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25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군.”
-....신과 악마들보다 더한 놈들이 보낸 군세이니 어쩌면 저게 당연한 일이겠지. 그러니 네가 더 강해져야 한다는 거다.
“....동의한다.”
강혁은 자신이 더욱 강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노의 말에 무어라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니,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선 분노의 말은 전부 맞았고, 자신이 더욱 강해져야 하는 것 또한 맞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위치는 어딘데?”
그렇기에 강혁은 밤하늘 위에 둥둥 떠서 서울의 전경을 눈에 담곤 분노에게 목적지를 물었다.
그리고 이어진 분노의 대꾸에 진혁은 어처구니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저기 오는군. 멀리 갈 필요도 없겠어.
“....허. 이젠 찾아가는 서비스야? 나쁘지 않은데?”
-느껴지는 기운을 보아하니 칠선이군. 그러니까 저가 알아서 찾아오는 거다. 칠죄라면 그럴 일이 없지.
“확실히 칠죄들이 싸가지 없긴 하지.”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냐?
“....저기 오네.”
-대답해라.
“준비해.”
-....빌어먹을 놈.
아까 했던 말을 번복하며 자세를 잡는 강혁의 태도에 분노가 분노하는 진귀한 경험을 목격했지만 강혁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점점 가까워지는 거대한 빛무리에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칠선의 정체에 대해서 물었다.
“그래서 저놈은 누군데?”
-네가 마지막으로 얻은 칠죄가 무엇인지 생각해라.
“....탐욕?”
-그래, 지금 저놈은 그 탐욕의 정반대 되는 칠선. ‘자선’이다.
파아아앗-
그리고 칠선이 가까워짐에 따라 터져나온 강력한 빛이 강혁을 뒤덮었다.
*“....여긴 또 어디야?”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칠선 녀석의 심상 세계다. 이제 곧 나타날 테니 준비해라.
“....쯧, 칠선들은 왠지 모르게 거북하단 말이지.”
순결 때에도 그렇고 이번 자선 때에도 거북함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강혁의 푸념에 분노는 낄낄대며 강혁을 놀려댔다.
-네 녀석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멍청한 녀석.
“....그건 기분 나쁘네. 너랑 나랑 어디가 그렇게 닮았다고.”
투덜대면서 거세게 반박은 하지 않는 강혁의 모습에 분노가 다시금 강혁을 놀리려던 찰나.
“어서오세요. 제 심상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부드러움이 가득 담긴 여성의 목소리가 강혁의 귓가를 울렸다.
공손함마저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강혁은 분노의 목소리를 음소거시키고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자신인가?”
“네, 맞습니다. 제가 바로 칠선의 일좌를 맡고 있는 자선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어떤 악마의 파편 중 하나였죠. 누구인지도 말해드려야 할까요?”
“....아니, 그런 건 됐고. 당신은 나와 함께 하기 위해서 직접 나를 찾아온 건가?”
“맞아요. 그렇지 않더면야 꽁꽁 숨어서 백마 탄 왕자님이 구해주러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요?”
싱긋 웃으며 대꾸하는 자선의 모습에 강혁은 와락 인상을 썼다.
‘역시 칠선은 나랑 안 맞아.’
-끌끌, 내가 뭐라고 했나? 넌 우리 과다. 칠죄와 더 깊은 연이 있는....
‘일단 닥쳐. 얘기부터 나누게.’
낄낄대며 다시금 놀려대는 분노를 억누르며 강혁의 입이 열렸다.
“너도 순결 같은 이들과 다르지 않겠지. 내게 바라는 것부터 말해.”
기브 앤 테이크.
가장 익숙하면서도 가장 많이 해 온 그것을 입에 담으며 자선이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있음을 확신하는 강혁에게 자선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는 고통 받는 이들이 아주 많죠. 돈이 없어서, 힘이 없어서 어떤 것이든 부족해서 고통받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 이름이 왜 자선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난 그런 거랑 거리가 먼 사람인데.”
점점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직감한 강혁이 선수를 쳤지만 자선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강혁의 예감은 적중했다.
“당신이 가진 힘으로 세상에게 자선을 베풀어 주는 것. 그게 제가 바라는 겁니다.”
“....아, 이런. 진짜 난 쟤들이랑 안 맞아. 어떡하지?”
-뭘 어떡해? 포기할 건가?
“....젠장, 선택지 없는 문답이 대체 어디에 있어? 답정너야?”
-그래서 선택은?
“....알았어, 할 게. 하면 되잖아.”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근심 어린 얼굴로 중얼거리는 강혁의 모습에 자선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당신에게도 나쁜 일은 아닐 겁니다. 자선을 행하면 행할수록 당신의 힘은 더욱 강해질 테니까요.”
“....그렇다면 좀 다행이네.”
누군가를 구한다.
강혁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것과 밀접 되어 있었지만 오로지 그걸 위해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칠선 중 하나를 얻기 위해 강제로 그걸 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건 아닌 모양.
그 사실에 강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자선에 끌려다니느라 내가 할 일을 못하는 일은 없겠네. 그건 다행이야.’
아무리 칠선이 중요하다곤 하나 그거 때문에 해야할 일을 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건 딱 질색인 강혁이었다.
그리고 자선은 그런 강혁의 마음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 것인지 정확하게 강혁이 싫어할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둘만의 타협점을 내놓은 셈.
즉.
“거부할 수도 없는 조건에 나를 위해 타협점까지 마련해줬는데 여기서 발을 빼는 것도 모양 빠지지. 그럼 그 조건으로 협상 타결인가?”
“올 마스터께서 원하신다면 바로 그러셔도 됩니다.”
여유로운 미소.
그 미소를 눈앞에 둔 강혁이 한 일은 퍽 평범했다.
“콜.”
새로운 칠선이 강혁에게 합류하는 순간이었다.
*후욱-
서울 상공에서 터져나간 빛무리가 그 중심에 있던 강혁에게로 흡수되었다.
얼얼한 두 눈을 찡그리며 강혁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홀로 중얼거렸다.
“....여덟.”
[자선]
베품은 곧 힘입니다.
당신의 넓은 마음을 세상에 알리세요!
자선을 베풀 때마다 스택이 쌓입니다.
스택을 소모하여 하나의 스탯을 일시적으로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눈앞에 떠오른 자선의 설명창을 지워내며 고개를 가로 저은 강혁은 거친 숨을 토해냈다.
“이제 여섯 남았나.”
-저와의 약속 잊지 마시길.
“걱정하지 마. 저 설명창을 읽으니 딱 감이 오네. 내가 자선을 얼마나 베풀어야 할지.”
-그 선택이 옳다고 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나도 그래.”
부드럽게 이어지는 자선의 목소리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꺼내들었다.
뚜르르- 딸칵!
-야, 넌 대체 지금 어디서 뭘하는 거....
“지원 준비 해.”
-....지원?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전후복구도 하지 않고 사라진 강혁의 모습에 불만을 토해내던 루카스 폴른은 지원이라는 강혁의 말에 의문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런 루카스 폴른의 의문을 해소해주기라도 하듯 강혁은 덤덤하게 대꾸했다.
“올 마스터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돈과 자산들. 싹 다 가지고 와서 세계 곳곳에 지원하는 데에 써야겠다.”
한 번하면 역대급 스케일로 일을 벌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강혁이 가장 잘하는 것이었다.
*강혁의 말이 이어진 직후, 올 마스터의 길드 건물로 복귀한 루카스 폴른은 곧바로 반대 의견을 내비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거기에 있는 돈이 다 네 돈이야? 다 우리가 함께 모은 돈이잖아. 근데 그걸 그렇게 막 쓰겠다고?”
“사람을 위해서 쓰는 게 막은 아니지.”
“....원래 안 그러던 놈이 그러니까 더 그러는 거 아니야 지금!”
열이 오를 대로 오른 루카스 폴른의 목소리에 모든 이들이 공감하진 않았지만 몇몇은 공감했다.
“맞는 말이긴 해. 내가 일본에서 모아온 자산들도 올 마스터에 묶여 있는데 그것도 쓸 거야?”
“물론.”
“....그럼 나도 조금 고민이 되는데. 왜 내가 굳이 그렇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우린 결국 이해타산이 맞아서, 신과 악마라는 적을 상대해야 하기에 모인 거 아닌가?”
미즈키 페이의 말에 루카스 폴른은 그것이 옳다는 듯이 거세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실제로 올 마스터가 벌어들인 재산은 어마어마하지만 거기에 모인 재산 전부가 강혁의 것은 아니었다.
즉, 올 마스터의 주인은 강혁이지만 그 재산을 강혁이 마음대로 할 권리는 없다는 얘기.
하지만.
“이번에 새로 얻은 능력이 기부를 좀 많이 해야 쓸모가 있어서 그래. 그러니까 협조 좀 해줘라.”
“....젠장, 치트키나 다를 바가 없군.”
치트키나 다를 바 없는 새로운 능력이라는 말에 루카스 폴른은 이를 갈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신과 악마와 싸우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아무래도 강혁이다.
그런 강혁이 강해지는 데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지원해주는 것이 옳을 터.
물론 강혁도 마냥 받아가기만 할 생각은 아니었다.
“올 마스터의 대장간에 드워프들 있지? 걔들한테 내 이름대고 각자 필요한 무기들 만들어 달라고 해. 아니다, 내가 직접 그쪽 언어로 몇 자 적어서 보내줄게. 이 정도면 됐나?”
“....고맙다! 역시 넌 내 친구야!”
드워프들에게 새로운 무기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루카스 폴른은 곧바로 태세전환을 시도했다.
드워프.
그들이 생산하는 무기들의 질은 가히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대량 생산하는 무기와 직접 1대1로 새로운 무기 제작을 넣는 것의 질의 차이는 어마어마할 터.
더불어 그럴 경우에 사용되는 재료는 강혁의 몸에서 뜯어낸 드래곤 스케일이었다.
즉.
‘....드래곤의 비늘을 녹여 만든 스태프라니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군.’
마법사나 전사 등.
마나를 사용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재료가 사용된다는 의미였고, 그건 다른 이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내 것도 마음대로 써도 좋아! 아, 뭘 만들어 달라고 하지. 건틀렛? 너클?”
“흠, 나도 괜찮다. 어차피 돈은 개인 재산으로도 충분하지. 침이 좋으려나, 단검이 좋으려나.”
드워프와 무기 제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무섭게 각자 재산을 자진 헌납하는 친구들을 흐뭇하게 바라볼 때.
강혁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누구세요.”
-나다.
“아, 알케미.”
목소리를 듣자마자 전화를 건 이가 누구인지 알아낸 강혁의 물음에 알케미가 덤덤하게 말했다.
-완성됐다. 네가 주고 간 화신체를 이용해서 현자의 돌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고!
말을 하면 할수록 기쁨에 몸서리 치는 그의 목소리에 강혁이 귀를 살짝 막았다가 떼며 기쁨에 동참했다.
“곧바로 가도 되나?”
-물론. 빨리 와서 먹어 봐라. 그래야 얼마나 강해지는 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좋아, 바로 가지. 금방 기다려라 얼마 안 걸릴 거다.”
알케미의 소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이던 강혁은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알케미.”
-응? 왜 그러냐?
“혹시 기부에 관심 없어?”
알케미가 세계에서 제일가는 거부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