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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90화 (90/277)

90화

[말 재주가 좋고 특히 과장과 허위 광고에 능한 플레이어가 필요합니다.]

내가 직접 움직이면 좋겠지만, 말했듯 지금은 최대한 모습을 숨기는 쪽이 낫다.

게다가 나는 저런 영업 행위에 그다지 재주가 없다.

어쩔 수 없다면 내가 직접 해야겠지만, 지금은 굳이 내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다.

'어쨌든 나도 위드 길드의 일원이지.'

[박명철 : 아…. 잠시만요.]

이런 답장이 도착했다.

그렇게 5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박명철 : 괜찮은 사람이 있네요. 보내 드릴게요. 장비는 괜찮게 나왔나요?]

박명철의 물음에 나는 갑옷의 옵션을 곧바로 박명철에게 전송했다.

잠시 후, 다시 답장이 도착했다.

[박명철 : 거짓말.]

거짓말.

개미 등껍질로 만든 장비가 얼마나 훌륭한지 설명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단어다.

[나는 거짓말 같은 건 안 합니다.]

[박명철 : 말도 안 돼. 이게 뭐야? 와…. 진짜로….]

그 이후로 한참이나 박명철은 감탄을 그치지 못했다.

***

똑똑

잠시 후 누군가 다시 내 방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십시오."

"오오! 강민 씨! 와아아! 진짜 한번 보고 싶었어요! 대박! 헐! 미친!"

"……."

시끄럽다.

그게 문을 열고 들어 온 남자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그리고 역시 박명철은 사람을 잘 보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내가 말했다.

"와아아! 그거에요? 그 갑옷? 와. 때깔 쥑이네요. 옵션은… 봐도 되죠?"

"예. 보십시오."

참자.

저 사람은 내가 돈을 벌게 도와줄 사람이다.

"우아아아아! 미치이이이인! 이거 개미 등껍질 맞죠? 다시 개미굴 간다. 와. 미친. 헐."

"……."

내가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제야 몸을 움찔하며 머리를 긁적인다.

"죄, 죄송…. 하하하…."

"아닙니다. 그보다 꼭 기억해 줘야 할 게 있습니다."

"뭐죠? 말만 해 주세요. 길드장님이 실수하면 머리통 깨버린다고 했거든요. 헤헤."

"이게 개미의 등껍질이라는 사실은 반드시 숨겨 주십시오."

"예? 왜요?"

"여기는 개미굴과 연결된 마을이지 않습니까. 개미굴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 사실을 알게 된 플레이어들이 너도나도 등껍질을 찾으러 갈 게 아닙니까."

"아…. 그렇죠."

"그러니 당신은 이게 어떤 재료인지는 모르고, 다만 다른 공급처에서 이 재료를 공급받았다는 말만 하시면 됩니다."

"철저하시군요."

"딱히 철저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으으음…. 아무튼 알겠어요."

그러더니 그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입을 풀기 시작했다.

"인벤토리를 열어 주시겠습니까?"

강민의 말에 플레이어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강민은 그의 인벤토리에 2000개가 넘는 개미 등껍질을 전송했다.

"허…."

엄청난 물량에 플레이어가 입을 쩍, 벌렸다.

"우선 마을의 대장간에 가서 장비를 몇 개 더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 주십시오. 지금 가지고 있는 장비를 보여주면 분명 만들어 줄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굳이 장비를 몇 개 더 만드는 이유는…?"

"지금 제가 드린 장비에는 '장인의 손을 거친'이라는 칭호가 붙어 있지 않습니까."

"아, 예. 맞아요."

"굳이 장인의 손을 거치지 않았더라도 꽤 괜찮은 재료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이 사실이다.

해밀턴의 솜씨가 너무 뛰어난 나머지 말도 안 되는 장비를 만들어내기도 했고.

다른 플레이어도 '장인'이라는 단어를 보면 개미 등껍질의 성능에 대해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대장장이의 손을 거친 장비도 비교해서 보여준다면.

'개미 등껍질이 훌륭한 재료라는 건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 거다.'

내 말이 끝나고 플레이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맡겨만 주십쇼. 이번 일에 인센티브 많이 걸려 있거든요!"

내게 엄지를 치켜세우고 그는 갑옷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한참 시끄럽기는 했지만, 저 정도의 말솜씨라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데는 부족함이 없으리라.

"자, 그럼…."

나는 다시 마력으로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았다.

다시 내면 깊은 곳에 잠겨 들어가기 시작했다.

전생에서부터 나는 자주 명상에 잠기곤 했다.

그동안 싸웠을 때 나의 모습을 되새기며 부족한 부분을 찾아낼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다.

그리고 탑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싸움 속에서 내 멘탈을 다잡는 나름의 방식이기도 했고.

톡톡! 톡톡!

다시 한번 누군가 내 팔뚝을 건드렸지만,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안 봐도 뻔하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몰른의 발버둥일 테니까.

***

"자, 자! 여러분들! 여기 보세요! 봐요! 봐! 형! 누나! 이리 와 봐요!"

그 무렵 마을의 중심에서 한 남자가 갈색 갑옷 하나를 들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 뭐에요! 나 바쁘다고요!"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개미 등껍질로 만든 갑옷은 한눈에 봐서는 이목을 끌기 쉽지 않다.

딱히 특별한 장식도, 화려한 색감도 없으니까.

얼핏 본다면, 평범한 나무 갑옷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으니까.

"에헤이! 형님. 이거 한 번 보시라니까?"

그러더니 행인의 손에 갑옷을 가져다 댔다.

사람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관심을 갖게 만들기 위해서다.

동시에 행인의 눈앞에 아이템의 정보창이 떠올랐다.

"아오, 진짜 뭐…야…? 이거…? 헐? 헐?"

짜증 가득하던 그의 표정이 차차 묘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거 뭔데?"

깜짝 놀란 행인이 큰 소리를 내질렀다.

"뭐야? 뭔데요?"

"싸움 일어났어? 뭔 일이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 자! 보십시오! 여러분들! 개미굴을 클리어하셨으니 다들 알 겁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 장비에 달린 옵션은 무려!"

그러면서 장비의 옵션을 확인한 행인을 바라봤다.

"뭐였죠? 직접 말씀해 주십시오!"

"어, 어둠 속에서 시야 확보 옵션이요!"

그는 홀린 듯 갑옷에 달린 옵션을 읊어 버렸다.

그 순간.

"뭐라고?"

"진짜야? 어둠 속에서 시야 확보?"

"그거 뭡니까! 내가 삽니다! 나한테 팔아요!"

"내가 삽니다! 내가 살 거야!"

순식간에 몇 배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심지어 마을에 도착한 이들이라면 지금 그 옵션이 얼마나 사기적인 옵션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개미굴의 난이도를 가장 극악으로 만드는 게 무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참이었으니까.

그러니 플레이어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됐다, 됐어.'

남자는 입꼬리를 찢어 올리며 사악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우선! 저는 돌아가 보겠습니다!"

위드 길드의 플레이어가 말했다.

그 말에 플레이어들은 벙찐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플레이어를 바라봤다.

잠시 후.

"뭐, 뭡니까! 그거 팔아 주세요! 제발! 부탁합니다!"

"내가 살게요! 무조건 제일 비싼 가격에 삽니다!"

"팔아주세요! 제발요!"

하지만 어림도 없다.

'일단 입소문을 좀 타게 하고.'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뒤에서는 플레이어들의 아우성이 빗발쳤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모습을 감춰 버렸다.

그가 향한 곳은 마을의 대장간이었다.

한 곳에만 들르지 않고 모든 대장간에 가서 대장장이에게 개미 등껍질을 건네며 장비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개미 등껍질을 처음 본 대장장이들의 반응은 모두가 같았다.

"대체 이게 무슨 재료요? 어찌 이런 뛰어난 재료를 구한 거지?"

겉모습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한 번 개미 등껍질을 만져 본 대장장이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에서 침을 흘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절대로 개미 등껍질이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강민이 했던 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각 대장간에 등껍질을 맡기고 나온 그는 생각했다.

'한강민…. 진짜 최고잖아.'

***

그다음 날.

'맙소사. 진짜였어.'

그는 대장간에 맡겨 놓은 장비를 받아 든 플레이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개미 등껍질로 만든 장비들을 바라봤다.

총 5개.

물론 모든 장비에 어둠 속 시야 확보라는 옵션이 달려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5개의 장비 중 무려 두 개에 시야 확보 옵션이 달려 있었고.

시야 확보 옵션이 없는 장비도 웬만한 장비 이상의 성능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거면…. 진짜 대박이야.'

남자는 확신했다.

강민이 건네준 2000개의 개미 등껍질은 엄청난 액수의 골드가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자, 그럼.'

남자는 다시 몸을 움직였다.

품에는 다섯 개의 장비를 끌어안고서.

잠시 후 그는 다시 마을의 광장에 도착했고.

해밀턴이 만든 갑옷과, 조금 전 받아 든 다섯 개의 장비를 모두 바닥에 늘어놓았다.

그 순간.

"어? 저 사람…."

"어제 그 사람인가? 저 장비! 맞다, 맞아! 개수가 더 늘어났어!"

플레이어를 알아본 사람들이 소리쳤고.

그와 함께 순식간에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남자의 계획대로 개미 등껍질에 대한 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간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게 바로 여기 있는 장비들을 만든 재료입니다!"

툭!

남자는 인벤토리에서 개미의 등껍질 하나를 꺼내들었다.

플레이어들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어떤 재료인지 물었으나 남자는 절대 대답해 주지 않았다.

강민이 말한 대로 자신은 그저 공급받았을 뿐이라고 못을 박았으니.

더 이상 플레이어들은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플레이어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몇몇은 차라리 장비를 팔지 왜 재료를 파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재료를 가지고 대장장이를 찾아가면,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원하는 형태의 장비를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 아직 못 믿으실 분들을 위해서!"

남자는 장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다시 소리쳤다.

"마음껏 확인해 보십시오! 장비들의 옵션이요!"

플레이어들은 바쁘게 남자가 내놓은 장비들의 옵션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 옵션을 확인한 이들의 눈에는 하나 같이 탐욕이 가득 물들었다.

적어도 여기에서 개미 등껍질로 만든 장비보다 훌륭한 장비는 손에 꼽을 정도 밖에는 없었으니.

"자! 여러분! 지금부터 경매 시작합니다!"

"경매?"

"경매라고요?"

"당연하죠.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재료이지 않습니까. 가격은 여러분이 부르는 게 값!"

꿀꺽

경매라는 말에 플레이어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직 재료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니, 반드시 사겠다는 일념으로 투지를 불태우는 이들도 있다.

몇몇은 자신이 가진 돈을 세기도 했고.

바쁘게 돈을 빌리기 위해 다른 플레이어에게 연락하는 이들도 보였다.

"경매 시작합니다! 우선 하나에 천 골드! 천 골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플레이어들은 천 골드가 결코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싼 가격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천 골드? 그거밖에 안 한다고? 내가 입고 있는 갑옷이 십만 골드 짜린데…. 내 장비보다 더 좋잖아!'

'거저다. 천 골드면 거저잖아?'

'이 정도면 만 골드여도 싸다고 할 판인데….'

그렇게 플레이어들이 눈치를 보고 있던 중.

"2000 골드!"

"2500!"

"3000 골드!"

등껍질의 가격이 미친 듯이 치솟기 시작했다.

첫 번째 경매는 3만 골드에 낙찰됐다.

시간이 갈수록, 물량이 풀릴수록 단가는 조금씩 낮아졌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총 500개의 물량을 풀고 난 뒤 남자는 경매를 끝마쳤다.

경매가 끝난 뒤 남자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됐다.'

그날 500개의 등껍질을 팔았을 뿐인데.

'500만 골드….'

500만 골드라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고작 1/4을 팔았을 뿐인데도, 이미 강민이 목표로 했던 수익을 뛰어 넘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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