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사고에 대비하라
“투표 조작이라…….”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같은 PD로서, 같은 팀장으로서, 그런 사람이 같은 방송사에, 같은 예능국에 있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강대한에게 이야기를 들은 후, 정민우는 그 의심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
“들어와, 정 팀장.”
잠시 자리를 비웠던 서인하가 국장실로 돌아와 내선 전화를 주었다. 정민우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머리로 국장실로 가 소파에 앉았다.
“특방 준비는 잘되고 있어?”
서인하가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캐스팅도 끝내고 무대만 세우면 됩니다. 한 팀이 좀 고생시켰는데 해결은 했죠.”
“그래, 이번 특방 시청률 좀 기대하고 있어. 알지?”
“압박하시긴.”
정민우는 피식 웃고서, 곧 표정을 바꾸었다.
“뭔데 그래.”
서인하도 그가 평소처럼 농담을 받아 주지 않음을 눈치챘다. 표정도 달랐기에,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정민우는 입을 뗄 때까지 몇 번이나 망설였지만,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현준영 팀장 말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강대한이 전해준 이야기를 충실하게 전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몇 년 전 있었던 투표 조작 건이 떠오르더군요.”
“기사도 별로 안 나왔던 그거 말이지.”
당시, 방송계에서는 제법 화제가 되었었다.
그러나 크게 기사화는 되지 못했고, 결국 몇 개의 기사마저 삭제되거나 카테고리 이동을 당했다.
정민우나 서인하도 그때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
“당시에도 좀 정황상 수상쩍은 것들이 있다고 했었어.”
“저도 그때 일했던 PD들한테 건너서 좀 들었습니다.”
“그런데 현 팀장이…… 또 그 짓을 하려 한다, 이 말이지?”
“심증이지만요.”
세상에 증거 없이 증명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게 또 사람 일이라면.
다만, 서인하나 정민우나 심증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알지? 매우 위험한 일이야. 사실로 확인될 가능성도 매우 낮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 신경 쓰이는 점이 하나 있어요.”
“뭔데.”
“투표 업체 말입니다.”
시청자 투표가 필요한 경우, 방송사에서는 그 진행과 사후 관리를 보통 두 개의 방법으로 행한다.
방송사 자체 팀을 편성하거나, 관련 회사를 외주로 기용하거나.
<언더커버 싱어>는 후자였다. 그리고 그 업체의 선정은 이미 끝났고, 서인하 선에서 결재도 끝난 상태였다.
“거기가 왜.”
“전 이번이 처음인데, 거기 업체가 어쩐지 계속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어서요.”
“우리 방송사랑 몇 년 일했으니까, 오며 가며 이름 정도는 낯익을 텐데?”
“왠지 찜찜해서 그럽니다.”
정민우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그가 이 정도까지 말하니, 서인하도 그냥 넘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체를 바꿀까?”
“가능하다면 내부에 맡기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일단…… 그래, 알아볼게. 정 팀장도 일단 다른 회사 선별해 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가야지.”
“알겠습니다.”
현준영 팀장만의 일이라면 불러서 털어도 어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인하도, 정민우도 머릿속으로는 다른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
현준영 팀장을 지원 형식으로 <언더커버 싱어>에 보내 버린 장본인, 신호현 이사.
이 일 뒤에 그의 그림자가 있을 수도 있음을, 둘은 말만 꺼내지 않았을 뿐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 * *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현준영 팀장은 없었다.
나 대신 나타난 박주영 선배에게 리스트를 확인받고, 몇 마디 구시렁거린 뒤에 준비하러 나갔다고 한다.
“근데 넌 표정이 왜 그러냐. 정 팀장이랑 이야기가 잘 안 풀렸어? 헛소리하지 말라고 혼내시디?”
농담조로 덧붙이는 말에 나는 피식 웃고서, 정민우 팀장과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박주영 선배도 아 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 투표 조작 소문이 진짜였어?”
“선배도 들은 적 있습니까?”
“직접은 아니고. 어느 프로에서 그런 식으로 시청자들이 보내는 문자 데이터를 조작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었지. 근데 그게 그 이야기였다고?”
“진실은 아무도 모릅니다. 의혹만 있었고, 금방 사라졌다고 하니까요.”
실제로 좀 더 기사를 뒤졌더니, 나오긴 했어도 제대로 다룬 기사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통령 투표든 동네 이장 투표든, 투표에는 언제나 조작 의혹이 따라붙으니까. 우리도 어차피 그 정도의 심증밖에 없잖아. 정 팀장님이 알아봐 주신다고 했으면 무슨 말이라도 오겠지.”
박주영 선배가 심드렁하게 이야기하다가 내 얼굴을 힐끔 살폈다.
“그런데…… 너는 어때.”
“뭐가 말입니까?”
“네 감은 어떠냐고.”
아무도 없는 사무실. 선배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현준영 팀장이 지원 나오는 날에, 그걸 먼저 감지하기도 했던 강촉새의 감은 어떠냐는 말이지. 투표 조작이 진짜 같아, 아닌 것 같아?”
“…….”
이걸 말해야 하나. 고민은 되었다.
그렇지만, 박주영 선배가 눈빛을 보니, 어조에 비해 쉽게 물은 이야기는 아닌 듯했다.
흔들림 없이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제 감입니다.”
“그래.”
“투표 조작, 한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럼 이번에도?”
“예.”
근거 없는 낭설이 아니다. 나한테 있어서는.
AGD 앱이 알려 준 것은, 과거 <스타 프로듀스 K>에서의 투표 조작이 사실이라는 것.
다시 말하면 현준영 팀장은 당시 PD로서 투표를 조작하여 결과를 바꾸었다. 그렇게 데뷔를 하지 못했을 인물을 데뷔하게 만들었다.
그런 그가 이 팀에 갑자기 지원으로 나오게 된 것은, 목적이 있다고 추측하는 것이 타당했다.
지금도 그 목적을 이루려고 할 것이고.
AGD 앱이 알려 준 근거, 아니 사실을 토대로 한, 추측이었다.
“워낙에 촉새니까. 영 태클 걸 맘이 안 생기네.”
그는 후우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등받이 깊게 묻었던 자세를 되돌렸다.
“일단 팀장님 말을 기다려 보자. 그동안 우리는 최대한 현 팀장 마크하고. 아직 몇 주 남았잖아.”
“5주…… 정도 남았습니다.”
“아직도 5주나 같이 있어야 하는 거냐. 어휴, 끔찍해라.”
그는 과장되게 몸을 부들 떨더니 담배를 피우고 오겠다고 챙겨 들고 나갔다.
다시 본의 아니게 사무실에서 혼자가 되었다.
그래도 어차피 나도 곧 매니저 미팅하러 나가야 한다. 짐을 챙기러 자리에 앉았는데, 모니터 한구석에서 메신저가 깜빡대는 것이 보였다.
정민우 팀장이었다.
[정민우 팀장: 투표 업체 바꾸기로 했으니까 수배해서 알려 줄게. 일단 고르고 있을 시간이 없을 테니 내가 임의로 정하고 알려 줄 거니까 그렇게 알아둬.]
[예. 감사합니다]
몇 분 전에 보내 온 메시지였다. 그새 서인하 국장과 이야기를 끝내고 일단 그 방향으로 정리를 한 것 같았다.
하긴. 아무런 증거가 없는 지금 상황에선 차라리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없애 버리는 것이 맞는 듯싶다.
투표 업체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 입장에선 돌다리도 두들겨 봐야 했다.
그나마 한숨 돌리는 기분이었다.
“확률이 좀 올랐으려나.”
현준영 팀장에 대해 방비를 시작했으니, ‘10%’였던 시청률 유지 확률이 조금이라도 올라갔다면 좋을 텐데.
화이트보드를 보며 집중하는 순간, 눈앞에서 빠르게 메시지들이 주르륵 흘러갔다.
의혹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준, 포인트 적립 따위 없던 ‘100%’가 사라지고, <언더커버 싱어>가 마지막 화까지 6%를 유지할 확률이 재차 허공에 떠올랐다.
[10%]
조금이라도 변동이 생기길 원했던 내 희망을 비웃듯, 아니, 완전히 짓밟아 버리듯 확률은 그대로였다.
“젠장, 어쩌라는 거냐, 대체.”
현준영 팀장이 헛짓거리를 못 하도록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그런 노력이 모두 아무런 효과도 없다는 건가?
노력의 방향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애초에 내가 대비할 수조차 없는 일이라는 의미인가.
“……아니지.”
좌절할 뻔했다가, 아직 그러기에는 이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폰을 꺼내 AGD 앱을 열었다. 상점을 찾아 들어가자 아이템이 보였다.
[오늘의 꿀팁 : 확률 상승에 필요한 정확한 팁을 제공한다]
더 지체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재빨리 아이템 사용을 터치했다.
[아이템 ‘오늘의 꿀팁’을 사용하였습니다.]
[사용 포인트: 2,000P]
힘들게 모아 둔 포인트가 또다시 세 자릿수로 떨어졌지만 아까워할 수 없었다.
이런 탕진은 착한 탕진이니까.
[아이템 사용 시, 확률 보기 10회 사용 후 재사용할 수 있습니다.]
[부족 확률의 원인 변수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파악이 끝난 후, 확률 상승을 위한 명확한 방법을 도출합니다.]
[이 과정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혹시나 했지만, 이 아이템은 단순히 확률을 보여 주는 아이템이 아니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또 부족 확률의 원인 변수를 해결하고 확률을 상승시킬 가능성이 있는지, 그 정확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 방법만 나온다면야 시간이 다소 걸리는 것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다만, 현준영 팀장이 일을 치기 전에 그 방법이 나오기를 바랄 뿐.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
[시간이 걸리는 만큼 확실한 방법을 제시해 드립니다.]
그 메시지가 더없이 든든했다.
* * *
현준영 팀장과의 마찰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무대를 꾸미는 것에 있어서 그가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그만큼 아랫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오 PD, 며칠만 더 고생해 줘.”
“예…….”
그렇지 않아도 멘털이 항상 걱정인 오지환이 현준영 팀장을 상대하느라 항상 지쳐 있었다.
“안 되겠다. 대한아, 현준영 팀장은 내가 전담할게, 그냥.”
“예? 선배가요?”
“지환이는 편집실이 더 맞아. 편집도 곧잘 하고. 너도 다른 일로 하는 게 바쁘니 그냥 내가 희생할게.”
“박 PD님…….”
듣고 있던 민희를 비롯한 작가진이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멋있어…….”
“오늘따라 잘생겨 보이세요…….”
“크으, 내가 좀 잘났지?”
“아, 지금은 말고.”
선배가 이 사람들이! 하고 화를 내자, 작가진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옆에서 오지환도 힘 빠진 웃음을 짓는 것을 보고, 편집 감독 지원 좀 붙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선배에게 인사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이 은혜, 결코 후손들은 잊지 않을 겁니다.”
“젠장, 죽으러 가냐, 내가 무슨. 장례는 잘 치러줘.”
전우를 보내는 심정으로, 우린 사무실에서 그를 내보냈다.
6화 방영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4차 경연도 코앞까지는 왔다.
정민우 팀장이 추가로 보충해 준 제작진이 열심히 뛰어다녀 주고 있었고, 덕분에 제작 자체는 순조로웠다.
5화의 시청률도 좋았거니와 화제성도 여전해서, 이번 주에 집계된 예능 순위에서는 내로라하는 예능 프로들을 제치고 10위권 안에 들었다.
NBS 통틀어서도 5화 만에 이 정도의 화제성을 만들어낸 것은 드물어서, 위에서 굳이 치하의 말까지 보내 왔다.
그럴 거면 현준영이나 도로 빼 주든가.
그러나 그런 갖은 일이 있음에도 확률은 여전했다.
[10%]
여전한 건 또 있었다.
[이 과정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시간이 걸리는 만큼 확실한 방법을 제시해 드립니다.]
아이템도 여전히 못 보고 있었다. 그렇게 방법을 찾기가 어려운가. 아님, 이거 그냥 사기인가.
뭐, 따지고 보면 부족한 확률이 무려 90%나 된다. 웬만한 방법으로는 불가능할 테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겠지만…… 그래도 너무 오래 걸린다는 생각을 지울 순 없었다.
“4차 경연 전엔 제발 좀 나와라…….”
그렇게 비는 사이.
정민우 팀장이 새로 선정해 준 투표 업체와 미팅을 하고, 최종 시청자 투표 시스템에 대한 기획을 확정했다.
업체가 달라지니 시스템도 달라서 조금 헤매긴 했는데, 업체 담당은 친절하게 웃어 주었다.
“요즘 <언더커버 싱어> 보는 맛에 삽니다. 노래도 맨날 듣고 있고요. 그런 방송에 도움 드릴 수 있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블라하이의 팬이라고 하는 담당자가 붙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마지막 무대에 초대해 드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날 자리를 비울 순 없으니까요. 그냥 윗분들께 이야기 잘해 주십시오.”
만들어지지 않은 얼마 되지 않은 업체여서 이런 급한 의뢰에도 대응해 줄 수 있던 곳이다.
나는 맡겨 두라고 이야기한 다음, 악수하고 미팅을 끝냈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현준영 팀장이 와 있었다. 그는 대놓고 표정이 좋지 않았다.
“투표 업체 바꾸었다면서요?”
“예. 좀 전에 미팅하고서 확정하고 왔습니다.”
“갑자기 왜?”
“글쎄요, 팀장님 결정 사항이라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원래 하던 데가 잘할 텐데. 시스템 불안한 거면 사람 좀 더 쓰면 되는 거고요.”
“이 건은 저도 시키는 대로 하는 거라……. 팀장님끼리 이야기해 보십시오.”
난 모르겠다는 투로 잡아떼자, 현준영 팀장은 몇 번 더 웅얼대다가 그냥 혀를 차고 사무실을 나갔다.
현준영 팀장의 수를 하나 막았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를 너무 가볍게 봤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현준영팀장: 강PD, 저녁에 시간 돼요? 술 한잔 안 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