겠어. 미리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줄까 해서.”

“…뭐? 윽!”

잠시 방심한 틈을 타서 한 손으로 내 소중이를 덥석 잡는 그녀의 행동에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부터 피가 몰려서 잔뜩 부풀어있던 터라 그 예쁜 손으로 움켜쥐니 아프기도 아프고. 무엇보다 조소를 담은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감돈 채라 수치심이 물밀 듯 몰려왔다.

“아직 성년식도 치르지 않은 뻔뻔한 꼬맹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어디 감히 누님께 이 더러운 물건을 갖다 대는 거냐, 응?”

“아윽, 헉!”

“마음 같아서는 확 고자로 만들어버리고 싶지만, 내가 넓은 아량으로 참는다. 무사히 즉위해서 후계도 보려면 네 이 더러운 물건도 안전하게 간수해야하지 않겠어?”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면서 정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처음 당하는 치욕에 몸이 떨리고 하체는 터져버릴 것처럼 아팠다.

곧 손을 놓는 그녀가 손수건을 꺼내, 내 하체를 움켜쥐었던 손을 닦으며 나를 흘겨봤다.

“그래도 황궁까지 안내해줘서 그 정도로 그친 거다. 그러니 이 누님께 감사하도록 해. 그럼 수고.”

바로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린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전히 욱신거리는 내 소중이 때문에 허벅지를 꼭 모아 붙이면서 두 주먹을 꽉 쥐고 바르르 떨었다.

아직, 개시도 못 해본 내 소중이를 감히……!

지금껏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수치를 당한 충격은 그로부터 단 한순간도 잊을 수가 없었다. 만약 루즈 제국의 황제가 내 소중이를 인질로 겁박할 때, 조금만 더 세게 쥐었어도 사내구실을 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 위험천만한 상황을 떠올릴 때면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

내 이 수모를 절대 잊지 않겠다. 이 망할 예쁜이!

하지만 또 삶이란 것이 사람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더라. 다행히 사내구실에는 영향이 없을 것 같기는 한데 그때의 기억이 자꾸 꿈에 나와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더 어이가 없는 건, 그 꿈을 꾸면 늘 몽정한 것처럼 잠옷이 끈적한 정액에 젖어있었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한창 혈기왕성할 때이니 그럴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여성의 손에 내 소중이가 닿은 것도 그때가 처음이니 더 그럴 수도 있다고 세뇌했다. 그렇게라도 납득하지 않으면 한없이 나락에 빠질 것만 같아서.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와 성이 다른, 그러니까 여성이 내 근처에 가까이 다가오기만 해도 하체가 욱신거려 소스라치게 놀랐다. 황궁의 시녀들이나 귀족 영애들이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말 못 할 곳이 아파서 식은땀이 배어 나오곤 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그들을 피하게 되었다. 이러다가 여성 기피증이라도 생길까 봐 심히 걱정되었다.

“에이든. 대체 왜 이렇게 영애들에게 매정한 태도를 보이는 게냐. 영애들이 네게 몹쓸 짓이라고 했던 게야?”

“아닙니다, 어마마마.”

“저들이 전처럼 살가운 너의 태도를 그리워하고 있더라. 왜 갑자기 그렇게 변하게 되었는지, 고민이 있으면 이 어미에게 다 털어놓아보렴. 응?”

“가, 가까이 오지 마세요.”

통증은 여전했고, 그건 어마마마의 곁에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날이 갈수록 예민하게 날이 세워진 기분이라 어마마마께서도 걱정스러워하셨다. 게다가 아바마마의 병환이 점점 더 악화되어 황궁 분위기가 날이 갈수록 침체되고 있었다.

“대체 아바마마께서 앓고 계시는 병의 원인이 무엇인가! 벌써 십 년 째다. 저리 오랜 시간 쾌차가 되지 않는 이유를 아직 밝혀내지 못한 것이 말이 돼?!”

“원인은 폐하 본인께서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폐하께서는 황태자 전하께서 장성하실 때까지 생명을 연장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십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황제 폐하의 병환은 십 년 전, 블랙 드래곤과의 싸움에서 패하고 얻게 된 저주입니다.”

“블랙 드래곤?”

드래곤은 자신과 싸운 상대를 이기면, 상대의 육체에 저주를 남긴다. 절대 치유할 수 없는 악성의 생물을 몸속에 주입해 서서히 숨이 끊어지도록 만든다. 드래곤은 폭주의 때가 아닌 이상 먼저 인간에게 시비를 거는 일은 없다. 그들에게 있어서 인간이란 하찮은 풀 한포기와 같으니까.

“그럼 아바마마께서 드래곤에게 먼저 싸움을 걸었고, 패했다는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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