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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67화 (67/169)

67화

"영주님. 바로 사형을 집행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끌려가는 귀족들을 보며 리오가 말했다.

"그래도 귀족인데, 겨우 영지민 때문에 사형을 집행하면 다른 귀족의 항의를 받을 겁니다.

귀족법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리오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저는 귀족이 아니지만, 영지를 위해서는 한번 생각을 해주시는 게···"

"나는 이미 귀족법을 무시하고 이자르와 덴프린스를 죽인 전적이 있는데?"

"그때는 어쩔 수 없지 않았습니까?

이자르 후작은 영주님과 아렌달 가문을 욕보였고, 덴프린스 공작은 반역자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면 영주님과 아렌달 영지에 큰 화를 불러왔을 겁니다."

리오의 말대로 지금의 사건과 이전의 사건은 다른 상황이었다.

그때는 귀족법이고 뭐고 그들을 제거하지 않았으면 나에게 위험이 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저들을 처벌하지 않는다고 나에게 위험이 생기지는 않았다.

"영주님. 그냥 죄를 지은 귀족들의 가문에서 보상을 받고 추방하는 것으로···"

"아니야. 그래도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아."

앞으로도 뉴렌달에는 귀족들이 다녀갈 것이다.

그런데 귀족이라고 이렇게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끝낸다면 앞으로 귀족들이 일으킬 사건들은 어떻게 처벌한다는 말인가?

첫 단추를 엉성하게 끼워서는 안 됐다.

"죄에 대한 처벌은 똑같이 내린다.

그리고 뉴렌달과 왕도, 그리고 저 녀석들의 가문에도 저들이 저지른 죄를 상세하게 알리도록 할 거야."

"분명 다른 귀족들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할 텐데요?"

"그들에게 죄가 아니라도 이곳에서는 죄라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뉴렌달에 귀족들이 찾아 왔을 때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지."

역시나 뉴렌달에서의 일을 외부에 알리자 귀족들에게 항의의 메세지가 들려왔다.

일부 귀족들은 왕국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며 나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키웠다.

범죄를 저지른 귀족들이 속한 귀족 가문에서도 결단코 이 일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메세지를 보내왔다.

"그래 봐야 항의 메세지 말고 다른 방법도 없으면서···"

물론 마법 무기와 소드마스터가 있는 아렌달 영지를 공격하는 멍청한 짓을 하지는 않았지만, 외부의 귀족들 특히 중앙의 귀족들과는 계속해서 불만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었다.

가뜩이나 중앙의 귀족들은 내가 지방 영주들과 연합하여 왕권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주장하고 있었기에 이번 일로 나를 향한 국왕의 신뢰에 금이 가도록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오죽하면 볼튼이 왕도에 가서 다시 한번 귀족들의 기를 죽여놔야 하지 않느냐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귀족들과 다르게 백성들에게는 나의 인기가 더욱 올라가고 있었다.

그저 범죄를 저질렀으니 그에 합당한 처벌을 했을 뿐인데, 내가 백성들을 위해 권력자들에게 경고를 내렸다는 듯이 이야기가 퍼진 것이다.

'근데 나도 권력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건가?'

사실 범죄를 저지른 귀족들이 모두 사형을 당한 것도 아니었다.

딱 한 명, 내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영지민을 죽인 녀석만 사형을 시키고, 나머지는 적당한 처벌만 하고 영지에서 추방했을 뿐이다.

신분 사회인 이세계에서 귀족과 평범한 백성을 같이 볼 수 없지 않냐는 행정관들의 설득에 나도 어쩔 수 없이 죄인 모두에게 강한 처벌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귀족들이나 백성들이나 나를 향한 메세지에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막상 따지고 보면 그렇게 엄청난 일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사형을 집행한 것도 내 영지민을 죽인 주동자 한 녀석뿐이잖아. 내 영지민을 죽인 거니까 나에게 명분도 있고 말이야."

"그래도 귀족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건 그만큼 영주님이 가진 영향력이 엄청나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이번 일로 다시 한번 적이 늘어날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한 경고는 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내 권역 안에서는 귀족들만의 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전한 것이다.

"학교의 분위기는 어때?"

"조금 분위기가 침체 되어 있기는 해도 교육에는 문제없습니다."

다행히도 큰 사건이 있었음에도 신 학교의 수업은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조금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유학생들도 있는 것 같았지만, 그들도 나름 뉴렌달에 온 목적이 있었기에 다시 돌아가기보다는 도시에 남아 공부를 멈추지는 않았다.

"그래도 수업의 분위기가 너무 떨어지면 교육의 효율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 잘 관리하도록 해."

"영주님. 그래서 그러는데 다시 한번 영지의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도록 이벤트를 열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벤트?"

"네. 영주님께서 사건을 잘 해결해 주시기는 했지만, 그래도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어서 영지의 분위기가 조금 침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북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고속 도로 공사에 투입된 일꾼 중에서도 자칫 영지 밖에서 귀족들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불안해하는 일꾼들도 있다고 합니다."

"나와 베일리 백작, 그리고 체스터 후작 등 영주들의 이름을 걸고 진행되고 있는 공사인데 누가 해코지를 한다고···"

"그거야 그렇지만, 일반 백성들은 다르지 않습니까.

귀족의 관계에 대해 모르는 만큼 두려움도 있을 겁니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성들은 그럴 수 있었다.

귀족이라는 존재는 이름만으로도 공포가 될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한 번쯤 이벤트로 영지의 분위기를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좋아 그럼 영지의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이벤트를 기획해 볼까?"

영지의 대대적인 이벤트 덕에 침체 되어 있던 영지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샤를로트의 이름을 건 문학 공모전에는 많은 작가들이 참가해 각자의 필력을 뽐냈고, 그 공모전의 출품된 작품 중 우수한 성적을 거둔 작품들은 영지의 후원을 받으며 극장에서 공연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물론 공모전 같이 차분한 분위기의 이벤트 말고 격정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이벤트도 함께 진행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영지민들을 흥분시킨 이벤트는 두말할 것 없이 축구 대회였다.

"겨우 축구 대회 때문에 공사까지 접어두고 돌아왔다 이거지?"

"겨우 축구 대회라니요? 제가 이 대회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공사도 절대 접어두지 않았습니다."

"공사 책임자가 여기 있는데 접어두지 않았어?"

"잠시 형님께 저를 대신해 도로 공사를 부탁하고 왔습니다.

딱 대회만 치르고 바로 돌아가겠습니다."

절대 그냥 돌아가지 않겠다는 체스터 남작의 눈빛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 축구광은 결국 자신의 마을에서 팀을 만들어 축구 대회에 직접 참가를 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래도 체스터 남작은 참가 불가야."

"네?! 그,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그럼 귀족이 일반 백성들하고 같은 필드를 뛰려고?

백성들이 잘도 뛸 수 있겠다."

"그, 그렇지만 팀의 에이스가 바로 저인데, 제가 빠져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음- 체스터 남작이 에이스라고?

그냥 선수들이 남작의 눈치를 보고 밀어주는 거겠지."

"아닙니다!!"

내 말에 체스터 남작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하지만 그가 필드에 나가게 할 수는 없었다.

선수들이 귀족인 그를 보통의 선수로 대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건 공정해야 할 스포츠의 이념에 어울리지 않았다.

"대신, 체스터 남작이 빠진 팀은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해주지."

"하아- 제가 뛸 수 없다니 그게 무슨···"

"싫어?"

"아니요! 에이스가 빠진다고 대회의 참가까지 포기할 수는 없지요."

"자신 있나 보네."

"비록 제가 없다고 해도 그동안 훈련을 해온 팀입니다.

우승의 영광은 저희 팀이 가지고 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체스터 남작은 기다리고 있던 선수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렸다.

"내가 없더라도 팀을 우승으로 이끌 수 있겠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남작님.

반드시 우승컵을 남작님께 안겨드리겠습니다."

"좋아! 가자 체스터의 남자들아!"

스크럽까지 짜면서 선수들을 독려한 체스터 남작이 아쉬운 얼굴로 돌아왔다.

"근데 체스터 남작의 팀은 이름이 뭐야?"

"방금 들으셨지 않습니까? 체스터의 남자-man of chester.

편하게 맨체스터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

맨체스터는 강했지만, 우승은 다른 팀이 차지해버렸다.

준우승이라는 결과에 억울해 죽으려는 체스터 남작의 모습에 이번 대회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고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어떻게 기사를 선수로 내보낼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이건 반칙입니다!"

"다음에는 출전 선수들에 대한 규정이나 경기의 룰을 더 확실하게 정비해야겠어.

설마하니 기사를 선수로 출전시킬 줄이야."

기사에게 삽질을 시키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바깥 영토의 투자 귀족 중 하나인 리버 가문에서 호위 기사들에게 축구를 시킬 줄은 몰랐다.

선수로 출전한 기사들은 압도적인 몸싸움 능력을 보여주며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필드에서 죽은 사람이 없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물론 패배한 팀들은 억울해 죽으려고 하고 있지만, 경기를 관전한 영지민들은 화끈한 몸싸움에 더욱 열광해주었다.

'기사의 시대가 완전히 끝나면 기사들이 대거 스포츠판에 몰려들지도 모르겠네.

그런데 영지민들은 과격한 스포츠를 좋아하는 건가?

새로운 스포츠로 격투기 판을 만들어야 하나?'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만든 대회는 성황리에 막을 내릴 수 있었다.

덕분에 스트레스와 걱정을 날려버린 영지민들은 다시 한번 노동에 열정을 쏟으며 뉴렌달의 활기를 되찾아 주었다.

패배의 쓴맛을 다독인 체스터 남작은 금방 정신을 차리고 다시 도로 공사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런 그에게 나는 특별히 자동차까지 지원해주며 말했다.

"한 번 만 더 공사 현장 비우고 돌아오기만 해봐.

바로 책임자 자리에서 끌어내려서 다시 삽질부터 배우게 만들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가는 길에 공사에 투입된 영지민들이 즐길 수 있게 내 선물도 잘 전달해주고."

"네! 맡겨만 주십시오!"

어느새 완전히 뉴렌달의 사람이 되었는지 체스터 남작은 군말 없이 내 지시를 받아들였다.

누가 보면 이 사람이 과연 명문 귀족 가문 출신이 맞나 의심이 될 정도의 모습이었다.

'이런 걸 보면 체스터 남작도 진짜 별종이란 말이야.'

왜 이렇게 내 주변에 별종들이 많은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정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나도 이세계에서는 별종이겠지?

그래서 내 주변에 별종들이 나타나는 것일지도···'

아직 봄이 다 지나기 전, 남대륙으로 떠났던 아론 선장의 배가 뉴렌달 항구로 돌아왔다.

남대륙에서 가져온 다량의 마나석과 새로운 상품들은 상단들과 영지민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해주기 충분했다.

나 역시 아론과 선원들에게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아낌없는 포상을 내려주어 그들의 성과를 영지의 백성들에게 알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지금 마탑으로 급하게 이동할 채비를 하며 행정관들에게 명령했다.

"지금부터 영지를 봉쇄한다.

뉴렌달을 포함해 귀족들의 마을, 아렌달 성까지 그 누구의 출입을 금지한다."

"알겠습니다!"

"특히 항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영지민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이동을 금지한다. 단 한명의 예외도 없어.

이 사태의 원인을 파악할 때까지 그 누구도 움직이지 말라고 전해."

행정관들에게 명령을 내린 나는 마탑으로 이동하기 위해 영주관을 나왔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늘이었지만, 왠지 공기가 답답한 느낌이었다.

아니, 내 입을 가리고 있는 마스크가 답답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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