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27
“....성공하겠지?”
강혁을 무의 세계로 날려보낸 장본인이나 다를 바 없는 알케미는 걱정스런 얼굴로 강혁을 바라보았다.
두 눈을 감고 잠에 든 듯 고요한 얼굴의 강혁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걱정 일색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았다.
“넌 신의 사념 따윈 씹어먹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해.”
비단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아내가 다시 살아나더라도 그녀가 지낼 세상이 멀쩡하기 위해선 강혁이 더욱 더 강해져야 한다는 걸 그는 알았다.
그렇기에 강혁을 위험의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움찔!
강혁의 몸이 거세게 떨리는 것을 본 그는 두 손을 모았다.
“올 마스터 이강혁. 그대가 살아남기를.”
올 마스터 이강혁이 살아남기를 바라며 올 마스터 이강혁에게 기도를 올리는 진귀한 광경.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걸 느끼지 못하는지 그저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으며 강혁이 무사하기를 간절히 바랬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만 갔다.
*번뜩-
두 눈을 뜬 강혁은 자신이 눈을 감았던 알케미의 집이라는 사실을 깨닫곤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콜록콜록, 시발. 죽겠네.”
눈을 뜬 강혁이 한 것은 욕이었다.
무의 세계에서 아레스를 집어 삼키는 일은 강혁에게도 꽤 버거운 일.
하지만 강혁은 그걸 해냈고, 그 대가로 막대한 힘을 손에 쥐었다.
양팔이 바르르 떨리고, 두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강혁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식욕으로 씹어먹는 것보다 배는 더 강해진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먹을만 해.’
아레스와의 전투는 쉬웠지만 그 사념을 소화시키는 것이 전투보다 몇 배는 어려웠다.
죽은 자의 염원과도 같은 사념을 흡수하기란 강혁으로서도 꽤 어려웠던 것.
하지만 강혁은 해냈고, 그 결과 강혁은 힘들었던 것에 비례하는....어쩌면 그보다 더 큰 과실을 따내는 데에 성공했다.
‘이로서 나는 한 발자국 더 그들에게 다가갔다.’
신과 악마.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이들이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져 오는 것은 느낀 강혁이 땀으로 흥건한 손바닥을 말아쥐었다.
단단하게 말아쥔 주먹에서 고동치는 강력한 힘을 느끼며 강혁이 심호흡을 했다.
자신에게 깃든 강력한 힘을 억누르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임을 강혁은 느끼며 야생마처럼 거친 힘을 다루기 시작했다.
어쩔 때에는 조여주고, 어쩔 때에는 놓아주면서.
그리고 그런 강혁의 노력 덕분일까?
야생마 같던 아레스의 사념에 깃든 힘이 서서히 적응을 하는 것을 느끼며 그는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 끝났나? 무슨 기운이 그렇게 살벌한지. 지릴 뻔했군.”
“....능청스럽긴. 사람을 사지로 몰고선 그런 말이 나오나?”
“이런, 많이 화났나?”
능청스런 모습으로 과장된 퍼포먼스를 보이는 알케미의 모습에 고개를 내저은 강혁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태까지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 까닭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곧바로 기절을 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이젠 뭘 할 거지?”
앞으로 뭘 할 건지 묻는 알케미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고민할 뿐.
생각은 길지 않았다.
“네 부인....세나라고 했었나?”
“....그랬지. 근데 그건 왜 묻는 거지?”
죽은 아내의 이름이 나오기 무섭게 특유의 능청스러움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메운 공허함에 강혁마저 흠칫했지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그런 마음을 털어내곤 입을 떼었다.
“그러다가 사람 하나 죽이겠네. 기운 풀지?”
“실수. 누가 아내 이름을 입에 담는 걸 그리 좋아하진 않아서.”
“구하러 가볼까 하는데. 어때?”
“....!!!”
구하러 가본다.
그 말에 알케미는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입주변을 어루만지며 허겁지겁 되물었다.
“그....그게 사실이냐? 아직 프로토타입 밖에 안 만들었는데 벌써?”
알케미의 아내 되살리기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것이 세 가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힘든 일임은 말하지 않아도 알 정도.
첫 번째는 육신이었다.
살아생전 지니고 있던 육신이 부패해서 망가진다면 되살리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
물론 완전히 똑같은 육신을 다시 만든다면 상관없지만 그게 더 어려운 일인 건 누구나 아는 일.
두 번째는 혼이었다.
세 번째는 그 혼을 육에 안착시키는 것.
당연하게도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2번째인 혼임을 모르는 이는 없을 터.
“그래, 나는 명계로 가볼 생각이야.”
그리고 강혁은 바로 그 혼을 데리러 가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자신의 아내의 영혼을 데리러 가겠다고 말하니 알케미로서는 기뻐 날뛰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내기 바빴다.
“아....아까 정색한 건 미안하다. 일부로 그런 건 아니고 그저 습관처럼....”
평소였다면 있을리 없는 사과까지 하는 그의 모습은 애달파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강혁은 그의 사과를 받기보단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설명하려 들었다.
“명계에 가기 위해선 그곳의 입구를 찾아야 한다. 당연히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지도 몰라.”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어차피 기다려 오던 시간에서 추가되었을 뿐. 오히려 좋다.”
“그래, 그동안 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오직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말만 해라 뭐든지 들어주지.”
굳건한 결의가 담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알케미의 대답에 강혁은 만족스레 미소를 지으며 마주 고개를 끄덕이며 알케미가 해야 할 일을 말해주었다.
“기부하자.”
“....?”
“내 이름으로.”
“....???”
졸지에 이름 없는 기부 천사가 되어 버린 알케미였다.
물론 그의 이름은 대신 강혁의 것으로 대체 되었지만.
*치익-
강혁이 자신의 집을 떠나고 홀로 남은 알케미는 자신의 집 지하로 내려왔다.
차가운 냉기가 감도는 지하실.
그곳에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 한 명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세나.
죽은 알케미의 아내였다.
사락-
“세나, 드디어 당신을 되살릴 수 있을 것 같아.”
그녀의 풍성한 금발을 어루만지며 그리 중얼거린 알케미는 차가운 그녀의 손으로 자신의 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힘은 빠졌지만 즐거움이 가득 담긴 그의 목소리에도 그녀의 아내는 조용하게 그 말을 듣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여태까지 당신을 살리기 위해서 모아 온 돈 대부분을 사용해야 할 것 같지만 그래도 상관없어. 당신만을 살릴 수 있다면 말이야.”
부드럽게 그녀의 차가운 볼을 어루 만지던 알케미는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시체가 부패하지 않도록 보존해주는 이곳의 방 온도는 그에겐 너무나도 차가웠으며 무엇보다 다른 생명체가 안에 있으면 온도가 내려간다.
그러면 그녀의 시체가 썩을 수도 있기에 어쩔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하루의 아주 일부만을 그녀를 만날 수 있는 알케미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로 차가운 지하실을 빠져나갔다.
“곧 우린 다시 대화하게 될 거야. 세나.”
강혁의 도움으로 다시금 재회할 순간을 그리워하며 알케미는 지하실의 문을 닫았다.
쿵-
두껍게 닫힌 지하실 문소리만이 방안에 메아리쳤다.
*“명계? 이젠 살다살다 죽은 자들의 세상으로 가겠다고? 네가 정말 제정신이야?”
“어쩔 수 없지. 알케미와의 약속이 그러한 것을. 어쩔 수 없잖아?”
“....하아, 어차피 말린다고 들을 것도 아니지?”
“정답.”
올 마스터 본부로 돌아와 루카스 폴른에게 명계와 관한 이야기를 물은 강혁은 곧바로 자신을 미친놈 취급하는 루카스 폴른을 맞이해야만 했다.
하지만 강혁도 할 말은 있었다.
“알케미의 돈을 뜯어....아니, 기부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고.”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명계를 갈 생각을 해?”
“어차피 명계의 위치는 알고 있잖아. 일반인들이나 모르지.”
“....하아, 그건 그렇지만 알아도 못 들어간다는 표현이 뭔지는 알 텐데?”
명계.
그곳의 입구는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었다.
적어도 헌터를 업으로 삼는 이들이라면 결코 모를 수가 없는 곳.
그래서일까?
자신이 사랑하는 이가 죽은 이 중에서 많은 헌터들이 명계를 찾았고, 다시는 지상의 땅을 밟지 못했다.
“그곳은 하데스가 기거하는 또 다른 신계나 다를 바가 없어. 놈은 다른 이들의 얄팍한 마음을 구슬리며 그들의 육과 혼을 취하려고 입구를 대놓고 만든 거다. 그런데 그곳으로 가겠다고?”
“응.”
“....빌어먹을 놈.”
당연하게도 내로라하는 헌터들 전부가 실종된 곳.
무엇보다 신이 기거할 것으로 추측되는 곳으로 강혁이 직접 가겠다고 하니 루카스 폴른으로서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명계는 신의 세상.
화신체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신의 본체가 있다.
더불어 명계의 주인은 아레스보다도 한두 단계 위의 존재라는 것 또한 잘 알기에 그의 걱정은 당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혁의 의지가 꺾이는 일은 없었다.
“나 없는 동안 잘 부탁한다.”
“결국 그거나 부탁하려고 날 찾은 거지.”
“미안, 하지만 너 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 다른 이들이야 이런 일에 별로 관심도 없으니까.”
“젠장, 나도 마찬가지다. 내 마법 연구에 온전히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부족한데....”
“명계에 다녀오면서 네가 좋아할만한 물건들도 챙겨올게. 어때?”
“....많이 가져와라.”
“오케이.”
명계의 물품을 가져다 주겠다는 강혁의 말에 관심을 보이는 루카스 폴른의 모습에 그제야 강혁은 미소를 지었다.
결국 강혁에게 넘어가버린 루카스 폴른만이 한숨을 푹푹 내쉬며 고통스러워 할 따름.
“언제 떠날 거냐.”
“그래도 명계에 대한 정보 정도는 좀 알아내고 가려고.”
“그래, 그 정도만 해도 바랄 게 없겠다. 그럼 알아서 해라. 난 앞으로 누구 대신 해야 할 때문에 바빠서.”
“....축객령 한 번 대단하네.”
자신의 면전 앞에서 자신의 탓을 하며 자신을 내쫓는 루카스 폴른의 모습에 강혁이 혀를 차며 기꺼이 방에서 밀려나 주었다.
그리고 혼자가 된 강혁의 자신의 개인 방으로 향했다.
털썩-
의자와 책상.
단촐한 가구들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의자에 몸을 뉘인 강혁은 곧바로 분노를 불렀다.
“분노.”
-뭐냐.
“하데스와 명계에 대한 정보 좀 뱉어 봐.”
-빌어먹을 놈. 내가 무슨 자판기인 줄 아느냐? 그렇게 꾹 누르면 정보가 나오게?
“그래서 몰라?”
툴툴대는 분노의 말에 강혁이 그리 되묻자 분노는 거세게 고개를 휘저으며 부정했다.
-그럴리가! 넌 이몸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고 누누이 말하지 않았느냐? 코흘리개 시절부터 지금까지 넌 내가 없으면 안 되는구나!
“....뭐, 그건 그렇지.”
분노가 없었다면 자신은 이곳까지 도달하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을 더 들었거라고 생각했기에 강혁은 딱히 부정하진 않았다.
반발하긴커녕 인정하는 강혁의 모습에 오히려 분노가 벙쪄 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신을 차리고 호쾌한 웃음 소리와 함께 하데스와 명계에 대한 정보를 술술 털어 놓는 분노의 모습에 강혁은 황급히 그 정보들을 모조리 머릿속에 때려 넣어야만 했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분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