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로그인-216화 (216/260)

# 216

216화.

[고유능력 ‘지배’가 발동합니다.]

[액티브 스킬 ‘조련’이 발동합니다.]

정시우의 힘이 반쯤 신성력으로 변한 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그 마나는 유독 그의 고유능력을 쓸 때면 더욱 능력의 효율을 높여주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고, 지금 그가 작정하고 지배를 발동하며 뿜어낸 마나는 순수함과 용량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 마나는…… 그렇구나.]

홀로 무엇인가를 납득한 에리우는 얌전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유고의 의지가 거세되고 남은 대지의 힘, 그것을 지배하며 증폭시키는 정시우의 힘…… 그 모두가 그녀의 전신에 스며들어, 그녀를 변화시켰다.

엘에게 있어서 그것은 새로운 존재로서 태어나는 순간, 세례의 의식이나 다름없었다. 지극히 편안하고 따스한 느낌. 태어난 순간부터 결핍되어 있던 무엇인가를 이제야 되찾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유능력 ‘지배’가 Lv2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정시우 역시 크나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세이락시아라는 거대한 존재에 이어 지상의 패자인 엘까지 완벽히 조련하게 된 지금, 기어이 그의 고유능력이 한계를 넘어 성장한 것이다.

‘……아아. 역시 이게 맞았구나.’

고유능력의 레벨은 스킬의 레벨과도, 정시우 본인의 레벨과도 다른…… 굳이 따지자면 하나의 세상이 다음 단계로 진화하는 것과 같은 격변. 정시우의 내부, 육안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한 영혼의 영역에서 성대한 폭발이 일어 이윽고 육체까지 변화시켰다.

그러나 지배가 갑자기 성장한 것은 정시우가 마력의 다른 형태를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다. 정시우가 스스로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히는, 부정하고 있던 자신의 본성을.

‘내 안의 폭력성을, 발아한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이제 이 세상은 더 이상 내가 어깨를 움츠리고 있어야만 하는 좁아터진 새장이 아니니까.’

언젠가 신과 같이 될까 봐 은근한 두려움을 품고, 그들을 부정하고 배척해 온 자신마저 끝내 부정하게 되는 것이 두려워 나아가는 것을 멈추고 망설이던 시기가 있었다.

갖은 이유가 있었지만, 다른 세상을 돌아다니며 신의 파편을 회수한다는 것은 결국 그들과 자신의 차이를 확인하고 안도하기 위한 도피행에 불과했을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결국 부질없는 일이었지. 신들마저 각기 다른 개성과 목적을 가지고 있거늘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에 몰아넣고 나와의 차이점을 찾으려던 것부터가 바보 같은 일이야. 나를 규정하는 데 중요한 것이 능력인가? 습관이며 개성인가? 아니…… 그럴 리가.’

본인의 능력이 너무 거대해진 나머지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겁을 먹게 된 것이리라. 아직 그의 머리 위로 까마득하게 강한 자들이 많은데 우스운 일이다.

스스로의 능력에 매진하지 못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더는 시간낭비를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내 의지, 그뿐이다. 지구에 함부로 손을 대려 했던, 그 구성원들을 제 뜻대로 농락하고자 했던 신들이 마음에 안 드는 것만은 확고한 사실. 그들의 능력과 비슷한 것을 지니고 있었다고 사춘기 소년처럼 갈등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냐. 같은 능력이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른 법인데 대체 뭘 망설인 건지 모르겠다, 진짜로.’

힘이 거대하면 어떤가. 그 반동 따윈 그가 전부 감당하고 받아 내면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그의 피를 타고 흐르는 괴력의 마나를 보라,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은가.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많이 아프고 짜증도 났지만, 결국 그는 두 발로 버티고 대지에 서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자신을 도와주는 많은 이들과 함께.

‘그러니 나는 지배하겠다. 나를 모르는, 나를 거부하는 이들이 아닌, 나를 따르는, 나를 좋아하는 이들을. 날 귀찮게 하는 모든 것들을 짓밟아 으깰 수 있게 되는 그 순간까지.’

비록 반년의 이세계 파편 사냥의 시작에는 도피적인 경향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그 시간 동안 충분히 생각하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지구인들과 엘의 갈등 때문에 반쯤 억지로 능력을 개화하게 된 감은 있지만…… 마침 좋은 시기에 트리거를 당겨 준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등을 떠밀어 준 이들은 결국 그를 따르고자 하는 이들이지 않은가. 마지막 망설임의 끈을 붙잡고 있던 정시우에게 자신의 고유능력에 대한 확신을 얻게 해 준 것이다.

[고유능력 ‘지배’가 Lv3이 되었습니다.]

정시우의 상념이 끝난 바로 그 순간, 지배가 다시 한 차례 성장했다. 스킬도 아닌 고유능력이 짧은 순간에 두 단계나 레벨이 오른 것이다!

능력 자체는 진즉 도약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는데 우유부단한 의지로 그것을 잡아 두고 있었으니, 망설임을 버린 순간 높이 뛰어오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아, 아아…….]

정시우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찬란한 빛에 엘이 감탄사를 흘렸다. 그와 한층 깊이 연결되는 순간의 감동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비로소 그녀는 정시우와 닮은 형상으로…… 인간으로 변할 수 있게 되었다. 신을 따르는 자들이 신을 닮아 변하듯이, 그렇게.

[조련 스킬로 Lv345 에리우를 조련합니다. 상대가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스킬의 효율이 높아집니다. 고유능력의 힘이 더해져 조련 대상의 능력치를 증폭시키며, 추가 스킬을 부여합니다.]

[조련 스킬이 Lv35가 되었습니다.]

빛이 완벽히 사그라지고 그 안에서 엘의 모습이 드러났다. 늠름한 거대 백호가 있던 자리에 나타난 미녀. 신화의 한 장면과 같은 그 광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던 수아린은 엘의 인간 모습을 확인하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전개는 각오하고 있었으니까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어요. 다 알고 있었다구요?”

“선배님, 손아귀 안의 스태프가 살짝 부러질 것 같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을 미소년으로 재탄생한 세이락시아를 보면서 얼추 예상은 했었다. 육지의 지배자로 거듭난 높은 격의 소유자, 에리우 역시 인간의 형태를 띠게 되면 장난이 아닐 것이라고!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예상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아아…… 슈. 슈. 오오, 인간의 성대다! 나는 인간이 된 것인가! 그런가, 슈?”

“그래, 인간이야.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만.”

“하지만 난 너와 닮은 이 모습이 더 좋은걸. 흠, 흐음. 그래, 이제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

정시우는 인간으로 거듭나자마자 능숙하게 한국어로 말해 오는 엘을 보며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아니, 사실 쓴웃음의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만약 엘이 처음부터 이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섰더라면, 어쩌면 핵이니 화학 무기니 하는 얘기는 애초에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는걸.’

세이락시아는 거대한 덩치의 고래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작은 체구의 소년이었는데, 에리우는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큰 키의 매력적인 성인 여성으로 거듭났다.

남자 중에서도 장신인 정시우와 눈을 마주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어지간한 이는 인간 형태의 엘을 상대로도 위축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물론 세이락시아가 그랬듯, 그녀 또한 다행히도 본인의 가죽에서 비롯된 줄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백호라는 사실을 아주 전신으로 주장하고 있구나. 새하얀 피부에 은발…… 그리고 반짝이는 금안까지.”

“후후, 슈도 내 눈의 힘을 눈치챘는가? 나의 이 금안은 필요 없는 전투를 막아 준다. 보아라, 어지간한 잡것들은 다가오기도 전에 쫄아서 물러나겠지?”

엘은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정시우에게 조금 가까이 들이댔다. 확실히 찬란하게 빛나는 그녀의 금안은 신비한 힘을 머금고 있어 그녀의 격을 단번에 상대에게 납득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어, 그러네. 확실히 그래. 납득했어.”

“음? 왜 그러는가, 슈?”

“으드득…….”

물론 그녀보다도 아득히 높은 격을 지닌 정시우에게는 그저 신비롭고 아름답게 비춰질 뿐이었다. 정시우는 살짝 뒤로 물러났다. 슬슬 수아린의 눈치가 보였다.

“흠…… 그런데 인간의 몸은 조금 이상하구나. 저 인간 여자를 볼 때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왜 이렇게 전투에는 필요 없는 군살이 붙어 있는 것이지?”

“어…….”

그녀가 거대한 호랑이였다는 흔적은 키에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고양이나 표범을 떠올리게 하는 매끈하고 슬림한 신체 라인 중 유독 특정한 부분이, 툭 까놓고 말해 가슴이 거대했던 것이다.

“끄응, 게다가 지나치게 연약해. 공격을 당하면 곤란하겠는데…… 힘을 주면 딱딱하게 만들 수는 있을 것 같지만. 음, 으으음…….”

엘은…… 물론 일부러는 아니겠지만, 그 거대한 흉부를 스스로의 작은 손으로 주물러 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망상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모습에 정시우는 다시 한 걸음 그녀에게서 물러나야만 했다.

결국 엘은 자신의 가슴을 긍정적인 측면으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는지, 밝은 얼굴로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확실히 전투적인 측면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정도라면 새끼를 많이 낳아도 문제가 없겠구나. 슈, 보다시피 나는 인간의 기준으로도 결격 사유가 없는 건강한 여성이다. 굳이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알아 둬라.”

“…….”

형태는 인간이 되었지만 사고는 여전히 짐승의 그것이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일까, 고뇌하는 정시우 옆에서 수아린이 칙칙한 오라를 뿜으며 중얼거렸다.

“나도 어디 가서 밀려 본 적이 없는데, 저건 대체…… 죽었으면.”

“선배님, 살의가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만…….”

“그냥 오빠한테 추파 던지는 것들은 다 죽었으면…….”

아마도 백호로서의 엘은 무척 아름다웠던 모양이다. 그것이 인간으로 거듭나면서, 인간의 여성으로서 지닐 수 있는 매력 포인트에 집중되었다…… 뭐 대충 그런 결론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정시우는 터져 나올 것 같은 엘의 가슴에서 시선을 단호히 잡아떼며 손뼉을 짝, 쳤다. 이 바보 같은 소동에 들떠 있던 전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이전부터 말했지만, 너를 지배하겠다고 해도 딱히 네가 다스리는 몬스터들을 내 맘대로 휘두르겠다는 생각은 없어. 하지만 너 본인은 앞으로 조금 빡세게 굴릴 수도 있으니 각오해 둬.”

“그건 무척 기쁘구나. 슈와 함께라면 앞으로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어째서 엘은 일일이 소년만화 주인공 같은 대사를 친단 말인가! 이래서야 더 무슨 말을 못하겠다. 정시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세계무대 데뷔다. 다시는 인간들이 너와 네가 다스리는 영역에 참견을 못하도록, 입장을 밝혀야지 않겠어?”

“싸우지 않고도 일이 해결되겠는가?”

엘이 굉장히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 정시우는 그 질문에 그저 후, 웃고는 답했다.

“네가 말했잖아. 네 금안은 싸우지 않고도 잡것들을 제압할 수 있게 해 준다고.”

“그렇지만 아무래도 인간들은 금수보다도 어리석은 것 같아서 말이다.”

“확실히 네 말이 맞지만, 그러면 더 확실하게 보여 주면 되는 거야. 아무리 어리석어도 알아먹을 수밖에 없도록.”

그리고 케이나와의 대화에서 드러났듯, 그는 이미 그의 ‘금안’을 보여 주었다. 전 세계가 하나로 뭉친다고 해도 절대로 덤빌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하는 무력을 이미 과시하지 않았던가. 이젠 무대 위로 올라가 그 효과를 확인할 일만 남았다.

“날짜와 장소를 잡자고. 기대해, 엘.”

“또 오빠의 과시본능이…….”

수아린은 한숨을 쉬다가도 끝내 픽 웃어 버렸다. 정말 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일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로부터 사흘 후, 엘의 사회 데뷔 무대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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