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30
콰과과광!
강에서 터져나온 물기둥들의 모습에 뱃사공, 카론은 얼굴을 굳혔다.
‘낌새조차 눈치채지 못했는데 이런 공격이라....과연 신과 악마를 상대하기로 마음 먹은 이답군. 그 어떤 영웅들도 저런 능력을 보이진 못했는데....이번 영웅은 달라도 다르다 이건가?’
명계의 내부.
그 중에서도 명계의 심부로 향하는 스틱스 강에서 저런 위력을 선보이던 영웅은 그의 기억에도 없었다.
어마어마한 세월을 살아온 그마저도 놀람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강혁이 보인 무위는 압도적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마른 침을 삼키며 손을 내저었다.
츠츠츠-
오랫동안 사공으로 세월을 보내온 그답게 스틱스 강과 어느 정도 동화된 그의 손짓은 흔들리는 강을 진정시키기엔 충분했다.
나아가 강을 진정시킨 그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진혁을 향해 쫙 핀 손을 내밀며 그를 제지했다.
“그만하게. 난 자네와 싸울 마음이 없어.”
“싸울 마음이 없어도 당신은 명계의 왕에게 복종하는 입장일 텐데 그럼 나를 안으로 안 데려가줄 것 아니야. 그럼 때려서라도 듣게해야지.”
나이로만 따지자면 수억 년 이상가는 차이가 있었을 텐데 강혁은 그에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따지면 신과 악마들은 그보다 오래 산 존재들인데 그들을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그건 뭐 패륜이게?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고작 해야 나이를 가지고 반말이나 존대를 하기엔 강혁이 상대해야 할 존재들이 초차원적인 존재들이었다.
그래서일까?
강혁은 최근 들어 딱히 나이에 구애 받지 않고 반말 하는 걸 택하는 중이었다.
물론 검성, 장 진과도 같은 경우에는 살짝 달랐지만.
적어도 신이나 악마와 관련된 인물에게까지 존대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건 곧 카론에게 반말을 하더라도 딱히 강혁의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거나 하진 못한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다행히도 카론은 그런 반말에 익숙한 이였다.
“미안하지만 난 전투에 재능이 없네. 그저 고고하게 흐르는 스틱스 강에 대고 노 젓는 것만이 내 재능의 전부지. 뭐, 남들은 이곳에서 제대로 된 노질 하나 못하니 재능은 재능이려나.”
그저 자신은 전투에 관해서 아무런 재능이 없음을 피력하며 강혁과의 전투를 피하려 했을 뿐.
싸우려는 마음이 전혀 없는 듯한 카론의 모습에 강혁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지만 이윽고 본래 자리를 되찾았다.
턱-
“그럼 운임료는 없겠지?”
“....강의 망자들에게 붙잡히는 것까진 막지 않을 거다. 그들의 살의는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사공은 노만 잘 저으면 되는 거지 승객의 안전까지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않나?”
“크, 우문현답이로군. 타라. 반대편까지 태워다 주마.”
배 난간에 발을 걸친 채로 고개를 끄덕이는 카론의 대답에 강혁 또한 망설임 없이 배에 올라탔다.
적당한 크기의 나룻배였기에 두 사람이 탔음에도 자리가 부족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럼 출발하지.”
그렇게 카론과 강혁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 되었다.
*쏴아- 쏴아-
‘....노질 하나는 기가 막히네.’
-태초부터 죽음이 존재한 시점부터 그는 노를 저어왔다. 저게 당연한 거지.
‘그래도 그렇지 한 번 노를 저을 때마다 몇 미터씩 나가는 게 말이 돼?’
노를 젓는다는 것, 나아가 물살이 꽤 거센 강에서 한 번에 몇 미터씩 나아가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노 젓기는 힘이 아니라 기술적인 부분이 크기에 아무리 힘이 장사인 존재가 노를 젓더라도 카론처럼 할 수는 없으리라.
그건 비단 강혁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도 저렇겐 못하겠다.’
-넌 힘으로 노를 저을 테니까. 백날 저어 봐라 카론의 노 젓기를 따라할 수 있는지.
‘재능으로 하면 괜찮지 않을까?’
올 마스터.
모든 걸 마스터 하는 그의 재능은 비단 노 젓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못해도 한 분야의 정점, 그 이상을 찍은 존재다. 네가 아무리 재능을 갈고 닦는다고 한들 저기까지 다다르는 데에는 꽤 오래 걸리겠지. 그럼 너는 노 젓기에 시간을 소모할 생각이냐 아니면 다른 재능에 시간을 소모할 생각이냐?
‘....그래,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 그만해.’
-알면 됐다.
카론의 노 젓기는 최소 초월의 단계에 들어섰을 터.
태초에 죽음이 존재했을 때부터 노를 저으며 망자들을 운반했을 그를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일.
결국 노 젓기는 마음 속 깊은 곳에 고이 접어둔 강혁은 이내 슥슥 지나가는 강의 물결 속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 깊게 강을 보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데.”
“왜지?”
“스틱스 강은 사람의 어두운 부분과 슬픈 부분을 보게 만들지. 그에 빠지게 되면 자기 자신을 잃게 되고, 망자들은 그런 이들을 향해 손을 뻗어 자신들과 하나가 되게 만든다. 그렇게 된 이들치고 돌아온 이들은 없다는 것만 알아둬라.”
스틱스 강을 물끄러미 바로보던 강혁에게 건네진 카론의 조언은 강혁을 의아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카론은 명계의 주민이자 스틱스 강 위를 오고가며 망자를 운반하는 사공.
당연하게도 명계의 왕인 하데스와 크게 연관이 있는 존재라는 얘기다.
그런 이가 굳이 강혁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줄 리가 없다는 게 강혁의 생각.
하지만.
-저 말이 옳다. 스틱스 강 안에는 망자들이 호시탐탐 새로운 이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으니 저 말대로 되도록 보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온전히 자신의 편인 분노마저 그의 말에 동조하고 있었으니 그가 거짓을 말하는 건 아닌 셈.
결국 강혁은 의문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왜 그걸 나한테 말해주는 거지? 난 하데스를 엿 먹이려고 온 적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사공으로서 배를 탄 손님에게 강의 위험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 뿐인데 굳이 적이니 아군이니 가를 것은 없지. 난 그저 손님인 사람과 아닌 사람만을 구분할 따름이다.”
“....그건 고맙네. 그래도 괜찮아. 어차피 이것도 하나의 수련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니까. 애초에 직접 공격하러 와주면 나야 좋고.”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스틱스 강의 전경을 구경하던 강혁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흠칫-
“....이런 거였나.”
예전.
고작해야 몇 년도 채 되지 않은 비각성자이자 비헌터이던 시절의 모습들.
그것들이 스틱스 강의 물결 위로 둥둥 떠올라 강혁의 각막에 비추어졌다.
멸시 받고 모멸감만 가득했던 생활들.
오로지 헌터로서 성공하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살아가던 강혁의 모습은 점점 더 뒤로 가기 시작했다.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십 년....
점점 뒤로 가는 세월을 바라보는 강혁의 정신은 점점 멍해져만 갔다.
폐허가 된 도시, 가족을 잃은 아이의 울음소리, 사람들의 머리가 장식품처럼 거리에 나뒹굴던 대격변 초창기의 모습.
이제는 그걸 많이 복구하여 괜찮아졌지만 스틱스 강의 물결에 비친 모습은 그렇지 못했다.
-꺄아아악! 엄마! 엄마 눈 좀 떠 봐!
-모....몬스터다! 몬스터!
-여기 사람 있어요! 제발....제발 살려주세요!
‘....이건 좋지 않은데.’
PTSD라고도 부르는 것이 다시금 도질 것 같은 착각에 강혁은 이를 악물었다.
과거의 기억.
그것은 지나가면 추억이 되지만 새삼 끄집어보면 좋을 거라곤 하나도 없는 기억이다.
세상 사람들이 과거를 추억하면 ‘아, 그땐 그랬지.’라며 좋아하지만 정작 돌아갈 거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이는 이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
결과적으로 강혁은 그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있었다.
-....아저씨, 저 좀 살려주세요.
‘아냐, 난 평범한 사람이었어.’
-왜....안 구해줬어요?
‘난 할 수 있는 만큼 했어. 다른 사람들을 구하느라....그들을 구하느라....’
자신이 구해내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이 스틱스 강의 물결을 빌어 강혁에게 나타났다.
하나둘 강혁에게로 손을 뻗는 그들의 수는 점점 늘어갔고, 그 모습을 본 분노가 버럭 소리쳤다.
-이 멍청한 녀석 그러니까 보지 말라고 했건만! 정신 차려라 멍청한 놈아!
귓가에 쩌렁쩌렁 울리는 분노의 목소리는 무언가 벽에 가로 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강혁에게 닿지 못했다.
결국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분노가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강혁에게 직접적으로 간섭까지 했지만....
스르륵- 풍덩-!
“....결국 저리 되는가.”
-이 미친 자식아 안 돼!
스틱스 강에 빠지는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스틱스 강에 빠지면 다시는 못 돌아오는 데에는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지. 그곳은 평범한 이는 들어가기만 해도 육신이 녹아내려 사라지는 강. 이윽고 육신이 녹아내리고 영혼만이 남아 망자가 되어 영원히 스틱스 강에서 살게 되지. 이번 영웅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결국 변함이 없는 건가.”
스틱스 강 속으로 사라져 버린 강혁의 모습을 바라보던 카론은 그리 중얼거리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신들의 행패가 심해지고 있다. 아무리 외세의 존재들에 의한 스트레스가 크다곤 하나 순리대로 돌아가야 할 세상에 제 마음대로 손을 뻗고 목숨을 마음대로 거두니 명계도 휘청거리고 있어. 그들이 조금이라도 마음을 고쳐 먹어야 할 텐데....’
외계의 존재.
괴생명체들을 부리는 이들을 일컫는 신과 악마들의 세상의 말.
그들과의 전쟁은 어마어마한 정신력을 지닌 신과 악마들을 피폐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오히려 정신력이 깎일 만한 일이 없던 그들이기에 그건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일까?
신과 악마들은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본래라면 손 대어서는 안 되는 인간 세상에 대는 것을 택했다.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전 차원에 퍼져 있는 생명체들이었고, 그들의 분노가 끝에 다다른 결과 영웅이 탄생했다.
‘....그런 영웅이 스틱스 강에 빠져버렸으니....하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 남의 조언에도 귀를 기울이는 게 영웅의 미덕. 그런 것조차 없는 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겠지.’
하지만 그 영웅이 자신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스틱스 강을 바라보는 걸 멈추지 않았고, 그 결과 스틱스 강에 빠져버렸다.
그 사실에 카론은 안타까워할 지언정 아쉬워 하지는 않았다.
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는 결국 지금의 신과 악마와 다르지 않았기에.
물론.
‘그걸 돌파할만한 능력을 갖췄다면 모를까....’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강력한 능력.
그것이 있는 이라면 살짝 다를지도 몰랐지만 적어도 스틱스 강에 중심부에서 빠지고도 멀쩡할 수 있는 존재는 제아무리 신이라도 불가능했기에 카론은 그 생각을 접었다.
부그르르-
“....기포? 말도 안 돼. 망자들은 죽은 존재들. 그들은 아무리 용을 써도 기포를 만들 수가....설마?!”
스틱스 강 위에 기포가 떠오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망자는 이미 죽은 존재.
그들이 숨을 쉴 리도 없기에 기포는 생기지 않을 터.
아니, 애초에 실제로 산 사람이 스틱스 강 내부에서 숨을 쉴 수 있을 리가 없기에 기포란 스틱스 강에서 볼 수 없는 천연기념물과도 같았다.
그런데.
‘기포가 분명 존재해. 그럼 답은 하나 뿐인가.’
있을 수 없지만 눈앞에 결과가 존재하는 한 카론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 있었나.”
텁-
“어후, 씨 죽을 뻔 했네.”
육신을 녹이고 영혼만 남기는 스틱스 강의 물을 덕지덕지 몸에 바른 채로 강혁이 다시금 카론의 배 위로 올라왔다.
“뭐해? 출발 안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말하는 강혁의 모습에 카론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쏴- 쏴아-
그리고 이내 두 사람을 태운 배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목적지를 향해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