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첫 전투 (2/72)



〈 2화 〉첫 전투

-왼팔, 사이킥 블레이드가 사출됩니다.


세하가 생각도 못한 습격에 당황했지만 루이제는 냉정하게 다음 행동을 개시했다.
세하의 왼팔도 오른팔처럼 변형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흰빛의 칼날을 만들어내더니 세하에게 달려들던 존재의 목을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헉.......’


분명 자신의 몸이 움직였지만 세하의 판단은 없었다. 그래서 멍청하게 행동의 결과물을 볼 수밖에 없었다.
목을 잃은 형체가 쓰러진 상태로 온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본래는 인간의 것이었을 테지만 그 전신에는 회색의 털이 돋아나고 있었고 지금도 일어서려고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대상이 침묵하도록 조치합니다.

다시 오른팔이 움직여서 광탄을 날렸다. 그 덕에 쓰러진 대상은 순식간에  몸에 연기를 피어 올리며 완전히 움직임이 멎고 말았다.

-라이칸스로프 감염체였습니다. 인간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


세하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루이제가 말했다.

-그리고 앞서 제거한 개체는 라이칸스로프 감염을 일으키는 존재입니다. 마스터께서 인간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빠지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듣기에 따라서 말도 안 되는 황당한 괴변 같았다. 하지만 세하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들이 현실임을 자각했다.

“우... 우욱.......”


갑자기 목에서부터 차오르는 역한 기분에 세하는 몸을 숙이고 말았다. 타이밍 좋게도 세하의 머리를 감싼 마스크와 헬멧 등이 해체되어 그가 토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해합니다. 지금 마스터의 육체와 정신은 이 시대의 일반인인 민세하의 입장에 맞춰졌으니까요.


루이제의 음성이 차분하게 이어졌다. 세하는 그런 상태에서 제법 토하더니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이런 일은 영화나 만화 같은 데서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온갖 픽션에서는 자주 다루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하지만 지금은 현실입니다.

루이제의 음성이 다시 현실을 일깨웠다. 거기에 세하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 눈앞에 나뒹굴고 있는 시체 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감옥 가는 일은 없겠지?
-게이트 소요가 가라앉으면 면밀한 조사가 이뤄집니다. 증거가 확실하기 때문에 문제없습니다.

루이제는 단호하게 세하의 구속 가능성을 일축했다.

“후우. 그런데 이건 뭐지?”

세하는 그제야 자신의 몸 상태를 살필  있었다. 여전히 검은색 금속질의 슈트가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이건 무슨 아이언 가이 같잖아?”
-유명한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 말인가요? 어찌 보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루이제는 생각 이상으로 잡학에도 능한 것 같았다.

“너도 알아?
-저는 마스터께서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오랜 시간 존재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수단은  접했습니다. 그게 저로서는 취미이자 필요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루이제의 음성에서 어딘가 슬픈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마스터께서 각성하셨으니  본업을 이어가려 합니다.

세하는 뒤이어 루이제가 하는 말에 무거운 기분을 느꼈다.



*
세하가 진정하고 편의점 밖으로 나왔을 때는 밤 11시가  되어 있었다. 번화한 거리인지라 이 시간에도 화려하고 현란한 불빛들이 수놓아질 정도였지만 지금은 온통 부셔지고 화재마저 일어나서 지금은 참담한 폐허일 뿐이었다.
세하가 그 광경에 치를 떨고 있는데 루이제가 말했다.

-우선 현 구역 내의 게이트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래? 여긴 원래 게이트가 안 나오는 안전 구역이었다고.”


세하는 다시 마스크와 헬멧까지 착용해서 전신이 슈트로 완전 밀폐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안한 마음이 커서 루이제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충분합니다. 다행히 이 구역에 출몰한 게이트의 수준이 낮은 편입니다. 게다가 헌터 협회와 각 길드에서도 움직이고 있으니 머지않은 시간에 제압이 가능 합니다.

루이제는 세하의 불안을 칼로 자르듯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불안함에 세하는 다시 물었다.


“내가 이렇게 돌아다녀도 괜찮은 거야?”
-슈트의 성능 또한 문제없습니다. 물론 초기형 슈트라서 비행 기능은 없지만 상당 수준의 내구력과 도약력 그리고 속도와 근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론상 라이칸스로프의 깨물기를  회 이상 방어할 수 있을 겁니다.

루이제는 세하가 불안해하는 요점을 콕 집어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적응 차원에서 제가 모든 행동을 보조해드릴 겁니다. 다소 어지러움과 충격이 있겠지만 감안해주시기 바랍니다.

편의점에서 루이제의 제어 덕분에 목숨을 건졌기에 세하는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하지만 나중에라도 자세한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어.”


세하는 대답하면서 한 가지를 덧붙였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지금의 마스터는 무척 혼란스러우실 겁니다. 하지만 전생의 영향이 없지 않아서 지금 상당히 평정심을 발휘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마시기 바랍니다.

루이제가 당연할 정도로 답을 이어갔다.

-마스터. 1km 전방에 적대반응입니다.

이어지는 루이제의 보고에 세하는 잠시 숨을 죽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늘 전투는 제가 보조해드립니다.

세하가 긴장한 것을 눈치 채고 루이제가 다시 말했다.


-현 슈트의 성능을 체감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어?”

세하는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의 뒤로 홱홱 지나가는 걸 느꼈다.

“으아아아!”

그야말로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게다가 어지간한 높이의 빌딩은 그대로 뛰어서 순식간에 옥상에 닿았고 금세  아래로 뛰어내려 그대로 직전 코스로 맹렬히 달려가게 되었다.


-감지되는 몬스터들은 그리 강하다  수 없는 개체들입니다. 일반 오크에 고블린, 가장 강한 것은 오크 샤먼 정도군요.

그렇게 몸은 급하게 달려가는데 루이제의 설명은 차분하게 세하의 귓가에 들려오고 있었다.


-좌측면. 오크 1개체.


그리고 세하의 눈앞에 좌측면에 디스플레이가 떴다.

파팟!

왼팔에 새하얀 검날이 순식간에 생성되며 달려들던 몬스터를 베어버렸다.
세하로서도 알만한 몬스터인 오크였다. 어지간한 사람보다 육중한 체구에 녹색피부를 지닌 인간형몬스터였고 일반인으로서는 상당히 위험한 존재였지만 지금 세하의 공격에 한 칼에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내가 한 게 아니지.’


세하는 그런 속에서도 퍼뜩 정신을 차렸다.

‘루이제가 하는 거야.’

어떻게든 정신을 잡고 눈앞의 일들을 직시하기로 마음먹었다.

-후방. 고블린 2개체.


그렇게 쾌속하게 달려가다가 이번에는 후면을 향해 붉은 화살표가 표시됐고 슈트에 감싸인 세하의 몸은 급격하게 몸을 돌려 오른팔을 내밀었다.
어느새 포구가 된 오른팔이 빛을 내뿜었고  뛰어내려 달려들던 추한 난쟁이 같은 몬스터 둘이 거기에 직격 당해 날려가고 있었다.

“뭐... 뭐야?!”

그 사이 현장에 도착했는지 놀라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다수의 군병력이 보이는 가운데 헌터로 보이는 이들이 몇몇 보였다. 각기 커스텀화한 눈에 띄는 장비들을 장착한 모습들에서 그 차별성을  수 있었다.


-놀라는 사이가 기회입니다.

루이제의 조언은 계속 이어졌다.


-순식간에 정리하도록 하죠. 저기 오크 샤먼이 보이십니까?

루이제의 물음과 동시에 세하의 눈앞에  지점이 확대되어보였다.
온통 불타고 부셔진 폐허 사이에 화려한 장식과 깃털을 단 오크가 보였다.

‘오크 샤먼.......’

헌터에 대한 동경이 있어서 몬스터들에 대한 정보를 아는 세하로서도 긴장으로 몸이 굳을 법했다.
 그래도 오크 샤먼이 지팡이를 치켜들고 있었고  뒤편에 위치한 일그러진 공간의 문, 게이트에서 계속 오크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본래는 실탄 병기였지만  존재가 격이 높아지면서 모든 무기가 정신파 사출 병기로 변환되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관통 사이킥 캐논을 준비합니다.

그때 루이제의 설명이 들리면서 세하의 오른쪽 어깨가 다시 변화하기 시작했다.
매끈하고  포신이 생겨났고 세하의 오른쪽 눈 부위에 하나의 사이트가 얹혀졌다.


-조준을 보조합니다. 대상이 원안에 들어와 초록색이 됐을  쏘시면 됩니다.
‘좋아!’

세하는 그 순간 느낌이 왔다. 순식간에 흔들리던 원이 오크 샤먼을 정확히 겨냥했고 붉은빛이 던 원이 초록색으로 변했다.

츠팟!


세하의 몸이 잠시 주춤할 정도의 반동과 함께 얇지만 예리한 흰 광선이 뻗어나갔다.

“쿠워!”


그리고 그 광선은 사선상에 있는 모든 것을 꿰뚫고 정확하게 오크 샤먼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몬스터들이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돌격하겠습니다.

오크 샤먼이  방에 무력화되자 게이트가 돌연 사라졌고 뒤에 남은 몬스터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하는 나는 듯이 달려들었다. 20 개체의 오크와 고블린들이 있었지만 세하의 왼팔에서 흰빛이 번뜩일 때마다 목이 달아났고 조금 멀리 있는 것들은 오른팔에서 뻗어나간 광탄에 그대로 적중당해 쓰러져 온몸에 김을 내뿜으며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게이트 침묵! 우선 주변을 정찰해! 남은 위험 요소가 없는 지 파악해!”

그렇게 세하가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나자  병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휴우.......”

세하는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뒤는  병력에게 맡기면 될 겁니다.
“그런데 괜찮을까?”

세하는 뒤에서 다가오고 있는 헌터들을 쭈삣 거리며 바라보았다.


-헌터들 말입니까? 마스터의 활약에 다들 놀라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혹시 정체를 물으면 각성자라고 대답하세요. 그게 가장 편합니다.
“그... 그래?”
-네. 지금의 세계는 헌터와 몬스터 그리고 게이트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지금 마스터처럼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으면 인류에게 있어서 크나큰 도움이 되는 거지요.

세하가 그렇게 루이제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헌터들이 이제 세하의 앞에 와 섰다.

“굉장하시군요. 저희들도 급히 동원된 터라 수가 부족했는데 마침 도와주셔서 무사히 끝났습니다.”

헌터들 중 연장자로 보이는 푸근한 인상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저는.......”

헌터가 말을 걸자 세하는 순간 머리가 정지하는 것만 같았다.

-지금 말은 대답하지 말고 들으시고 제가 하라는 대로 답하세요.

그때 세하의 눈앞에 루이제의 메시지가 출력되기 시작했다.


-마스터의 망막에 직접 투사하는 거니 저들에게 보이지 않아요. 우선 각성한지 얼마 안 됐다고 말씀하세요. 능력을 물어보면 심상구현계의 초능력이라고 말씀하시고요.
“저는 각성자입니다.”


세하는 일단 대답하자 헌터들 사이에 감탄성이 들려왔다.


“굉장하시군요. 오크나 고블린들이 그리 수준이 높다고는  수 없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처리할 정도시라니.”
“.......”

세하는 전신이 밀폐되어 있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몰라서 얼굴이 제법 굳은 상태였다.

-마스터. 대답하기 곤란하신가요?


루이제의 음성에 어딘가 놀리는 기색이 묻어났다.

-사실 정체를 감추고 활동하는 히어로가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건 지금 마스터의 능력에 아까운 짓입니다. 기왕 능력을 개화하고 각성하셨으니 그 명예도 드높이셔야 되겠죠.
‘그... 그건.......’

세하는 이어지는 루이제의 말에 놀라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체를 숨기는  여러모로 피곤해질 일입니다. 일하시던 편의점은 오늘 부로 부셔졌죠? 갑자기 게이트가 나타나서 구역이 파괴됐으니 한동안 이 구역은 헌터 협회나 정부에 의해서 조사를 거칠 것이고 한동안 경제 활동은 힘들다고 봐야 할 겁니다.

루이제는 설득하듯이 말을 계속했다.

-헌터를 동경하신 걸로 압니다. 물론 힘들고 목숨을 담보로 하는 가혹한 일이지만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요. 이제 마스터는 그 일을 할 힘이 생겼습니다.
‘나... 나는.......’


눈앞의 헌터들 때문에 세하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핑핑 도는  같은 느낌도 받고 있었다.


-오늘은 갑자기 여러 일이 있었으니 피곤하실 만 하겠군요. 그럼 조금 예의에 어긋나지만 자리를 뜨죠.

세하는 그때 루이제가 웃는 다는 느낌을 받았다. 목소리만 들리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그런 감정이 느껴졌다.

“어?”

그때 헌터들은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세하의 몸이 급격히 도약하며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닭 쫓던 개가 쳐다볼 지붕마저 없을 정도로 세하는 순식간에 건물들 사이로 뛰어서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마스터. 역시 마스터 본래의 영혼 같아서 다행입니다.


세하도 자신의 몸이 멋대로 움직여서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 들리는 루이제의 음성에 어느 때보다 따스한 감정을 느끼며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당신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어요. 그러니 이번 생에서 만큼은 제대로 지켜드리겠습니다.

더 이상 세하는 생각하기를 그만뒀다. 그런 그의 몸은 어두운 도시의 풍경을 가볍게 헤치고 나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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