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26
미국 알케미의 거처.
그곳에서 강혁은 다시금 알케미와 대면하게 되었다.
“오랜만이군. 아니, 오랜만은 맞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물건은?”
말만 들으면 마약상 같은 냄새가 풀풀 흘리지만 정작 두 사람은 마약은커녕 마약상 근처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알케미는 그런 강혁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만들어둔 현자의 돌을 그의 손에 올려주었다.
“현자의 돌. 정확하게는 현자의 돌 프로토타입이다. 정확한 성능 실험은....네가 해봐야겠지.”
“위험한 건 아니겠지?”
“그런 걸 내가 네게 줄 리가 없지. 날 의심하나?”
“....그건 아니지만.”
알케미는 현존하는 최고의 연금술사.
당연히 그를 의심한다면 그 어떤 연금술사도 믿을 수 없다.
그렇기에 강혁은 손 위에 올려진 조그마한 돌멩이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작군.”
“작지, 하지만 그만큼 더욱 알차다고 보는 편이 좋을 거야.”
한 사람 분의 시체를 모조리 응축한 것과 다를 바 없었으니 알케미가 저런 자신감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정확하게는 시체라기 보다는 신체, 그러니까 신의 시체라는 표현이 옳았겠지만 두 사람은 개의치 않았다.
알케미는 자신의 부인을 살리기 위해 시체든 신체든 아랑곳 하지 않았고, 당장 현자의 돌을 먹어야 할 강혁의 경우에는 몬스터의 시체들을 먹어 온 경험 때문인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이거 점점 내가 이상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어찌 보면 승태의 시체라고도 볼 수 있는 현자의 돌 프로토타입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리 생각하던 강혁은 더 잴 것도 없다는 듯이 거칠게 그것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스르륵-
입안에 들어가기 무섭게 사르르 녹아 목구멍 너머로 사라지는 현자의 돌 프로토타입을 느낀 순간은 강혁은 거친 두통을 느껴야만 했다.
그게 끝이 아니라는 듯이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고통에 강혁은 얼굴을 찌푸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괜찮나?”
“....부작용은 없다며.”
“고통은 있을 수 있지. 다만 그 이후가 문제긴 할 텐데....”
“뭔데?”
“재료가 된 이가 네 몸을 노릴 수도 있어. 그러니....지지 마라.”
“....이 개 자식아.”
“살아 돌아오면 기부 열심히 할 테니까 힘내라고 친구.”
툭툭-
마지막 말을 마치고 자신의 어깨를 두들기는 알케미의 목소리를 끝으로 강혁은 까무룩 기절했다.
*“....여긴?”
까무룩 기절을 했던 강혁이 눈을 떴을 때에는 더 이상 강혁은 알케미의 집 거실에 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의 몸은 여전히 거실에 존재했지만 그의 정신은 아니란 얘기였다.
“....하얗군. 아니 아무것도 없는 건가.”
백(白), 어쩌면 무(無)의 공간이라도 불러도 될 법한 너른 공간을 두리번거릴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왔나. 필멸자.”
그것도 낯익은 목소리가 말이다.
“김승태....아니, 여기선 아레스인가?”
“그래, 그 인간 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혼으로도 육으로도 말이지.”
이죽거리는 듯한 그의 말투에서 자신이 알던 김승태라는 존재 자체가 세상에서 사라졌음을 깨달은 강혁은 한숨을 토해냈다.
“멍청한 놈. 하필 손을 잡아도 저런 놈들이야 잡다니.”
“그 녀석에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사지가 잘린 채로 쓸쓸히 섬에서 죽거나 우리와 손을 잡거나. 당연히 전자보단 후자가 낫지. 후자는 복수할 여지라도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혀 깨물고 죽고 말지. 네놈들과 손을 잡을 리는 없을 거다. 적어도 나는.”
“그건 아쉽군. 아버지나 다른 신들. 더러운 악마놈들도 너와 손을 잡고 싶어서 안달일 텐데. 하지만 상관 없다.”
두 팔의 좌악 펼치며 미소를 짓는 아레스의 말에 강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지?”
“이젠 내가 네가 되어 신들의 품으로 향할 테니. 영광으로 알아라 필멸자.”
“....자존심이 너무 뛰어난데 그래.”
자신을 확실하게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레스의 태도에 강혁은 헛기침을 내뱉었다.
불쾌했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강혁은 화가 났다.
아니.
‘저 개자식이 날 물로 보네?’
빡쳤다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정도로 지금 강혁이 느끼고 있는 분노는 엄청났다.
신이라곤 하나 고작해야 화신체에 깃든 사념과 비슷한 존재.
진짜 아레스는 저 드높은 천상 어딘가에서 시시덕거리며 지금 상황을 내려다보고 있을 터.
‘빌어먹을 신들과 악마놈들도 쳐죽일 수 있게 됐는데 고작 사념 따위한테 내가 질 것 같아? 우습게 아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렇기에 더더욱 화가 난 것도 사실이었다.
진짜 신도 아닌 쩌리에 불과한 이가 자신을 내려다 보는 걸로도 모자라 자신의 몸을 잡아 먹겠다고 하니 그로서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하지만 사념이라고 하나 신은 신.
그런 만큼 방심은 있을 수 없었다.
‘놈이 방심해주는 게 나한테는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 놈은 방심하고 나는 방심하지 않는다. 이 명제만 지켜지면 내겐 좋은 일. 차라리 더 방심해라.’
누군가가 자신을 무시하고 깔보는 것에는 이미 익숙해진 강혁이었기에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다른 최강의 10인이었다면 불가능했을 방법이었고, 오직 강혁이기에 가능한 방법은 충분히 큰 효과를 불러왔다.
“네놈을 먹어치우고 나는 아레스라는 이름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신이 되어주겠다.”
지극히 오만한 발언.
그건 곧 아레스의 사념이 강혁을 깔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였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놈만 잡으면 된다. 오히려 바깥에서 잡는 것보다 내부에서 직접 내가 먹어치우는 편이 신계에 도움이 될 터.’
그는 진심으로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계를 하며 자세를 잡는 강혁이 모습을 보아서인지 그의 오만은 하늘을 찌를 정도가 되었다.
사실 아레스라는 신 자체가 그러했다.
같은 신일지라도 깔보고 무시하며 아래로 보는 경향이 강한 신.
그런 경향은 화신체가 되고, 사념이 되어서도 바뀌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그리고 그런 경향은 강혁에겐 크나큰 이득으로 작용했다.
타다닥-
무의 공간을 내달리며 강혁에게 달려드는 아레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본래에도 패배했던 전적이 있는 아레스가 후공도 아닌 선공으로 덤벼든다?
‘죽여달라고 용을 쓰는 군.’
강혁이 코웃음을 치며 달려드는 아레스에게 엿을 날림과 동시에 가드를 풀고 놈을 향해 짓쳐들었다.
달려드는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아레스의 모습은 퍽 웃길 정도.
하지만 강혁은 웃음을 머금은 채로 멈추기보단 속도를 더욱 높이는 걸 택했다.
화륵-
음속을 넘어 빛의 속도에 다다른 강혁의 몸에 불이 붙어 한 줄기의 유성우와 같은 모습이 된 순간 강혁은 아레스에게 다다라 있었다.
우득-
그리고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뻗은 주먹이 아레스의 가슴팍에 닿은 순간.
섬뜩한 소리와 함께 그의 가슴팍이 박살이 났다.
푸화아악!
가슴이 부숴지고 뼈 파편이 비산함과 동시에 피 분수가 눈앞을 가렸다.
물론 거기서 멈출 강혁이 아니었다.
우뚝-
제자리에 발을 박아 넣은 강혁의 주먹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연속적으로 내질러졌다.
빡! 빠각! 빠드드득!
주먹에 닿을 때마다 울려퍼지는 섬뜩함 가득한 소리는 강혁의 귀를 즐겁게 하는 관혁악 혹은 오케스트라와 같았다.
그 기세를 몰아 강혁은 말그대로 아레스를 분쇄하는 기염을 토해내는 경지에 들어섰다.
으적- 으직- 으저저적-
사람의 몸이 완벽하게 으스러져 순살치킨이 되어가는 과정은 썩 보기 좋은 과정은 아니었다.
뼈 가루가 흩날리고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는 광경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런 누구나 싫어할 법한 광경의 중앙에서 강혁은 계속해서 내달렸다.
팡! 파앙!
공기막을 터뜨리고, 찢어발기면서 전진한 그의 주먹은 계속해서 아레스의 전신에 꽂혔다.
살을 가르고 뼈를 부수고 나아가 아레스의 근원을 향해 뻗어지는 강혁의 주먹은 너무나도 날카로웠다.
‘안 돼. 이러면 안 된다. 난 또 다시 2번째 패배를 하게 된단 말이다!’
주먹이 자신을 고통스럽게 할수록 아레스의 마음을 점점 급해졌다.
고통과 상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와 백의 세계에서 그런 것쯤은 상대를 죽일 수 없으니까.
중요한 건 마음 가짐과 근원.
둘 모두 지켜야 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근원이었다.
‘근원이 파괴되면 무조건 진다.’
마음가짐이 무너지면 그건 곧 근원과 직결되고, 가장 약한 부위.
즉, 근원이 상대에게 내보여진다.
당연하게도 약점인 근원이 공략 당하면 그건 곧 패배를 의미하고, 상대에게 모든 걸 빼앗기게 된다는 의미였다.
그걸 아는 아레스는 필사적으로 강혁을 향해 손을 뻗었고, 그의 손은 강혁에게 무사히 닿았다.
“흐하하핫! 신의 사념을 정통으로 맞고도 네놈이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
그리고 그의 손길은 곧 사념 그 자체로 변해 강혁에게로 흡수되었다.
신의 사념.
그것은 결코 평범한 이라면 견뎌낼 수 없는 성질의 것.
제아무리 강혁이라고 할 지라도 견뎌낼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에 내린 공격이었다.
실제로 그의 사념이 파고들기 무섭게 강혁의 주먹 세례가 우뚝 멈춰선 것을 느낀 아레스가 환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끝이다, 멍청한 필멸자 놈! 네놈을 흡수하고 나는 새로운 신이 된다! 아레스라는 이름을 벗어 던지고 또 다른 신이 된단 말이다!”
기쁨이 가득 담긴 포효가 무의 세계를 가득 채운다.
하지만 그의 포효는 그리 오래 갈 수 없었다.
“....누구 마음대로 남의 몸을 흡수한다고 난리야?”
“....말도 안 돼. 어떻게 나....나의 사념을 정통으로 받아 들이고도 멀쩡할 수 있는 거지? 하다 못해서 근원조차 드러내지 않다니 네놈은 대체 뭐냐. 뭐냔 말이다!”
기쁨이 담긴 포효는 당혹과 공포가 담긴 포효로 변질 되었고, 이윽고 자리에 주저앉아 엉덩방아를 찧는 강혁이 입가를 비틀며 답해주었다.
“불굴 개새꺄.”
그리고 그런 강혁의 눈앞에는 불굴에 의해서 정신 계열 공격을 저항했다는 메시지창이 둥둥 떠 있었다.
불굴.
그의 특성 중 하나인 불굴이 색욕에 이어 아레스의 사념까지 박살 내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무너져 내린 아레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혁이 당혹과 공포에 모습을 드러낸 그의 근원을 향해 손을 뻗으며 중얼거렸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푸화아악-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혁의 몸에서 터져나온 마기가 아레스의 사념을 으적으적 씹어먹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는 아레스의 사념과 함께 강혁과 아레스가 서 있던 무와 백의 세계가 천천히 무너져내렸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쪽의 흡수를 위해서 만들어진 결투장이 전투가 끝나고도 유지가 될 리가 없으니 말이다.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결투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식사를 마친 강혁은 눈을 부드럽게 감았다.
그리고 다시금 눈을 떴을 때, 강혁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백색의 세상이 아닌 평범한 미국식 가정의 천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