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신변정리 (3/72)



〈 3화 〉신변정리

“AI라.”


지오 그라함은 격납고에 자리하고 있는 전고 40m의 검은 금속 거인을 보고서 중얼거렸다.

“엘렉티오의 출력이 기존 파일럿 한 명 만으로는 부담이 너무 커서 이를 보조할 최신예 AI를 탑재했습니다. 그라함 소령님이라면 다르겠지만요.”

정비병이 그런 지오를 보고서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지오 그라함 소령님.


그때 검은 금속 거인. 엘렉티오의  눈에 빛이 들어오더니 차가운 여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허, 금방 알아보는 군.”

지오는 AI의 음성에 놀란 표정이 되었다.

-앞으로 성심껏 임무를 수행하시는데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마스터.
“그래. 너도 이렇게 만들어지고 싶지 않았을 텐데 기왕 하는 거 잘 해보자.”


지오는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궁금해졌는지 물었다.

“네 이름이 뭐지?”
-루이제라고 불러주십시오. 마스터.



*
“아으으.......”


세하는 자신의 원룸에서 눈을 뜨기 무섭게 고통스러운 신음을 울렸다.


-평소와 달리 격렬한 활동 덕분에 근육통이 온 것입니다.


그리고 평소와 다른 것은 차가운 여성의 음성, 루이제의 존재가 함께한다는 것이었다.

“으... 일단 쉬고 싶어서 내 방으로 오긴 했는데 잘한 건지 모르겠어.”


세하는 아직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사실 머릿속이 복잡하실 테니 정리하실 시간이 필요했죠.


그리고 루이제는 그런 세하의 심정을 배려해서 말하고 있었다.

“또 꿈을 꿨어.”
-어떤 꿈이지요?


세하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말하자 루이제의 질문이 이어졌다.


“널 처음 만났을 때였어.
-그런가요? 사실 마스터께선 처음 저를 만났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셨죠.


그렇게 말하는 루이제의 음성에 어딘가 서운한 기색이 느껴졌다.


“하지만 어제  아니었으면  죽었어. 정말 고마워.”


세하는 그런 루이제의 기색을 눈치 채고 곧장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루이제.”

세하는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어제 현장이 마무리될 시점에 말씀드렸습니다. 헌터가 되세요.

단호한 루이제의 말에 세하는 잠시 멍해졌다.

-혹시 정체불명의 히어로가 꿈이셨나요?
“그... 그런 건 아니고.”

다시 묻는 루이제의 반응에 세하는 다시 골치가 아픈지 잠시 이마에 손을 짚었다.


“뭔가 너무 한꺼번에 일이 벌어져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어서.”
-이해합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 편이 낫습니다. 수입적인 면에서 그렇고 마스터의 성격 상 뭔가 정체를 숨기고 힘들게 활동하는 것이 맞지 않습니다.

루이제의 이어지는 말에 세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그리고 내가 사는 구역에도 게이트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고 말이야.”

세하는 거기까지 말하고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파직!


순간 세하의 손바닥에 흰 전기 같은 것이 바직거렸다.


“확실히 초능력이네.”
-빠른 각성이십니다.

세하가 잠시 정신을 집중하자마자 보이는 현상에 루이제의 반응은 감탄이 여려있었다.


“좀 이상한 거 같기도 해. 어제 같은 일이면 보통 사람이면 정신 못 차리고 쓰러지거나 죽는 것이 당연하고 설사 힘을 얻었다고 해도 평정을 찾긴 힘들거든.”
-아무래도 마스터는 타고난 성정 같은 것이 있습니다.
“글쎄? 그것보단 나는 픽션을 많이 접한 거 같아.
-픽션이라고 말하신다면?

루이제의 물음에 세하는 잠시 목청을 가다듬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소위 소설이나 애니, 영화 같은 거 있잖아?”
-부끄러워하실 일은 아닙니다. 설마 마스터가 이상ㅅ.....
“그런 건 아니야.”


루이제가 뭔가 쓸 데 없는 소리를 하려는 것 같아 세하는 정색하며 말했다.


-그래도 직접 상황이 되면 몸이 굳기 마련이죠. 마스터는 잘 대처하신 겁니다. 제가 모든 전투상황을 보조했음에도 흔들림도 없으셨고요.
“그래?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그냥 얼떨떨해 했을 뿐이야. 아무튼 이렇게 실재하는 걸 보니 내가 각성자이긴 한 모양이네.”


세하는 다시 자신의 양 손에서 흰 전기 같은 기운을 일으키며 각성했음을 실감했다.

-아무튼 현장조사 때문에라도 협회에서 찾아올 겁니다.


뒤이은 루이제의 말에 세하의 표정이 다시 흐려졌다.

“그건 그렇네.”
-거기서 상황이 갈리는 겁니다. 답답하게 숨기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느냐 아니면 편하게 인정할 것 인정하고 괜찮은 일을 가냐의 선택지인 거죠.


지금 들리는 루이제의 말은 어느 때보다 무겁게 세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
결국 세하는 루이제가 시키는 대로 했다.

“놀랍습니다. 각성자라니.”

헌터 협회에서 찾아온 조사원 2명은 세하가 보여주는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심상구현이 가능한 초능력이라 보고 싶습니다.”


게다가 순식간에 블랙어설트 마크1 슈트로 무장하는 모습도 보여줬기에 조사원들은 눈까지 즐거워진 것 같았다.

“평소에 아이언 가이를 좋아하셨나 보죠?”
“아니면 파워드 슈트의 로망을 기억하신  같군요.”


조사원들은 그런 세하의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며 보고서를 작성해나갔다.


‘말대로 하긴 했는데 뭔가 낯부끄러운데.’

아무튼 루이제가 시키는 대로 조사원들에게 각성자인 것을 밝히고 능력구현도 해보였다. 그러자 조사원들은 만족하더니 임시로 된 출입증을 내밀었다.

“일단 협회에 직접 가셔서 능력 측정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러면 헌터 라이센스와 등급이 나올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아무튼 1주일 내에는 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조사원들은 성실히 증언을 해준 세하에게 감사해하며 물러갔다. 거기에 세하는 슈트를 해제하고 근처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말 네 말대로 금세 찾아왔네.”
-제가 말씀드린  3시간 만이군요. 생각보다 현장 조사가 늦어진 것 같습니다.

세하로서는 난리가  바로 다음 날에 찾아올지는 몰랐는지라 놀랐지만 루이제는 태연한 반응이었다.

-이 시대의 협회는 무능하지 않습니다. 물론 조직의 특성상 뭔가 유연하지 못한 건 있겠지만 말이죠.
“넌 대체 어디까지 아는 거야?”
-제가 본질이 본질이다보니 정보의 수십에 열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본래 고성능 AI였다가 마스터의 여파로 최상위 사이킥 생명체가 된 것 같습니다.

루이제가 늘어놓는 말은 뭔가 어마무시하게 들렸다.


“그... 그래?”
-네. 아무래도 마스터께서 전생에 조종하셨던 엘렉티오는 당시 지구연방군이 보유한 PLB 기어 중에서도 최강의 기체였고 다룰 수 있는 사이킥 에너지는 우주전함 100대급의 화력이었습니다.

루이제는 거기까지 말하더니 갑자기 침묵했다. 거기에 불안해진 세하가 물었다.

“왜 그래?”
-왠지 어두운 이야기 같아서 말을 잇기 그랬습니다. 마스터께서 전생에 전사하던 때를 말씀드려야 하니까요.


세하는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렇긴... 하네.”
-하지만 말씀드릴 겁니다. 사이킥 신경연결감도를 최대로 조정하셨고 그야말로 혼을 다해서 사이킥 에너지를 집중, 디스트로이 캐논으로 분출하셨습니다.

하지만 루이제는 세하가 주저하는 틈을 놓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저 또한 그와 동시에 모든 감지기관이 작동을 멈춰서 그 후의 일은 모릅니다. 다만 제 상태가 이렇게 된 것을 통해 추론해본 건데 아무래도 엑펠트와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엑펠트.......”


세하는 마치 어제의 일처럼 떠올릴  있었다.

“그 외계종족이었지?”
-네. 하지만 물리적인 육체를 가지기 보다는 정신적인 생명체에 가까운 것들이었습니다. 그 덕에 마스터 같은 사이키커나 사이킥 에너지가 적용된 무기가 아니고는 절대 타격을 입힐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루이제는 거기까지 말하더니 다시 조용해졌다.

“왜 그래?”


아주 짧은 침묵이지만 세하로서는 불안했다.

“왜 그래? 한참 말할 것 같이 그러더니?”
-이건 저의 추론일 뿐입니다. 그 당시 마스터의 혼을 다한 공격은 강대한 사이킥 에너지를 품고 있었고 거기에 영향 받고 휩쓸린 엑펠트의 영향으로 제가 사이킥 생명체가 되었고 마스터가 전생하게 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세하로서는 꽤나 스케일이 커질 이야기였다.

“흐음.”


하지만 앞서와 달리 지금은 턱에 손을 괸 채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네가 생각하기에 이 세계는 과거일까? 미래일까?”

이어 세하가 한 말에 루이제는 바로 답했다.

-엑펠트가 존재하는 세계가 아닙니다.
“뭐?”
-픽션을 많이 접하셨더니 더 이해가 가는 말로 하죠. 평행세계이니 페러렐 월드이니 하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

뭔가 무책임한 말인지라 세하는 할 말을 잃었다.


-그 정도로 저도 이해가 안 간다는 표현입니다. 그냥 다른 시간대의 지구라고 생각하시면 마음이 편할 겁니다.
“그거 참.......”


세하로서는 왠지 김이 빠졌다.

“아무튼 그렇게 살아있으니 적당히 알고 있으라는 거네.”
-옳으신 말씀입니다. 고로 오늘부터 단련입니다.
“뭐?”
-혹시 지금 가지고 있는 사이킥 에너지로만 뭔가 될 거라고 생각하신  아니겠죠?

무감정하게 들렸지만 그 말뜻에 스산한 기운이 서린 것 같아 세하는 침묵에 빠졌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듭니다. 제가 만들어 놓은 코스대로 따라가시면 굉장히 단련이 될 겁니다.





*
“헉... 헉......”

 다음날 아침부터 세하는 하드트레이닝이 뭔지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아직 10회 더 하셔야 합니다.

스쿼트니 푸쉬업이니 하는 건 들어보고 대충 알았지만  외에 맨몸으로도 단련할 방법이 굉장히 많다는 걸 루이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루이제...  이런 식으로 해본 적이 없어서........”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각성자입니다. 헌터입니다. 아무리 초능력자나 사이키커라고 해도 체력이 약하면 버틸  없습니다.

루이제는 단호하게 단련 매뉴얼을 준수했다.

‘안 그랬다간 머릿속을 계속 울리도록 떠들어대니 원.’

세하는 아침에 늦장을 부렸다가 루이제가 무감정하게 머릿속을 울리도록 반복으로 일어나라는 말을  것을 떠올리고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지금 자리하고 있는 곳은 인근의 호수공원이었다. 아주  규모는 아니었지만 제법 호젓한 호수를 중심으로 조깅 코스라던지 운동을  수 있는 공간이 잘 갖춰진 곳이었다.


-이제 조깅 코스를 뛰어서 20바퀴 돌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


오전 7시부터 이곳에 끌려와서 생난리를 쳤고 이제 끝이다 싶었더니 루이제가 최후의 일격을 날리듯 말했다. 거기에 세하는 그냥 군말 없이 뛰는 수밖에 없었다.


‘무섭다. 무서워.’


세하는 자신의 내부에 루이제가 위치해서 감정 없이 말만 한다는 게 몸서리 처지도록 무서웠다.  때문에  내부에서부터 지독히 진동까지 느껴질 정도라면  누구도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늘은 마스터의 현 육체가 단련이 부족한 것을 알기에 비기너 코스로  것에 불과합니다. 계속 익숙해지시면 강도를 높일 겁니다.
‘날 죽여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세하가 속말을 하는 것에 루이제가 반응하지 않는 것이었다. 거기에 작은 위안을 느끼며 세하는 바삐 발을 놀리기 시작했다.


-마스터.

하지만 뛰기 시작한지 5분  되었을까. 루이제가 말했다.

“왜 그래? 뛰는 자세가 문제야?”
-다행히도 아닙니다.
“그럼 뭐가 문제야?”


일찍부터 시달려서 세하의 물음에는 원망의 감정마저 담겨있었다. 하지만 루이제는 더 차갑게 말할 뿐이었다.


-근방에 신경 쓰이는 기운이 감지됩니다.
“뭐?”
-고도로 단련된 존재라면 그 기운을 숨길 수 있겠지만 이 존재는 마스터보고 느끼라고 대놓고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행히 적대의사는 없습니다.

루이제의 말에 세하는 멈춰 서서 잠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침 일찍부터 운동하는 몇몇 사람 외에는 특별해 보이는 이들이 안 보였다.


“뭐가 있다는 거야? 어.......”

갑자기 세하의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거기에 세하는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돌렸다.

“어?”

그때 바로 뒤에서 20미터 정도의 지점에서 트레이닝복 차림의 여성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세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각성자입니다. 아무래도 협회 쪽 사람 같군요.


루이제의 판단에 세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감시하는 겁니까?”
“........”

그 여성은 허를 찔렸는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세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거기에 세하는 오늘 하루도 순탄치 않을 것을 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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