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29
츠츠츠츠....
명계의 입구로 몸을 내던진 강혁은 들어서기 무섭게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떨었다.
“....내가 몸을 떨어? 이게 말이 돼?”
무협지에서나 나오는 한서불침 따위는 진즉에 우린 강혁에 추위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강혁이 느끼는 한기 또한 사실.
다행히도 강혁에겐 도라X몽....아니 분노가 있었다.
-명계의 한기는 인간의 감각 자체를 무너뜨리지. 산 자라면 응당 느낄 수밖에 없을 거다. 한기에 잠식되지 않도록 노력만 해라. 굳이 모조리 털어낼 필요까진 없으니까.
“정상적이라는 거지?”
-그래, 신들이나 악마도 본신으로 명계에 들어서면 추위를 느낄 거다. 너라고 그들과 다를 건 없지. 안 그런가?
“하긴 그건 그렇네.”
신과 악마마저 명계의 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는데 자신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며 자기 위로를 마친 강혁은 자신이 가진 기운을 전신으로 돌렸다.
치이익-
명계의 한기에 닿아 차갑게 얼어붙은 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을 느낀 강혁이 기지개를 폈다.
꾸드드득-
굳어 있던 몸이 풀리며 탄력 있는 상태로 돌아온 강혁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원래 명계는 아무것도 없는 건가? 너무 썰렁한데? 환대해주는 사람까지 바란 건 아니지만 공격도 없어?”
-정확하게 따지자면 여긴 명계가 아니니까. 너도 방금 입구로 들어오지 않았나? 여긴 초입에 불과해. 진짜 명계는 꽤 오래 가야 할 거다.
“....그래? 그건 좀 귀찮네.”
몸을 얼려버리려고 작정을 한 듯한 명계의 한기를 헤치고 더욱 깊숙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강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발걸음을 멈춰선 안 된다는 걸 알기에 강혁은 조금씩 조금씩 발걸음을 내딛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걸 택했다.
‘어차피 멈춰 있어선 죽도 밥도 안 된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며 명계에 대해서 알아내야 해.’
터벅터벅-
생각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던 명계의 초입 또한 서서히 눈에 익으며 앞을 보기가 한층 수월해진 강혁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그와 동시에 명계의 초입임에도 불구하고 널려 있는 뼈 무더기가 강혁의 눈에 들어왔다.
보기 싫어도 볼 수 밖에 없게 놓여진 뼈 무더기들.
그걸 보는 순간 강혁은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산 자의 것이야. 맞지?”
-그래, 명계에 무언가를 찾으러 왔지만 초입의 한기조차 견디지 못한 이들이로군. 저들을 탓할 건 아니지. 원래 신들이란 사람의 나약함 마음을 파고드는 족속들. 저들의 무지함보다는 저들의 나약함을 자극한 신들을 욕해야겠지.
“지구인들이겠지?”
-아마도. 다른 차원의 존재들일 경우엔 이미 한기에 뼈 무더기마저 남지 않았을 테니 너와 같은 지구인일 가능성이 크지. 한기에 뼈가 박살이 나지 않을 수준이면 이곳보다 더 안쪽에 뼈 무더기가 있을 거다.
“....짜증나네.”
신들의 농간에 의해서 죽은 이들.
대충 보기만 해도 수십 구가 넘는 뼈 무더기가 강혁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빌어먹을 놈들 때문에 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은 거야?
그들 하나하나가 내로라하는 헌터였을 게 분명했다.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는 이가 아니라면 명계에 들어설 생각조차 못했을 테니까.
그런 이들이 모조리 입구에서 죽어 뼈만 남은 모습이 되었으니 같은 지구인으로서 강혁이 분노를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불끈-
말아쥔 주먹에서 느껴지는 힘이 팔 전체로 퍼져나가고 힘줄이 불썽사납게 툭- 하고 튀어 오른다.
힘을 주면 줄수록 점점 더 기괴하게 부풀어 오르던 팔은 순식간에 제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후우....”
-심호흡해라. 여기서 네가 화를 내봐야 바뀌는 거라곤 네 힘의 소모 밖에 없으니까. 네가 힘을 써야할 때가 애먼 명계의 땅인지 아니면 하데스를 비롯한 명계의 존재들인지는 네가 판단해야 할 거다.
“그래, 나도 잘 알아. 아니까 참는 거 아니야.”
거칠게 숨을 내쉬는 강혁의 숨소리가 점점 고르게 바뀔 때쯤.
분노의 말에 대답을 마친 강혁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고, 이윽고 초입에서 강혁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미 들어간 것 같군.”
“여기서부턴 우리의 관할을 넘어섰다.”
“퇴각! 퇴각하라!”
강혁이 사라진 자리에 나타난 죽음의 신의 사도들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서서히 얼어붙는 로브 자락을 보곤 황급하게 자리를 벗어났다.
그들이 아무리 죽음의 신의 사도라곤 하나 완벽한 사도는 아니었고, 그런 직책 따위로 버티기엔 명계의 환경이 너무나도 가혹했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둘 몸을 돌려 명계의 바깥으로 되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꽁지를 말고 도망치는 쥐새끼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자신들의 처량한 모습에 그들은 도망치듯 명계를 빠져나가면서도 강혁이 사라진, 그리고 나아갔을 어둠 속을 바라보며 진저리쳤다.
“....우리는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고 도망치는 것도 어려운데 아무런 도구도 없이 명계 안으로 들어가다니 저 자는 대체....”
“말할 시간도 아깝다. 빨리 나가자고!”
숨결마저 얼어붙는 명계의 한기에 그들을 더 이상 강혁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꼬리 만 강아지처럼 화들짝 명계 바깥으로 도망치는 그들은 이윽고 명계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퍼석-
한기에 박살이 나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뼈 무덤만이 명계의 초입을 고요하게 지킬 따름이었다.
*터벅터벅-
“슬슬 오네.”
명계의 초입에서 그 다음으로 향하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던 강혁은 서서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이들을 느끼곤 혀를 찼다.
-여럿인가.
“확실히 하나로는 부족하겠지.”
분노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에 대한 대답을 강혁이 내뱉었을 때.
-캬아아악!
명계의 한기에 전신이 얼어붙은 이들이 강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둘이 아닌 수십, 수백에 달하는 대인원.
당연히 강혁 또한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후읍-”
크게 들이마신 숨과 동시에 부풀어오른 가슴팍.
이윽고 쩍 벌어진 그의 입에서 명계의 한기를 단숨에 녹여버리는 극열의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푸화아아악!
전방을 가득 채우는 브레스에 달려들던 명계의 초입을 벗어나지 못하고 떠도는 망자들이 단숨에 녹아내렸다.
퍼석- 퍼석- 퍼서서석-
아니, 정확하게는 박살이 났다는 표현이 옳으리라.
얼음 동상과 비슷한 상태로 목숨만 붙어 있고, 산 자를 증오하게 된 그들의 몸은 극열의 브레스를 버텨내지 못하고 터져나갔다.
신체가 박살이 나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강혁은 쩍 벌어졌던 입을 닫았다.
“후우, 약한데?”
-그럴 수밖에 저놈들은 초입의 존재들. 그것도 본격적인 죽음의 군대라고 볼 수 없는 망자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저들은 죽여도 죽지 않아.
“....뭐? 그럼 방금 박살난 건 뭔데?”
-그들의 신체는 이미 명계에 존속되어 버렸다. 어쩌면 뼈 무더기가 된 존재들보다 더 못한 상태라고 볼 수 있지. 그들은 영원히 명계의 초입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해야만 한다.
“....미친.”
분노의 말에 강혁이 입안을 얼얼할 정도로 콰득- 씹음과 동시에 저 멀리서부터 망자의 울음 소리가 울려퍼지는 걸 느끼며 강혁은 거세게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짜증을 대변하는 듯한 그의 모습을 끝으로 강혁의 두 다리가 땅을 박찼다.
“일단 몰려오는 놈들부터 밀어붙이면서 전진?”-네 편한대로 해라. 어차피 저놈들은 네 발걸음을 막고, 힘을 빼는 것에 불과할 테니까.
“그럼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거지? 좋네. 그 망할 놈들 만나기 전에 몸풀기는 하고 만날 테니까.”
-세상에서 망자들을 앞에 두고 그리 말할 수 있는 인간은 너 하나 뿐일 거다.
“칭찬 고맙다.”
-칭찬 아니....
말을 다 끝마치지도 못하는 분노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강혁의 신형이 달려들던 망자들을 향해 다가섰다.
그리고.
콰앙-!
가장 앞장 서서 달려들던 망자의 얼굴에 드롭킥을 꽂아줌과 동시에 주먹을 휘둘러 옆에 있던 망자의 얼굴을 박살냈다.
-키에에엑!
“시끄러, 신들 꼭두각시 된 게 자랑이야? 입 닥쳐.”
당연하게도 강혁의 공세에 망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귀를 터뜨리려는 듯한 비명 소리에 강혁은 이를 악물며 욕설을 내뱉었다.
촌철살인과도 같은 강혁의 말에도 불구하고 망자들의 기세는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자극한 것인지 더욱 거세게 짓쳐드는 망자들의 모습에 강혁이 움찔할 정도.
하지만.
“....자존심 상하게 만드는 이것들이?”
자신이 움찔했다는 사실 자체가 강혁을 분노케 만들었다는 사실을 망자들은 알지 못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고작해야 망자.
신과 악마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이들이 내지르는 귀곡성 따위에 자신이 움찔하고 놀랐다는 사실을 지상의 동료들이 알았다면 배를 잡고 낄낄댔으리라고 생각하며 이를 간 강혁의 발을 쿵- 하고 굴러졌다.
콰르르르-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명계의 바닥이 거세게 흔들리며 망자들의 신형이 휘청였다.
그리고 그때만을 노린 강혁의 신형이 번개처럼 튀어 올랐다.
“뒤져.”
꽈릉!
마른 하늘의 날벼락.
명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낙뢰가 종횡무진하며 망자들을 휩쓸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착실하게 망자들을 박살을 낸 번개 다발을 순식간에 제 모습을 감추었고.
그와 동시에 번개처럼 움직이던 강혁의 주먹과 다리가 망자들을 몸을 짓이겼다.
-크아아악!
고통도 두려움도 없어진 망자들은 그저 제 팔다리를 휘휘 내저으며 강혁을 공격했지만 그런 공격 따위가 강혁에게 닿을 리가 만무.
물론 망자들에겐 명계의 한기가 강하게 깃들어 있기에 닿기만 하더라도 전신을 얼릴 수 있었지만 그것도 닿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강혁에겐 그것들을 모조리 피해낼 회피력과 기동성이 있었기에 그들의 공격은 강혁에게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었고, 우월한 회피력과 기동력을 바탕으로 강혁은 망자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마치 그들을 오랜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려고 하는 것처럼 그의 손속은 무척이나 경건했음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런다고 저들이 해방되는 것은 아니거늘.
“그냥 자기 위로야.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해.”
그에 따른 분노의 핀잔이 이어졌지만 강혁은 그에 신경쓰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저들의 장송곡과 진혼곡을 이어나갈 뿐.
*터벅터벅-
텅 빈 공동에 울려퍼지는 발걸음 소리.
하지만 지하로 내려오고 공동에 들어섰을 때.
강혁이 느낀 것은 이곳이 마냥 텅 빈 곳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쏴아아-
“....강?”
바로 공동 전체를 가로지는 거대한 강이었다.
“손님인가. 얼마만의 손님인지 모르겠군.”
그리고 그 강 위에 둥둥 떠 있는 나룻배와 그 위에 타 있는 한 명의 사공이 강혁의 눈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분노가 강혁에게 경고했다.
-놈을 조심해라 놈은 사람들의 영혼을 대가로 배를 태워주는 사공....
“미안하지만 내가 줄 수 있는 건 영혼이 아니라 주먹 밖에 없어!”
쾅!
그 경고가 끝나기도 전에 강혁은 나룻배 위의 사공에게 주먹을 날렸고, 주먹에 담긴 거력과 함께 강 중심부에서 물기둥이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