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73화 (73/200)

73화 경고

나랑 술을 마시자고?

이 사람이랑 내가 술을 마실 일이 뭐가 있지. 대작해 봐야 좋은 그림은 안 그려질 것 같은데.

그렇게 잠깐 머릿속으로 궁리를 해 봤다가 답장을 보냈다.

[많이 늦을 겁니다. 내일도 일찍 출근해야 하니 늦게까지 있진 못할 거고요.]

[현준영 팀장: 강 PD 스케줄이 그러면 나도 그런 거죠 뭐]

[현준영 팀장: 한 시간 정도라도 괜찮아요]

끈질기군.

뭔가 할 이야기가 있는 모양인데, 쉽게 약속을 캔슬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약속을 잡았다.

편집회의를 하고, 박주영 선배를 대신해서 믿을 만한 편집 감독을 요청해서 붙여 주고, 편집점을 맞추고, 그러고 나서 다시 협찬 담당과 이야기를 하고…… 바쁜 시간을 보내고서 쉬기는커녕 이제 현준영을 상대해야 하다니.

어쩐지 밤이 원망스러웠다.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현준영 팀장과 약속한 호프집에서, 그는 이미 소주 하나를 시켜 놓고 있었다.

“아, 어서 와요. 강 PD. 많이 바쁜 것 같던데, 그래도 늦진 않았네.”

“시간 맞춰서 나왔습니다.”

“어라, 그럼 일 다 못 끝낸 거예요? 또 들어가야 해?”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큰일이네.”

여상스럽게 대꾸하는 현준영 팀장의 말투에 괜히 욱하는 마음이 샘솟았다.

<당잠사> 때는 다들 고생하는데 자기는 술 약속 있다고 슬 빠져나갔었지.

그때 만나러 간 이사가 누군지 이젠 대충 알 것 같았다.

“젊을 때 몸 챙겨야 하는데. 저녁은 먹었어요? 뭐라도 시킬까?”

“괜찮습니다. 안주 좀 집어 먹죠.”

안주는 어묵탕이었다. 속을 뜨끈하게 좀 달래고, 공깃밥 하나를 시켜서 몇 숟갈 만에 뚝딱 먹고 나자 조금 든든해졌다.

현준영 팀장이 잔을 내밀어 왔다. 나도 거부하지 않고 그 잔을 부딪쳤다.

“중간부터 지원 나왔다지만, 내 팀도 아니다 보니 딱히 회식 얘기도 꺼내질 못했잖아요? 어쨌든 술 한잔은 나눠야 할 것 같아서요. 시간표 보니 오늘 아니면 또 언제가 될지 모르겠더라고.”

“크흠, 저희 팀이 워낙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그 부분을 제가 신경 쓰지 못했군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메인으로서 신경 쓸 게 많은데. 회식이야 뭐 나중에 잘되고 하면 되지.”

빈 잔에 현준영 팀장이 잔을 따랐다. 일단 가만히 그것도 받아들고 건배를 한 후 마셨다.

“우리가 사실, 첫 단추를 잘 끼운 건 아니잖아요? 내 입장에선 열심히 가르쳐 놓은 PD가 이렇게 빨리 홀로서기를 하는 것도 안타까웠고, 좀 더 가르쳤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고. 그래서 이렇게 지원으로나마 도울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었어요.”

하마터면 술을 뱉을 뻔했다.

가르쳤다고? 뭘?

내가 현준영 팀장에게 배운 게 있다면, 메인 PD로서 하면 안 될 것들뿐이다.

출연진들 대하는 방식이나, 제작진 대하는 방식이나.

가르쳤다기보다, 타산지석으로 배웠다고 할까.

<당잠사> 시즌4에서 제작진이 전체 교체되는 일을 겪었음에도, 현준영 팀장의 사고관은 전혀 바뀌지 않은 듯했다.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 두고 있으니 목이 탔다. 소주를 꿀꺽 삼키고 그를 보았다.

“하실 말씀이 뭡니까? 그래서 저를 불러내신 것 같습니다만.”

“아니 뭐…… 인사도 할 겸 그냥 프로그램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의논도 할 겸, 술 한잔하자는 거죠 뭐.”

나아갈 방향?

나는 표정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팀장님. 말씀드렸을 텐데요. <언더커버 싱어>의 메인은 접니다. 나아갈 방향을 굳이 이 자리에서 논의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상의한다면 내 팀이랑 해야지. 당신은 내 팀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현준영 팀장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강 PD가 이른 연차에 메인 달고 고생하는 것 같아서 내가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자 하는 거예요.”

“감사합니다만, 그 마음만 받겠습니다.”

당신 의견은 필요 없어. 난 그런 의미를 듬뿍 담아서 잘라 말했다.

통했을까.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던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날카로운 눈매가 더욱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래요, 그럼 한마디만 하죠. 그 정돈 들어줄 수 있어요?”

“말씀하시죠.”

“마지막 최종 무대. 라이브로 시청자 투표가 진행된다고 했죠. 업체도 선정했고.”

“예. 맞습니다.”

“그 업체, 본래대로 되돌리는 건 어때요. 정 팀장이 시켰다고 해도 강 PD가 하자고 하면 오케이해 주지 않을까요?”

“…….”

그 이야기였나, 결국.

정말 한결같은 사람이다. 다시 보려야 볼 수가 없을 만큼.

“그 이야기는 이미 끝났습니다. 계약도 끝났고, 되돌릴 순 없을 것 같습니다.”

내 말에 현준영 팀장은 입을 꾹 다물더니, 잠깐 고심하는 얼굴이 됐다.

그러고서는 다시 입을 열었는데.

“강 PD, 돈 벌고 싶지 않아요?”

“네?”

갑자기 무슨 또 헛소리야.

“솔직히 직장 다니고 하는 게 어차피 다 돈 벌자고 하는 일이잖아요. 결국 세상의 본질이 돈인데, 강 PD도 돈은 벌고 싶을 거 아니에요.”

장황하게 밑밥을 까는 걸 보니 꽤 속이 타는 모양이다.

“업체를 본래대로 되돌리면…… 그래요, 돈 좀 벌 기회가 있을 것 같은데.”

현준영 팀장은 이제 평소 같은 얼굴이 되었다. 마치 나한테 큰 기회를 주는 거라는 듯.

“방송 하나 성공시켜도 뭐 어차피 예능국 보너스는 거기서 거기고, 월급 올라가는 거야 호봉이고. 다 그렇잖아요, 이 바닥이.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것도 능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난 강 PD가 그런 능력은 참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가 슬쩍 상체를 앞으로 하며 씨익 웃었다.

“어때요, 돈 좀 벌어 볼 생각 없어요?”

“…….”

“사실 생각할 시간이 좀 많이 없긴 해요. 업체를 바꾸지만 않았다면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투덜대는 건지, 충고를 하는 건지.

내가 말없이 현준영 팀장을 보고 있자, 그는 다시 등받이에 등을 대고는 팔짱을 꼈다.

“잘 생각해 봐요. 나한테 마이너스가 되는데도 알려 주는 거니까.”

어쨌든 짚고 넘어갈 건 확실히 짚어야지.

“요는.”

난 말했다.

“업체를 원래대로 되돌리면, 그 업체에서 돈이라도 받으신다는 겁니까?”

“하하하. 그런 간단하고 알기 좋은 이유일 리가 있겠어요? 리베이트가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에요.”

그가 손가락을 까딱대었다.

“그런 자세한 이야기는, 콜하면 알려 주는 걸로 하죠. 이것도 다 노하우인데, 앞으로 방송 만들려면 이런 것도 알아두면 참 좋을…….”

“필요 없습니다.”

그의 말을 끊었다. 제발 내 심정이 100% 확실하게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무슨 말을 하시든 들을 생각 없습니다. 업체요? 바꾼 업체로 끝까지 밀어붙일 겁니다. 무슨 생각으로 무슨 계획을 꾸미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알 바 아닙니다.”

“이봐, 강…….”

“하지만, 제 프로그램에서 수작질 부리실 작정이라면 저도 가만 보고 있진 않을 거라는 것. 그것만 알아주십시오.”

난 일어섰다. 일어선 채 그를 내려다보면서, 마지막까지 끊어 말했다.

“그래도 선배 대접으로 욕은 빼고 말한 겁니다. 알아두십시오. 내일 뵙겠습니다.”

등 뒤가 따가웠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 나는 그대로 곧장 술집을 나왔다.

더 했다간 분명 내 입이 시궁창이 될 거였다. 사람 같지 않은 작자한테는 욕마저도 아까워서 억지로 눌러 참았다.

한참을 걸어 속을 달래고 있자니, 문득 현준영이 많이 초조한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꿍꿍이속이 있어 우리 팀에 들어왔는데, 이러저러한 수가 전부 차단된 데다, 결정적으로 투표 업체까지 바뀌자 안절부절못하는 거다.

어쨌든 사사건건 우리 팀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

시청률 유지 확률이 ‘10%’밖에 안 되는 이유가 정말 현준영 팀장 하나로 인한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권한만 있다면 저 인간을 팀에서 잘라 버리고 싶은데, 고생하더라도 우리끼리 고생하고 싶은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민우 팀장에게 보고하고, 서인하 국장에게 보고를 하면 통할까?

그 위의 이사진은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게 방송국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부족 확률의 원인 변수에 대한 파악이 완료되었습니다.]

[확률 상승을 위한 명확한 방법을 도출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앱에서 확인해 주세요.]

돌연 눈앞을 메시지들이 채웠다.

술집이 모여 있는 골목을 빠져나오는 곳. 나는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다.

AGD 앱을 실행하자, ‘상점’ 카테고리에 아이템 사용 내역이 푸시 알림으로 출력됐다.

[부족 확률의 결정적인 원인 변수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더커버 싱어> 10주차 방송 전, 현준영의 투표 조작 스캔들이 터진다.]

그 문구를 보자마자 나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현준영의 의심스러운 정황이 ‘10%’ 확률의 원인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 의심은 맞았다. 다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언더커버 싱어>에서 투표 조작을 하려는 것이 직접적 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일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현준영의 예전 프로그램 <스프K>의 조작 사건으로 인해서.

그 조작 스캔들이 터지는 타이밍이 바로 최종 무대 직전의 일.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었다. 그 타이밍에 현준영의 이름으로 투표 조작 스캔들이 터진다면, <언더커버 싱어>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공정한 결과로 방송을 한들 여론은 진실을 믿지 않을 것이고, 우리의 모든 진실은 거짓이 될 터였다.

그것이, ‘10%’ 확률의 결정적인 이유.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을 지경이었지만, 다행히 AGD 앱의 아이템 ‘오늘의 꿀팁’은 해결 방법 또한 알려 주었다.

[AGD 앱이 도출한 확률 상승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투표 조작 증거를 가진 ‘주진혜’를 찾아 공개 시기를 앞당기십시오]

이 또한 쉽게 이해가 되진 않는 문구였다.

어차피 스캔들이 터지면 결과는 똑같은 것 아닌가?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거지?

하지만, 몇 번 반복해서 읽는 동안 공개 시기 하나로 큰 차이가 생긴다는 걸 깨달았다.

3차 경연부터 이런저런 관여를 하고 있다지만, 스태프롤에 현준영 팀장의 이름이 실리는 것은 4차 경연부터.

즉. 지금은 ‘현준영’이라는 이름이 스태프롤에 없는 상태다.

우리 팀에 현준영 팀장이 있다는 게 밝혀지지 않는 이상…… 다시 말해 4차 경연 이전에 증거가 공개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현준영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우리 프로그램과 연관되지 않으면, 우리 프로그램에 끼칠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거다.

AGD 앱이 제시하는 방법은 분명 절묘한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남아 있었다.

주진혜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스타 프로듀스 K>는 내가 입사하기도 한참 전의 일이고,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이다.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감조차 잡히질 않는다.

그냥 추측을 해 본 결과 투표 조작에 관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건, 당시 그 건에 관여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뿐.

방송국 사람이거나 기자라면 검색 결과가 나올 것 같았다.

나는 남들 다 지나가는 길 한복판에 아까부터 멀뚱히 선 채로, 다시금 스마트폰을 내려다봤다. 그러면서 갖가지 검색엔진에 ‘주진혜, 주진혜 기자, 주진혜 PD’ 등을 검색해 봤지만 무엇 하나 잡히는 게 없었다.

그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투표 업체인가.

하지만 확신할 수가 없었다.

이건 나 혼자 고민해 봐야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급히 통화를 시도했다.

대상은 서인하 국장. 그가 전화를 받기 무섭게 나는 퇴근 전인지를 물었고, 잠깐 상의 드리러 찾아뵙겠다고 말했다.

그 뒤엔 허겁지겁 회사로 복귀해서, 서인하 국장과 <뮤직스케치> 특방으로 야근 중이던 정민우 팀장을 붙잡았다.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는 두 사람에게 AGD 앱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실을 밝히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현준영 팀장과 술자리에서 나눈 이야기에 앱에서 본 정보를 섞기로 마음먹었다.

내 말을 들은 두 사람은 크게 경악했다.

“진짜 투표 조작을 하려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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